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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꽃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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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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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대로 리뷰했는데 빙의당했다

DUMMY

[추억이 ■□당한 기분입니다.]


음.

쓰고 나서 보니까, 너무 표현이 격하다.


오죽하면 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바람에, 검열에 걸렸다.


다른 표현을 쓰면 어떨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기분을 한 줄로 짧게 설명하자면.


[추억이 죽었습니다.]


내 추억이 살해당했다.


나보다도 어린 개발자 놈들에 의해 원작은 갈기갈기 해부당하는 걸로도 모자라, 완전히 누더기 골렘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성검전기(聖劍傳記)-리마스터.


내 스마트폰 어플에 깔린, 플레이 시간 2시간 남짓한 이 어플이 나의 추억을 더럽혀 버렸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컴퓨터에 디스켓-플로피 디스크를 꽂아가며 고전 게임을 즐기던 시절.


'성검전기'라는 CD 게임이 있었다.


천사와 악마가 싸우고....

마왕이 대륙을 지배하고...

어느 한 평화로운 마을의 청년이...


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이제는 레트로풍이라고 따로 이름을 붙여야 하는 그런 설정을 가진 RPG 게임.


-아, 이거 사주세요오!! 생일선물로 이거 갖고 싶다고오오!!

-하,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이럴까. 누구 닮아서 이래?

-당신 새끼예요, 여보.


게임잡지에서 본 게임이 너무나도 하고 싶어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떼라는 걸 써봤던 때.


-아빠, 생일선물은?

-옜다.

-와아아! ...이거 성검전기가 아니라 성검전승이잖아!!

-어휴, 게임이 다 거기서 거기지. 아빠 피곤하다. 잔다.

-으아아앙!!


당시에는 워낙 비슷한 이름을 가진 게임이 많아서, 잘 모르셨던 아버지가 전자상가에서 다른 걸 사 오셨던 기억이 있는 게임.


-아빠. 이거 뭐예요?

-뜯어봐라.

-...와! 이거, 이거!!

-하이고, 이 새끼. 엄마 말 잘 들어야 한다?


그리고 며칠 뒤, 기념일-아마도 크리스마스였던 것 같은데-의 선물이라고 받아서 즐겁게 게임을 했던 행복한 추억이 깃든 게임.


그 추억이 지금 돈에 눈이 먼 게임사의 협잡질로 일그러졌다.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은 추악한 자본주의의 BM과 돈 욕심밖에 없는 핏덩이 같은 개발자들의 능욕으로 더 이상 떠올리는 것조차 미안해질 지경이 되었다.


왜냐고?


[지금 접속하면 30회 연속 뽑기!!]

[SSR 등급 캐릭터, <검제> 살바인 무료 증정!]


'살바인이 무료 따리로 전락할 캐릭터냐?'


어플을 삭제하기 위해 어플 스토어에 들어가자마자 떠오른 광고에 다시 한번 화가 치밀어오른다.


타닥.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이 게임을 개발한 이들은 원작에 대한 존중도 애정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추억을 이용해 돈을 뽑아먹을 생각밖에 없습니다.]


2시간 동안 플레이한 감정을 그대로 쏟아낸다.


[성검전기는 저질스러운 가챠 게임으로 전락했습니다.]


당시에도 제법 비싼 패키지 게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캐릭터 하나를 얻는데 30만 원 돈을 써야 하는 게임은 아니었다.


[우리가 한 명 한 명 정성을 들여 키웠던 전우들은 등급으로 나뉘었습니다. 더 이상 '플레이어의 육성에 따라 누구나 용사가 될 수 있는 게임'은 없습니다.]


캐치프레이즈는 노말, 레어, 슈퍼레어, 유니크...또 뭐시냐, 레전더리 등등 온갖 영어로 떡칠된 등급에 의해 무너졌다.


뽑기 과금 게임이라는 게 언제나 그렇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면 인플레이션에 따라 캐릭터의 상대적 가치가 변화하기 마련.


이건 뭐 이해한다.


하지만 적어도 성검전기의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면 그랬으면 안 된다.


[무릎에 화살을 맞아 은퇴한 마을 경비병 '켈트'를 네크로맨서로 전직시킨 뒤, '사령왕'으로 써보신 분들 계십니까?]


인터넷 검색도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초반에 얻었던 잡캐 동료를 끝까지 키워 드래곤 슬레이어로 만들었던 기억.


경비병 켈트는 지크라는 이름으로, 창을 전문으로 쓰는 SSR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었다.

뽑기 화면의 첫 페이지, 한정 SSR 캐릭터로.


첫 마을에서 동료로 얻을 수 있었던 경비병 켈트는 아예 다른 존재로 바뀌어 있었다.


[세 번째 마을에서 몬스터들의 대량 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화염마법사 길리안을 동료로 맞이했다가 세이브 데이터를 날려 먹은 분 계십니까?]


적이 무한으로 리젠되는 임무에서 광역기를 쓰기 위해 해당 지역의 고레벨 마법사를 고용했으나, 특정 기술을 쓰려고 하면 게임이 멈추고 세이브 데이터가 증발해버리는 기억.


그 길리안은 아예 삭제되었다.


무슨 24년 전 게임의 버그가 재발한 것도 아닐 텐데, 그냥 넣어두고 '이, 이 기술을 쓰면 세계가 무너져요!'라고 하면서 벌벌 떠는 이스터에그만 넣어도 되지 않았을까.


[카스티안 등대에서 서로 앙숙인 가문의 두 남녀가 사랑을 약속하며 함께 뛰어내렸을 때, 진짜 죽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분들 계십니까?]


성검전기의 원작 스토리는 곳곳에 최루액이 뿌려진 것처럼 눈에서 액체가 줄줄 흐르게 만들었다.


메인 스토리뿐만 아니라 사이드 퀘스트나 조연들의 이야기도 군데군데 잘 배치하여, 20년이 지난 지금도 추억을 반추하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그 스토리, 캐릭터를 뽑지 않으면 열람하지 못하도록 막아뒀다.


스토리를 돈 주고 사게 만들어뒀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래.

백 번, 아니 천만번 양보해서 그것도 괜찮다고 치자.


이 게임을 플레이했던 이들은 어떤 이들은 결혼했을 것이고, 나처럼 한 번 갔다가 와서 이제는 나만을 위해 벌어들인 돈을 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속된 말로 추억팔이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막대한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게임.


심지어-


[저는 정품 유저였습니다만, 여러분 중에는 '복돌'로 플레이했던 분들.]


인터넷에다가 '성검전기.1.16.rip.ISO'라는 식으로 검색을 하면, 몇 가지 술수만 쓰면 정품을 사지 않고도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


[마음의 부채감으로 이번 기회에 정가만큼 과금하시려고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모바일 뽑기 게임이라고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그때 못 냈던 돈을 지금 내겠습니다'라면서 자발적으로 미리 결제금액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았다.


딸칵.

잠시 글을 쓰던 창을 내리고,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핀다.


-이게 겜이냐.

-개발자들 원작 해본 거 맞음? 튜토리얼부터 지금까지 스토리 맞는 게 하나도 없는데.

-차라리 저기 중국 회사한테 외주 주지 그랬냐. 걔들이 IP사서 만들었으면 이거보다는 배로 더 잘 만들었겠다.


"심각하네."


역시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성검전기로서 하자가 많은 게임.


그렇다면 차라리 성검전기라는 타이틀을 떼어내고, 그냥 무슨 '스토리 오브 히어로즈'라는 식으로 냈다고 한다면?


-와ㅋㅋㅋ 21세기에 이런 개똥겜이 다 나오네ㅋㅋㅋ

-올해의 J.O.A.T...시여....

-어르신들 어렸을 때 이런 게임 하고 노신 거예요? 아....


그마저도 에러.


-이거 게임 아님.


성검전기라는 IP 자체를 접해보지 못한 젊은 게이머들조차도 게임으로서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광고하는 사람들 한 번 볼까.'


게임사에서 유튜버나 스트리머 같은 이들에게 광고비를 주고 게임을 해보라고 하는 라이브 영상들마저도.


-아...재미있었구요. 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아니, 광고주님! 광고잖아요! 무슨 풀돌하는데 고봉밥 꽉천을 다섯 번이나 하냐고요!! 이거 주작이야!

-......광고 방송입니다. 여러분, 험한 말은 삼가해주세요. 네. 어허. 개똥 쓰레기 게임이라고 채팅하신 분. 이 게임 그런 게임...콜록, 아닙니다. 네. 크흠. 아아. 사레가 들렸네요.


"가관이네."


광고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마저도 소위 '억텐'을 끌어올리며 자본주의 리액션을 하지도 않는다.


마지막.


평점. 1.8.


"이게 출시된 지 8시간 된 게임이 맞나?"


분명 오전에 출시되었다고 했는데 평점이 이 모양이다.

만일 기대감을 안고 연차를 썼다면 아마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어졌을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온갖 리뷰가 쏟아지지 않을까.'


내가 쓰는 건 그저 평범한 수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온갖 심각한 리뷰 영상이 쏟아지게 될 것이다.


그나마 나는 '이런 건 성검전기가 아니야!'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런 건 게임이 아니야!


아예 이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를 '게임'으로서 규정하지 않는 이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타닥.

다시금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저 지금 30만 원 정도 지른 것 같은데, 그냥 복권 30만 원 사고 다 날렸다고 생각하렵니다.]


뽑기 게임.

나도 돈을 썼다.


[SSR 안 떠서 접냐고 하신다면, 인증샷 첨부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 미리 찍어놓은 스크린샷을 올린다.


지크. SSR.


첫 한정 뽑기 캐릭터는 다행히 천장이 닿기 전에 뽑았다.


그리고 나는 하나의 캐릭터를 더 뽑았다.


지온하르트. SSR.

은색의 전신 갑옷을 입은 성기사와도 같은 모습을 한 기사계 캐릭터.


이 캐릭터는 상시로, 그러니까 뽑기를 하면 어느때나 나올 수 있는 존재다.


상시 캐릭터란 무엇인가?


-77아 사랑해!!!


개쓰레기.

한정 뽑기에서 일정 확률로 나오는, '언제나 상시로 나올 수 있지만 성능은 한정 뽑기에 비해 몹시 떨어지는' 꽝과도 같은 존재.


스트리머가 뽑으면 절규하고, 시청자는 'ㅋㅋㅋㅋㅋ'을 도배하게 만드는 그런 캐릭터.


나도 뽑았다.

드래곤 슬레이어 지크를 뽑고 난 뒤, 몇 번 더 뽑기를 진행하다가 나왔다.


그래서 지금 리뷰를 쓴다.


[개발진 들으시오.]


게임을 삭제하기 전에 남기는 리뷰를.


[지온하르트 님이 니네 친구냐?]


지온하르트.

제국의 황태자이자, 항상 은빛의 전신 갑옷을 입고 전장을 누비는 작중 최강자.


[너네 게임 제대로 한 거 맞냐?]


이런저런 사연을 가지고 있어, 스토리적으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준 비운의 인물.


[원작 최종보스가 상시 캐릭터로 나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성검전기 메인 스토리의 최종보스이자, 만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가 가장 쓰레기 같은 성능을 달고 상시 뽑기 캐릭터로 나왔다.


그것도 상시 뽑기 캐릭터 중에서 가장 성능이 안 좋은 캐릭터로.


[개발자 놈들 전부 뒤통수 잡고 게임 속에 처넣어야 한다. 그래야 지들이 어떤 쓰레기를 만들었는지 깨달을 거다.]


"후."


목이 타들어 간다.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했는데, 내가 말이라도 한 것처럼 목이 마른 것 같다.


안 되겠다.

이거 반드시 쓰고, 편의점 가서 무알코올 맥주라도 한 캔 사서 마셔야겠다.


제목.


[이거 똥겜임 하지 마셈ㅡㅡ]


꾹.


업로드 완료.


"쓰레기 게임. 다시는 보지 말자."


나는 추억팔이 뽑기 어플리케이션을 삭제한 뒤, 그대로-


"어?"


삭제.

삭제.


"...어?"


삭제가, 안 된다.

마치 버튼이 사라진 것처럼.


"이거 왜 이런...."


띠링.

알람이 울렸다.


[아, 그러세요? ^^]


내가 올린 글에 댓글이 달렸다는 알람과 함께, 그 내용이 적힌 게-


[직접 끝까지 해보시고 말씀해보시겠어요?]

"......뭐?"


따─악!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충격.


삭제 버튼을 반복적으로 누르던 내 엄지가 떼어진 순간,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열기.] [빙의.]

[성검전기-리마스터 을(를) 실행합니다.]


유사 게임의 어플이 켜지는 빛과 함께, 나는 의식을 잃었다.



* * *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켈트."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한 고찰. 그리고 이 세상을 만든 신에 대한 저주."

"미친놈. 신성모독이야."

"알아, 씨발."


나는 마을 경비병 켈트가 되었다.


"신이 있다면, 나는 신을 죽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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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연중무휴 (3) +4 24.09.09 1,325 74 13쪽
34 연중무휴 (2) +7 24.09.08 1,491 82 12쪽
33 연중무휴 (1) +11 24.09.07 1,634 90 14쪽
32 이제 이 해골은 제 겁니다 (3) +10 24.09.06 1,666 91 13쪽
31 이제 이 해골은 제 겁니다 (2) +10 24.09.06 1,734 110 13쪽
30 이제 이 해골은 제 겁니다 (1) +7 24.09.05 1,942 104 12쪽
29 혁명의 서리불꽃 (3) +9 24.09.04 2,176 113 14쪽
28 혁명의 서리불꽃 (2) +18 24.09.03 2,386 121 13쪽
27 혁명의 서리불꽃 (1) +8 24.09.02 2,527 116 13쪽
26 서리달 (2) +8 24.09.01 2,569 134 13쪽
25 서리달 (1) +9 24.08.31 2,592 122 12쪽
24 기생수와 언데드 (4) +11 24.08.30 2,671 135 12쪽
23 기생수와 언데드 (3) +6 24.08.29 2,747 128 13쪽
22 기생수와 언데드 (2) +11 24.08.28 2,925 141 13쪽
21 기생수와 언데드 (1) +6 24.08.27 3,196 140 13쪽
20 보물 사냥꾼 (3) +10 24.08.26 3,380 145 13쪽
19 보물 사냥꾼 (2) +15 24.08.25 3,587 165 12쪽
18 보물 사냥꾼 (1) +11 24.08.24 3,850 168 13쪽
17 같은 목적 (2) +16 24.08.23 3,844 176 12쪽
16 같은 목적 (1) +6 24.08.22 3,946 17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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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최종보스와 계약을 맺다 (2) +15 24.08.18 4,504 20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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