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를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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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8.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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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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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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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자령화

DUMMY

퀭한 눈빛으로 우적우적 주먹밥을 씹었다.

웅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요즘 너무 무리하는 것 아냐?”


그가 걱정할 만도 했다.

낮에는 모든 훈련을 소화하고, 밤에는 곧장 외출했다가 새벽에 돌아오기를 열흘째.

나 스스로 만들어낸 가혹한 일정이다.


하지만 그만둘 수는 없다.

홍옥 또한 밤낮으로 천무관의 엄청난 훈련과정을 소화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가며 영약을 찾고, 인재들을 영입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고 생각하자, 나 또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매일 아무렇지 않게 돌아오는거야? 입구를 지키는 무인들은 모두 허수아비들인가? 그냥 지나쳐도 된다고 허가라도 받은거야?”


“그럴리가 있겠냐”


“그런데 어떻게···”


웅삼은 또 불가사의한 것을 발견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분산시키고 자그마한 틈새를 파고드는 것은 내가 지난 평생 해오던 일이다.

하물며 한낱 교육기관의 입구를 지키는 무인들을 따돌리는 것 쯤이야.

특히 암혼동은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길을 지키는 것에 용이한 구조이니,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것은 오히려 매우 수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네가 밤에 자리에 없다는 것을 눈치챈 조원들이 몇명 있어. 입단속을 시키고 있긴 하지만, 언젠가는 위험해질 수도 있어”


“걱정마. 오늘이면 끝이 난다”


“오늘? 정말이야?”


“그래”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될까?”


“쓸데없는 생각하지말고 수련이나 열심히 해. 정기심사가 끝난 뒤에도 오급에 남아있다면 더이상 날 보긴 어려울 줄 알아라”


웅삼이 입을 다물었다.


밤이 되었다.

모든 아이들이 완전히 잠들기 전까지 아주 잠깐의 쪽잠을 잤다가 몸을 일으켰다.

전생이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의 몸으로 소화하기에는 혹독한 일정이었다.

어찌되었든 이 짓도 정말 마지막이다.

오늘은 내가 아직까지 뒤지지 못한 단 하나의 장소를 살펴볼 예정이었다.


동굴로 뛰어들고, 지하수에 빠졌다가, 산 밑 계곡으로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물에 들어갔다 나오자 멍했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주저없이 산을 타고 오르기를 수 시진.


‘찾았다’


가파른 절벽 한 가운데, 달빛을 받아 오묘하게 피어난 보라빛 꽃.

자령화(紫靈花).

사람이나 짐승의 손이 쉽게 닿지 않는 곳에 피어나는 꽃.

내공을 매우 크게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홍옥이 노리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절벽 한중턱에 위치한 그곳까지 도달하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 될 것이다. 바위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태였고, 작은 실수라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반대편으로 멀리 돌아 절벽 위로 올라간 뒤, 단단히 고정한 밧줄에 몸을 묶었다.


한발. 한발.

조심스레 꽃을 향해 내려갔다.

가파른 바위 틈새로 뻗어나온 얇고 긴 잎사귀가 약간의 이슬에 젖어 은은하게 빛났고, 꽃잎의 보라색 빛은 달빛을 받아 일렁였다.


제길.

밧줄이 짧다.


허리를 묶은 밧줄을 풀어 손에 잡았지만, 여전히 몸 하나만큼이 부족했다.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좁은 바위 틈 사이에 단검을 쑤셔박으며 꽃을 향해 나아갔다.

작은 돌들이 부서져 절벽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천천히, 하지만 마침내.

자령화를 온전히 캐내는데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이 아찔한 낙하를 시작했다.



#



‘그럼 그렇지’


쓰게 웃음지었다.

좀처럼 쉽게 가는 법이 없다.


단단한 절벽에 단검이 올바르게 박히지 않은 것도 문제였고,

다급히 뻗은 것이 하필 내 오른손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대안으로 잡은 몇몇개의 돌덩이마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단검을 절벽에 찍어가며 속도를 줄여보려 해보았지만 힘이 부족했다.

암혼동과는 달리, 이곳 절벽의 밑은 추락하는 힘을 받아줄 물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삐쭉삐쭉한 돌덩이들만이 가득하다.

이런 저런 노력으로 최대한 속도를 늦췄음에도 불구하고···


콰직!


아찔한 충격이 내 몸을 강타했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이 으스러지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도,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


품 안을 확인했다.

그 와중에도 자령화는 잘 챙겨넣은 상태.

단순히 내공 뿐만이 아니라 몸을 회복하는데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있지만,

기껏 힘들게 손에 넣은 자령화를 고작 외상을 치유하는 용도로 쓰고 싶지 않았다.


마화단을 이용해 몸 안의 길을 틔운 다음,

혈맥을 강화하고 내공의 기초를 쌓는데에 쓰려는 것이 나의 계획.


적당한 나무가지를 찾아 지팡이로 삼은 채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부러진 다리로 산을 내려가는 것은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

밤은 야속하게도 짧다.

새벽이 될 때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나의 부재는 들통이 날 것이다.

다리까지 부러진 몸으로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을 수 밖에 없다.

몸을 수색당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힘들게 획득한 자령화를 빼앗길 수도 있다.


어찌 어찌 암혼동의 입구까지는 왔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상처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피는 무인들의 후각을 자극할 것이다.

이전만큼 민첩하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또한 제약조건.


평소와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



암혼동의 입구를 지키던 무인은 하암- 커다랗게 하품을 했다.


곧 아침이 밝아온다. 지루한 경비업무에서 해방될 시간.

얼른 교대를 하고 달콤한 잠에 빠질 기대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희미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 자네 방금 들었나?”


“뭐를?”


그와 한 조가 되어 입구를 지키던 무인이 되물었다.

반쯤 잠들어있었으면서 애써 태연한 척을 하는 것이 볼썽사납다.

임풍 교두에게 들켰으면 크게 경을 치렀을 텐데.


“방금 숲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또? 요즘 이상해. 산짐승들이 부쩍 이 앞을 자주 지나다니는 모양이야”


“그렇지. 자네도 그렇게 느꼈지?”


요즘 근무를 서다보면 꼭 한두번씩은 무언가 지나간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아무리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아도, 무엇 하나 수상한 것이 발견된 적이 없었다.

귀신이 들었나 싶어 오싹함을 느낄 정도.


“도대체 뭐지···”


그때. 예민하게 곤두선 그의 감각에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킁킁. 코를 벌름거렸다.


피냄새···!


스스릉. 칼을 빼어들고 조심스레 숲으로 접근했다.


“자네. 뭐하는건가?”


그가 칼까지 빼어들자 완전히 잠이 달아난 동료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말없이 손짓으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조심스레 거리를 좁혀가던 그가 와락!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푹!!!


“으하하! 잡았다. 잡았어!”


“뭐야. 무슨 일이야?!”


홀로 남아 입구를 지키던 무인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수풀 너머에는 칼을 빼어들었던 무인이 득의양양하게 서 있고, 그의 발치에는 커다란 멧돼지가 숨을 헐덕이며 누워있었다.


“어라. 이게 왠 횡재야?”


“이 목덜미의 상처를 보게. 아마 표범이나 다른 맹수에게 상처를 입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모양이야. 소리도 못 지를만큼 제대로 당했군”


무인이 상처를 살피며 끄덕였다.

멧돼지의 목덜미에는 날카롭고 커다란 이빨에 꿰뚫린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틀림없이 더 큰 짐승이 만들어 낸 상처다.

이런 상처를 입고도 포식자를 따돌릴 수 있었다니 대단한 녀석이다.


“뿔에도 피가 잔뜩 묻어있는 걸 보니 반격도 제대로 한 모양인걸? 살벌하군”


“아무튼 오늘 제대로 회식할 수 있겠군. 멧돼지도 잡았으니 내일 야간 근무 좀 빼달라고 해야겠어. 으헤헤!”


“혼자 빠지겠다고? 자네가 직접 잡은 건 아니지 않나? 그냥 내버려뒀어도 알아서 죽었을 것 같은데?”


“이 사람아. 무엇이 되었든 막타가 중요한 법일세”


“그래?”


푹!

허덕이던 멧돼지의 숨이 기어코 끊기고 말았다.


“이젠 내가 막타일세. 어떤가?”


“아니, 이 경우없는 친구가···!”


한참을 옥신각신대던 두 무인은,

결국 함께 힘을 합쳐 잡은 것처럼 말하기로 합의하고 나서야 멧돼지를 끙끙대며 옮기기 시작했다.



#



상처 부위가 불타는 듯이 뜨거웠다.

온전치 못한 몸으로 멧돼지까지 사냥하려다가 부득이하게 상처가 악화되고 말았다.

가까스로 숙소까지 오긴 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태.


“이게 무슨 일이야? 어쩌다.. 어쩌다가?”


잠에서 깬 웅삼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부여잡으며 쓰게 웃었다.

내내 잘난 척만 했었으니, 녀석에게 보이기에는 꽤나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따라갔지! 챙겨온다던 고기는 안챙겨오고 고기덩어리가 되서 왔네?”


“이놈이 하여간... 일단 이거나 잘 챙겨놔 줘”


자령화를 웅삼에게 건넸다.


“이것 때문에 그 난리를 쳤던건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그는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령화를 품 안에 소중히 챙겨넣었다.


“나를 좀 부축해다오. 약방 구노인에게로 가자”


아직 세번째 마화단이 올 시기도 아니건만,

이른 새벽녁임에도 의외로 구노인의 숙소에 불이 켜져 있었다.


“어르신. 계십니까?”


나를 부축한 웅삼이 조심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빼꼼.

작게 열린 문 틈 사이로 구노인의 까만 눈이 보였다.

웅삼에게 업힌 나를 확인한 구노인이 문을 활짝 열어 제꼈다.


“이 밤에 어쩌다가 다리가 부러졌지? 이 상처들은 또 뭐고?”


미리 준비했던 대답을 하려는데, 구노인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됐다. 그깟거 아무 상관없으니”


“.....”


“덩치 너, 이 녀석은 내가 알아서 돌볼테니 네놈은 숙소로 돌아가보아라”


당황한 표정의 웅삼을 앞에 두고 구노인이 꽝. 문을 닫았다.


노인이 내 옷을 벗기고 상처를 살폈다.

뼈가 부러진 곳을 다잡고, 대나무를 대고 천을 감싸 고정시켰다.

피가 흐르는 곳에는 약초를 발라 지혈하고,

기력을 돋구는 약재를 입에 물렸다.


노인은 말이 없었고,

나는 비명 한번 지르지 않았다.

기묘한 침묵이 약방에 흐르고 있었다.


“최근 임풍 교두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느냐?”


노인이 무겁게 물었다.

그의 안색이 심상치 않았다.


“여러번 대화를 나눴지요”


“무슨 대화가 오갔지?”


“별 것 아니었습니다”


“그럴리가”


“저의 목표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일급으로 올라가고 싶다고. 더 성장하고 싶다고”


“왜 그렇지? 왜 그런 말을 했지?”


구노인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임풍 교두의 계획을, 그 위험성에 대하여 나에게 길게 설명했다.

자신이 몇날 며칠을 밤세웠지만 아직까지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말도 함께.

요즘 부쩍 말수가 줄어들었더라니,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건가.


“그는 욕심에 눈이 멀었어. 미친 계획이다. 끔찍한 고통만이 있을거야. 열에 여덟아홉은 죽을 것이고, 죽지 않더라도 미쳐버릴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나로서는 임풍 교두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니···”


노인이 쪼글쪼글한 손을 나의 어깨에 올렸다.


“그냥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내가 도와주겠다. 너는 아까운 녀석이야. 꼭 무인이 아니어도 되지 않나? 어디서든, 어떻게든 너는 꽤나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을거다”


뜻밖이었다.

임풍 교두가 그런 계획을 세웠다는 것도,

구노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는 것도.


명확한 목표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니,

주변 사람들이, 그리고 세상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내 어깨에 올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에게 물었다.


일전에 홍옥이란 아이에 대하여 이야기하신 적이 있지요.

어르신께서 보시기에 그는 어떤 사람이였습니까?


구노인의 까만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가만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상한 녀석이지.

무서운 녀석이기도 하고

꿈을 꾸는 녀석이었다.

이곳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정말 거대한 꿈을


그 자라면 어땠을까요?

그 또한 약기운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거나 미쳐버렸을까요?


구노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저의 목표가 그 자입니다.

그 자를 넘어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그러니 그깟 실험, 얼마든지 해도 좋습니다.

그 정도에 제가 죽지는 않습니다


너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미친 놈이었구나.


푸하하하하하

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지금 바로 해봅시다.

그 실험.


구노인이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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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내력 시험 +2 24.09.16 493 19 14쪽
38 전생의 인연들 +2 24.09.15 610 22 14쪽
37 천무관 +2 24.09.14 603 22 14쪽
36 졸업 +2 24.09.13 618 22 14쪽
35 삼년 뒤 +2 24.09.12 694 24 14쪽
34 떠나는 순간 +2 24.09.11 738 21 14쪽
33 취조 +2 24.09.10 727 21 13쪽
32 군사(軍師) +2 24.09.09 743 21 13쪽
31 사도(司徒) +3 24.09.08 828 17 13쪽
30 내가 그렇게 정했다. +3 24.09.07 882 23 15쪽
29 약속 +2 24.09.06 907 20 12쪽
28 예감 +3 24.09.05 932 15 14쪽
27 발단 +2 24.09.04 952 15 13쪽
26 시비 +3 24.09.03 944 20 14쪽
25 알 수 없는 일 +2 24.09.02 953 24 14쪽
24 환희 +3 24.09.01 1,007 20 12쪽
23 증명 +3 24.08.31 990 19 13쪽
22 질주 +2 24.08.30 989 20 12쪽
21 평가 +2 24.08.29 1,010 21 14쪽
20 씨앗 +3 24.08.28 1,028 20 13쪽
19 실험 +3 24.08.27 1,032 19 14쪽
» 자령화 +2 24.08.26 1,010 20 13쪽
17 수색 +3 24.08.25 1,018 18 14쪽
16 목표 +3 24.08.24 1,024 20 14쪽
15 두번째 만남 +3 24.08.23 1,066 18 12쪽
14 살인 +3 24.08.22 1,056 21 15쪽
13 사백이십삼, 사백이십사 +3 24.08.21 1,086 19 13쪽
12 마화단(魔火丹) +2 24.08.20 1,089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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