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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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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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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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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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6화 마검(3)

DUMMY

무사히 미궁에 들어간 세 사람은 재빨리 지형을 확인하며 현재 위치를 가늠했다.


다행히 1층에서는 딱히 피할 마물도 없고, 2층으로 가는 길도 잘 알려져서 루트를 짜기 쉬웠다.


“그래도 1층은 전반적으로 시야가 탁 트인 지형이 많아서 추격이 붙으면 뿌리치긴 어려울 거예요. 처음부터 안 들키는 곳으로 가는 게 최선이죠.”


세이지는 손바닥 보듯 1층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시궁쥐 토르쉬의 영역으로 가는 편이 낫겠어요. 거기는 그래도 구릉 지역이라 엄폐할 곳이 많거든요.”


“직접 들어와서 임무를 수행하지도 않는데, 잘 아는구려?”


“저도 나름대로 신고식도 치르고 길도 정했었거든요? 1층은 특히 몇 번이나 와봐서 잘 아는 거예요.”


“호오, 어떤 길이었소? 역시 사냥꾼인가?”


“마법사의 길이었어요.”


모르디엔의 대답에 하유성과 로엘리아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는 사람도 적고 범용성이 좋아서 인기 있는 직군이었기 때문.


“근데 왜 개척자를 관두게 된 것이오?”


“첫 번째로 받은 축복이 글쎄, 기억력 강화였어요. 마법을 배우기엔 나쁘지는 않은 축복이긴 하죠. 근데 당장 눈앞의 전투에 도움이 안 되니까 무섭더라고요. 그 좋은 기억력으로 죽을 뻔한 순간만 되새김질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전향했죠. 뭐 애초에 그렇게까지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쩐지 아까 제 바람 마법에 잘 반응하더군요.”


“히힛. 아직 마력 감응력은 죽지 않았거든요.”


“그 정도면 재능이 나쁘지 않아요. 생각 있으면 다시 해봐요.”


“······.”

갑작스러운 로엘리아의 호의 섞인 말에 세이지는 하얀 얼굴을 조금 붉혔다.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히히. 고마워요. 언니.”


“언니···?”


“두 분 다 낙오자라면서요. 보이는 건 젊어도 사실 나이가 꽤 되는 것 아녜요? 유성 오빠, 로엘리아 언니면 됐죠.”


“그렇게 불리기엔 훨씬 나이가 많소만···.”

하유성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그렇게 젊은 얼굴에 대고 아저씨나 할아버지 소리를 할 순 없어요! 암요. 내가 안 돼. 그 얼굴을 가지고!”


“······.”


세 사람은 쉽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밝은 분위기로 얘기를 하며 길을 나아갔다.


“토르쉬는 ‘전술’을 이해하는 마물이에요.”

설치류 마물들이 서식하는 구릉 지역에 진입하기에 앞서, 세이지가 설명을 시작했다.


미궁 1층에 있는 네 마리의 필드 보스.

네몬, 레기온, 에릴단, 토르쉬 중 하유성이 상대해 보지 못한 유일한 녀석이라, 하유성은 귀를 기울였다.


“전술?”


“놈의 모습은 그냥 다른 쥐들보다 조금 더 크고, 몸에 작은 붉은 반점이 있다는 것 정도에요. 대신 그런 개성 없는 모습 덕에 다른 마물 쥐들 사이에 숨어있는 게 문제죠. 자기랑 비슷한 모습을 한 쥐를 내세워서 미끼로 삼고, 포위 공격을 하는 게 놈의 주요 전술이죠.”


“재밌군. 근데 지금은 놈을 잡는 게 목표가 아니지 않소? 추격을 따돌리려면 빨리 내려가야 할 텐데.”


“당신이 새로운 마물을 보고 그냥 지나치자고 하는 경우도 있군요···?”

같이 2층 탐사를 갔었던 로엘리아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나도 때와 장소쯤은 가릴 수 있소.”


“우리가 가는 건 토르쉬의 영역을 직선으로 뚫고 가는 길이에요. 녀석의 부하들이 엄청나게 깔려있고, 놈은 부하들을 이용해 우리를 사냥하려고 하겠죠.”


“그럼 더 늦어지는 것 아니오?”


“뭐, 3레벨도 이기는 유성 오빠의 무력을 믿은 거죠! 놈들에게 발목이 잡히면 안 되니까 기습으로 토르쉬를 죽인 다음 지휘 체계에 혼란이 생긴 틈을 타 2층으로 향하는 포탈까지 직행할 생각입니다.”


“좋구려. 다만 그 오빠라는 호칭만 좀···.”


“제 맘이에요. 가시죠!”


부담스러워하는 하유성의 청을 단칼에 거절하며 세이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구릉은 여러 언덕으로 이루어진 지형을 말한다.


따라서 지형의 움푹 팬 부분을 잘 이용하면 황무지 쪽의 관찰에 거의 잡히지 않게 이동할 수 있었고, 고지를 점한 다음 적의 움직임을 관찰하기도 좋았다.


물론 그건 하유성을 비롯한 세 사람이 기사단의 추격을 따돌리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고,

미리 언덕 지역을 선점하고 있던 쥐 마물들에게 상황은 반대였다.


올라오는 세 사람을 쥐들에게 쉽게 파악되고, 세 사람의 눈에 쥐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스걱―


물론 그건 전력이 어느 정도 비슷할 때나 불리하게 작용하는 일이었다.


하유성은 사방에서 몰려오는 거대 쥐들을 준비운동 하듯 가벼운 몸놀림으로 베어냈다.


앞에서 오는 건 베는 각도를 조정해서 따라오는 세이지와 로엘리아의 걸음에 방해되지 않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 차.


“···기습할 계획이 아니었나요?”


“그렇긴 한데···. 유성 오빠가 너무 강한 데요?”


원래 계획은 정찰하는 쥐들을 몰래 처리해서 눈과 귀를 막으며 언덕을 올라, 토르쉬가 서식하는 중앙을 오히려 고지대에서 급습하는 것이었다.


“요는 녀석들에게 들키지 않고 올라간다는 것 아니오.”

하유성은 그렇게 말하더니 기감에 잡히는 근처 마물들을 전부 없애기 시작했다.


물론 들켰다.

들켜서 마물 쥐들이 개떼처럼 몰려왔지만, 하유성은 전부 베어냈다.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라더니···.”


하유성은 무리 뒤편에 숨어 기습을 노리던 덩치 큰 쥐 한 마리의 머리에 칼을 푹 찌르고, 다시 다른 쥐들을 베었다.


“저거, 붉은 점. 저게 토르쉬 아니에요?”


로엘리아가 날카로운 안력으로 필드 보스 토르쉬의 죽음을 확인했다.


“······맞아요. 언니.”


‘살기를 흘리는 녀석도 있군.’


하유성은 보스인 줄도 모르고, 죽은 쥐를 별일이라 생각하며 계속 나아갔다.


“유성 씨! 아니 유성 오빠! 됐어요. 끝났어. 이제 그냥 쭉 가면 돼요.”


세이지가 토르쉬의 사체에서 마석을 꺼내 들고 말했다.


쥐들은 토르쉬가 죽자 주춤주춤하며 물러나고 있었다.


세 사람은 그대로 편안하게 가장 높은 언덕의 꼭대기로 향했다.

그곳에는 2층으로 가는 포탈이 있었고, 1층의 풍경이 한눈에 보였다.


끝도 없이 늘어진 검붉은 빛의 하늘.

그 아래로 회색과 적색이 어우러진 황무지가 펼쳐져 있었고, 군데군데 푸석푸석해 보이는 짙은 갈색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추적자들은 안 보이는 것 같네요.”


“미궁이 아니라 도시에서 잡을 생각인가?”


“그럴 수도 있겠죠. 뭐, 그냥 다른 지역에 있는 걸지도 모르고.”

세이지가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 쫓기는 건 그녀였기에, 긴장을 놓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일단 들어가지.”


세 사람은 일단 추격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고, 2층으로 향했다.


2층에 들어간 세 사람을 반긴 건 익숙한 동굴 지대였다.

울퉁불퉁한 바위 사이로 지하로 향하는 동굴들이 띄엄띄엄 있는 모습.


“이왕이면 숲이길 바랐는데, 아쉽네요.”


“동굴이면 추격자를 따돌리기 좋은 것 아니오?”


“그렇긴 한데, 내려가는 포탈을 찾기도 힘들거든요. 어느 동굴인지 알고 들어가도 방향 감각에 혼란이 오는 경우도 있어서···.”


“숲으로 이동할까요?”

로엘리아가 말했다. 그녀는 숲에 가는 걸 은근히 반기는 듯했다.


“아뇨. 그러기엔 동선이 너무 꼬여요. 길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니, 일단 가보죠.”


“······.”


세 사람은 길을 잃었다.


동굴 깊은 곳에서 노움과 지네 마물 따위를 처치하며 나아가는 사이, 좁은 통로 하나를 못 보고 지나쳐버린 것.


“젠장. 3차원 지도만 있었어도···.”


세이지는 은신처에 있느라 미처 챙겨오지 못한 미궁 2층의 입체 지도를 아쉬워하며 말했다.

가지고 온 평면 지도에는 동굴 안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던 것.


“혹시 지금 지나온 길만 나타낼 수 있어도 길을 알아볼 수 있나요?”

잠자코 있던 로엘리아가 물었다.


“네? 물론이죠! 잠깐 하나 잘못든 것 뿐이니까, 여기가 어디쯤인지만 알아도 충분히 가능해요.”


세이지의 말을 들은 로엘리아는 바닥에서 모래를 한 움큼 쥐더니 손 위에 올려둔 채 바람 마법을 사용했다.


아주 미약한 바람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모래는 동굴 입구부터 현 위치까지를 나타내는 모형을 만들어 냈다. 지금 위치에는 아주 작은 세 사람의 흙인형이 있었다.


“말도 안 돼···. 이런 마력 조작이 어떻게 가능한 거죠?”


“큰 힘이 드는 건 아니니까요. 구현 능력만 있으면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저도 마법을 모르지 않아요. 이건 아무리 잘 쳐줘도 4레벨은 되어야 할 수 있는 기예라구요···.”


레벨이 오를수록 느는 건 마력량과 파괴력뿐만이 아니다.

마력을 다루는 정밀함과 계산력 또한 성장하는 게 미궁의 마법사들.

그런 맥락에서 세이지는 로엘리아의 능력을 최소 4레벨 정도로 본 것.


“레벨이 주는 의존하지 말고, 원래 가진 능력을 써보려고 해보세요. 물론 이 마법에도 제가 받은 바람의 축복을 응용하긴 했지만···. 기본 능력이 단련될수록, 축복으로 얻은 능력도 강화되니까요.”


로엘리아가 세이지에게 조언했다.

본신의 힘으로 높은 경지에 다다른 적이 있는 게 분명한 말투였다.


“언니. 멋져요···.”

세이지의 감동을 뒤로하고, 세 사람은 방향을 고쳐잡은 후 다시 나아갔다.


“입구에서부터 지금까지 길을 기억하고 있었소?”

하유성이 등을 긁적이며 로엘리아에게 물었다.


“그건 기억력이 특기인 저도 힘든 데요! 고위 마법사는 그런 것까지 가능한 거예요?”

세이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로엘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얼추 기억하고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바람을 흘려보내서 길을 파악했어요.”


2레벨에 오르고 바람을 다루는 축복을 받은 그녀는 계속해서 사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바람을 흘려보내 기류를 읽으며 지형을 파악하는 것도 그런 연습의 일환.


그녀가 그렇게 연습하고 있었단 사실을 안 하유성은, 본인의 능력에 대한 연구가 너무 부족했음을 느꼈다.


‘대충 뭐가 보인다는 것만 알고, 제대로 써먹으려고 하진 않았으니···.’


하유성이 속으로 대충 ‘잘 보이는 축복’이라고 이름지은 그의 2레벨 축복은 보통의 검으론 자를 수 없는 마법이나 정신체까지 그 핵을 보고 벨 수 있게 해주었지만, 그는 그 축복을 정확히 어떤 식으로 운용할지에 대해선 아직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능력에 의존하는 건 무인이 할 짓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기의 원래 능력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축복을 응용하는 로엘리아의 모습에는 하유성이 배울 게 있었다.


‘돌아가면 마법을 상대로 튕겨내거나 칼을 던져서 베이는 지 따위의 확인이라도 해봐야겠군.’


하유성이 남몰래 그렇게 다짐하는 사이, 세 사람은 마침내 3층으로 가는 포탈에 도착했다.


이번 포탈 또한 복잡한 갈래길 중에 하나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는데, 포탈이 놓인 위치를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악의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물론 벌써 미궁의 악의에 얼마간 익숙해진 세 사람은 거리낌 없이 포탈에 발을 들였다.


찌이잉―

호수의 붉은 빛이 세 사람을 맞이했다.

바다라고 봐도 될 정도로 큰 호수, 모래사장, 꽤 푸릇한 나무가 자라고 있는 대지까지.


수상 정원이라 불리는 3층의 풍경은 어더운 동굴에 있던 세 사람의 눈을 시리게 했다.


“운이 좋네요.”

포탈의 현기증과 시린 눈에도 불구하고 지도를 펼쳐놓고 순식간에 주변을 파악하며 위치를 가늠하던 세이지가 말했다.


“저 언덕만 넘어가면 해저 동굴이 있는 곳이에요.”


“꼭 그곳에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래도 3층에 왔으니, 단서라도 찾을 수 있겠죠. 임무에 대한 정보는 제 머릿속에 다 들어있거든요.”


“좋아. 가지.”


세 사람은 마침내 요한슨이 숨어있는 동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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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화 심부름 24.09.04 68 3 12쪽
35 35화 가치 24.09.03 77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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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결투 (1) 24.09.01 79 5 13쪽
32 32화 반항 24.08.31 8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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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추격(2) 24.08.28 97 5 13쪽
28 28화 추격(1) 24.08.27 101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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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마검(3) 24.08.25 98 3 12쪽
25 25화 마검(2) 24.08.24 100 4 13쪽
24 24화 마검(1) 24.08.23 112 4 13쪽
23 23화 정산 +2 24.08.22 112 4 13쪽
22 22화 횡재 24.08.21 111 4 14쪽
21 21화 토벌(2) 24.08.20 112 4 14쪽
20 20화 토벌(1) 24.08.19 130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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