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를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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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8.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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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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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

DUMMY

이제 백명 밖에는 남지 않은 수련장.

열여섯명의 검은 무복의 일급아이들과 함께 달려나가는 팔십여명의 잿빛 무복들.


달리는 아이들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크고 건장한 아이들에 섞여있는 한명의 아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작고 왜소한데다, 앙상하게 뼈다귀만 남아 서있는 것조차 힘들 것 같은 아이.

피부는 갈라지고 뻣뻣해서 마치 시체가 무덤에서 돌아온 것만 같은 아이.


그 아이를 알아본 한 오급아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눈은 휘둥그레 뜨고,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펄쩍 펄쩍 뛰었다.


“걔다. 그 녀석이야!”


“누구?”


“십삼조의 꼬마···. 얼마 전부터 약방에 쓰러져 있다던!”


“정말?”


“그래. 얼굴이 완전 망가져 있긴한데··· 틀림없어!”


상위 등급과의 현격한 격차를 받아들이고 풀죽어있던 아이들.

십삼조 조장인 사백이십사번의 활약, 그리고 탈락에 아쉬워하던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조장 사냥꾼!”


“그 녀석이 돌아왔다!!!”


오급 아이들 사이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당사자인 사백이십삼번이 그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지만, 오급 아이들 사이에서 그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누구보다 작지만, 그 누구도 이겨내지 못한 아이.

터무니없는 작전을 구상하고 성공시켜, 모두 함께 만두를 공평하게 나눠먹게 만든 아이.

임풍 교두와의 협상을 통해 저녁 배식을 늘리는데 성공한 아이.

일급아이의 공격을 받고도, 멀쩡히 살아남아 동굴로 되돌아온 아이.


“도대체 언제 돌아온거지? 처음에 소집될 때는 분명히 없었는데?”


“그게 중요하냐? 오급 중에 지금 저 일,이급 괴물들 사이에 껴서 경쟁하는 놈이 있다고!”


“그 녀석, 달리기는 원래 빨랐어”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저 놈은 원래 난 놈이라는 것을”


“오급의 희망!”


정기평가는 어느새 일방적인 응원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급 아이들의 함성을 들은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교관들의 시선도.

모두의 시선이 사백이십삼번 꼬맹이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



“저 놈이 살아있어! 어떻게 된거지? 거의 죽었다고 그러지 않았나?”


임풍 교두는 흥분하여 침을 튀겼다.

주변의 교관들이 황급히 말리지 않았다면, 바로 바위에서 뛰어내려 사백이십삼번에게로 달려갔을 것이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지”


흠칫하여 옆을 바라보니, 어느새 구노인이 기척도 없이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버텨내고, 부활했소”


임풍의 눈이 돌아갔다.

구노인의 양 어깨를 단단히 잡은 그가 흥분하여 물었다.


“그렇다면, 실험이 성공이라는 이야기인가?”


“절반은”


“그게 무슨 이야기야? 이보게 영감, 속시원하게 이야기 좀 해보시오”


며칠 사이 눈에 띄게 수척해진 구노인이 탁한 눈으로 임풍을 바라보았다.


“굳게 닫혀있던 녀석의 혈맥이 열렸소”


“....!!!!”


“내공을 받아들이고 축적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것으로만 따지면, 이제 녀석의 몸은 다른 일급아이들의 몸에 못지 않소. 아니, 어쩌면 더 뛰어날지도”


임풍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다짜고짜 실험을 지시하긴 했지만, 그조차도 성공 가능성을 희박하다고 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런 뜻밖의 소식이라니. 몸이 붕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대 성공이군, 대 성공이야!”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 녀석에 한정된 일일 뿐이야”


구노인이 냉정한 목소리로 그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었다.


“몇날 며칠을 계속 붙어서 관찰하다보니 알게된 것이 있소. 녀석의 신체 나이는 많이 쳐줘봤자 열 살 정도일 뿐이더군. 아마 나이를 속이고 들어왔음이 분명하오. 그것이 다행일지, 불행일지··· 아마 조금만 더 나이가 찼어도 닫힌 혈맥을 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오”


“열 살?!”


임풍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쩐지 수상하게 쪼그맣더라니··· 교관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놈을 통과시킨거야? 아니, 아무튼 결과가 좋으니 잘된 일 아닌가?”


“저 아이가 대충 어떤 녀석인지는 그대도 이미 어느 정도는 파악했을거요. 그러니 실험대상으로 지목했겠지. 명확한 의지와 목표, 초인적인 인내심, 뛰어난 두뇌··· 그는 개조된 마화단이 적용될 수 있는 매우 극단적인 사례요”


“......”


“저 아이보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더 많다면, 아무리 큰 고통을 견딘다 하더라도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지극히 적을 것이오. 그리고 혹여나 시기가 맞아 떨어진다 하더라도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무조건 죽는다고 봐야지. 단언컨데, 저 나이대에 마화단의 독성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저 아이 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오”


임풍은 구노인의 약방에서 목격했던 그 끔찍한 광경을 떠올렸다.

그때 맡은 독기와 광기, 그리고 피냄새가 아직도 코 끝에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고통을 수일간 버텨낸다는 것은 그 어떤 어른- 아니, 강인한 무인이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건 차차 두고 봅시다. 또 방법이 있겠지”


임풍과 구노인은 말없이 수련장을 내려다보았다.

사백이십삼번은 이제 너무나 눈에 띄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가 지나쳐 갈 때마다 오급 아이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그나저나 저 녀석은 언제부터 껴들어 온거야? 저렇게 달릴 수 있는 몸상태가 되오?”


“절대 무리지. 하지만 저 녀석이 고집하여 나온거요”


구노인은 사백이십삼번이 누워있는 방에 들어갔을 때를 떠올렸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오랜 시간 굳게 닫혀있던 소년의 몸이다.

때문에 구노인은 단 두가지 경우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대로 식물인간이거나, 또는 시체이거나.


하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웃옷을 여미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온통 갈라지고 벗겨졌던 검붉은색 피부가 푸석푸석하게 떨어져내렸고,

온 사방을 할퀴었던 손톱에는 말라붙은 피딱지가 한가득이었다.

앙상하게 말라붙은 팔다리가 그의 몸을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소년은 살아있었다.


구노인의 기척을 느낀 소년이 등을 돌렸을 때,

그 눈빛을 마주한 구노인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자신을 증명하러 가야한다고 하더군”


마침 정기평가가 열리는 날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소년은 준비되어 있었고, 구노인은 그를 말릴 수 없었다.



#



평가가 열린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어떤 종류의 평가인지는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우르르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그저 무작정 뛰어들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한발 한발 내딛는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뼈가 삐그덕거렸다.

자그마한 움직임에도 폐가 터질듯이 부풀어올랐다.


하지만 그 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살아남았다는 것을,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천천히 내쉬면서 폐의 공기를 새롭게 교환했다.

단전의 작은 구슬이 몸을 순환하기 시작하면서,

고장났던 육체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발이 지면을 박차고 나가는 순간 몸 전체에 전달되는 반작용을 느꼈다.

발목과 종아리, 허벅지 근육이 차례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점차 내 뒤로 사라지는 아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떠들썩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들이 뭐라고 말하는 것인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꼬맹이, 너 도대체 뭐냐?”


한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오급이야? 으··· 피부는 도대체 왜 그렇지? 몸은 왜이리 앙상해? 쫄쫄 굶기라도 했냐?”


또 다른 녀석도 옆에서 호기심 넘치는 눈빛으로 말을 걸었다.


“왜 이리 인기가 많은거냐? 조장 사냥꾼이라는건 또 무슨 말이고?”


짙은 검은색 무복을 입은 것을 보니 일등급 아이들이다.

둘은 나를 사이에 끼고 이런 저런 질문들을 퍼부었다.


미안하지만,

지금 이 어르신은 너희같은 꼬마들을 상대해줄 수가 없다.

새롭게 태어난 몸을 만끽하는데 집중하느라 바빠서 말이지.


아무 대답없이 속도를 올렸다.

당황한 녀석들이 나의 뒤에 따라붙었다.



#



현재 선두는,

사백이십삼번이다.


오급아이들의 함성과 응원 소리가 암혼동에 터질듯이 울려퍼졌다.


임풍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얼마 전, 사백이십삼번이 그에게 한 말들이 생각났다.


“일급으로 올려주십시오”


“아직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싶습니다. 일급의 누구와도 붙어도 밀리지 않을 것이고, 종국에는 제가 그 누구보다 뛰어날 것입니다”


“약속드립니다. 교두님께서 배출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재가 될 것임을”


임풍은 궁금해졌다.

이 녀석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이 한 말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까.


“더 달려라! 규칙 변경이다! 마지막 승자가 나올 때까지 달려!”


임풍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다르게, 사백이십삼번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달리기를 그치고 말았다.


“왜 안달리는거야? 왜?!”


임풍이 땅을 굴렀다.

교관이 말했다.


“일차 시험이 끝났습니다. 이미 상위 오십명이 결정되어서···”


“이익, 이 멍청한 놈들! 아직 저 녀석이 달리고 있잖아! 아직 선두가 달리고 있는데 쫒아가기를 멈추는 놈들이 어디있단 말이냐!”


그는 손가락으로 사백이십삼번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 사이 소년은 종유석을 또 한바퀴 돌아 그들에게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거대한 오급 아이들의 물결이 그를 반겼다.


소년은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까지 달리고 있는 것이 자기 혼자 뿐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된 그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퀭한 눈동자,

말라비틀어진 몸,

성한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피부였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본 적이 없다고

임풍은 생각했다.



#



실로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나는 다시 어린 소년이 되어 있었다.

지난 삶을 후회하고 반성하며,

현실로부터 멀리 도망칠 것을 고민하다가,

결국 새로이 내 삶을, 운명을, 세상을 바꿔보려고 결심했다.

각오는 되어있었지만 쉬운 길은 아니었다.

커다란 고통 끝에

마침내 작은 실마리 하나를 풀어낼 수 있었다.


벅차오르는 환희와 함께,

사방에서 별이 반짝이고 커다란 천둥이 쳤다.


별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알고보니 오급아이들의 눈동자였다.

천둥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나를 향한 아이들의 환호성이었다.


그 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이라는 것을.


번쩍 눈을 뜨자,

웅삼 녀석이 바보같이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넌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라니.

이번에야말로 그것은 내가 해야할 질문이다.


“어떻게 된거지?”


“너, 달리기를 마치고 곧장 쓰러졌었어. 그대로 또 죽어버리는건 아닌가 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나.

내가 무리하긴 무리했나 보군.

스스로의 한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어설프게 말이야.


상반신을 일으키려는 나를 웅삼이 제지했다.

다시 바닥에 몸을 눕히며 그에게 물었다.


“평가는 어떻게 되고 있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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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졸업 +2 24.09.13 618 22 14쪽
35 삼년 뒤 +2 24.09.12 694 24 14쪽
34 떠나는 순간 +2 24.09.11 737 21 14쪽
33 취조 +2 24.09.10 727 21 13쪽
32 군사(軍師) +2 24.09.09 743 21 13쪽
31 사도(司徒) +3 24.09.08 827 17 13쪽
30 내가 그렇게 정했다. +3 24.09.07 881 23 15쪽
29 약속 +2 24.09.06 906 20 12쪽
28 예감 +3 24.09.05 931 15 14쪽
27 발단 +2 24.09.04 951 15 13쪽
26 시비 +3 24.09.03 943 20 14쪽
25 알 수 없는 일 +2 24.09.02 953 24 14쪽
24 환희 +3 24.09.01 1,007 20 12쪽
23 증명 +3 24.08.31 990 19 13쪽
» 질주 +2 24.08.30 989 20 12쪽
21 평가 +2 24.08.29 1,010 21 14쪽
20 씨앗 +3 24.08.28 1,027 20 13쪽
19 실험 +3 24.08.27 1,032 19 14쪽
18 자령화 +2 24.08.26 1,009 20 13쪽
17 수색 +3 24.08.25 1,017 18 14쪽
16 목표 +3 24.08.24 1,024 20 14쪽
15 두번째 만남 +3 24.08.23 1,065 18 12쪽
14 살인 +3 24.08.22 1,054 21 15쪽
13 사백이십삼, 사백이십사 +3 24.08.21 1,084 19 13쪽
12 마화단(魔火丹) +2 24.08.20 1,088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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