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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꽃라떼
작품등록일 :
2024.08.0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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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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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1)

DUMMY

서걱.


엘프들이 넓적한 마체테를 들고 대나무를 자른다.


이미 잘려진 대나무지만, 이동이 용이하게 그 끝을 수평으로 자르는 게 아니라 비스듬히 자른다.


서걱, 서걱.

잘려진 대나무의 끝을 마체테로 잘라내자, 화살촉보다도 더 날카롭게 끝이 벼려져있다.


"숲의 전사들이여! 인류에게 피의 복수를!!"


둥, 둥, 둥.

바람의 정령이 하늘로 높이 치솟아 대기를 떨게 만든다.

그 소리의 울림은 흡사 북소리와도 같았고, 대나무를 자른 엘프들은 대나무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하늘을 향해 치솟았어야 할 나무들을 멋대로 잘라내어, 자신들의 욕망을 위하여 훼손시킨 이들에게 직접 피의 복수를!"


엘프들은 대나무의 아래에 찍힌 둥근 인장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더니, 그대로 앞을 향해 도움닫기를 하며 뛰었다.


붕, 붕, 부--웅!


가볍게 앞으로 도약하며, 성벽 너머를 향해 대나무를 투창 내던지듯 던진다.


그들의 손에는 미약한 마나가 깃들어있었고, 마나를 품은 대나무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정확히 성벽을 넘자마자 아래로 내리꽂혔다.


푸-욱.


"우오오오!"


무언가가 꿰뚫리는 소리.

엘프들은 인간을 죽이는 것에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다.


"후후후."


엘프들의 뒤, 머리가 희고 눈동자가 붉은 엘프가 사납게 웃고 있다.


"세계수께서 피를 원하신다.... 인간의 도시를 파괴하고 그들의 시체를 양분삼아, 숲과 자연의 영역이 넓어지기를 바라고 계시니...!"

"장로님."


백발적안의 엘프를 항해, 다른 엘프들과 다를 바 없어보이는 금발녹안의 엘프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도시 안에 있는 인간의 수는 이제 2천이 채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젊은 엘프는 자신의 허리에 찬 마체테에 손을 올리려는 시늉을 하며 눈을 반짝였다.


"진정하세요. 우리가 어찌 저 증오스러운 인간들의 피를 직접 몸에 닿게 하겠습니까?"

"하지만...."

"여전히 저항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정령들이 속삭여주고 있어요. 가증스럽게도 마나의 축복을 이용하여, 자연의 분노를 피하고 막아내고 있단 말입니다."


백발적안의 장로는 이를 갈며 자신의 옆에 놓여있는 대나무를 집어들었다.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때까지 계속 죽이고 또 죽이세요.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모든 인류를 절멸해야 한다는 사명이. 그 사명을 위해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죽을 수 없습니다."

"예...!"


인간이 들으면 기가 차고 등골이 서늘해질 말이었으나, 그런 말을 주고받는 두 엘프의 얼굴에는 어딘가 '경건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명심하세요. 대륙, 아니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엘프 장로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낮게 읊조렸다.


"모든 인류가 죽어야만이, 우리는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는 겁니다."

"...예."


그들의 목소리에는 분명, 비장감마저 흘러나왔다.


"그러고보니 장로님. 저 마을은 장로님께는...."

"그만."


백발적안의 장로는 단호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과거의 인연일 뿐입니다."

"그러나...."

"한 때의 동료가 자신의 목숨을 바친 곳이라 한들,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돌이 되었지요."


장로의 눈에, 어딘가 분노와 슬픔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좋은 동료였고, 그의 유지는 존중해야 마땅하지만, 과거의 감정이...지금의 '계시'를 넘어설 수는 없으니."


장로는 직접 대나무를 움켜쥐었다.


"만일 그와 같은 자가, 혹은 그가 깨어나서 막지 않는 한, 우리의 사명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우웅-!

다른 엘프들보다 훨씬 멀리, 그리고 빠르게 죽창이 날아간다.


"델겐의 석상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죽이는 겁니다. 세계의 '정상화'를 위하여."



* * *



석화의 저주.


아마도 이 능력의 모티프는 당연히 그리스 로마 신화의 괴수, '메두사'에게 있다.


메두사의 눈을 보면 사람은 돌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이렇게 돌이 된 인간은 돌인 상태로 굳어버릴까, 아니면 죽어버릴까?


'설정 나름이지.'


돌 그 자체가 되어 생명활동이 멈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돌이 되어 생명활동은 없지만, 정신이 그대로 살아서 석상 속에 갇힌 이도 있을 것이다.


'원작에서는 전자였단 말이지.'


갓겜 속 고대 용사 델겐은 자신의 육신으로 결계를 구축했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자신이 돌이 되는 걸로, 마을을 지키기 위한 성벽이라는 결계를 만들었다.


파괴되지 않는 성벽.


델겐 사후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성벽은 유지되고 있다.


아쉽게도 침공하는 적을 막아주거나, 성벽을 뛰어넘어오는 이들을 막지는 못하지만.


'그 정도는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해야지.'


허허벌판에 망가지지 않는 담벼락을 세워준 것 만으로 이미 델겐은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그러나 그런 델겐도 수백 년 뒤의 세상이 걱정되었는지, 자신의 육신을 석상의 형태로 봉인했다.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의 힘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 힘을 빌려주기 위하여.


설령 수백 년 뒤의 세상이 너무나 많은 파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서 자신이 일반병보다 못한 전력이라도, 그 힘과 마음이라도 보탤 수 있도록.


-[플레이어]. 비록 시간은 오래 흘렀지만, 강자의 억압에 맞서 약자를 지키고자 하는 이 의지는 변함이 없네.


선한 용사였다.


"자하드!"


그렇기에.


"도착했다!"


나는 지금, 델겐의 석상 앞에 은태자와 함께 달려왔다.


"허억, 헉...!"


은태자가 거친 호흡을 내뱉는다.

그러면서도 성 안으로 날아오는 죽창을, 정확히 '우리'를 향해 요격하듯이 떨어지는 대나무 화살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카가강!

바람이 칼날처럼 날아가 대나무 화살을 잘라낸다.


델겐의 여러 사람들이 그저 죽창에 꿰뚫리는 걸로 끝나는 것과 달리, 은태자는 분명히 적의 공격을 받아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


그는 마나를 써서 참격의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마나는 고갈되어가고.


"네 스켈레톤도 한계야!"


나를 향해 날아오는 유도 죽창을 몸으로 막아내는 로드릭도 이제는 진흙이 다 떨어져 스켈레톤으로서의 본체가 보이기 시작하는 상태.


"후."


델겐을 향해 손을 뻗는다.


위험한 건 안다.


'레벨 15짜리가 레벨 90에 이른 동료를 영입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지.'


되살릴 수는 있다.


하지만 언데드를 '지배'할 수는 없다.


여느 매체에서나 어떤 존재를 부활시킬 때, 부활의 주문을 외운 자가 고대의 존재를 일깨우자마자 바로 그 존재에게 목줄이 채워지는 건 으레 있는 일.


내가 델겐을 다룬다?


마력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델겐에 대한 설득은 은태자의 몫이다.


'적어도 자기 동료였던 황태자의 후손을 향해 엄한 짓은 하지 않겠지.'


따지고 들면 남남이기는 해도, 내 친구의 후손이라고 하면 완전한 남보다는 사정이 낫다.


그러므로.


"고한다."


이기기 위한 길로 내 방법을 선택했다면, 나머지는 은태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섭리를 비틀고, 허상으로부터 벗어나, 실존으로 이끌어 이곳에 현현하니."


원래, 이런 영창은 존재하지 않는다.


"좀 더 빨리...!"


은태자가 재촉한다.


마법사가 캐스팅을 하는 게 원래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기는 하지만, 특히 고위마법을 사용할 때는 더더욱 시간이 끌리기 마련이다.


'거짓이지만.'


마나를 일으키며 시간을 끈다.

이미 무영창으로 마법을 쓸 준비는 되었지만,최대한 침착하게 문구를 정제하며 적당한 말을 읊는다.


"나는 죽음의 파수꾼이요, 무덤의 지도사일지니."


다 필요 없는 요식 행위.

사령왕의 [레이즈 데드]는 그냥 '딸깍'하나만으로 대상을 지정하면 바로 부활시킬 수 있다.


하지만 사령왕의 저서에는 그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본좌의 부활 마법은 다른 흑마법사들의 것과 궤가 다르다.


사령왕 자하드의 레이즈 데드는 너무나도 압도적인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인체를 연성하는 데 필요한 물품을 준비한다거나, 바닥에 마법진을 그린다거나, 666명의 심장을 제물로 바친다거나 하는 과정이 '일절' 필요없다.


플레이어가 그냥 기술을 사용하듯.


-명심하라, 연자여.


사령왕의 기술 또한 그러하다.


-마법이란, 가장 명료하고 간단한 설명이 필요할 때 비로소 가장 강력한 효과를 일으키는 법이니.


입으로는 온갖 미사여구를 읊고 있으나, 실제 효과는 그렇지 아니하니.


"묘지에 누워있는 자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의 이름은 수백 년 동안 이 마을을 지켜온 영웅, 델겐."


대상을 지정한다.


"영웅 델겐의 육신을 이 땅에. 그의 영혼을 이 세상에. 다시금 그 검을 들어,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


그 대상을, 부활시킨다.


-외쳐라, [죽은 자의 소생]을.

"...강림하라, 영웅이여!"


[레이즈 데드].


마법을 사용한 순간, 내 눈에 앙크와도 같은 무언가가 떠오른다.

곧 그 앙크의 뒤로 붉은 색의 보석이 박힌 장신구가 떠오르는 듯한 환영과 함께, 즉시 석상에 천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파스스.


용사 덴겔의 몸 겉에 있던 것들이 하나둘 바스라진다.


오랫동안 갇혀있던 껍질을 벗어던지고 우화를 하듯, 석상이 점차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그 몸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참으로."


석상이, 용사 델겐이 입을 연다.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은태자가 흠칫거리며 놀란다.


순간적으로 델겐과 눈이 마주친 은태자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


"수백 년을 이곳에서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걸 지켜봐왔다."


델겐의 목소리에 담긴 울분을 감지한 순간.


'이 개똥겜 메이커 놈들이...!'


델겐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설정'이 추가되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사랑했던 여인이 나의 동료의 아이를 가진 채 꽃 한 송이를 놓고 가는 것을 보았으며."

"아."

"그 아이가 이 마을에서 지내고 장성하는 모습을 보았으나, 결국 전쟁으로 인해 살해당하는 것도 보았으며."

"......."

"수백년 간, 수많은 이들이 스쳐지고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곳에서, 오직 앞만을 바라보며."


석화.


원작 속 델겐은 흡사 SF영화 속 콜드 슬립을 한 것처럼,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의 델겐은 아니었다.


제작사 놈들 중에 어디 석화당한 상태로 움직이지 못한 채 세상의 변화를 보도록 하는 변태가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너무나도 지쳤다. 수백 년의 시간은...아무리 나라도, 너무나도 많이 흘러버리고 말았어."


레이즈 데드 마법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부활에는 성공했다.

석화되어있던 시체가 다시 인간 시절의 모습을 갖추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의 영혼과 마음은 오랜 세월 풍화된 바위처럼 깎여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바위가 되어 영원히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게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죽음을."


델겐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흑마법사여."

"......."

"나에게 죽을 기회를 줘서 고맙구나."


델겐은 인자한 얼굴로 웃으며 검을 들었다.


"그러나 죽기 전, 응당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위험...!"


은태자가 뒤를 바라보며 깜짝 놀랐으나.


서걱!


"[월영천참]."


델겐이 바위처럼 굳어있던 검을 휘두르자, 회색빛의 초승달과도 같은 참격이 날아갔다.


하늘을 전부 뒤덮을 정도로 날아오던 대나무창들이, 그보다 더 넓은 참격에 베여 바닥에 나뭇잎처럼 흩날린다.


고대 용사.

90레벨, 소드마스터의 위엄.


"수백 년 동안 돌이 되어 움직이지 못했던 내가, 무엇보다도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을 지금 시작하겠다."


델겐이 두 손으로 검을 움켜쥐더니, 그 검을 자신의 얼굴 앞에 놓고 하늘을 향해 세웠다.


"나는 죽어가는 이들을, 약자를 구하고 싶었다."


수백 년 동안.


아니.


"처음 검을 움켜쥐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갈라진 구름 사이 반짝이는 태양빛이, 델겐의 검에 비쳤다.

죽음이 가득한 이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한 줄기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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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문어머리 언데드 (2) +10 24.09.12 954 46 14쪽
37 문어머리 언데드 (1) +13 24.09.11 1,080 57 12쪽
36 연중무휴 (4) +7 24.09.10 1,229 69 12쪽
35 연중무휴 (3) +4 24.09.09 1,324 74 13쪽
34 연중무휴 (2) +7 24.09.08 1,491 82 12쪽
33 연중무휴 (1) +11 24.09.07 1,634 90 14쪽
32 이제 이 해골은 제 겁니다 (3) +10 24.09.06 1,666 91 13쪽
31 이제 이 해골은 제 겁니다 (2) +10 24.09.06 1,734 110 13쪽
30 이제 이 해골은 제 겁니다 (1) +7 24.09.05 1,942 104 12쪽
29 혁명의 서리불꽃 (3) +9 24.09.04 2,176 113 14쪽
28 혁명의 서리불꽃 (2) +18 24.09.03 2,386 121 13쪽
27 혁명의 서리불꽃 (1) +8 24.09.02 2,527 116 13쪽
26 서리달 (2) +8 24.09.01 2,569 134 13쪽
25 서리달 (1) +9 24.08.31 2,592 122 12쪽
24 기생수와 언데드 (4) +11 24.08.30 2,671 135 12쪽
23 기생수와 언데드 (3) +6 24.08.29 2,747 128 13쪽
22 기생수와 언데드 (2) +11 24.08.28 2,925 141 13쪽
21 기생수와 언데드 (1) +6 24.08.27 3,196 140 13쪽
20 보물 사냥꾼 (3) +10 24.08.26 3,380 145 13쪽
19 보물 사냥꾼 (2) +15 24.08.25 3,587 165 12쪽
18 보물 사냥꾼 (1) +11 24.08.24 3,850 168 13쪽
17 같은 목적 (2) +16 24.08.23 3,844 176 12쪽
16 같은 목적 (1) +6 24.08.22 3,946 179 15쪽
15 영웅 (2) +15 24.08.21 3,932 209 12쪽
» 영웅 (1) +17 24.08.20 4,049 201 13쪽
13 최종보스와 계약을 맺다 (3) +15 24.08.19 4,297 174 13쪽
12 최종보스와 계약을 맺다 (2) +15 24.08.18 4,504 202 14쪽
11 최종보스와 계약을 맺다 (1) +15 24.08.17 4,647 19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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