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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꽃라떼
작품등록일 :
2024.08.0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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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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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서리달 (2)

DUMMY

기사들의 몸에 생기가 깃든다.


죽은 해골에 불과했던 이들의 뼈에 얼음으로 살갗이 돋아나고, 그 위로 또 한 겹의 얼음이 내려앉아 형태를 갖춘다.


나는 수백 년 전의 갑옷 양식에 대하여 잘 모른다.


하지만 지금 저기 켈라이나이의 광장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얼어붙은 기사들을 본 순간, 나는 켈라이나이가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을 잊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쿵.


기사들이 앞으로 검을 뻗는다.

얼음으로 빚어진 검은 마을의 경비들이 쓰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대검이었다.


요식 행위로서 가벼운 철검을 휘두르는 게 아닌, 사람 허리통만큼 두꺼운 너비의 대검을 다들 한 손으로 움켜쥐며 위로 들었다.


철컹.


나는 진격을 명했다.

일반적인 스켈레톤이었다면 로드릭과 같이 어영부영 걸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겠지만, 저들의 움직임에는 절도와 양식이 있었다.


수직으로 세운 대검.

두 손으로 높이 들며 어떤 '예'를 갖추고, 그들은 저마다 대검에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향해 애도를 표한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내게 넘어온 서리달의 영향일까?

아니면 서리달의 기능 그 자체?


아니다.


사령술을 통해 눈에 스치듯이 보이는 저들 서리의 기사들의 예법은 그들만의 기사도 정신이다.


[기사란, 약자를 지키는 자.]


풍경이 오버랩된다.


300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마을 광장에 날뛰는 크라켄을 상대로 원을 그리며 포위하는 기사들이 서리로 맺어진 검을 들고 읊조린다.


[우리는 지키기 위하여 검을 들었으니.]

[무엇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의 앞에 나섰는가.]

[나의 가족을.]

[나의 연인을.]

[나의 친우를.]

[나의 주군을.]


서로 지키고자 하는 바는 기사마다 다르지만, 그들은 인간이었던 시절에도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저 죽음의 앞에 나섰다.


[설령 우리의 가족이 이미 죽어 우리와 함께 묻혔다 하여도.]

[설령 그들이 우리를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설령 우리의 행동이 어떤 보답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보았다.


[우리는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바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적의 위협에 맞서 싸우리라.]


기사도를.


[우리의 주군, 레이디 넵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다시 이 땅에서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바를 다시금 지킬 수 있게 해준 그분을 위하여.]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느 한 소녀를 위하여.]


무엇이 기사인가.

중세 시대에서, 기사란 어떠한 자들인가.


세금을 거두는 자들.

강한 힘과 무거운 갑옷을 가지고 남의 것을 빼앗으며 살아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


거기에 성기사가 된다면, 교단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죄 없는 이들을 죽이고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이들.


그런 기사들을 봐왔던 나로서는, 지금 광장에 모인 기사들이 너무나도 낯설면서도-


반갑다.

어린 시절 즐겼던 성검전기 속, 명예와 기사도를 위해 적을 향해 달리던 그 기사들이 떠올라서.


인간을 기분 나쁘게 만들기 위하여 기사라는 존재들을 그저 무력 강한 망나니로 만들어버린 원작 제작사들의 인간혐오로부터 벗어난, 인간의 의지와 긍지를 찬양하고 예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이 검은, 우리의 레이디와 주군을 위하여---!!]


기사들이 달린다.

육중한 얼음갑주를 두른 채, 크라켄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앞으로 달린다.


키이이익!!


크라켄이 괴로워하며 비명을 지른다.

300년 전 서리달을 쓰던 넵튠에게 봉인된 기억이 떠오른 건지, 아니면 다리의 빨판에 대가리를 처박은 기생마수들의 물어뜯기를 도무지 견딜 수 없었던 건지.


쾅, 쾅, 콰-앙!!


여덟 개의 다리 중 네 개를 동시에 높이 치켜들며 땅을 내리친다.


막대한 진동에 켈라이나이 도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진동은 여전히 나와 지오니가 서 있는 공동묘지까지 닿았다.


'소용없어.'


서리 언데드 기사들을 조종하는 술자를 방해하려는 움직임이라면, 이곳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다.


"로드릭. 지오니의 명령에 따라 이곳을 사수하라. 지오니. 나를 지켜줘."


나는 한 손으로 마도서의 정중앙을 펼친 다음, 나머지 손으로 펼쳐진 마도서의 위에 손을 뻗었다.


"내가 저 크라켄을 기사들로 쓰러뜨릴 때까지."


키샤아아악!


공동묘지 아래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듯이 올라오는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다 방향에서 슬금슬금 올라오는 검은 그림자는 물에서 빠져나오더니, 곧 바닷물을 뚝뚝 흘리며 물 밖으로 나와 우리를 향해 올라오려고 한다.


"어인...!"


물고기 인간.

1m는 넘는 물고기의 몸에 인간의 사지가 달려있는, 보기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흉한 마수들.


그 마수들의 죽은 동공에는 하얀 테두리가 동공처럼 둘러싸여 있고, 계속 빙글빙글 꿈틀거리고 있었다.


"심해 깊은 곳에 있다가, 봉인된 기생마수의 소리를 듣고 올라왔구나...!"


지오니가 이를 갈며 델겐의 검을 뽑는다.


"하나도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주지! 그러니 어서 크라켄을!"

"아아."


마도서에 올린 손에 마나를 불어넣는다


손은 마도서에 있으나, 시야는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으니.


새애액!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스친다.

그것이 크라켄의 다리라는 것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나'는 그 다리를 향해 검을 찔러넣고 있었다.


끼이이익!!

크라켄이 괴성을 지르며 발광한다.

여덟 개의 다리 중 하나가 검에 푹 찔렸으나, 하나의 목숨이 사라진 것처럼 괴로워한다.


투둑.


대검의 좌우로 하얀 줄 덩어리가 떨어진다.


대검은 기생마수를 반으로 갈랐고, 나는 대검을 뽑아 즉시 몸을 다시 움직였다.


얼음대검에 비친 내 모습은 얼굴의 형태가 없는 얼음갑옷의 기사.


스켈레톤의 뼈대에 나의 의식이 깃들어, 나는 자유롭게 스켈레톤을 조종하며 크라켄을 상대했다.


'왼쪽 상단에 보이는 빨판에 숨어있는 기생마수를 죽여.'


서리기사에게 지시를 내린다.

내가 직접 그 몸을 조종하여 움직이는 것보다, 뼈에 남아있는 혼의 편린을, 이미 혼백은 빠져나갔지만 뼈의 안에 스며든 육체 주인의 몸에 지침을 전한다.


서걱!


서리기사가 크라켄의 다리를 피하며 그 위로 올라탄다.

얼음덩어리가 올라서자 크라켄이 당황하지만, 이미 서리기사는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대검을 아래에서 크게 퍼 올리고 있다.


'다음.'


마도서를 넘긴다.

곧 시야가 다른 곳으로 향하고, 벽에 처박힌 서리기사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크라켄의 난동 와중에 몸이 날아간 기사.

서리로 빚어진 몸이 갑옷과 함께 반파되어 몸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이들은 뼈대가 실제 그들의 백골이라서 그렇지, 그 위에 덮인 서리달의 힘은 순수한 얼음이다.


즉.


'일어나. 아직 쓰러질 때가 아니야.'


공기 중의 수분을 그대로 당겨 서리로 얼어붙게 한다면, 육신은 얼마든지 다시 이어 붙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은 해양도시.

바다가 바로 앞에 있는 만큼, 대기 중의 수분이 마르지 않는 한 이들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부서질지언정.

꺾이지 않는다.


쾅, 쾅, 콰아앙!!

크라켄의 다리에 서리기사들이 파괴된다.


'앞으로 나아가서 휘둘러.'


휘두르는 대검이 크라켄의 다리에 산산이 조각나고.


'부서져도 돼. 깔려도 돼. 어떻게든 달라붙어.'


창처럼 뻗은 크라켄의 다리 끝에 어깨가 꿰뚫리고, 빨판에서 튀어나온 기생마수가 서리기사의 목을 조르며 두개골과 척추의 연결을 끊어버리려고 해도.


'크라켄에 달라붙은 기생마수를 베고, 붙잡아 터뜨리고, 뽑아내.'


서리기사 하나하나에 지시를 내린다.

한 명 한 명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시야가 전환되는 게 어지럽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기사단을 계속 움직인다.


[물러서지 마라!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저들도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 바다는 우리와 함께 한다네.]

[아아, 우리의 주군! 바다의 여신, 넵튠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도다!]


기사들은 달린다.

동료가 튕겨 나간 다리를 향해 서리대검을 꽂고, 대검이 부러지면 자신의 손을 찔러넣어 건틀릿을 박아 넣는다.


우둑, 우두둑!

그러다가 크라켄의 근육에 손가락 뼈가 으스러지고 가루가 되더라도, 손을 잃었지만 팔을 빼내며 뒤로 크게 어깨를 뻗는다.


'가라, 서리달.'


서리달의 권능을 이용하여, 얼음갑옷을 새로운 형태로 직조한다.

손이 망가져 팔의 뼈만 남았다면, 그 뼈의 끝을 얼음창처럼 만든다.


푸-욱!!


팔이 곧 서리의 창이 되어 크라켄을 꿰뚫는다.

빨판에 정확히 처박혀, 그 안에 숨어있는 기생마수를 마저 제거한다.


'모든 빨판을 파괴한다.'


빨판에 깃들어 크라켄의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서리기사들이 낸 상처 속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기생마수도 있지만, 나는 그들이 크라켄 내부로 도망치기 전 바로 포착하여 기사를 움직였다.


구구구.

크라켄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다.

더 이상 몸속에 파고들려고 하는 기생마수가 더는 없기에, 크라켄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


만.


'크라켄은 살려둬서는 안 돼.'


300년 전의 마수다.

몸속 어딘가에 기생마수가 깔아놓은 알이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크라켄의 알을 우리가 확보하지 못한다고 해도, 성체 크라켄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마수다.


살려두면 교단이든 마왕군이든 조종하려고 들겠지.


구구구구.

기사 하나를 크라켄의 몸쪽으로 보낸다.

얼어붙은 기생마수들의 잔해가 눈썹처럼 남은 가운데, 아주 천천히 무언가가 열리기 시작한다.


눈.

크라켄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 머리보다 더 큰 동공으로, 녀석은 서리기사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전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간 존재는 다들 비슷한 시선을 보내는 건가.'


몸에 달라붙은 기생마수 때문에 괴로워하다 얼어붙은 녀석이다.


이제는 그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기에 죽고 싶은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아니야.'


고통 때문에 죽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고통이 기생마수로 인한 고통이 아니다.


-빨판이를 보내줘.


환청일까.

서리달의 영향인지, 넵튠의 목소리가 스치듯이 들렸다.


"......."


크라켄이 서서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다.

얼음이 녹아서 그런지, 눈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기사들이여."


나는 기사들에게 어떤 '의지'를 전했다.


기사들이 나의 의지를 전해 듣고 과연 어떤 생각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이 없는 스켈레톤이라 생각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그대들의 레이디에게, 예의를 갖추어라."


저벅, 저벅.


하나둘, 기사들은 나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다.


두루뭉술한 지시사항일수록 그 지시는 생전의 기억을 토대로 행동하는바.


쿵, 쿵, 서걱.

기사들이 크라켄의 다리를 잘라낸다.


다리에 남은 기생마수가 머리에 닿지 못하게끔, 다리를 철저하게 떼어내며 그 앞에 멈추어 선다.


파스스.

피조차 흘러나오지 않는 크라켄의 몸에 등을 기대며, 서리기사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바닥에 꽂고 아래로 고개를 숙인다.


이전에는 날뛰는 크라켄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세웠던 서리기사들이, 이제는 크라켄을 등진 채 스스로 얼어붙은 울타리가 되려고 한다.


우둑.


얼어붙기 전.

서리기사들은 자신의 갈비뼈 중 심장에 가장 가까운 갈비뼈를 스스로 뜯어, 그 갈비뼈를 크라켄의 위에 놓는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활약을 했던 어느 한 서리기사가 크라켄의 머리 위에 오르더니, 기사들이 하나씩 빼낸 뼈를 모두 모아 정수리에 모은다.


그리고 기사는 정 가운데 부분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인다.


두 손을 모았다면 경건한 성기사의 그것이었겠으나.


서리기사의 모습은 누군가를 향해 충성을 바치는 기사의 전형이었으니.


"......서리달."


나는 서리달의 권능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기사들의 행동을 통해 깨달았다.


사아아.

크라켄의 위.


기사들의 심장을 하나로 모아, 뼈대를 세우고 조각상을 만든다.


거짓된 거신상이 아닌.


이 마을을 구한 어느 한 영웅의, 영원히 녹아내리지 않을 서리로 빚어진 조각상을.


[고마워.]


기사를 향해 한 손을 내밀고 있는 소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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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황야의 데스나이트 (2) NEW +4 22시간 전 451 33 12쪽
39 황야의 데스나이트 (1) +6 24.09.13 826 43 13쪽
38 문어머리 언데드 (2) +10 24.09.12 954 46 14쪽
37 문어머리 언데드 (1) +13 24.09.11 1,080 57 12쪽
36 연중무휴 (4) +7 24.09.10 1,229 69 12쪽
35 연중무휴 (3) +4 24.09.09 1,325 74 13쪽
34 연중무휴 (2) +7 24.09.08 1,491 82 12쪽
33 연중무휴 (1) +11 24.09.07 1,635 90 14쪽
32 이제 이 해골은 제 겁니다 (3) +10 24.09.06 1,667 91 13쪽
31 이제 이 해골은 제 겁니다 (2) +10 24.09.06 1,735 110 13쪽
30 이제 이 해골은 제 겁니다 (1) +7 24.09.05 1,942 104 12쪽
29 혁명의 서리불꽃 (3) +9 24.09.04 2,177 113 14쪽
28 혁명의 서리불꽃 (2) +18 24.09.03 2,387 121 13쪽
27 혁명의 서리불꽃 (1) +8 24.09.02 2,527 116 13쪽
» 서리달 (2) +8 24.09.01 2,570 134 13쪽
25 서리달 (1) +9 24.08.31 2,592 122 12쪽
24 기생수와 언데드 (4) +11 24.08.30 2,672 135 12쪽
23 기생수와 언데드 (3) +6 24.08.29 2,747 128 13쪽
22 기생수와 언데드 (2) +11 24.08.28 2,925 141 13쪽
21 기생수와 언데드 (1) +6 24.08.27 3,196 140 13쪽
20 보물 사냥꾼 (3) +10 24.08.26 3,381 145 13쪽
19 보물 사냥꾼 (2) +15 24.08.25 3,588 165 12쪽
18 보물 사냥꾼 (1) +11 24.08.24 3,851 168 13쪽
17 같은 목적 (2) +16 24.08.23 3,844 176 12쪽
16 같은 목적 (1) +6 24.08.22 3,947 179 15쪽
15 영웅 (2) +15 24.08.21 3,933 209 12쪽
14 영웅 (1) +17 24.08.20 4,049 201 13쪽
13 최종보스와 계약을 맺다 (3) +15 24.08.19 4,298 174 13쪽
12 최종보스와 계약을 맺다 (2) +15 24.08.18 4,504 202 14쪽
11 최종보스와 계약을 맺다 (1) +15 24.08.17 4,647 19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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