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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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작품등록일 :
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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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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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7화 마검(4)

DUMMY

해저 동굴은 미궁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수정처럼 반짝이는 종유석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고, 곳곳에 맑은 샘처럼 물이 고여있었다.


돌들은 마치 조각처럼 기하학적 모양을 띠고 있었으며, 동굴 자체도 널찍하고 반듯해 자연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미궁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로엘리아가 감탄했다.


“저도 직접 와보는 건 처음이네요. 다만···.”


“몇 마리 있을 거라던 마물이 안 보이는구려.”


하유성이 세이지의 말을 받았다.


처음 계획에는 동굴 속에 모래사장의 게나 동굴 속 박쥐 모양을 한 마물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동굴은 아무런 생물의 반응 없이 고요했다.


차가운 바람과 미묘하게 무거운 공기 때문에 어쩐지 경건한 신전과도 같은 느낌이 들 지경.


그리고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요한슨···?”


“크르르륵···세···이지?”


동굴 안쪽에는 누더기가 된 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마물을 씹어 먹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묵처럼 검은 검 한 자루가 거칠게 쥐어져 있었다.


요한슨이었다. 그는 반기는 얼굴로 세이지를 바라봤다.


“저게 그 검인가 보군.”


마치 짐승처럼 쪼그려 앉아 이쪽을 바라보던 요한슨은 검이란 말에 표정을 바꾸고 격하게 반응했다.


“검? 그래 이제 이 검은 내 거야! 이제 늦었어. 꺼져!”


급기야 그는 푸르거나 붉은 마물의 피가 잔뜩 묻은 검을 얼굴에 부비기 시작했다.


추레한 몰골에도, 검만은 요사스럽게 빛나며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늦다니, 뭐가 늦었다는 거지?”

하유성이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이쪽을 경계하며 쳐다봤다.


“···요한슨. 다 끝났어. 검을 버리고 투항해. 너는 그냥 죽였다고 하고 기사단에게 검만 반납할게.”


“스흐히히힉 웃기지 마! 너희만 정리하면 아무도 내가 여기 있는 줄 몰라! 검과 영원히 있을 수 있어···.”


요한슨이 검을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구멍이 난 듯 바람 빠진 소리가 났다.


“대화는 통하지 않는 것 같군. 베겠소.”


하유성도 마주 검을 뽑았다.


“마검에 잠식된 것 같아요. 단순한 궁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로엘리아도 마력을 끌어올리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요한슨···.”


세이지는 약간의 미련을 보였지만, 군말 않고 뒤로 물러섰다.

녀석이 곧 튀어 오를 듯 몸을 낮췄기 때문이다.


“······.”


긴장감 속에 먼저 움직인 건 놈이었다.


“죽어!!”


공중으로 튀어 오름과 동시에 몸을 몇 바퀴나 회전시켜 원심력을 더하며 날아오는 요한슨.


로엘리아의 말처럼 후위의 몸놀림이라고는 볼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렇다고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군.”


흡사 짐승처럼, 방어를 도외시하고 달려드는 요한슨.


쾅!!!

하유성은 그의 검에 실린 힘 때문에 두 검을 교차하며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무게 중심이 이상하군.”


요한슨의 공격은 자세에서 짐작되는 것보다 무거웠다.


마치 모든 무게 중심이 검에 쏠려있는 느낌.


“검에 끌려다니는 것인가.”


하유성은 중원에서도 사람을 조종하는 요도나 마검에 대한 얘기는 들어봤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쿵!쿵!쿵!

하유성이 놈의 검을 흘릴 때마다 빗나간 검에 바닥이 깊게 파였다.


퍼억!

무지막지한 힘 때문에 양손을 모두 써 공격을 막은 하유성은 발로 요한슨의 몸을 차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우웨에엑!!”

요한슨은 내상을 입어 속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렀다.


[정화의 바람]


그때 로엘리아가 뒤에서 마법을 쓰자,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크아아악!!!”

그러자 요한슨이 한 손으로 머리를 쥐어 잡으며 비틀거렸고 하유성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가가 팔을 베었다.


후두둑

검을 든 팔이 떨어지자, 요한슨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힘을 잃고 쓰러졌다.


“어떻게 한 것이오?”


“원래 검의 주인이 해골 기사였다는 게 생각이 나서, 한 번 언데드에게 통하는 마법을 써봤어요. 다행히 잘 먹혔네요.”


로엘리아가 말했다.

1레벨에 받은 정화의 축복과, 2레벨에 받은 바람 마법을 섞어서 하유성에게 피해 없이 정확한 마법을 사용한 건 대단한 기예였다.


“···고맙소.”

하유성은 보기 드문 상대와 검을 더 나누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로엘리아에게 감사를 표했다.


“잘됐네요! 검을 보관해서 이동하는 것도 고민이었는데, 정화 마법을 쓰면 문제 없겠어요.”


세이지는 안도한 채, 태연한 얼굴로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요한슨의 머리를 자르려고 했다.


“꼭 수급을 챙겨가야 하는 것이오?”


“그럼요. 이래야 기사단에서 저에 대한 의혹을 풀죠.”


“그 의혹이란 것, 정말 의혹이 맞소?”


“예? 그럼요. 마검 때문에 일어난 일을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내가 보기엔 그 마검 때문에 일이 꼬인 것 같군.”


너무 손쉽게 요한슨이 숨어든 곳을 알고 있던 점.

그리고 세이지를 보고 묘하게 안도하던 요한슨의 얼굴.

결정적으로 늦었다는 그의 말까지.


“원래 이곳에서 만나기로 되어있던 것, 아니요?”


“······.”


“급히 수급을 자르려는 것도 깨어나서 뭔가 말하길 두려워하는 것 같구려.”


“···죽여서 데리고 가야 한다고 했던 건 유성 씨였잖아요.”

어느샌가 다시 유성 씨로 바뀐 호칭.

세이지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있었다.


“그것밖에 답이 없었으니까. 지금 보니 유도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구려. 지정 임무에 그렇게 큰돈을 쓴 것도 그렇고.”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죠? 저를 기사단에 고발해 죗값을 받게 하려구요?”


“그건 진상에 따라 다르겠지. 기사단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어 보이는데.”


“당연하죠! 처음엔 그냥 죽은 척을 하고, 값나가는 물건이 있으면 챙겨서 이곳에서 접선할 생각이었어요. 근데 괜히 서로 죽이다가, 요한슨까지 마검에 잠식돼서 다 망쳐버린 거라구요!”


“인간들이란···.”

로엘리아가 환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우리에게 수습을 맡기려고 했소?”


“당신들이 가격 대비 실력이 훌륭한 걸 알았으니까요. 4층에 다녀온 2레벨 개척자가 약할 리가 없죠. 친분을 만들고 싶었던 것도 진심이라구요!”


하유성과 로엘리아가 4층에 갔었다는 사실은 대외적으로 그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임무를 코디네이팅했던 세이지는 그 사실을 전해 받은 듯했다.


“어떡할 거죠? 난 상관없어요. 돈만 제대로 받고, 굳이 인간들과 갈등이 더 생기지 않는다면요.”

로엘리아가 하유성을 보며 물었다.


“···돕기로 했으니, 이번엔 계속 돕겠소. 하지만 이 자를 죽이는 건 용납할 수 없소. 살린 채 기사단에 넘기도록 하지.”


하유성은 씁쓸함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이 넘어가기로 했다.

다만 살인 멸구를 위해 요한슨을 죽이는 것까지는 허락할 수 없었다.


“그건 안 돼요!”


그러나 이미 요한슨의 코앞에 있던 세이지는, 급히 칼을 꺼내 휘둘러버렸다.


“무슨 짓을···!!”


하유성이 막을 새도 없이 세이지의 칼은 요한슨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캉!!

그러나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유성이 막은 게 아니라, 요한슨의 목에 단단한 뭔가가 생성되고 있었다.


“아니, 왜···. 이런···. 이건···뼈?”

세이지가 당황한 채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하유성은 세이지의 칼을 빼앗고 그녀를 뒤로 밀쳤다.


“조심해요!”


로엘리아가 하유성의 등 뒤로 날아오는 검을 향해 마법을 쐈다.


잘린 팔에 들린 검이, 팔 채로 날아오는 모습.


쾅!


다행히 마법은 검에 적중해 궤도를 틀었지만, 검은 그대로 날아가 다시 요한슨의 팔에 붙었다.


“크르르르륵···.”


요한슨의 눈은 붉게 물들어 더 이상 이지(利智)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물이 된 건가···.”


푸쉬이이이···

그의 몸이 점점 썩어들어가며, 뼈만 남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요한슨의 얼굴만 남고 몸은 전부 해골로 변하자,

동굴 안에는 음산한 사기(邪氣)가 맴돌기 시작했다.


“검의 원래 주인인 해골 기사가 되는 것 같아요!”


어느새 뒤쪽으로 물러난 세이지가 말했다.

이렇든 저렇든 결국 그녀의 목적은 이룬 셈이니, 좀 더 적극적으로 협조하려는 듯 그녀는 작전을 제안했다.


“놈의 특성은 빼어난 검술, 그리고 몸을 뒤덮고 있는 단단한 갑주예요. 마력으로 된 갑주는 정화나 신성 마법에 취약하니까, 로엘리아 씨와 유성 씨의 협공이면 벨 수 있을 거예요!”


“···넉살도 좋군요.”

로엘리아는 어이없다는 듯 세이지를 쳐다봤지만, 순순히 마법을 캐스팅했다.


요한슨의 몸을 휘두르는 것에 가까웠던 방금 전과 달리, 그의 정신을 제압하고 온전한 마물이 되어가고 있는 녀석은 점점 체계적인 검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제법···.”


해골 기사의 검술은 이능력에 의존하던 기사단의 휘리스보다도 훨씬 강했다.


채재재쟁!!

순식간에 몇십 합이 교차했다.

체계적이면서도 마력 갑주를 이용해 방어와 공격을 겸하는, 정통 기사의 검술.


놈은 내줄 건 내주면서도 한방을 노렸고, 하유성은 기민하게 모든 공격을 피하고 쳐내면서 유효타를 쌓아갔다.


콰드득!


문제는 하유성의 검이, 로엘리아의 마법으로 물렁해진 갑주를 뚫은 후에도 단단한 뼈에 가로막혀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뛰어난 검술로 압도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그는 2레벨.

아직 3층의 필드 보스급을 상대로는 공격력이 부족했다.


그래도 그는 부족한 힘으로도 해골 기사의 공격을 점점 더 잘 받아넘기고 있었다.


어떻게 되먹은 전투 센스야···.”

눈으로 보면서도 쫓아가기 힘든 공방이었지만, 세이지는 하유성이 점점 더 압도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투두두둑


힘이 부족하단 걸 깨닫고, 하유성은 점점 더 빠른 연격으로 해골에 둔탁한 충격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제 필요한 건 결정적인 한 방.’


하유성은 아껴뒀던 마력을 모두 사용해, 놈의 방어를 뚫을 수 있는 초식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카가각!!

검을 긁는 소리와 함께, 하유성이 놈과 검을 부딪쳤다.


초식이란 원래 연결된 동작의 모음.


당연히 파천이검의 초식들도 서로 연계해서 사용할 수 있었지만, 하나하나의 위력이 워낙 강력해 지금까지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초식은 세 번째 초식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투웅!

검을 부딪치던 하유성이,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천룡휘보의 초식을 이용해 하늘로 높이 떴다.


온몸에 기(마력)를 두르고, 어디로든 강하할 수 있도록 발바닥의 용천혈에 기를 모은다.

모은 기를 격발시키며 검을 가로 뻗어 공기를 가르며 가속.


처음의 이격(二擊)은 소검으로 뻗어 베고, 장검으로 당겨 베어 간격을 흔드는 방어 걷어내기.


삼격과 사격은 몸통을 사선으로 올려 베고, 오격과 육격은 치켜올린 검을 다시 그대로 내리며 양팔을 가져간다.


내리치는 힘으로 그대로 회전하여 몸통을 그어 내리며 이어지는 연격.


파천이검(破天二劍)

제 사 식(第 四 式)

극천난격(據天亂擊)


투콰과과광!

설명과는 다르게 순식간에 이어진 일련의 동작은, 이전까지 인간이었던 마물의 몸을 뼈째로 박살 냈다.


중력, 매 동작 기를 격발시키며 이루어지는 가속력, 원심력, 근력 등 모든 것을 이용한 절초.


파천이검 초반부의 마지막 초식은 앞의 수비적인 세 초식과는 다르게 공격에만 집중된 필살(必殺)기였다.


투두두둑.

이번엔 정말로 모든 동력을 잃고, 해골 기사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로엘리아는 급히 정화 마법을 건 천으로 검으로 둘둘 감싸려 했지만, 마검은 모든 힘을 소진한 듯, 더 이상 아무런 기운도 뿜고 있지 않았다.


그저 거무튀튀한 빛을 머금고 바닥에 굴러다닐 뿐.


하유성은 별걱정 없이 검을 집어 들었다.


“조심해요!”


세이지가 외쳤지만, 하유성은 이미 검을 들고 몇 번 휙휙 휘둘러 보기까지 했다.


“좋은 검이군.”


“···기사단에게 돌려줘야 하는 건 알죠?”

세이지가 경계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검의 마력에 잠식되어 탐낼 것을 걱정한 것.


“걱정하지 마시오. 이제 이 검은 어떤 마력도 없이 그냥 좋은 검이 됐으니까.”

하유성은 등을 긁적이며 말했다.


마법에 대해 잘 몰라도 하유성은 느낄 수 있었다.

이 검은 이제 누구 손에 들려도 고분고분하게 있을 거라는 걸.


검사로서 순수하게 아깝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는 원래 신병이기에 큰 미련은 없었다.


“이제 돌아가지.”

그들을 추격하고 있는 기사단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 세 사람은 다시 미궁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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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하피 24.09.06 57 4 13쪽
37 37화 사무소 24.09.05 68 4 13쪽
36 36화 심부름 24.09.04 69 3 12쪽
35 35화 가치 24.09.03 77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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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반항 24.08.31 82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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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마검(3) 24.08.25 98 3 12쪽
25 25화 마검(2) 24.08.24 101 4 13쪽
24 24화 마검(1) 24.08.23 113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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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토벌(2) 24.08.20 113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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