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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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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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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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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골드바흐의 추측

DUMMY

"허억.”


벌떡 일어나 급히 사방을 둘러봤다.


‘대체 여긴 어디지?’


주위가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주위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곳은 분명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이었다.

고1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줄곧 혼자 살았던 투룸 크기의 단독 주택.


어둠을 더듬어 어렵게 찾은 버튼을 누르자.

깜빡이던 형광등이 이내 빛을 뿜어낸다.

방안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브라운관 TV를 비롯한 정리되지 않은 책과 옷가지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바로 거울이었다.

급히 거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얼굴을 비췄다.


"...이럴 수가."


분명 있어야 할 노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깊은 주름 대신 아직 앳된 소년이 거울 속에 비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볼을 세게 꼬집어 봐도 분명, 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회귀라도 했다는 건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판자촌.

어렸을 적 내가 살던 동네가 분명했다.


'이 목걸이 때문인가?'


여전히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가.

꿈을 꾼 게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기분 탓인지.

뇌성마비에 걸린 이후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왼쪽 다리에서 흐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물론, 여전히 목발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나쁘지 않다는 거다.


혼란스럽고, 끔찍했던 과거는 그대로였지만,

내가 가진 경험과 기억들이라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았으니까.



***



다음 날 아침.


"너 정말 용식이가 맞아?"


갑자기 찾아온 용식이의 모습에 깜짝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침부터 왜 이래? 뭔 꿈이라도 꾼 거야? 빨리 가자. 늦었어."

"가긴 어딜?"

"어디긴 어디야. 학교지. 빨리 가방 내놔!"


용식이는 학창 시절 유일한 절친으로 매일같이 몸이 불편한 나를 찾아와 가방을 들어준 고마운 녀석이다.

물론, 초고도 비만의 뚱뚱한 놈들이 끼리끼리 어울려 다닌다고 괴롭힘도 많이 당하긴 했지만...


아무튼,

미국에 간 뒤로 못 봤으니, 무려 30년 만의 만남이었다.


반갑다 친구야!


"근데... 정말 내가 고3이야?"

"이 자식이 오늘따라 진짜 왜 이래?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 그래서 내가 진짜 고3이냐고?"

"그래 인마. 네가 고3이지. 국민학교 3학년이겠냐?"


헐....

하필이면, 돌아와도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시절로 돌아오다니.

아니지,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니,

정확히는 두 번째로 힘든 시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이제는 오래돼서 가물거릴 법도 했건만,

평생을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던 끔찍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야이 병신 새끼야. 너 내가 한 말을 똥구멍으로 처먹었냐."


고작 19살 주제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얼굴로 험악한 말을 쏟아내는 동급생의 정체는 바로 청명 고등학교의 일진, 차민철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정말 끔찍이도 나를 괴롭혔던 놈.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냐면,

과거 그를 볼 때마다 손발을 떠는 것은 물론이고, 말조차 더듬거릴 정도였다.


한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것도 베네요타의 영향인 건가?'


본래라면, 놈의 목소리를 듣는순간.

머릿속이 하얘졌겠지만, 지금은 왠지 이 상황이 재미있게만 느껴졌다.


자신의 예상과 달리 웃고 있는 내 모습에 차민철이 표정을 일그러트린 채로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때마침 울린 종소리로 인해 놈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이따 보자는 흔한 말을 남기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왠지 모를 아쉬움에 혀로 입술을 적셨다.


그러고 있는 도중 선생님 한 명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수학책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이번 시간은 수학인 듯했다.


사실 이전 회차에서 학창 시절의 나는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 아니, 정확히는 못 했다.

고아에다 가진 것도 없이 매일같이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세계 최대의 금융 그룹인 콘트라리온의 애널리스트로 일할 수 있었냐고?


그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딪혔던 참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발버둥이었다.


엄마가 남겨준 쥐꼬리만 한 재산을 쪼개가며, 뒤늦게 말 그대로 피똥을 싸가면서 공부를 시작했고,

다행히 머리가 전혀 없진 않았는지.

단, 일 년 만에 한국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결국 UC버클리에서 수학 Ph.D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 덕에 콘트라리온에도 들어갈 수 있었던 거고...


"여기 적힌 문제는 작년 대입 학력고사에서 한 명도 맞추지 못했던 문제다. 혹시 풀 수 있는 사람."


선생님의 목소리로 인해 상념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들자.

칠판에 적힌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음을 증명하라.’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와... 저게 무슨 말이야?"

"대체 뭘 풀라는 거지?"


반 아이들은 선생님이 적은 문제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히 풀 수 있는 사람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차민철 너도 몰라?"


선생님이 차민철을 부르는 모습에 그가 일진인데다 공부까지 잘했었다는 게 생각났다.

참 불공평한 세상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교 1등인 차민철도 처음 보는 문제인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것을 본 내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오직 나만이 유일하게 지금 상황이 선생님의 장난임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과 달리.

나는 칠판에 적힌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는 거지 풀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저 문제는 내가 UC버클리에 재학 중일 때도 풀지 못한 문제였으니까.


그때.

내가 웃고 있는 것을 발견한 선생님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장태준, 넌 이게 뭔지 아는 표정인데?"


선생님의 말에 반 아이들이 말도 안 된다며, 야유를 쏟아냈다.

전교 1등인 차민철도 풀지 못한 문제를 꼴찌를 도맡아서 하는 내가 알 턱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때문인지 이전 삶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호승심이라는 감정이 울컥 휘몰아쳤다.

그리고는 툭 던지듯 그것에 관한 답을 뱉어냈다.


"골드바흐의 추측에 관한 문제입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반 아이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트렸고, 선생님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짜식이... 그래도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나 보네. 그럼 풀 수도 있나?"


말의 의미는 분명 질문인데,

표정에는 풀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잔득 묻어났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골드바흐의 추측은 20세기 수학 최대의 난제 중 하나로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도 증명되지 않은 문제였으니까.


반 아이들의 반응 또한 선생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에이. 민철이도 못 푸는걸. 태준이가 어떻게 풀어요."

"저거 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너 이 새끼 그 장 꼭 지져라.


"만약 제가 저걸 증명하면, 어쩌실 겁니까?"

"뭐?"


푼다고 말한 게 아니라.

정확하게 증명한다고 말했다.


그런 내 말에 선생님이 잠시 설마 하는 기대감을 나타냈지만, 그건 찰나에 불과했고.

이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되레 큰소리를 쳤다.


"만약에 네가 저걸 증명하면, 내가 오늘 2반 전체에 자장면 한 그릇씩 쏜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자장면이라는 단어는 반 아이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집중됐다.


그런 시선들을 오롯하게 받아내며,

거침없이 교실 앞으로 걸어갔다.

본래라면, 고작 고3짜리가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한데... 왠지 증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칠판 앞에 서자.

교실 전체에 일순 침묵이 내려앉았다.

묘한 기대감과 무시가 혼재된 시선이 등 뒤에서 느껴진다.


하얀색 분필을 집어 들고,

탁탁거리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들을 칠판에 채워나갔다.


비어있던 칠판이 내가 쓴 숫자들로 채워질수록.

선생님의 표정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저... 저건 강한 골드바흐의 추측인데?"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아이들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뭐야?"

"설마... 태준이가 저걸 푼 거야?"

"저 병신이 풀긴 뭘 풀어."

"지난 중간고사 때 태준이 수학 점수가 30점도 안 됐잖아?"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모두가 선생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선생님도 태준이 적은 골드바흐에 관한 증명이 맞는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고작 고등학교 수학 선생 따위가 어떻게 20세기 최대의 난제로 불리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그저 뚫어져라 칠판을 쳐다보며,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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