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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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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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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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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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7화 스승님···? (1)

DUMMY

“으아아!! 지상! 지상입니다. 여러분!!”


안젤로는 고함을 지르고 폴짝폴짝 뛰며 도시를 향해 달려갔다.


포탈 근처 잡화상들은 익숙하다는 듯 신경도 쓰지 않았다.

미궁에서 죽다 살아나 돌아온 이들이 도시에 복귀해 환호를 지르는 건 언제나 있는 일.


오히려 하유성과 로엘리아처럼 힘이 빠져 절뚝거리는 게 신참이라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완수 보고와 정산금은···.”

로엘리아는 죽다 살아났다는 피곤에 절어있었다.

생각만 같아선 그냥 다 맡겨버리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처음부터 제가 알아서 하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마시죠! 임무 완수 보상금과 마석 정산금을 더하고, 임무 수행금을 빼서 셋으로 나눈 금액이 두 분이 소속된 곳으로 잘 정산될 겁니다.”

안젤로가 익숙하다는 듯 두 사람을 달래며 말했다.


“···그렇군. 고맙소.”

힘들게 고생한 건 자신인데, 정산은 알랭에게로 된다고 하니 힘이 좀 빠졌지만, 하유성은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피곤한 건 하유성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 돌아왔다는 환호도 잠시.

계산을 마친 세 사람은 갈림길에 서서 각자의 소속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것은, 급격하게 현실감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잠깐 생사고락을 함께했지만,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혹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개척자들의 삶이었다.


더군다나 미궁은 4~6인 파티를 맺어 임무를 수행하는 게 보통.

서로 각자의 소속에 얽매여있는 이상, 다시 셋이 파티를 맺게 될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딱히 친구가 됐다거나, 목숨을 맡길 정도로 신뢰가 쌓였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모이는 건 마지막일 터.


그런 생각을 하니 모두에게 묘한 감상이 올라왔다.


하지만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뒤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안젤로는 이런 일에 익숙했기 때문이었고,

로엘리아는 자신이 아쉬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유성은 세 사람 다 충분히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들 쉽게 죽거나 포기할 성정이 아니다.’


4층에 떨어져, 은폐와 포복으로 짧지 않은 거리를 이동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악착같이 살길을 모색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 사람은 ‘살아남을 자질’이 있단 걸, 하유성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하유성은 알랭의 저택으로 돌아와 학센에게 보고를 마쳤다.

알랭은 지도 제작 임무 따위엔 관심이 없는 듯, 이번에는 직접 만나서 보고를 받지도 않았다.

“고생했다. 또 적당한 임무를 찾을 때까지 알아서 쉬고 있도록. 도시 안이라면 자유롭게 다녀도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 상회의 손바닥 안일 테니까.”


하유성은 얼마간의 자유시간과 돈을 받고, 방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도시에 돌아와 첫날은 미궁에서 얻은 마력을 몸이 받아들이는 시간.


하유성은 기절하듯 잠들었다.



아무래도 개척자 노예는 취급이 꽤 괜찮은 듯했다.

아무 때나 식당에 가면 하인들이 적당히 남아있는 먹을 걸 주었고, 씻고 수련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다고 공손하거나 친절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하유성은 그런 무기질적인 대접이 오히려 좋았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수련장에서 수련에 몰두할 수 있었으니까.


‘아직 기(마력)를 원활하게 경맥에 돌리지 못하고 있다.’


이전 세계에서 쌓은 내공은 기본적인 토납법으로 30여 년 치.

중원의 기준으로는 반 갑자라고 하는 양이었다.


벌써 절대적 양으로는 비슷한 양의 마력을 쌓았지만, 아직까진 이전처럼 매끄럽게 내공을 운용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잘 움직인다.’


무릇 운기조식이라함은 온 신경을 집중해 세밀하게 기를 운용하여 자연의 기를 몸에 적응하도록 정착시키는 행위.


그러기 위해선 인간의 기혈을 따라 조심스럽게 구석구석 몸 안을 둘러보듯 기를 순환시켜야 했는데, 이놈의 마력이란 놈은 마치 대문을 박차고 쳐들어갈 기세로 몸을 회전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마력이란 게 자연의 기와는 다르게, 어느정도 하유성의 몸에 맞춰진 채로 깃들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하유성 자신도 몰랐지만, 1레벨에 오르며 받은 마력조작의 축복이란 것이, 원래 하유성이 가지고 있던 기를 다루는 재능보다 압도적으로 심력을 소모하는 데 있어 연비와 출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마력이 너무 쉽게 움직여버리니, 하유성은 오히려 세밀한 조정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중이었다.


‘그래도 점점 대주천에 가까워지기는 하지만···.’


하유성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미궁에 갈 때마다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

심지어 두 번 다 남의 도움이 없다면 제대로 살아나올 수 없었을 것이란 게 치욕스럽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후우우···. 제기랄.”


“또 명상 수련인가? 뭐가 잘 안되나 보지?”

어느샌가 또 학센이 다가와 하유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최근 하유성과 가볍게 대련을 하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하고 있었다.


대련은 나름대로 도움이 되긴 했지만···.

‘실력을 다 내비칠 수는 없지.’


언젠가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적이 될 수도 있는 상대였기에 하유성은 실력을 다 보이지 않았고, 학센은 학센 나름대로 하유성을 어떤 임무에 투입해야 죽지 않고 돈을 벌어올지 가늠하기 위해 대련을 하는 것이었기에 제대로 된 지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고향이 문득 그리워졌을 뿐이오.”

이번에도 하유성은 마력을 길들인다느니, 운기조식할 때는 건드리면 위험하다느니 말하지 않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낙오자들이 흔히들 겪는 증상이지. 그래도 내가 알기로 고향으로 돌아간 낙오자는 없어. 답답하면 좀 나가서 구경도 하고, 술이라도 마셔보는 건 어때? 돈은 줬잖아.”


“···그리하겠소.”


아닌 게 아니라 하유성은 슬슬 밖에 나가서 볼일을 보려던 참이었다.


그 전에 웬만큼 마력을 길들이고 싶었지만, 또 언제 미궁에 들어갈지 모르니 미리미리 도시를 둘러볼 필요가 있었다.


가장 먼저 하유성이 찾은 곳은 도서관


그것도 어린이용 도서가 있는 아동 코너였다···.


‘언어는 들으면 이해는 되지만, 글은 그렇지 않으니까···.’


지금까지는 정보를 말로 듣거나 이미지화된 작전 개요를 보며 이해했지만, 그도 독자적으로 정보를 얻으려면 글공부는 필수였다.


하유성은 어린이 코너의 사서에게 문자 교육용 책들을 몇 권 얻을 수 있었다.


문맹률이 낮지 않은 세계의 특성상, 이런 사람도 몇몇 봤다는 듯, 젊은 사서 여자는 하유성을 딱하게 바라보며 책을 성심성의것 추천해줬다.


‘민망하긴 하지만 뭐···.’


배움에 때가 어디 있으랴.

그런 걸 신경 쓰기에 하유성은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 얼굴이 두꺼워져 있었다.


다행히 이곳의 언어는 마치 누가 정리해 놓은 것처럼 음운이나 발음, 시제나 문법에 예외가 거의 없고 규칙적이라서 배우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막상 말로 하면 뜻이 자동으로 이해되는 ‘소통의 축복’ 덕이기도 했다.


한참을 공부한 하유성은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글공부의 시작을 했다는데 의의를 두고 밖으로 나왔다.


다음으로 그가 간 곳은 술집. ‘무한한 실타래’


일전에 임무를 받으러 갔던 장소였다.


‘이런저런 정보를 듣기에는 술집만 한 곳이 없지.’


“어서 오십쇼~!”


종업원의 밝은 인사와 함께 바 테이블 앞에서 요리를 내오고 있는 우락부락한 체격의 가게 주인이 보였다.


그는 하유성을 흘긋 보더니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게 안에는 온갖 종류의 무기를 세워둔 개척자들이 너도나도 커다란 잔에 누런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유성은 중앙 쪽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봤지만, 아직 글을 읽을 수 없어 종업원에게 따로 부탁을 해야했다.


“혹시 국수가 있소?”


“파스타 말씀이시죠? 물론 가능합니다.”


“그럼 그거랑, 사람들이 먹는 저 술로 주시오.”


“네! 파스타 하나, 맥주 하나.”


잠시 후 종업원은 빨간 양념에 버무린 볶음국수(?)와 기포가 올라오는 차가운 술을 내왔다.


“이보게 점소이.”


“예?”


“이게 국수가 맞나···?”


“저희 가게 면 요리는 이것 하나뿐입니다.”


“···알겠네.”

붉은색이었지만 맵지 않고 적당히 신맛에 향료가 이것저것 들어가 하유성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고 파스타를 먹었다.

이 또한 적응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술은 밍밍하면서도 청량하고 벌컥벌컥 넘어가는 게 꽤 맘에 들었다.


이건 그가 이 세계로 와서 처음 먹는 술이었다.

‘이 전에는 국수에 백주 한잔을 곁들이는 게 낙이었는데 말이지···.’


하유성은 오히려 마물을 볼 때보다도, 이제는 완전히 다른 음식과 술을 곁들이고 있다는 데에서 더욱 자신이 다른 세계에 떨어졌음을 실감하게 됐다.


“이번에 ‘조타수들’ 파티가 복귀했다더군.”


“아 그래. 들었어. 무려 11층에서 지룡의 보옥을 가지고 왔다지.”


“그거 하나면 도시 하나 크기의 논밭을 비옥하게 만들 수 있다는데···. 젠장 난 언제 한 번 그런 보물을 얻어보나.”


“3층에서 나무열매나 따오는 주제에 꿈이 너무 큰 거 아냐?”


“와하하!!”


‘조타수들’이라면 하유성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1층에 갔을 때, 그를 구해준 적이 있는 파티.


그중 푸른 섬광처럼 보였던 아리아라는 여자의 창술은 아름다울 만치 간결하고 쾌속했다.


잠깐 그렇게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는데, 누군가 잔을 들고 하유성의 자리로 왔다.


쿵!

“앉아도 되지?”


고개를 들어보니 구면이었다.


드웨인 파티의 궁수. 행크였다.


“여긴 왜···. 다시 미궁에 들어간 게 아니었소?”


“음. 가고일을 상대해 보니까 나는 4층에선 아직 역부족인 것 같더라고. 그래서 그냥 빠졌지. 새로운 사람을 주선해주긴 했지만. 부끄럽더라고.”


그러고보면 행크는 화살에 특수한 물질을 바르지 않으면 가고일에게 이렇다 할 유효타를 주지 못했는데, 거기에 자괴감을 느낀 듯했다.


“그렇구려.”


“뭐 그런 결정을 한 데에는 그쪽도 한몫했지만 말야.”


“내가?”


“그래. 고작 2레벨인데, 가고일을 상대로 그렇게 훌륭하게 싸웠잖아. 나는 3레벨인 데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고. 그래서 나름대로 수련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뭐···언제나 정답은 수련이기 마련이 아니겠소.”


“하하 맞아. 맞는 말이지. 그렇지만 오늘은 이렇게 만난 김에 같이 한 잔 해보자고! 보니까 기다리는 사람도 없이 혼자 먹는 것 같던데.”


“좋소.”


하유성은 원래 세계에서도 어울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가 사회성이 나쁜 건 아니었다.

그냥 검에 몰두하느라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

그러나 그는 모든 게 생소하고 낯선 이 세계에서는, 특히나 대다수의 임무가 파티 단위로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좀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아니, 그럼 나이가 나보다 많은 거네? 이거 존칭을 해줘야 하나···.”


“괜찮소.”


“그래. 사실 그런 일이 많아서 미궁은 철저히 레벨에 따라 선후배를 나누거든. 나보다 레벨이 높으면 나이고 뭐고 선배인 거지.”


“하하, 그럼 나를 꽤 건방지다고 생각하셨겠소?”


“그쪽이 좀 특이한 말투긴 하지.”


“······.”

행크는 워낙 넉살이 좋았다.

그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 덕분에 하유성도 맘 놓고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중간에 잠깐 결국 그들도 좋은 인상을 남겨둬야 이득이라서 친절하게 굴뿐이라는 안젤로의 말이 생각나긴 했지만, 사실 그닥 상관없는 일이었다.


순수하게 사람이 좋아서 호의를 보이는 일은 정말 드물다는 걸 하유성도 알았으니까.


아무튼 이 시간을 나름대로 즐겁고 유익하게 보낼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오랜만에 마신 술에 만취해서 기억을 잃은 채 행크가 속한 순찰대의 관저에서 깨어날 줄은 몰랐지만.


“저, 저 임무도 포기하고 돌아온 망나니 제자놈이. 이번엔 또 뭘 집어 온 게야?”


숙취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고, 하유성은 기척도 없이 방에 들어온 노인의 눈을 쳐다봤다.


그는 위압적인 기세를 뿜으며 하유성을 바라보고 있었고, 하유성은 숙취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그걸 받아내며 손님된 도리를 지켰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유성입니다.”


“으···. 스승님···?”

그때쯤 자신을 침대에 두고 소파에 누워있던 행크도 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흠, 쭉정이는 아닌 것 같군. 일어나 나와라. 오랜만에 아침 수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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