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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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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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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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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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9화 정보 길드

DUMMY

알랭의 저택으로 돌아간 하유성은 시프노스가 준 책에 완전히 매료됐다.


[모든 싸움의 기본은 간결하고, 빠르고, 강한 것이다. 몸을 쓰는 싸움에서 이 세 가지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바른 자세, 빠른 속도, 충분한 힘. 이 세 가지는 기본 중 기본이며, 육체를 반복해서 단련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마력을 다루는 영역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느리더라도 촘촘한 마력 운용으로 철벽과도 같은 싸움을 할 수도 있고, 강하지 않더라도 부드러운 흐름을 통해 일방적인 공세를 만들 수도 있다. 충분히 바른 자세가 아니더라도 화려한 기교로 적을 흔들 수도 있으며······.]


책은 문자를 배우는 중인 하유성에게도 발음 나는 대로 읽기만 하면 그 뜻이 이해됐다.

이는 글 자체에 고유 명사가 적고, 시프노스가 워낙 쉽게 책을 쓴 덕이기도 햇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설명하고 있었지만, 시프노스의 책은 무예를 하는 사람이라면 초심자부터 고수까지 어떤 심득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깊게 전투에 대해 파고 들어갔다.


하유성은 꼬박 며칠을 시프노스의 책과 그가 알려준 운동법을 검술 수련과 병행하면서, 파천이검에 맞는 기(마력)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이미 비급이 알려준 대로 기를 운용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 운용이 가진 묘리를 깨닫고 더욱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초식을 펼칠 수 있게 됐다.


“흠, 뭐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여전히 종종 하유성과 검을 나누던 학센이 말했다.


“수련을 좀 했소.”


“흥, 그래도 내겐 아직 안 돼.”


학센은 이제는 흐름을 끊고 들어오는 묘리에 집중된 천원지살을 힘으로 찍어 누르고 하유성이 양손에 든 검을 모두 날려버렸다.


“···졌소.”


검을 나누다 보면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게 있었다.


학센은 하유성의 검에서 적의와 복수심, 집념을 알아차렸고,

하유성은 학센의 검에서 동정과 책임감, 그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아우르는 냉소를 느꼈다.


하유성의 짐작대로 학센의 원래 성정은 누군갈 노예로 부리거나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척자를 관두고 알랭에게 고용되어 돈을 받으며 안락한 생활에 젖어 들었고, 더러운 일도 많이 하게 되면서 양심 따위 버리자고 마음 먹은 것.


그리고 그 양심의 빈자리를 채운 게 냉소였다.


“흥. 덤비고 싶으면 얼마든지 덤벼라. 뭐, 어차피 네가 나를 뛰어넘는 것보다 빚을 갚는 게 더 빠르겠지만.”


“왜 내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요?”


하유성과의 대련은 학센에겐 딱히 얻어갈 게 없었지만, 하유성은 강자와 이렇게나마 대련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더군다나 하유성의 적의를 알고 있는 입장에선, 하유성을 더 강하게 만들어 봐야 득 될 게 없을 터.


“말했잖아. 네가 안 죽어야 돈을 더 벌어올 테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라. 성공할 법한 낙오자를 키워내는 건 상회 브랜드 가치에 꽤 도움이 되거든. 큭큭.”


“···알겠소. 그럼 혹 정보 길드란 곳에 대해 알려줄 수 있겠소?”


“뭐야, 벌써 정보를 사려고? 뭐. 상관없지. 5등급까지는 상회의 이름으로 달아둬라. 네 빚에 알아서 추가해 둘 테니까.”


학센은 무슨 이윤지도 묻지 않고 대강의 위치와 이용 방법을 설명해 줬다.


정보 길드는 포탈을 기준으로 알랭의 저택보다 도시 외곽 쪽에 자리했다.


외곽 지역에 처음 와본 하유성은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그래도 빈민가나 무법지대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미궁 도시 알레프의 외곽은 신기할 정도로 멀끔했다.


물론 중앙으로 갈수록 큰 저택이나 높은 건물들이 더 많긴 했지만, 이곳도 충분히 사람이 살기에 나빠 보이진 않았다.


이 층으로 된, 여러 가구가 살 수 있는 목조 건물들, 허름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디 크게 망가진 곳 없는 상점들.


물론 뒷골목에는 유흥업소들이 즐비했고, 해골 문양이 잔뜩 그려져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게도 있었지만, 그런 상업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여윳돈이 있다는 증거.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하던 중원의 빈민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 보였다.


‘아마도 진짜 빈민들은 도시 바깥으로 내보내거나 하는 거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큰 도시의 구석까지 이 정도라면 정말로 자원이 넘쳐나나 보군’


하유성은 마침내 정보 길드에 다다랐다.

하오문처럼 어디 비밀스러운 지하 주점에서 암호를 대야 할 줄 알았던 하유성은, 길드의 규모와 크기를 보고 당혹을 금치 못했다.


무려 석재로 된 삼 층짜리 건물에 깔끔하고 정갈한 외견은, 마치 관원이나 큰 상회를 연상시켰다.


“어서 오십시오. 정보 길드입니다. 미궁에 관한 정보는 좌측, 도시에 관한 정보는 중앙, 개인 정보 및 기타 물품에 관한 건 우측으로 가시면 됩니다.”


하유성이 건물의 문을 열고 발을 들이자, 심지어 안내원까지 나와 설명을 시작했다.


“···이용법을 물어볼 필요도 없었군.”


“네?”


“아, 인물에 대한 정보를 사겠소.”


“네~ 이쪽으로.”


안내원은 숫자가 적힌 안내표를 건네준 다음 하유성을 접수처 대기실까지 안내했다.

접수처에 간 다음 잠깐 기다리자, 한 창구에서 하유성의 번호표에 적힌 숫자를 크게 불렀다.


“63번이요~!”


“여기있소···.”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하유성이 쭈뼛거리며 다가오자, 여성용 제복을 입고 세련되 보이는 외모를 한 정보 길드의 접수원은 익숙하다는 듯 말했다.


“저희 길드를 이용하는 게 처음이신가 보군요? 앞에 놓인 접수장을 작성해 주세요. 도시의 세력 구조가 개편되면서 저희도 많이 양지화되었답니다. 이제 암살이나 절도 의뢰는 받지 않는 조건으로 각 세력의 인가를 얻어 낸 신무연 길드장 님 덕분이죠. 그래서, 어떤 정보를 사러 오셨을까요?”


하유성은 길드장의 이름을 듣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은 원래 용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막시 에크리라는 자에 관한 정보를 사러 왔소.”


“아하, 혹 원한이나 범죄 행위에 필요한 것일까요?”


“···꼭 말해야 하오?”


“물론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말씀해 주시면 또 하나의 정보로 취급돼서 할인을 조금 넣어드리거든요~ 근데 반응만으로 이미 말씀해 주신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번에는 특별히 그냥 제가 넣어드릴게요!”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고···맙소.”

나름대로 은원을 갚고자, 복수를 위해 정보를 사러 온 하유성은 도무지 지나치게 밝은 이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았다.


하유성은 접수처 뒤 현판에 걸린 문구를 조용히 띄엄띄엄 읽었다.

[개인 정보 보호가 없는 세상 만세]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광기가 느껴지는 문구라고 생각하면서, 하유성은 잠자코 직원의 안내를 들었다.


“어디 보자···막시 에크리. 나름대로 유망주 취급을 받는 모양이지만, 아직 별 볼 일 없는 1레벨 개척자군요. 이 정도의 인물이라면 단순 위치나 행적은 6등급, 생활 습관이나 앞으로의 일정은 5등급, 추적을 통한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고 싶으시다면 4등급 되겠습니다. 가격은 정찰제니까 앞에 표를 참고해 주세요.”


그녀가 말한 표에는 복잡한 숫자들이 적혀있었다.

등급별로 기본적인 가격과 함께, 어떤 상황에 어떤 할인이 들어가고, 어떤 추가 의뢰가 들어갈수록 추가 요금이 붙는지까지.


“그가 다음에 언제 미궁에 들어갈지 알고 싶은데.”


“아하, 미궁에서 슥싹. 역시 클래식한 게 제일 좋은 방법이죠. 문제는 미궁에 들어가더라도 서로 다른 곳에 떨어지면 만나리란 보장이 없단 거지만···. 다들 그렇게 죽어나니까 우리로선 정보를 얻기 어려워서 짜증 나긴 해요. 혹시 이 사람이 미궁에서 소식이 없어지면 ‘하유성 씨가 처리한 걸로 추정’이라 기록될 거예요!”


“그럼 내 정보를 누군가가 사서, 내게 복수하러 올 수도 있단 것 맞소?”


“당연하죠! 대신 그때는 ‘막시 에크리를 죽인 흉수’라는 정보로 판매되어 4등급 정도로 팔릴 거예요. 물론 그만큼 투자할 만한 사람이 있어야겠지만.”


불편할 정도로 지나치게 투명하다.

하유성이 설명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이 정도 정보력이 있고, 그걸 오히려 아낌없이 개방한다면 그것만으로 범죄에 억지력으로 작동할 지경이었다.


그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 백만 거지가 정보를 수집하는 개방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넓디넓은 중원과, 고작 이 미궁 도시 하나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는 건 규모가 차원이 다르긴 하겠지만···.


이 정도 정보력이라면 힘 있는 세력에게 짓밟히거나 흡수되어 이용당했을 법도 한데,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고 있는 게 용할 지경.


“자, 괜찮으시겠어요?”


“···주시오.”


“네. 막시 에크리가 다음에 미궁에 들어가는 날짜. 이건 5등급 정보되겠습니다. 가격은 할인 들어가서 8천 프라하입니다~ 결제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걸로 하겠소.”

하유성은 미리 받아둔 알랭 상회의 어음을 건넸다.


“잘 받았습니다~ 정보는 내일 오전까지 직접 배달해 드립니다. 실시간으로 갱신이 필요한 정보는 검증이 한번 필요하거든요~”


“···부탁하오.”


“조심히 들어가세요~!”


마지막까지 밝게 웃는 길드원의 모습을 뒤로하고 하유성은 자리를 떴다.


중립적이고 사무적인 태도가, 어쩐지 하유성이 하려는 복수를 바보짓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하유성에겐 하유성이 살아온 방식이 있었다.

그게 설령 이 세계와 잘 맞지 않더라도, 하루아침에 버릴 수는 없는 노릇.


길드원의 말대로 다음날 아침, 알랭의 하인 중 한 명이 하유성에게 쪽지를 건넸다.


설마 이 사람도 길드원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고 부탁받은 듯했다.


[막시 에크리 : 현재 신고식을 마치고 요양 중. 다음 미궁 입장은 약 열흘 후, 용병단 가입을 위한 2층 탐사가 예정되어 있음.]


하유성은 그 길로 학센에게 가서 최대한 빨리 미궁에 들어갈 수 있는 임무가 있는지 물어봤다.


학센은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미리 앞에 놓인 서류들 중에 몇 개를 꺼내어 하유성에게 보여줬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보내려던 참이었다. 셋 중에 뭘 보낼지 고민하던 차였지. 셋 다 정산 기댓값은 비슷하니, 네가 원하는 걸로 고르도록.”


학센이 건낸 종이에는 임무별로 개요와 설명이 적혀있었다.

1. 2층 정예 고블린 토벌 : (인원 2레벨 하나, 1레벨 둘) 레벨 비례 정산.

2. 3층 마물 재료 수급 : (인원 2~3레벨 다섯) 레벨 비례 정산.

3. 1층 인물 호위 : (인원 2레벨 하나) 호위 대상 하나. 지정 보수.


‘일단 두 번째는 제외. 인원도 층도 적절치 않다.’


이번 미궁행은 임무뿐 아니라 와른 복수까지도 하고 오는 것이 계획.

그러려면 파티의 결정권이 있는 편이 좋았다.


“호위 임무는 어떤 것이오?”


“뭐, 보통 귀족이나 학자거나 하는 작자들이지. 직접 미궁을 한 번 보고 싶어 해서 의뢰하는 거야. 말하자면 관광 상품이지. 계획은 저쪽이 다 짜둘 거고, 너는 가서 마물이나 좀 잡아주고 하면 돼.”


“그럼 첫 번째, 2층으로 하겠소.”


계획이 짜여있다면 임무 층 수도 다른 막시를 찾기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에 비해 고블린은 2층 어디에나 있고, 기한도 없이 가져오는 마석의 수로 정산하는 형식이었다.


범람을 대비한 주기적인 마물 토벌의 일환.

공공사업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인원도 적고 관리도 빡빡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하게 된다면 하유성 혼자 2레벨이니 리더를 맡아 돌아다니기도 편했다.


“그래? 너라면 혼자 다닐 수 있는 호위를 선택할 줄 알았는데. 뭐 상관없지. 임무 형태가 간단해서, 이번에는 코디네이터도 따로 붙지 않을 거다. 기한에만 맞춰서 알아서 다녀와라.”

학센은 손을 휘휘 저으며 하유성을 물렸다.


‘노예를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해도 되는 건가.’

하유성은 생각했지만, 이는 어디 도망칠 데 없고 정보가 투명한 미궁 도시만의 특성이었다.


어쩌면 지금쯤 알랭 쪽에서는 자신이 무슨 정보를 샀는지까지 다 알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하유성은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이 또한 적응해야 할 문제지···.’


하유성은 곧 새로운 파티를 만났다.

이번에는 1레벨 여자 궁수 한 명, 남자 성직자 한 명이었다.


“시리온이예요!”

“주님의 종, 크렌이라고 합니다.”


“하유성이오.”

사람이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들에게 듣기론 사람이 더 많아지면 토벌 의뢰는 정산금이 짜서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마법사들은 소수 인력들이라 이런 일은 애초에 거의 하지 않았다.

간단한 자기와 진열을 가다듬은 뒤, 세 사람은 곧장 미궁으로 향했다.


마침내, 하유성의 세 번째 미궁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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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사무소 24.09.05 68 4 13쪽
36 36화 심부름 24.09.04 6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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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토벌(2) 24.08.20 112 4 14쪽
20 20화 토벌(1) 24.08.19 131 4 14쪽
» 19화 정보 길드 24.08.18 126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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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스승님···? (1) 24.08.16 136 4 13쪽
16 16화 선의 +2 24.08.15 137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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