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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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작품등록일 :
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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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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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4화 마검(1)

DUMMY

“건방진 놈. 기사단의 일이라는 데도 감히 딴지를 거는 것이냐?”


“도움을 요청받은 이상, 연유를 들어보긴 해야 하지 않겠소.”


“저 여자는 기사단의 물건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게 어떻게 제 잘못이에요? 자기들끼리 내분이 나서 서로 죽고 죽이다가, 한 명이 물건을 가지고 튄 걸 나보고 어쩌라고!”


“용의자인 요한슨은 네 추천을 받고 임무에 합류했지. 그리고 그 임무를 코디네이팅한 건 네 년이다. 네가 그를 숨겨줬을 가능성이 높지. 거기 너, 알아들었으면 빨리 꺼지도록.”


기사용 전신 갑옷을 입은 남자는 손을 뻗어 세이지의 팔을 잡으려고 했다.


툭!

“충분하지 않소.”

하유성이 기사의 팔을 쳐냈다.


상당한 힘이 실려있었는데도, 팔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뭣이?”


“내게는 오히려 거대 집단의 분풀이처럼 들리는군. 본보기가 필요하든가. 증거라고는 심증뿐이지 않소?”


“맞아! 요한슨이랑 나는 그냥 의뢰주와 의뢰인 사이일 뿐이라고!”


하유성은 딱히 세이지 모르디엔을 믿는 건 아니었다.

그저 도움을 요청받은 이상, 자초지종을 살피는 것이 그의 협의기 때문.


“그 의뢰 사이에 다른 거래가 있었는지도 모르지.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 거기 너, 건방진 말투를 고쳐주지.”


기사는 칼을 빼 들며 말했다.

“내 이름은 휘리스. 미궁의 끝을 위한 기사단의 일원이다.”


“···하유성이오.”


대낮에 거리에서 칼을 빼 들었는데도 아무도 제지하거나 심지어 도망치지도 않는다.


기사단이라는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일이 워낙 흔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흥, 일원은 무슨 말석인 주제에.”


하유성은 일전에 드웨인에게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그가 속한 기사단은 들어오는 조건은 최소가 3레벨.


그러니 말석이라는 저자도 최소 3레벨일 터였다.


“이제 대화는 끝이다.”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옷을 입은 채로 몸을 부딪치며 양손에 쥔 검을 아래서 위로 크게 휘둘렀다.


후웅!!


매서운 검풍이 하유성의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과연 한 수가 있는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강력한 공격을 했지만, 하유성이 보기엔 동작이 컸다.


그는 회피와 동시에 단숨에 짧은 검을 꺼내 휘리스의 팔 쪽 관절 틈을 베려 했다.


캉!

그러나 하유성의 공격 또한 휘리스가 몸을 움직여 갑옷으로 받아냈다.


‘몸집에 비해 상당히 빠르다.’


쿵 쿵 쿵 쿵

휘리스는 전신에 두른 갑옷을 믿고 계속 돌진하며 하유성을 몰아붙였다.


물론 하유성도 중간중간 반격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 갑옷으로 막아냈다.


그렇게 다섯 합(合)이 지났다.


“이이익!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구나. 속도와 힘을 보니 2레벨 정도인가? 그래봤자 한 번 삐끗하면 넌 죽는다.”


“나도 파악했소.”


“흥, 뭘 파악했다는 거냐.”


“그 갑옷, 무거운 척했지만, 실제로는 거의 무게가 없구려. 단단함만큼은 진짜지만···무게에서 나오는 힘과 위력은 부족하군.”


하유성의 예측대로 휘리스는 날랜 몸놀림이 특기였다.


그가 3레벨에 오르며 받은 축복은 경량화의 가호.


자신이 두른 갑옷의 단단함은 유지한 채로, 무게만 가볍게 바뀌는 이능(異能)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일부러 거대한 사이즈의 갑옷을 입고, 큰 몸짓으로 검을 휘둘렀다.

실은 그저그런 힘으로 휘둘러 빠르기만 한 검이 마치 파괴력도 충분해 보이도록 만든 것.


보기보다 기민하게 하유성의 공격에 반응해 갑옷으로 막을 수 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알아도 소용없다! 단단한 갑옷과 빠른 몸놀림. 공방일체(攻防一體)인 이 몸을 뚫을 수는 없을 터.”


휘리스는 자신의 말이 옳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더욱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와중에서 슬쩍슬쩍 움직이며 하유성의 쌍검을 전부 튕겨내는 묘기까지.


“공방일체라니, 지나치게 과분한 수식이군.”


팅!

하유성은 이제 충분히 힘이 실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휘리스의 검을 피하지 않고, 왼손에 든 소검으로 튕겨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제는 숨 쉬듯 익숙해진 카운터 찌르기.

제 일 식 천원지살(天元誌殺)


쿠우웅!

갑옷 위로 맞았음에도 찌르기에 실린 힘이 강대해 휘리스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힘은 이렇게 싣는 거요.”


“큿 건방진 놈!”

휘리스는 재빨리 자세를 고쳐잡고, 하유성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지만.


어느새 보법을 밟아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쫓아온 하유성은 자세를 낮추고 휘리스의 오른쪽 옆구리 아래, 그의 사각으로 들어와 있었다.


퍼억!

그는 그대로 보법에서 파생된 회전력을 이용해 검 손잡이 부분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속도는 이렇게 쓰는 거고.”


검날에만 신경 쓰고 있던 휘리스는 하유성의 변칙 공격에 또다시 피 흘리는 코를 쥐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이런 비겁한 놈이···!”


얼굴을 맞아 잠시 현기증이 온 휘리스는 검을 막무가내로 휘둘렀다.

츠즈즈즛···!


그러나 하유성은 그 모든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쳐내며 거리를 좁혔다.

제 이 식 지복천번(地覆天翻)


“이건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이오.”


휘리스의 팔이 조금씩 뒤틀리다가, 급기야 하유성이 가볍게 휘두른 방어에 손목이 꺾여 검을 놓치고 말았다.


“크아악! 이런 씨발!!”

그럼에도 상대 또한 몇 년을 미궁에서 구른 베테랑.


그는 재빨리 몸을 웅크려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는 하유성의 검을 등으로 막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빠져나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유성은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척만 하고는 바닥을 구르는 휘리스를 천천히 따라갔다.


“마지막으론 상대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


툭.

그는 웅크린 자세에서 일어나려는 휘리스를 발로 밀듯 차 버렸다.


휘리스는 몇 바퀴를 더 굴러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세 번째 초식까지는 쓸 것도 없었군.”


휘리스는 일어나지 못하고 멍하니 바닥에 누워있었다.


부상이 크진 않았지만, 시종일관 뒤로 물러나기만 하다가 검도 놓치고 바닥도 굴렀다.


그야말로 굴욕적인 패배.


“공방일체라는 표현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오.”


하유성의 파천이검은 처음부터 공격과 방어를 모두 겸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방일체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과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검술인 것.


하유성은 언제나 그 길을 따라 매진했고, 또 더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니 고작 가벼운 갑옷 하나 입었다고 공방일체를 말하는 휘리스를 참을 수 없었던 것.


그렇게 기사(騎士)와 무인(武人)의 싸움은 끝이 났다.


“공개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 수사하시오. 관련인이다 싶은 사람을 막무가내로 데려다가 족치지 말고.”


“너···기사단이 두렵지 않냐.”

휘리스는 실력의 차이를 깨달았는지 더 덤비지는 않고 얌전히 검을 주워 들고 몸을 웅크린 채 뒷걸음질 쳤다.


“실력으로 진 다음에 집단의 권위를 내세우다니 추하구려.”


“···기사단은 어떻게든 대가를 받아낼 거다.”


“애먼 사람 족치지 말고 범인한테 가서 따져!”

물러나는 휘리스의 뒤통수에 대고 손가락 욕을 하며 세이지가 말했다.


“당신, 3레벨을 이겼군요?”

로엘리아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레벨이 절대적인 건 아니오.”


“그것도 힘겹게 이긴 게 아니라 압도했어···. 난 이제 막 2레벨에 됐는데.”

레벨이 올라 따라잡았다고 생각한 그녀는 금방 다시 침울해졌다.


“에엑, 로엘리아 씨, 벌써 2레벨이 되셨어요? 유성 씨는 3레벨이 아니라 2레벨인 거고?”


세이지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않소.”


하유성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길 요구했다.


“여기서 얘기하긴 좀 그렇죠. 따라오세요.”

세이지는 자신의 은신처로 안내했다.


세 사람은 근처에 있는 비어있는 민가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를 빠져나와, 다시 비슷한 짓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마침내 도달한 곳은 인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어떤 건물의 2층이었다.

문제는 그 위치.


“···이곳은 기사단 바로 앞이 아니오?”

2층 커튼 너머로 보이는 기사단 건물.

하유성은 고생해서 온 장소가 고작 이 정도 거리라는 데 어이없어했다.


“은신처를 처음 만들 때 기사단과 척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요. 이 정도로 하지 않으면 정보길드를 벗어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정보길드는 비교적 신흥 세력인 반면, 기사단은 미궁도시의 시작과 함께하는 유서 깊은 단체.

아무리 정보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정보길드여도 이쪽 지역은 감시가 느슨하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얼떨결에 두 사람과 함께 온 로엘리아가 물었다.

제대로 된 대처가 없다면 그녀로서는 괜히 한패로 몰려 기사단과 척질 선택을 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다른 두 사람과 그렇게 대단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니, 당장 나가서 둘을 고발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솔직히 말해서, 이 도시에서 기사단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야. 방금은 말단이라 어떻게 유성 씨가 이길 수 있었겠지만, 저런 놈들이 무더기로···아니 4레벨 정기사 한 명만 와도 우리로선 방법이 없겠지.”


세이지는 다시 업무를 하듯 날카로운 눈빛이 됐다.


“그들이 찾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겠소. 그쪽이 무고하다는 것, 사실이오?”


“뭐야, 나를 믿어서 구해준 거 아니에요?”


“딱히 그런 건 아니오. 그저 저쪽 방식이 틀렸다고 여겼을 뿐.”

“끄응···알겠어요.”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기사단의 의뢰로 세이지는 미궁 3층의 임무를 코디네이팅하게 됐다.

의뢰 내용은 3층 비밀스러운 장소에 자리 잡은 필드 보스, ‘해골 기사’을 잡고 나오는 무구를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놈은 내구력이 약한 해골 주제에 중갑옷으로 몸을 보호했고, 심지어 해골마를 타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검으로 차징 공격을 해댔기에 사냥하기가 꽤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을 죽이면 입고 있는 마법 방어구 중에 하나를 남기고 사라졌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다.


그 의뢰에 모르디엔은 후위의 궁수로 자신이 평소 알고 지내던 요한슨을 추천했던 것.

그러나 문제는 그 ‘해골 기사’를 잡고 나온 무구에서부터 시작됐다.


원래 방어구만 내뱉던 녀석이, 처음으로 검을 남기고 죽은 것.


검의 정확한 성능은 알 수 없지만, 살아 돌아온 이에 따르면 들어본 사람마다 전부 훌륭한 검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마침내 내분이 일어나버린 것.


기사단 멤버가 세 명이나 포함되어 있던 파티는 지상까지 오기도 전에 사분오열되고, 살아남은 건 검에 대한 욕심을 가질 일이 없던 마법사와, 뜬금없이 내분 도중에 검을 들고 도망쳐버린 궁수 요한슨뿐이었다.


전위 네 명이 싸우다가 승자가 가려질 때쯤 마지막에 활을 쏴서 머리통을 날려버렸다나.


괜히 휘말리지 않으려고 도망친 마법사가 뒤늦게 그를 발견하긴 했지만, 요한슨은 검을 가지고 도망쳐버렸다.


“궁수가 파티원을 죽이면서까지 검을 가져갈 필요가 있소?”


“그래서 제가 기사단에게 의심받는 거죠. 따로 한몫 챙길 수 있을 게 뻔한 무구니까.”


“검 자체에 저주 계열 마법이 걸려있었을 가능성은 없나요?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했다거나.”

마법에 능한 로엘리아가 예리하게 물었다.


“사실 증언만 들으면 그쪽이 더 타당해 보이죠? 근데 기사단은 자기들끼리 내분이 일어났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니까 범인을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욕심에 눈이 먼 이들이 작당하고 파티를 분열시킨 후 물건을 가지고 도망쳤다.’ 뭐 이런 방향인 거죠.”


“그렇게 거대한 집단이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수 있다고···?”


“거대하니까 오히려 더 강짜를 부릴 수 있죠. 사실 보물이 ‘검’이라는 것도 한몫 해요. 다른 집단의 이익까지 걸린 문제라면 이런 억지를 부릴 수 없겠지만, 좋은 검이 꼭 필요한 건 기사단뿐이니까요. 물론 고작 3층에서 나온 마검 가지고 기사단과 척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있죠.”


“정리하자면 보물의 가치가 그렇게까지 크지 않고, 기사단에겐 나름대로 상징성과 체면이 걸린 일이라 혼자만 억지를 부릴 수 있다는 거군.”


“그래요. 그거예요.”


“세이지 모르디엔. 그 요한슨이라는 자와 많이 친밀하오?”

하유성이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아니라니깐요! 그냥 평소에 싹싹하고 능력도 나쁘지 않아서 주선해 줬을 뿐이지, 개인적인 친분은 없어요.”


“그럼 간단하구려.”


“···?”


그는 복잡하게 따지지 않았다.


“그자를 찾아 죽이고, 검을 돌려줍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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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사무소 24.09.05 68 4 13쪽
36 36화 심부름 24.09.04 69 3 12쪽
35 35화 가치 24.09.03 77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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