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를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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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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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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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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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화단(魔火丹)

DUMMY

며칠이 지난 날의 저녁.


구노인의 지시에 따라 창고를 정리하고 있는데, 지금껏 동굴에서 본 적 없는 사람이 교관 한 명과 함께 구노인의 약방을 찾았다. 외부인이었다.


창고 문 틈으로 몰래 바라보았다.

외부인이 품 안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 구노인에게 건넸다.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드는 구노인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겸손하고 진지했다.


“물건을 확인해보시오”


구노인이 신중하게 목함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앞뒤 양옆을 자세히 살피고, 무게를 재어보고, 킁킁 냄새까지 맡은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를 따라 교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목함을 다시 닫은 구노인이 그것을 들고 처소 안쪽으로 쏙 들어가버리고, 교관은 외부인을 다시 데리고 바깥으로 향했다.


아무 내색하지 않고 마저 창고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외부인을 데려왔던 교관이 다시 약방으로 돌아왔다.


“인시(寅時, 새벽 3시~5시) 전까지 준비가 되겠소?”


“내가 언제 시간 못 맞추는 것 봤어? 나가라!”


구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교관이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사라졌다.


잠시 후, 창고 정리를 마친 내가 마당에서 물었다.


“어르신. 시키신 일을 모두 마쳤습니다. 더 도와드릴 일이 있겠습니까?”


“됐다. 너도 오늘은 더이상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말아라”


교관에게보다는 덜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쌀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처소를 향해 말없이 공손하게 허리를 접어 인사한 뒤 약방을 빠져나왔다.


오늘이다.

마화단을 확보해야 하는 날이었다.



#



모두가 잠에 든 밤.

다시 한번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요란하게 잠이 든 아이들을 지나쳐 바깥으로 향하자,

거대한 동굴 안에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작은 소리도 크게 울리는 공간이다.

평소보다 더 신중하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약방 구노인은 평소 해시(亥時, 밤 9시~11시) 전에 잠이 들곤한다.

하지만 오늘 약방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저녁과 밤 시간 내내 끙끙대며 소(小) 마화단을 제조했으리라.


마화단(魔火丹).

거창한 이름이지만 사실 이름난 영약들에 비하면 싸구려 단약에 불과하다.

기운은 지나치게 거칠고,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간간히 쓸만한 무인들을 배출해내는 암혼동과 임풍 교두의 공로를 인정하여 교에서 생색내듯 지원해주는 단약이지만, 그것마저도 한달에 한 알. 아무런 정제를 거치지 않은 덩어리에 불과했다.


덩어리 마화단을 작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쪼개고, 지난 며칠간 정성껏 제조해놓았던 다른 단약과 배율을 맞춰 제대로 된 마화단으로 만드는 것이 구노인의 역할이다. 그 과정을 통해 마화단의 독성은 중화시키고, 어린아이의 몸으로도 소화해낼 수 있는 단약으로 재탄생한다.


약방의 구조는 이제 익숙할 대로 익숙하다.

담을 넘어 창고 뒤에 몸을 숨겼다가, 곧 대담하게 구노인의 작업실 문 바로 옆에 위치를 잡았다.


작업실 안쪽에서는 구노인의 작업이 마무리 되어가는지, 점점 더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척이었다.


저벅 저벅.

약방을 향해 교관 셋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쯔음이 되면 더욱 더 지랄맞아지는 구노인의 성격을 고려하여 발걸음도 신중하다.

차마 약방 외문을 두드리지도 못하고 크흠- 헛기침만 냈다.

만약 교관이 지금 외문을 연다면 처소 옆에 몸을 기대고 서있는 나를 바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몇차례 헛기침에도 안쪽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한 교관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구노인, 아직 멀었습니까?”


하지만 몇번을 불러도 구노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교관이 외문을 열려는지 끼익 소리가 났다.

재빨리 몸을 감추려던 찰나,

구노인이 마침내 굳게 닫혔던 작업실 문을 벌컥 열며 불호령을 냈다.


“이놈들, 허락도 안받고 어딜 들어와?”


“하도 대답을 안하니 답답해서 그러지 않소! 다 됐습니까?”


“다 됐다, 이놈들아!”


구노인의 목소리가 밝았다.


“좋소. 얼른 갑시다. 다들 기다리고 있소”


“조금만 기다려라. 나도 좀 손을 씻어야 할 것 아니냐? 보채기는··· 쯧”


“거 참. 대충 가지 좀···”


“내 손이 썩어 문드러지면, 누가 마화단을 제조할거지? 네놈이냐? 임풍 교두야? 엉?”


“알겠소. 알겠소. 조금만 더 서두릅시다”


구노인이 손에 묻은 독기를 깨끗이 씻어내는 순간이 유일한 기회다.

열어제낀 문이 닫히기 전의 작은 틈 사이로 재빠르게 몸을 끼워넣었다.

바로 지척에서 내가 움직이고 있었지만 구노인은 그 어떤 기미도 눈치채지 못했다.


촛불이 밝혀진 방.

탁자 위에 정성스럽게 놓여져 있는 소마화단.

재빠르게 숫자를 세어보았다.


열 일곱 개.

덩어리 하나당 스무개의 소마화단을 만들 수 있다.


‘남겨진 마화단은 어디에···’


오른쪽 구석에 따로 빼내진 마화단 조각들을 발견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것들도 모조리 챙기고 싶지만 그렇다면 너무 쉽게 발각이 될 것이다.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했던 단약 세 알을 꺼내들었다. 지난 며칠간 내가 기억하는 소마화단의 부피와 무게를 떠올리며 빚어낸 가짜 마화단. 나머지 재료는 구노인이 쓰는 것과 동일한 약재들을 섞었고, 특유의 박하향은 동굴에서 채집한 습태를 미량으로 섞어 보충했다.


그러니 내공을 증진시키는 효능은 없되, 다른 모든 것은 구노인의 소마화단과 동일한 단약이다.

먹으면 장이 건강해지고 변을 잘 보는 정도의 효능이 있겠다.


탁자 위에 놓인 진짜를 자세히 관찰하며, 가짜 마화단의 형태와 부피를 손 끝으로 섬세하게 조절했다.

구노인은 결코 만만한 노인네가 아니다. 어설프면 금방 눈치채고 말 것이다.

진짜 소마화단의 실물을 오랜만에 다시 확인했으니, 다음에는 이런 절차도 필요없을 터였다.

오늘은 세 알뿐이지만, 다음에는 훨씬 더 많이 바꿔치기 할 수 있겠지.


마침내 진짜와 가짜를 바꿔치기 하는 순간,

구노인이 벌컥, 다시 문을 열며 방으로 들어섰다.


“하나, 둘, 셋···”


신중하게 숫자를 센 구노인이 마화단을 챙겨 커다란 함에 담았다.

남겨진 조각들까지 꼼꼼히 챙겨 상의 옷자락에 집어넣는 노인.

만약 내가 잔여물에 손을 댔다면 지금쯤 발칵 약방이 뒤집어졌을 것이다.


구노인이 다시 방 밖으로 나가며 기세좋게 외쳤다.


“이놈들아, 가자!”


잠시 후,

지네 항아리 뒤에 몸을 숨겼던 나도 구 노인의 방을 빠져나왔다.


앞으로 두번 정도 이 일을 반복하면,

내가 필요로 하는 양의 마화단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밤은 깊었고 동굴은 고요했다.

조용히 자리에 몸을 뉘이니 곧 달콤한 잠이 쏟아졌다.



#



“왜이리 안와? 하여간 이 빌어먹을 노인네···”


임풍은 좌우로 초조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양옆으로 도열한 교관들의 눈빛도 그를 따라 흔들렸다.

검은색 무복을 차려입고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일급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


오늘은 귀중한 일급 재원들에게 첫 마화단을 선사하는 행사가 있는 날이다.


귀중한 단약을 지원해준 본산(本山)에 대한 고마움을 강조하는 말도,

암혼동 사업을 지금까지 키워낸 자신의 공적을 강조하는 말도,

이전 기수의 모범적이었던 선배에 대한 이야기도 몇번씩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피같이 중요하고 소중한 연설이라도 너무 길어지면 소용이 없는 법이다.

더군다나 한참 자야할 시간인 새벽녁이라면 더더욱.

한 일급녀석이 크게 하품을 하다가, 임풍과 눈을 마주치고는 뜨끔하여 고개를 숙였다.


“옵니다!”


한 교관이 반갑게 외쳤다.

과연, 쭈구렁탱이 구노인이 커다란 함을 들고 기세등등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를 재촉하러갔던 교관들은 임풍의 호랑이 눈빛을 받고 마치 죄수라도 되는 듯 기가 죽었다.


“단약엔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요?”


어정쩡한 존칭으로 임풍이 물었다.


“그렇지···요”


어색한 존칭으로 구노인이 답했다.


흠흠 헛기침을 한 임풍이 함을 열고 단약의 개수를 세었다.

하나 둘··· 열 일곱개.

그가 단약을 하나씩 들어 일등급 아이들의 앞에 놓인 탁자 위에 손수 올려놓았다.


“자. 이제 다들 단약을 복용하고 운기조식을 해라.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두 알고 있겠지?”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는 듯 하다가, 결국 몇몇이 먼저 단약을 들어 입에 넣었다.

아까 하품을 하다 걸렸던 녀석이 머뭇거리다가 임풍에게 질문했다.


“교두님. 이거 혹시, 먹으면 막 일년 뒤에 독이 재발해서 무조건 교두님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그런 고독(苦毒)같은 류의–”


푸웁!

용기있게 먼저 입에 넣었던 아이들이 재빠르게 단약을 뱉어냈다.


빡!

확 열이 뻗친 임풍이 질문한 녀석의 뒤통수를 갈겼다.


“어디서 무협지에만 파묻혀 살던 녀석이 들어와서는···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 감지덕지 할 줄 알아야지?”


씩씩거리던 임풍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안먹을거면 내놔! 먹지마! 이급 삼급에도 줄 놈들은 많다! 오급에도 똘똘한 놈 있더라!”


서슬퍼런 그의 기세에 놀란 아이들이 재빠르게 단약을 꿀꺽 삼켰다.

임풍은 열일곱명이 모두 운기조식에 들어간 것을 본 뒤에도 화가 가라앉지않아 거친 콧김을 내뿜었다.


일급을 담당하는 교관들이 모두 모여 아이들의 동태를 자세히 살폈다. 반응이 빠른 몇몇 아이들은 금세 얼굴에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몸이 갸우뚱하여 넘어지려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교관이 재빠르게 잡아주었다. 혹시 고독(苦毒)이 아니냐고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던 아이도 그 중 하나였다.


그 반면,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은 한참동안이나 단전의 신호를 기다렸지만 듣던 것과 달리 잠잠하자 가만히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열 일곱 중 여섯 뿐이라··· 이번 기수는 기대 이하인걸?”


실망한 듯한 임풍의 말에 한 교관이 답했다.


“속단하기에는 이릅니다. 두번째, 세번째 복용에야 반응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그것으로는 부족해. 나는 최고의 인재들을 길러내야 한단 말이다”


“길거리를 전전하던 아이들입니다. 홍옥같은 아이가 매번 열명 스무명씩 나오기를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죠”


구노인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화단엔 아무 문제가 없소”


“우리 중에 마화단을 지적한 사람은 아무도 없소, 노인장”


침묵이 감돌았다.

임풍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다른 교관에게 물었다.


“그 녀석이 누구였지? 얼마 전 다른 일급을 죽였던··· 그 놈은 좀 어떤가?”


“아. 그 녀석이요?”


교관이 저쪽 맨 구석자리에 앉아있던 한 아이를 가리켰다.

창백한 얼굴에 몸은 홀쭉 말랐고, 눈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가늘게 눈을 뜨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을 보니···


“저 녀석도 아직 반응이 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제길. 혹시나 했는데··· 확 살혼대로 보내버릴까? 또 사고치기 전에?”


얼굴을 찌푸리며 아이를 노려보던 임풍이 무릎을 탁 쳤다.


“구노인, 저 녀석에게 남은 마화단 쪼가리들을 모두 먹여보는 것은 어떻소?”


구노인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임풍을 돌아봤다.


“저번에 얼핏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소? 복용량을 늘려서 강제로 길을 틔운다느니 뭐니···”


“그거야 아직 이론에 불과하오. 마화단은 다른 영약과는 결이 다르니... 그 강력한 독성을 제대로 중화시킬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지”


“언제까지 연구만 할 생각이오?”


임풍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한번 생생한 실험을 해보자는거요. 내 말은”


“성공 확률은 지극히 낮고,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오. 십중팔구 견뎌내지 못하고 죽는다고 봐야지”


“허 참. 답답하군. 열에 한두가지 경우는 안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니오?”


한참을 침묵하던 구노인이 무겁게 답했다.


“임 교두. 그럴바엔 차라리 그냥 깔끔하게 죽이는 것이 낫겠소”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카악- 퉤.

가만히 구노인을 노려보던 임풍이 침을 땅바닥에 뱉었다.


“관두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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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삼년 뒤 +2 24.09.12 694 24 14쪽
34 떠나는 순간 +2 24.09.11 738 21 14쪽
33 취조 +2 24.09.10 727 21 13쪽
32 군사(軍師) +2 24.09.09 743 21 13쪽
31 사도(司徒) +3 24.09.08 828 17 13쪽
30 내가 그렇게 정했다. +3 24.09.07 882 23 15쪽
29 약속 +2 24.09.06 907 20 12쪽
28 예감 +3 24.09.05 932 15 14쪽
27 발단 +2 24.09.04 952 15 13쪽
26 시비 +3 24.09.03 944 20 14쪽
25 알 수 없는 일 +2 24.09.02 953 24 14쪽
24 환희 +3 24.09.01 1,007 20 12쪽
23 증명 +3 24.08.31 990 19 13쪽
22 질주 +2 24.08.30 989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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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실험 +3 24.08.27 1,032 19 14쪽
18 자령화 +2 24.08.26 1,009 20 13쪽
17 수색 +3 24.08.25 1,018 18 14쪽
16 목표 +3 24.08.24 1,024 20 14쪽
15 두번째 만남 +3 24.08.23 1,066 18 12쪽
14 살인 +3 24.08.22 1,056 21 15쪽
13 사백이십삼, 사백이십사 +3 24.08.21 1,086 19 13쪽
» 마화단(魔火丹) +2 24.08.20 1,089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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