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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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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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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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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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6화 선의

DUMMY

검기는 하유성의 오랜 꿈이자 목표였다.


절정 고수의 상징이자, 파천이검의 중반부 초식을 사용하기 위한 최소 조건.


그걸 4레벨이 되면 쓸 수 있다는 건, 하유성에게 큰 희망이었다.


“근데 독행자의 길이라고? 쓰읍, 그쪽에서 검기를 쓰는 검사가 나왔단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드웨인이 짧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괜찮소. 닿지 못한다면 나의 모자람일 뿐.”


“뭐 형씨는 싸움 하나는 기깔나게 하니까 어쩌면···.”


“아, 그래도 독행자의 길을 선택한 고위 마법사는 있어요.”

마법사 에린이 말했다.


“그거야 유명하지. 현재 마탑의 최강 전력. 백야(白夜) 아르세온. 우리 대신전에서 그 낙오자를 데려오지 못했다고 얼마나 아쉬워하던지.”

중년의 성직자 케온은 바위 위에서 낚시를 하는 중이었다.


3층의 지형은 물이 반, 육지가 반인 수상 정원.

누가 처음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상 정원이란 이름은 3층에 딱 맞았다.


물가엔 야자수와 닮은 나무가 늘어져 있었고.

마치 석양이 내린 것처럼 붉게 빛나는 넓은 호수는 잔잔하게 일렁였다.

그런가 하면 모래사장에는 고운 모래가 깔려있고, 군데군데 그림같이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미궁은 미궁이었다.


야자수 나무 위에는 원숭이 마물이 뛰어다니며 산성을 띠는 열매를 던져댔고.


호수 아래엔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식인 물고기 떼, 각종 독성을 가진 해파리, 피 냄새를 맡으면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는 상어 마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모래사장 안쪽엔 갑각류 마물이 숨어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바위틈에는 바위로 이루어진 마물 뱀이 서식하고 있었다.


아무튼 미궁에선 보기 드물게 풍성한 자연이 조성되어 있고, 그만큼 다양한 마물이 서식하는 게 3층이었다.


개척자들이 주로 마력이 깃든 재료를 수급하는 것도 바로 이곳.

하유성의 검도 3층의 갑각류 마물인 네프툰의 외골격을 재료로 한 장비였다.


하지만 4층에서 임무를 수행하려고 모인 드웨인 파티에게, 3층 마물 정도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


케온은 일부러 피를 물에 흘려 상어 마물을 끌어들여 육지로 잡아 끌어내는 것을 낚시라고 칭했다.


“그게 성직자가 할 만한 취미야?”


“허허, 이 또한 마물을 정화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행크의 비난에 케온이 너스레를 떨었다.


“두 사람도 아르세온 님이랑 같은 낙오자지?”

에린이 태연하게 물었다.


하유성과 로엘리아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노예 신분인 낙오자는 이곳에선 사람 이하.

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볼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렇소만···.”

혹시 그냥 떠보려는 건가 싶었지만, 하유성은 어차피 구명의 은혜를 입었으니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 실은 ‘종속의 목걸이’ 때문에 우리 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거든. 우린 그런 걸로 차별 안 해. 내가 속한 마탑의 탑주 다음 가는 분께서 낙오자 출신이시라니깐?”

에린이 예의 시원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알겠소.” “알겠습니다.”


“정말, 애초에 그런 법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니깐? 그냥 이종족 취급해서 부려 먹으려는 생각뿐이지.”

궁수, 행크는 이때다 싶어 다시 한번 제가 소속된 집단을 홍보했다.


“그러니까, 나중에 노예를 벗어나게 되면 꼭 우리 순찰대로 와. 나한테 누굴 추천할 정도의 힘은 없긴 하지만···. 두 사람 정도의 재능이면 분명 잘 대접해 줄 거야. 우린 이종족의 권익 신장이 모토거든. 낙오자 차별도 없어.”


“흥, 차별은 우리 마탑도 없다고?”


“없기는! 너희들이 틈만 나면 수인족을 몰래 사들여 실험한다는 소문이 도시에 가득하다고.”


“그건···. 아무튼 나는 그런 짓 안 해요.”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에 지식 만능주의자들.


자신이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마탑의 마법사들도 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도저히 양심에 찔려서 할 수 없었다.


“‘순찰대’는 사냥꾼의 길을 걷는 이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오?”


“하하, 물론 중심은 사냥꾼의 길 출신들이긴 하지. 근데 그건 그냥 집단의 성격일 뿐이고, 실제론 모든 집단에서 모든 역할군을 다 받아들이고 있어. 안 그러면 도저히 힘의 균형이 맞지 않거든.”


하긴, 성직자들이 모이는 대신전에 치유마법을 쓰는 성직자들만 있다면 정치나 외교적 수단을 제외하고 분쟁 같은 게 일어났을 때 대처할 방법이 없을 터였다.


하유성은 순찰대에 들어가길 희망했던 와른을 생각하며 잠깐 상념에 잠겼다.

살아남아, 인연이 계속됐다면 어쩌면 나중에 같이 순찰대에 들어갈 수도 있었을 터.


“혹시 다른 단체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곧 2레벨을 앞두고 있는 로엘리아가 물었다.


하유성은 나름대로 꽤 마물을 잡았는데, 3레벨로 가는 최소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물론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레벨은 하나가 오를수록 요구하는 마력과 경험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기 때문.


3레벨의 개척자들은 최소 3~5년 경력의 준 베테랑들.

그걸 고려하면 아무리 가고일을 처리하는 데 하유성이 크게 기여했어도 레벨업까지는 요원한 일이었다.


“뭐, 목적에 따라 크고 작은 단체들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세 개의 탑, 네 개의 기둥이라고 하지.”


탑은 그 자체로 완전한 구조물을 뜻하니, 그만큼 강하고 큰 세력이라고 드웨인이 설명했다.


미궁 공략을 위해 뛰어난 전사들이 선별되어 모인 기사단.

지식을 추구하는 마법사들의 요람인 마탑.

종교를 등에 업고 막대한 정치력을 행사하는 대신전.


이 세 개의 단체는 미궁 도시가 처음 세워질 때부터 존재하던 파벌으로, 그들의 결정 하나하나가 미궁 도시 전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거대한 집단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네 개의 기둥은 미궁 개척에 필수적이지만, 하나의 단체로서의 힘은 세 개의 탑보다 약한 네 개의 세력을 일컬었다.


치안을 담당하며, 개척자들과 이종족들의 처우 개선을 목표로 하는 ‘순찰대’.

반대로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들이 모인 ‘용병대’.

순찰대와 마찬가지로 ‘사냥꾼의 길’을 걷는 이들이 중심이지만, 각종 첩보와 암살까지 담당하는 ‘정보 길드’.

그리고 장인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여러 상단들과 연합해 만든 ‘상회’


“참고로 나는 기사단 소속이다. 기사단은 미궁의 최종 공략을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 개척자로 활동하다 보면 반드시 우리와 접점이 생길 거야. 물론 들어오긴 쉽지 않겠지만.”

집단에 대한 설명을 마친 드웨인이 말했다.


“하하, 저는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정보 길드 소속입니다. 지도를 만드는 건 저희 쪽에서 나오는 의뢰였죠.”

이번에는 하유성 쪽에서 안젤로가 말했다.


드웨인 파티와 하유성 파티 여덟 사람은 3층에서 야영 준비를 마치고 휴식에 들어갔다.


“그래서 그쪽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어요?”

불침번 교대를 위해 둘만 남게 됐을 때, 로엘리아가 하유성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아직 노예 신세에, 빚도 갚으려면 한참 남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겠소.”


“흥, 빚이야 이번처럼 재수 없는 일만 피하면 머지않아 갚겠죠.”


“글쎄. 나는 검만 수련할 수 있다면 족하오.”


“···당신도 어지간히 재미없는 사람이군요.”


“그쪽은 정했소?”


“아직 대충 설명만 듣고 정할 수는 없지만··· 마음 가는 곳은 있죠.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거든요.”


“마탑인가 보군.”


인류 지혜의 최전선이자, 고대의 지식이 잠들어있다는 마탑.

로엘리아는 그곳에서 마법을 연마하며 차원을 넘어갈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듯했다.


“맞아요. 그쪽은 어때요? 당신도 나와 같은 낙오자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잘 모르겠소.”

하유성은 익숙한 세계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었지만, 그에겐 당장 레벨을 올려 검술을 연마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당장 돌아간다고 해도, 결국 심법 없다면 또 검만 휘두르다가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그는 차마 그걸 바란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제 종족은 세계수라는 거대한 어머니 나무 아래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요. 인간만 없다면 아주 평화롭고, 시간이 거의 멈춘 것처럼 흐르는 곳이죠. 우리는 그곳에서 각자 원하는 거에 매진하면서 살아가곤 했어요.”


“···?”

하유성은 그녀가 내내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자기 세계에 관한 얘기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좋을 것 같죠?”

로엘리아는 하유성의 대답을 기다리며 그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하유성은 부담스러운 맘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좋을 것 같소.”


“···좋아요. 저는 꼭 돌아가는 방법을 찾을 거예요.”


“무운을 빌겠소.”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드웨인의 파티는 하유성네를 안전하게 2층까지 데려다주었을 뿐 아니라, 원래의 임무 지역까지도 함께했다.


“만약 4층으로 가는 포탈이 있으면 미리 봐두려고. 우리에겐 지름길이나 마찬가지니까.”

드웨인의 말에 이번에는 평소 조용하던 여검사 산드라가 딴죽을 놨다.


“저래 보여도 여러분들이 걱정돼서 보러 온 거예요. 같은 함정이 있을 수도 있고, 여러분들은 우리랑 다르게 임무에 실패하면 위약금 같은 걸 물 수도 있으니까···.”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하유성이 포권을 했다.


그는 꿋꿋이 자기 세계의 예법을 따랐다.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었지만, 로엘리아의 말을 듣고 나니 원래 세계에 대해서 조금은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흥.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들은 지도 제작 도구를 따라, 세 사람이 추락했던 곳에 다시 다다랐다.


“···구멍이 없어?”

로엘리아가 허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제단 같은 게 있던 거대한 공간은, 이젠 그냥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동굴이 되어 있었다.


“탐지되는 건 없어···. 그래도 갑자기 또 땅이 꺼질 수 있으니 조심해.”

행크가 바닥을 짚은 채로 스킬을 사용해 주변을 탐색했지만, 지반에는 어떤 빈공간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밧줄로 몸을 묶고 추락에 대비한 채 다시 동공에 들어가 봐도 바닥은 멀쩡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뭐, 미궁은 이런 법이지. 주변 마력량도 정상. 포탈이 있는 낌새는 없어.”

에린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녀는 마법사답게 수치를 중심으로 탐색했지만, 역시나 걸리는 건 없었다.


“제단이 있었다고 했죠? 어쩌면 불특정한 대상을 노린 배교자들의 저주였을 지도 모르겠군요.”

성직자 케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앞선 단체 설명에서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마신을 섬기는 배교자들 또한 미궁 도시의 어둠에 도사리고 있는 나름대로 거대한 세력이었다.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호사가들은 그들의 세력을 최소 기둥 정도에서, 최대 탑 수준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마신에게 제물을 바친답시고 개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곤 했는데, 세 사람이 빠진 것도 그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골치 아픈 점은 실제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통해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죽여도 마력이 올랐고, 비록 그게 인신공양일지언정 큰 규모의 제의(祭儀)를 치를수록 하나의 ‘업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고약하군요.”

안젤로가 지도 장치를 보며 말했다.


마지막까지 안전을 확인해 준 드웨인의 파티는, 하유성의 파티가 임무를 수행하도록 내버려두고 지상으로 떠났다.


그들은 와중에 전투에 공헌이 크다며 가고일을 죽여 나온 마석 중 한 개까지 주고 갔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군요···.”

로엘리아가 완전히 긴장이 풀린 얼굴로 말했다.


“정말 드문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미궁에서 이런 일은 흔치 않아요. 아마도 유성 씨와 로엘리아 씨와 함께 전투하면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겠죠.”


“가능성···?”


“예. 보니까 그들은 다 큰 집단에 속해 있고, 우리를 턴다고 뭘 얻을 수준도 아니니까요. 차라리 싹수가 보이는 여러분들과 미리 좋은 관계를 맺어두는 게 이득이었겠죠. 제게는 거의 말도 안 걸었어요.”

안젤로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쪽도 전투에서 충분히 활약했소. 자부심을 가지시오.”


“그건···.”

하유성의 말에 안젤로는 목숨 걸고 전투에 뛰어들었을 때를 떠올리며 민망해했다.


“크흠. 그래요. 저도 여러분들에게 너무 뒤처지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미궁에 와야겠어요.”

그는 마도구를 쥔 손을 불끈 쥐며 다짐했다.


“좋소. 우선 빠르게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도록 하지.”


안젤로는 오늘의 다짐 덕에 훗날 고레벨의 개척자가 되어 정보 길드의 중역까지 올라가지만,

아직은 먼 훗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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