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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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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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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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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으로 뭘 하면되는데요?

DUMMY

“어제 지시하신 투자 현황표입니다.”

"바쁘니까. 구두로 설명해주세요."

에일린의 책상 한켠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철을 힐끗 쳐다본 빌이 정리해온 자료를 간단히 설명했다.

"월맥스와 그루포, 반노르테 등에 투자한...."

"그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고, 그래서 전체 수익률이 얼마라는 거죠?"

"...73%입니다."


보름도 안 된 짧은 시간 만에 올린 것치고는 상당히 높은 수익률이었지만,

에일린에게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텔로비사와 서멕스 그리고 FEMSA의 비중을 20%로 올리세요."

"남은 자금들은 어떻게 할까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페소, 그리고 IPC 지수에 레버리지를 걸어서 들어가는 걸로 하죠."


에일린의 말에 빌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뭐죠?"

"저... 채권에는 투자하지 않는 겁니까?"


채권이란 말에 에일린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미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으로 큰 수익을 올리기는 힘들어요."


평소라면, 에일린의 말에 수긍하고 돌아갔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분명 일반적인 채권 거래라면, 말씀하신 내용이 맞지만,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하이일드 채권을 CDS로 묶어서 투자하면, 생각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이일드 채권을 CDS로 묶는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방법에 에일린이 눈을 크게 떴다.


하이일드 채권은 높은 신용 위험을 가진 채권이기 때문에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리스크 또한 상당히 높아서 잘 못 했다가는 매입한 채권들이 휴지 조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었다.

한데, 그런 하이일드 채권에 디폴트를 대비한 CDS를 섞고, 거기에 높은 레버리지까지 더 한다면...

생각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제 계산에 따르면, 6개월 안에 최소 250%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에일린이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설명하는 빌과 눈을 마주쳤다.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지금처럼 많은 돈을 풀고 있는 상황이라면, 상대적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이죠."

"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기업들의 디폴트 위험도 현격히 줄어들 테니까요."


가능성은 충분했다.


"만약, 방금 말한 대로 수익률이 나온다면, 그때부터 빌의 직급은 선임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탄성을 지르는 빌의 물음에 에일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레카 인베스트먼트가 아직 신생 기업이라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고작 6개월 만에 선임 타이틀을 다는 것은 상당히 빠른 속도임은 틀림없었다.

물론, 자신이 그만큼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오랫동안 채권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왔던 만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충분했다.

······



***



여의도 증권거래소.


“제기랄, 대체 어떤 놈이 주식이 폭락한다는 찌라시를 퍼트린 거야!”

“쯧쯧, 상태를 보아하니, 자네도 지난 폭락 때 전부 던졌나 보군.”

“시발, 검은돈들이 빠져나가서 주가가 폭락하기는 무슨... 개자식들. 진짜 잡히면 가만 안 둘 거야!”

“이 사람아, 어떤 정부가 주식 시장이 망하는 것을 보고만 있겠나. 최악의 경우 돈을 풀어서라도 주가를 부양했을 걸세.”


증시를 떠났던 자금들이 대거 환류된 덕분에 정부가 돈을 풀지 않았음에도.

무려 794개 종목이 동시에 상승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완전히 달라진 증시 분위기로 인해.

거래소 내의 분위기 또한 극명하게 둘로 나뉘었다.

반등으로 환호하는 이들과 추가 폭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모두 던져버린 이들의 절규어린 외침.

당연하게도 나는 환호하는 이들 중 하나였다.


내가 주식을 매입한 이후에도,

며칠간 급등락을 반복했지만,

9월에 들어서자.

주가는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한때 664까지 떨어졌던 코스피 지수도.

올해 연말이 되면, 지금보다 200포인트 이상 상승하고, 내년이면 1,100포인트까지도 무난히 상승할 것이니,

지금부터가 대세 상승의 시작이라해도 무방했다.


흐뭇한 표정으로 상승장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노인 한 명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직 나이도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주식 거래를 하는 건가?”

“그냥 경험 삼아 해보는 겁니다.”

“표정이 나쁘지 않은 걸 보면, 지난 폭락 장에서 매도 대신 매수를 선택 했나 보군.”

“운이 좋았죠.”

“정말 운이 맞는 건가?”


노인이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무슨 뜻이에요?”

“본래 공포에 주식을 산다는 게 웬만한 용기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거든.”

“본래 수익은 공포에 나는 법이잖아요.”


무심코 내뱉은 말에 노인이 이번에는 눈을 크게 떴다.


“그 나이에 벌써 그런 이치를 깨달았다고? 직접 보지 않았다면, 닳고 닳은 투자자라고 해도 믿을 수 있겠군.”

“그 말은 할아버지도 그 닳고 닳은 투자자 중 한 사람이라는 뜻인가요?”

"허허. 말이 그렇게 되는 건가?”


수수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말투에서 상당한 연륜이 느껴졌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구지?’


생각이 날듯 말듯 나지 않았다.

베네요타의 피로 인해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으면, 분명 기억이 날 텐데도 말이다.


착각인 건가?


“자네 혹시, 나와 함께 일해볼 생각 없나?”

“일이요?”


노인이 내민 명함에는 조성환이라는 이름이 크게 적혀있었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흐릿했던 기억이 선명해지며, 노인의 정체가 떠올랐다.


“백터너, 조 선생!!”


조성환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허허, 이제 고작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내 별명을 알고 있는 걸 보니, 역시 내 예상대로 이 바닥에 관심이 많은 이가 맞구먼.”

“관심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조 선생님이 워낙 유명하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백터너 조라고 불리는 조성환은 90년대에 빼놓을 수 없는 슈퍼개미 중 한 명이었다.

6·25 전쟁 때 일본제 페니실린 수입을 통해 번 돈으로 건국 국채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남겼고,

그 돈을 바탕으로 중동 특수가 일어나기 직전,

건설 회사에 투자해 수백 배가 넘는 이익을 얻었다는 것은 백터너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였다.


숫자 백과 영어 ‘turn’을 합쳐.

투자하면, 항상 백배로 돌아온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바로 백터너였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면,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겠군.”

“에이, 사채왕이라는 별명은 조 선생님을 시기한 이들이 붙인 헛소문이잖아요.”


채권에 투자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것 때문에 백터너라는 별명 외에도 사채왕으로도 불리긴 했지만,

사실, 건국 국채는 전쟁 이후 국내 자본시장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정부가 기업들에 억지로 떠넘기다시피 팔았던 채권이었다.

그런 채권에 투자해서 큰 수익을 올렸다고, 사채왕이라 부른다면,

전 세계 투자자 중 사채꾼이 아닌 사람이 없을 것이다.


“확실히, 특이하단 말이지.”

“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네하고 대화를 나눈다는 기분이 드는건 내 착각이겠지?"


조성환의 말에 순간적으로 가슴이 뜨끔했지만, 이 정도로 당황할 내가 아니었다.


“하.하... 아직 20살밖에 안 된 대학생한테 노인네라니요. 말이 좀 심하신 것 같은데요?”

“그래서, 내 제안에 대한 자네 대답은 뭔가?”

“함께 일하자는 제안 말씀이시죠?”


조성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하지만, 이미 매여있는 곳이 많아서. 같이 일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어느정도 대답을 예상했는지.

큰 아쉬움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밥 한 끼 정돈 먹어줄 수 있겠지?”

“공짜 밥은 환영이죠. 근데 제가 좀 많이 먹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참고로 저 아직 점심도 못 먹었습니다.”

“허허, 이거 오늘 내 지갑이 거덜 나게 생겼구먼.”


1960년대에 이미 수백억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

고작 밥값 정도로 지갑이 거덜 날 일은 없겠지만, 놀라게 하는 정도는 충분했다.


뭘 먹고 싶냐는 물음에 나는 한우를 외쳤고,

내가 30분 만에 꽃등심 10인분을 해치우자.

나 때문에 한 달 치 밥값이 사라졌다고, 벌써 다섯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근데... 평소에 뭘 드시길래. 고작 이 정도가 한 달 치 밥값이라는 거에요.”

“이놈아. 고작이라니. 네 놈이 지금까지 먹은 게 어느 정도인 줄이나 알고 하는 말이냐.”


물론 꽃등심 10인분이 결코 싼 가격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여기가 제법 고급 식당이라 지금까지 먹은 음식값을 전부 합치면, 20만 원쯤 되려나?

하지만, 수천억이 넘는 천문학적인 재산에 비하면, 이 정도 밥값은 정말 먼지만큼도 되지 않을 것이다.


“설마, 평소에 국밥 같은 것만 드시는 건 아니죠?”

“국밥이 뭐가 어때서. 맛도 있고, 간편하고. 혼자 먹기에도 나쁘지 않고...”

“하긴, 혼자 먹긴 국밥만 한 게 없죠. 그러게, 돈이 많으면, 뭐해요. 밥 한 끼 같이 먹어줄 사람도 없는데.”

“뭐야!”

“앞으로도 혼자 밥 먹기 적적하시면, 전화주세요.”

“됐다 이놈아. 누구 좋으라고.”

“거참 그 많은 돈 다 싸 들고 갈 것도 아니고. 적선한다는 생각으로 맛있는 것도 좀 사주고 하면 되죠.”


인상을 잔뜩 찌푸리긴 했지만,

그리 싫진 않은 표정이었다.


“커험. 밥을 그만큼 먹었으면, 밥값 정도는 해야지.”

“밥값이라뇨? 그냥 사주는 거 아니었어요?”

“그래서 불만이냐?”

“...밥값으로 뭘 하면 되는데요?”

“너는 앞으로 어떤 종목이 유망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엥? 설마 백터너께서 저한테 종목 상담을 받으시려는 건가요?”

“이놈아 내가 뭣 하러 네까짓 것한테 종목 상담을 받겠느냐. 그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떤 종목을 관심 있게 보는 건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다.”


밥도 얻어먹었겠다.

대답 못할 이유는 없었다.


“주식 거래가 점점 대중화가 되는 만큼. 저는 당분간은 가치주가 조명받을 걸로 생각합니다.”

“호,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예를 들면 작년에 급등한 태청산업 같은 주식 말이죠. 5만원이라는 주가가 비싸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주당 순이익은 6만원이 넘었으니까. 실제로는 PER이 1배도 안 되는 거죠.”


이시기 기업들의 평균 PER은 17배가 넘었다.


“그렇다면 너는 PER이 낮은 종목에 투자한 게냐?”

“아니요. 그건 이미 작년에 테마가 지나갔잖아요. 올해는 저 PER보다는 자산주 즉 저 PBR 주식이 오를 겁니다.”

“이놈아, 저 PER이나 저 PBR이나 어차피 가치주인 것은 똑같지 않으냐. 네 말처럼 작년에 PER 테마가 지나갔는데, 올해 또 가치주 테마가 유행할 리가 있겠느냐?”

“...호통치시는 것 치고는 왠지 선생님도 자산주에 투자하셨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뜨끔.


허를 찔렸는지.

조성환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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