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를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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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8.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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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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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DUMMY



조금 전.

그러니까 일번이 바닥에 개구리처럼 뻗기 전의 상황.


십삼번은 두 손을 든 채 뒤로 쭉 물러섰다.

흥미로운 상황이다.

일번과 사백이십삼번의 만남.

다혈질인 일번이 시비를 걸 것임은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그걸 또 사백이십삼번이 덥석 받을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차피 무조건 싸움이 일어나도록 자신이 부추기긴 했을 테지만.


만약 내기를 걸어야한다면 무조건 일번에 판돈을 걸어야 할 것이다.

일번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절대 만만한 녀석이 아니니까.


하지만 십칠번 덩치의 돌격을 가볍게 피해내던 꼬맹이의 움직임도 보통은 아니었다.

무언가 한 수가 있는 녀석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임풍 교두도 이곳으로 올려놨겠지.


일번을 대장처럼 따라다니는 똘마니 녀석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살이 나겠군”


“아이고, 불쌍해라”


“사고가 나면 곤란한데”



그런데 정말 사고가 났다.

싸움이 시작하자마자 일번의 몸이 붕 뜨더니 바닥으로 쳐박힌다.

쿵- 땅바닥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말을 잊었다.


십칠번이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우···”


놀라움은 끝나지 않았다.

꼬맹이가 손가락을 들어 십삼번 자신을 똑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다음”


뭐라고?


“너 말하는거야, 십삼번”


이런 흐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나와 붙겠다고? 갑자기?”


“왜 갑자기라고 생각하지?”


꼬맹이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십칠번을 시켜서 나를 노린 것도, 일번 녀석이 나에게 시비를 걸 것을 알면서도 굳이 이곳에 데려온 것은 모두 네놈의 수작 아닌가?”


일번의 정신이 돌아오는 듯 끄으으- 소리를 냈다.

사백이십삼번이 그를 퍽 걷어차 구석으로 굴려보냈다. 똘마니들이 허겁지겁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난 뒤에서 일 꾸미는 녀석이 딱 질색이야. 여기서 깔끔하게 붙고 넘어가자고”


자신이 직접 싸우는 것은 계산에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꼬맹이는 좀처럼 자신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더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십삼번이 하하하 웃었다.


“과연 오급 아이들이 조장 사냥꾼이라고 부른다더니··· 그냥 사냥꾼이구나, 사냥꾼이야”


가슴을 크게 부풀린 십칠번이 그를 대신해 앞으로 나섰다.


“꼬맹이. 나랑 제대로 붙어보자”


하지만 십삼번은 가라앉은 눈길로 그를 뒤로 돌려보냈다.

그가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방금 싸우는 걸 못봤어? 이 녀석은 그냥 꼬맹이가 아니야”


십삼번은 더이상 웃지 않았다.

장난기 넘치던 눈길은 진지하게 가라앉았고, 몸은 느슨하게 기운을 뺀 채 꼬맹이를 바라보았다.


꼬맹이가 일번을 제압하는데 사용한 것은 금나술(擒拏術).

자신보다 덩치가 큰 자를 제압할 때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기술이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나 능숙하게,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

아마 체구와 체질 때문에 오급으로 분류되었을 뿐, 싸움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 또한 마찬가지.

게다가 여러가지 신체적 조건까지 자신이 앞서는 것을 따져본다면···


‘질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적다’


일번이 당하는 것을 보았지만 위축될 필요는 없었다.

사방이 고요해진 가운데, 신중하게 녀석과의 거리를 쟀다.



#



십삼번의 자세와 기운이 변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일번이 대장노릇을 하면서도 십삼번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 둘이 직접적으로 붙은 적은 없겠지만, 일번도 알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서글서글한 인상과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가려져 있지만, 그 속 또한 음흉하기 짝이 없었다.


‘뒤에서 일 꾸미는 녀석은 딱 질색이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뒤에서 일을 꾸미는 것.

사실 그것은 내 전공이자 생존 전략이다.

진짜 고수들과는 절대 정면승부를 할 수 없었던 내가,

전생에서 실컷- 아주 질리도록 반복한 일이다.

그러니 내가 십삼번에게 말한 것은, 사실은 내 얼굴에 침뱉기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략을 짜고 수완을 부리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겠지만,

최소한 무공에 대한 것은 절대 돌아가거나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부딪혀나갈 생각이었다.


저번 생과 달리, 이번엔 그럴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그래야만 언젠가 녀석의 앞에 당당히 마주 설 수 있지 않겠는가.


십삼번이 신중하게 거리를 쟀다.

조금 전 내가 금나술로 일번을 제압하는 것을 보아서인지, 자신의 거리에서 승부를 볼 생각인 듯 했다.

뚜벅 뚜벅 걸어가자 나의 발걸음을 따라 거리를 유지했다.


걸음을 멈추고 숨을 들이키자 녀석의 눈과 귀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느껴진다.

번쩍- 파고들 듯한 신호를 준 뒤 우뚝 멈춰섰다.

녀석의 어깨가 움찔거리며 번개같이 두 팔을 내뻗었다.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데 퍼펑-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손을 뻗어 소매를 잡으려했지만 녀석의 회수가 더 빨랐다.


무릎을 굽히고 마치 땅을 기어가듯 그의 안쪽으로 파고 들었다.

녀석이 물러나며 주먹을 찍어내렸다.

이리저리 주먹을 피하며 손발을 연이어 내질렀다.

파파파팟!

우리들의 경로를 따라 다른 아이들이 허겁지겁 몸을 피했다.

그 어떤 공격도 나에게 와닿는 것이 없자, 녀석의 눈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도리어 여러 대를 얻어맞은 녀석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녀석은 좀처럼 굴하지 않고 끝까지 위협적으로 주먹을 뻗어낸다.

아마 일번이었다면 이미 두세번도 넘게 기절했을 것이다.


녀석의 속도와 반응은 결코 보통의 수준이 아니다.

즐거웠다.

고작해야 열 몇살 먹은 아이와의 공방이 이렇게 즐거울 줄은 몰랐다.

나는 웃고, 녀석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이제 끝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이를 질끈 깨문 십삼번이 불쑥 손바닥을 내 얼굴을 향해 내뻗었다.

녀석의 손바닥은 유달리 크고 손가락도 길었다.

그 손에 내 시야가 가려진 순간, 녀석이 불쑥 나의 우측으로 파고든다.

번개같은 빠르기다. 예측하기 어려운 속도와 방향의 변환이었다.


‘이것이 녀석의 진짜 실력인가?’


처음엔 그저 께름칙한 마음 때문에 붙어보자고 했지만, 이제와보니 녀석에게는 무언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르지. 이 녀석도 나처럼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녀석인지도.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 알고 있었구나?”


더이상 실력을 감추지 않고 휘몰아치는 녀석의 공격.

그런데 그 공격이 전부 내 우측 - 오른팔을 노골적으로 노리고 있다.

나에 대해 미리 조사까지 했음이 틀림없다.


웃는 얼굴 뒤에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

여러모로 홍옥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녀석.

아니, 나랑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걸 어쩌냐?”


녀석의 손목이 나의 왼손에 단단히 붙들렸다.

옆구리가 텅 비었다.


“내 오른팔은 이제 다 나았거든”


오른팔을 쭉 뒤로 뺐다가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내질러지는 주먹.

그와 함께 단전에서 울컥 - 한줄기 기운이 치밀어 올랐다.

조금 전 일번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운.


‘이런!’


아직 정제되지 않은 기운이다.

넘쳐나는 내공을 제때 적절하게 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되돌리기엔 늦었다.

혈맥을 질주하던 기운이 나의 주먹 끝에서 폭발했다.


쾅!!!!


십삼번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지켜보던 아이들의 표정은 입을 벌린 채 굳어버렸다.

나 또한 마찬가지.


자령화를 통해 흡수한 내기는, 이제 갓 내공을 싹틔우기 시작한 일급 아이들이 절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약방에서도 제어하지 못한 나의 기운이 벽에 구멍을 뻥 뚫어버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았어!”


저 멀리 벽까지 날아가 쳐박혔던 십삼번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여러모로 대단한 녀석이다.

마지막 순간에도 내 손을 떨치고 두 팔을 교차해 내 공격을 막아냈다.

다행이다. 죽지 않아줘서.


십칠번 덩치가 말을 더듬었다.


“너···너!”


십칠번이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 본 십삼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의 두 팔이 부러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



빼꼼.


문 틈으로 새까만 눈동자가 깜박거렸다.

나를 알아본 구노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뭐야?!”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종종 찾아뵙겠다고”


“이렇게 금방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구노인이 궁시렁거리며 문을 열었다.

이제 막 잠에 들려고 했었던 듯 얼굴에 졸음이 가득하다.

덜렁거리는 팔을 붙잡은 십삼번이 나의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이 녀석은 또 뭐야?”


“...자그마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닐 것이다. 십삼번은 소마화단의 복용 때마다 구노인을 봐왔을테니. 하지만 그 또한 약방에 발을 들이는 것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벌써 팼어? 하여간 네 놈도···”


“이 녀석들이 먼저 시비를 건 겁니다. 별 것 아니니 그냥 부목만 좀 대주고 금창약만 바르면 될 것 같습니다”


“미친 놈. 그럴거면 차라리 네놈이 의원을 하지. 왜 오밤중에 이 늙으신 몸을 깨우는거야?”


“이렇게 자주 얼굴도 보고 좋지 않습니까?”


“거북이처럼 갈라진 얼굴 뭐가 예쁘다고?”


구노인과 친근하고 사교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자, 좀처럼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십삼번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생각해보니 잘됬다. 너 창고를 정리하지 않고 갔던데, 가서 마저 정리하고 가라”


“이렇게 끝까지 부려먹다니···?”


“네놈 부탁을 들어주는데 나도 뭔가 얻는게 있어야지?”


사백이십삼번이 창고로 사라지고 나자, 구노인은 십삼번을 앉히고 그의 상처를 살폈다.

동굴 안의 유일한 의원이자 약방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은 좀처럼 흔치 않은 일이었다. 괴팍한 그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고, 이곳에 독기가 가득하다는 소문에 아이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눈치를 보던 십삼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르신. 저 녀석이랑 원래 친하셨나 봅니다”


“알 것 없다”


꼬맹이를 상대할 때와 달리 구노인의 대답은 짧고 싸늘했다.

하지만 십삼번은 굴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저 녀석은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원래 이렇게 쎕니까?”


“어떻게 당했지?”


“네?”


팔이 부러진 흔적을 살피던 구노인의 표정이 심각했다.


“어떻게 이런 상처가 생겼지? 처음부터 소상히 말해보아라”



#



창고를 정리하고 돌아오자 치료는 이미 끝나 있었다.

구노인 같이 솜씨있는 의원에게는 사실 간단한 치료였을 것이다.


“고생하셨습니다. 또 종종 신세를 지겠습니다”


평소라면 벌컥 화를 냈을텐데, 구노인은 훠훠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피곤하구나. 얼른 들어가라”


약방을 나서자, 양 팔에 볼썽사납게 부목을 댄 십삼번이 나에게 이것 저것 질문을 던져댔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지? 애초에 왜 너같은 녀석이 오급에 있었던 거야? 마지막에 날 공격한 건 내공을 섞은 수법인가?”


“내공이라니. 이래 저래 공격의 박자가 맞아 떨어지면서 더 강하게 적중했을 뿐이다”


심드렁하게 그의 질문에 답했다.

아무래도 평소와 다른 구노인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십삼번에게 물어보았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했지?”


“응?”


“내가 창고를 정리할 때 말야. 구노인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말해봐라”


“별 것 아니야. 그냥 어쩌다가 다쳤는지 물어보았을 뿐”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냥 너에게 얻어맞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지. 그게 전부야”


설마 내가 내공을 썼다는 것을 구노인이 알아차린 걸까?

하지만 구노인보다 먼저 소상히 십삼번의 상처를 살핀 것은 나다.

다행히 녀석이 내 공격을 막아낸 덕에 단지 팔이 부러진 것에 그쳤으니, 그 상처만으로 내공에 당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설령 화타가 살아온다고 해도 불가능 할 것.


설령 눈치챈다 하더라도···


‘괜찮겠지. 구노인이라면’



#



그때는 알지 못했다.


녀석의 팔을 부러뜨려놓은 것이 결국 어떤 사태로 치닫게 되는지.


한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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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졸업 +2 24.09.13 618 22 14쪽
35 삼년 뒤 +2 24.09.12 694 24 14쪽
34 떠나는 순간 +2 24.09.11 738 21 14쪽
33 취조 +2 24.09.10 727 21 13쪽
32 군사(軍師) +2 24.09.09 743 21 13쪽
31 사도(司徒) +3 24.09.08 827 17 13쪽
30 내가 그렇게 정했다. +3 24.09.07 882 23 15쪽
29 약속 +2 24.09.06 907 20 12쪽
28 예감 +3 24.09.05 931 15 14쪽
» 발단 +2 24.09.04 952 15 13쪽
26 시비 +3 24.09.03 944 20 14쪽
25 알 수 없는 일 +2 24.09.02 953 24 14쪽
24 환희 +3 24.09.01 1,007 20 12쪽
23 증명 +3 24.08.31 990 19 13쪽
22 질주 +2 24.08.30 989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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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씨앗 +3 24.08.28 1,028 20 13쪽
19 실험 +3 24.08.27 1,032 19 14쪽
18 자령화 +2 24.08.26 1,009 20 13쪽
17 수색 +3 24.08.25 1,018 18 14쪽
16 목표 +3 24.08.24 1,024 20 14쪽
15 두번째 만남 +3 24.08.23 1,065 18 12쪽
14 살인 +3 24.08.22 1,056 21 15쪽
13 사백이십삼, 사백이십사 +3 24.08.21 1,085 19 13쪽
12 마화단(魔火丹) +2 24.08.20 1,088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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