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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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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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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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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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사무소

DUMMY

다음 날 아침 일찍 하유성은 에록의 설명을 되짚으며 ‘사무소’로 갔다.


알레프는 여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도시 중심으로 갈수록 건물들이 화려해지고 높아졌는데, 특이하게 사무소만큼은 중심에 있었는데도 허름한 이 층짜리 건물에 있었다.


대신 아주 넓은 알짜배기 땅을 차지하고 있는 걸로 보아 꽤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 있었던 듯했다.


‘일단 일찍 가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네. 다들 괜찮은 임무들을 찾으려고 난리거든.’


덕분에 하유성은 청량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아침까지 굶은 채 사무소에 다다랐다.


“그러긴 했소만···.”


아무래도 하유성이 개척자들의 일찍이란 말을 너무 간과한 듯했다.


“내가 먼저 집었어!!”


“개소리! 자네는 맡을 레벨도 안 되면서 왜 깝치나?”


“같이 가 줄 사람이 있으니 빨리 임무지나 내놔!”


“흥, 만년 그렇게 남 뒤치다꺼리나 하니까 아직도 2레벨이지.”


“뭐가 어째?”


“저기 뒤로 꺼져서 좀 싸워요!!!”


“3층 토벌 의뢰. 2레벨 마법사 한 분 모십니다! 정산 비율 조정 가능합니다.”


우당탕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입구에 있는 하유성 쪽으로 밀려났다.


사무소 안은 벌써 인산인해였다.


임무 수주는 기본적으로 특별한 마법적 처리가 된 임무지를 가지고, 종이에 적힌 요구치에 맞춘 파티를 모아 사무소에 등록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지정 의뢰나 고의 마물 토벌같이 특이한 케이스는 제외하고, 모든 임무는 기본적으로 별다른 면접 없이 선착순 수주.


어차피 임무지에 조건과 기한이 있기 때문에 레벨만 맞으면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그렇게 사무소의 1층은 임무지의 배분과 파티 모집이 이루어졌고, 2층에선 파티를 모은 사람들의 등록이 이루어졌다.


에록은 일찍 가지 않으면 괜찮은 임무는 다 떨어졌을 테니, 다른 파티에 합류하거나 자신에게 맞는 특이한 임무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개척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전위.

사람들이 구하는 건 거의 성직자나 마법사였기 때문에 하유성이 기존 파티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임무 선별부터 파티 모집까지 다 알랭 상단에서 처리했기에 하유성이 신경쓸 필요가 없었던 일들.


“···찾아볼까.”


물론 하유성은 그렇다고 편하게 임무를 받던 시절이 그립다거나 하는 싸구려 감상 따위를 느끼진 않았다.


홍매나 랜든 같이 생활에 찌들지 않는 게 하유성의 목표이자 바램.


고작 조금 편해지자고 개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런 다짐을 하며 적절 레벨과 층수 별로 나눠진 임무지 다발을 살펴보고 있던 하유성은 굴러다니는 임무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층수: 3층]

[필요 인원: 2~3레벨 최소 2인, 최대 4인. 3레벨 최소 1명 필요. 전위, 성직자 필요.]

[내용: 하피의 알 3개 납품]

[보상: 총액 16만 프라하. 정산 비율 자유]

[기간······]

[···]


3층 임무의 평균 금액이 10만 프라하 전후라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후한 보상.

그것도 네다섯 명이 나눠 가지는 금액이다.


최소 인원이 2명인 걸 보면 한 사람당 무려 8만 프라하를 가져갈 수 있는 임무였다.


어차피 뭐가 좋은 임무인지 잘 알지 못하는 하유성은 일단 그 임무지를 들고 파티를 모집하는 곳으로 갔다.


파티를 모집하는 방법도 간단했다.


놓여있는 적당한 크기의 판에 임무지를 붙이고, 원하는 인원과 레벨을 적어두고 하염없이 서있는 것.


물론 다른 사람들은 판을 요란하게 꾸미기도 하고, 원하는 인원을 크게 소리쳐 부르기도 했다.


하유성은 민망한 마음에 별다른 문구 없이 인원만 적어두고 서 있었다.


[미궁 3층 임무. 2레벨 이상 성직자 구함. 정산 금액 8만 프라하. 본인 3레벨 전위.]


만약 2레벨이 온다면 하유성의 레벨이 더 높은 데도 정산을 5:5로 해야 했지만, 하유성은 일단 그렇게 적었다. 전위에 비해 성직자가 귀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높은 보수 때문에 잠깐씩 들여다보긴 했어도 이내 임무 내용을 보고 미심쩍은 눈으로 하유성을 바라봤다.


“뭐야, 고작 둘이 이걸 하겠다고?”


“문제가 있소?”


“뭔지도 모르고 사람을 구하다니. 엉망이군. 엉망이야.”


사람들은 하유성을 보고 피식 웃을 뿐, 뭐가 문젠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고 돌아섰다.


뭐가 문젠지 모르는 하유성만 괜히 영문을 모르고 멀뚱히 서 있는 상황.


그러나 공급이 있으면 수요가 있고, 뭘 모르는 사람은 하유성 말고도 얼마든지 있는 법.


“저···. 정말 8만 프라하나 주시나요? 저는 2레벨 성직잔데도 5:5로 정산을···?”


하유성에게 다가온 건 새하얀 사제복을 입고, 길게 땋은 검은 머리를 한 젊은 여자 성직자였다.


“그렇소. 물론 미궁에 들어가는 준비 비용은 제할 테지만. 일단 최소 인원으로 갈 생각이오.”


“위험하진 않을까요?”

그녀는 조심스레 물어보면서도, 자신의 질문이 하유성의 심기를 거스를까 걱정하며 말했다.


어딘가 맹하면서도 소심한 구석이 있는 걸로 보아, 저쪽도 이렇게 따로 임무를 받는 건 처음인가 보다고 하유성은 생각했다.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소. 임무를 먼저 수주한 다음, 알고 지내는 코디네이터에게 조언이나 구해볼 생각이긴 한데···.”

하유성이 세이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오 코디네이터까지 고용하신다고요? 물론 그러면 든든하겠지만 돈이 꽤 들 텐데···.”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받는다기보단, 간단한 조언만 들을 생각이오. 여기 사람들은 알려줄 생각이 없는 듯하군.”


“아무래도 각자 사정이 다 다른 법이니까요.”

그녀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래서, 함께 하겠소?”


“좋아요. 저는 주님의 종, 체르나라고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2레벨입니다.”


“하유성이오. 3레벨이고.”


오히려 고레벨이나 권력자 집단에선 이름이 꽤 알려진 하유성이었지만, 저레벨 개척자들 사이에서는 그렇지도 않은지 체르나는 하유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두 사람은 함께 2층으로 가 임무를 접수했다.


“정말 두 분이 이 임무를 맡으시려는 걸까요?”


사무적인 표정의 직원조차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저쪽도 괜한 민원에 시달리기 싫어서인지 레벨과 신분 인증 이후에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


하유성은 다시 사무실을 열어 영업하고 있는 세이지 앞에 가서야 자신이 맡은 임무를 왜 다들 그렇게 피했는지 알게 됐다.


“이 멍청아!! 아무거나 받아오면 어떡해. 이걸 둘이 가겠다고요?!!”

순간 반말로 욕을 하는 세이지를 보며 하유성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이게 그렇게 힘든 임무요?”

3레벨에 절정 고수가 된 하유성은 고작 3층 마물에게 당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이건 사기나 마찬가지야. 보통 납품 임무는 마물과의 전투를 최대한 피해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인데, 하피는 자기 알 주변을 잘 떠나지 않거든. 그래서 기본적으로 수많은 하피를, 그것도 절벽 쪽에 있는 그들의 둥지에서 상대해야 하고, 그 절벽까지 가는 길목엔 독성을 뿜는 온천이 있어요···. 그걸 아니까 최소한 해독 주문이 가능한 성직자를 대동하는 임무인 거고요.”


“확실히 꽤 번거롭긴 하겠군.”


“그래요!! 정말, 자유인이 되자마자 이렇게 터무니없는 임무를 받아오다니···.”


옆에서 듣고 있던 체르나는 점점 표정이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떡해···. 그럼 이 임무, 취소해야 할까요?”


“취소하면 위약금이 얼만지는 알고 하는 소리예요? 아휴···. 어디서 또 순진한 여자애를 꼬셔 와서는.”


“나도 뭘 알고 데려온 건 아니오···. 어디까지나 남들처럼 발품을 팔아서 얻은 동료지.”


하유성이 묘하게 뿌듯해하며 말했다.


“동료라니···. 좋은 어감이에요.”

묘하게 맹한 체르나까지 대책 없이 배시시 웃어 대는 걸 보고 복장이 터지는 건 세이지뿐.


“하아···. 어디서 꼭 단순한 사람만 모아와서는···. 이게 그렇게 쉬워 보여요?”


“나는 괜찮을 것 같소. 들어보니 뭐, 결국 마물을 잘 죽이면 될 문제군.”


사실 하유성은 새로운 마물을 많이 상대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좋았다.

독 온천이라는 것도, 아마 3레벨에 올라 받은 특전인 해독-치유 능력을 쓰면 별 위협이 되지도 않을 터였다.


“물론 당신이라면 어떻게 될 수도 있겟지만···.”


“나보다도 일단 세이지 당신을 믿고 있소. 돈을 낼 테니 임무를 도와줄 수 있겠소?”

원래는 가볍게 조언만 들을 생각이었지만, 그러기엔 임무가 녹록치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함께 있는 체르나가 사색이 되어 꼭 코디네이팅을 받았으면 한다는 의견을 열심히 표현했기에 세이지에게 의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진짜 싼 값에 부려 먹히는 사람이 아닌데···! 두고 볼 수가 없네. 정말. 알았어요!”


세이지는 3층으로 가는 길과 하피들의 서식처에 대한 정보,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소모품, 싸움 구도 등을 정리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물품 중 상당수는 세이지의 사무실에 있기까지 했다.


“와아··· 엄청 유능하시네요. 유성 씨는 어떻게 이런 분을 아세요?”


“뭐, 이래저래 얽히게 됐소.”


체르나는 선망의 눈으로 세이지를 바라봤다.


겉보기에 왈가닥일 것만 같은 금발 장신의 세이지는 사무적인 일에 엄청 꼼꼼했고, 신실하고 진중할 것 같은 외모에, 길고 고운 흑발 때문에 더욱 도도해 보이는 체르나는 대책 없고 맹한 성격인 게 대조적이었다.


“당신. 유성 오라버니에 대해 모르죠? 같이 있으면 목숨이 여러 개라도 부족할 거예요. 조심해서 가요. 무서워서 심장 떨리는 걸 괜히 설렘으로 착각하지나 말고.”


“옛···? 저는 저의 주 여신님을 모시는 몸이라구요. 무슨 그런 불경한 말씀을···.”


세이지는 나름대로 농담 반, 진심 반으로 조언을 했지만 체르나는 아직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못했다.


“고맙소. 대금은 꼭 주겠소.”


“됐고, 나중에 제가 부탁하는 임무에나 들어가 줘요. 유성 씨 같은 전력을 써먹을 수 있으면 든든하지.”

여전히 공과 사를 넘나드는 화법을 쓰는 세이지가 말했다.


“마검에 사로잡히는 건 싫은데.”


“헛소리 말고요!! 이제 그런 일 없거든요?!”


“헤에, 두 분은 참 가까우시군요.”

체르나의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에 세이지의 얼굴이 붉어졌다.


“익···. 이제 됐어요. 빨리 가봐요. 안 되겠다 싶으면 꼭 그 소리 폭탄을 던진 다음 도망쳐야 해요. 하피는 소리에 약하니까.”


“알겠소. 그래도 고마우니 다녀오면 술이라도 한번 사지.”


“그래요. 그거면 됐어요. 가요.”


하유성과 체르나는 몇 가지 물품을 더 사느라 하루 이틀 정도 더 준비한 후 미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체르나는 왜 세이지가 그런 조언을 했는지 알게 됐다.


“꼭 이렇게 보이는 마물을 다 죽이면서 가야 해요···?”


“이게 다 마력이고 힘이 되는 게 아니겠소.”


“그건 저도 좋긴 한데···.”


노예라는 조급함이 사라진 하유성은 다시 1층부터 보이는 마물이란 마물은 전부 죽이면서 나아가고 있었다.


물론 내공을 쌓기 위해서기도 했고, 검기를 실전에서 좀 더 매끄럽게 쓰기 위해서기도 했다.


심지어 길잡이도 없는 탓에 넓은 미궁을 헤매다가 겨우 아는 지형을 만나면 한 층씩 내려가는 중인 두 사람.


덕분에 체르나는 마물의 피와 진액으로 범벅이 된 하유성에게 정화와 세척 마법만 반복해서 사용하는 중이었다.


“···어쩐지 살림살이하는 기분이에요오.”


“역시 성직자의 마법은 편하구려.”


“마법이 아니라 기도라구요!”


“기도가 힘이 된다니, 역시 신기한 세상이오.”


“신앙이 없다는 유성 씨의 세계가 더 이상해요.”

하유성은 낙오자란 것도 밝히고, 나름대로 말도 많이 하고 지냈다.


일전에 시리온, 크렌과 함께 할 때의 날선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

덕분에 체르나도 마물을 많이 잡느라 진을 빼긴 했지만, 꽤 편하게 하유성을 대하고 있었다.


“신앙이 없다기보단, 그게 실체화된 힘이 없었소. 도가의 선기니 불가의 파마정광이니 하는 것들도 사실 인간의 수행이 쌓여 생긴 힘에 가깝다고 알고 있소.”


“어딘가 불경한 것 같기도 하고, 신성한 것 같기도 하네요.”

체르나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그 사이 하유성은 또 마물을 발견하고는 순식간에 뛰쳐나가 죽이고 왔다.

그가 잡은 건 2층 숲 지대에 사는 퓨리호그였다.


아는 마물의 등장에 하유성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3층에 가는 길을 알 것 같소.”


“좋아요! 가보죠!”

세이지는 어렵다고 난리 친 임무였지만, 자유인이 되어 미궁에 들어온 하유성의 마음은 가볍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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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0화 문천 24.09.08 53 2 12쪽
39 39화 팀 24.09.07 54 4 13쪽
38 38화 하피 24.09.06 57 4 13쪽
» 37화 사무소 24.09.05 68 4 13쪽
36 36화 심부름 24.09.04 68 3 12쪽
35 35화 가치 24.09.03 76 5 13쪽
34 34화 결투 (2) 24.09.02 72 5 12쪽
33 33화 결투 (1) 24.09.01 79 5 13쪽
32 32화 반항 24.08.31 81 3 13쪽
31 31화 낙차 24.08.30 81 3 14쪽
30 30화 수련(1) 24.08.29 85 4 13쪽
29 29화 추격(2) 24.08.28 96 5 13쪽
28 28화 추격(1) 24.08.27 101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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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마검(3) 24.08.25 97 3 12쪽
25 25화 마검(2) 24.08.24 100 4 13쪽
24 24화 마검(1) 24.08.23 11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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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횡재 24.08.21 111 4 14쪽
21 21화 토벌(2) 24.08.20 112 4 14쪽
20 20화 토벌(1) 24.08.19 130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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