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를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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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8.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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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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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DUMMY


구노인의 내실 안은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옥도, 그 자체.


좁은 방 안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로 가득 차있었다. 창백하고 여윈 얼굴의 사백이십삼번이 바닥에 누워있는데,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의 눈은 깊게 꺼져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몸이 격렬하게 뒤틀리며 기침이 터져 나왔다.


사백이십삼번의 눈동자는 흐릿했고, 입술은 말라 터져 있었다. 임풍이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들어왔음에도 전혀 알아보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의 발목과 손목은 경련으로 인해 굽어져 있었고, 몸은 비정상적인 각도로 휘어져 있었다.


소년의 팔과 다리가 끊임없이 떨려왔다. 손톱으로 이곳 저곳을 긁은 흔적이 가득했다. 칠공(七孔) 중 어디서 새어나왔는지 모를 피가 사방에 튀어있었는데, 구노인이 계속해서 사방에 흥건한 피를 닦아내려 노력한 듯한 흔적이 보였다.


그의 몸이 튕기듯 구부러지며 또 한번 분수같이 피를 뿜어냈다.

임풍은 재빠르게 코와 입을 가리고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무겁고 숨막히는 방 안의 공기를 그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잘 보시오. 그대가 원했던 실험의 결과요”


구노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임풍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마화단의 독기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번 들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한참을 침묵하던 임풍이 말했다.


“얼마나 먹인거요?”


“두 회차에 걸쳐서 남은 찌꺼기들을 넣어 제조하였으니, 소마화단 기준으로는 여섯개 정도의 분량이지”


음.

임풍이 짧은 신음을 냈다.


“중화로는 한계가 있어. 이독제독(以毒制毒, 독으로 독을 다스림)의 방법을 썼소. 부작용을 최소화한 것이 이정도야. 버텨낼지는 아직 알 수 없겠지”


“얼마나 더 버텨내야하지?”


“글쎄. 삼일? 일주일? 그 전에 고통으로 죽어버릴 수도 있소”


생기가 매말라버린 소년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임풍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살아날 것 같지 않은데”


“그럼 다음 실험을 해봐야지”


구노인이 절대 그럴만한 위인이 못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임풍은 이곳 - 죽음의 기운이 짙게 드리운 약방에 완전히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는 교관들과 함께 도망치듯 구노인의 처소를 빠져나가며 말했다.


“곧 송장 하나 치우겠군”



#



구노인과 임풍이 나누는 대화가 의식 저편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그들을 신경쓰거나 의식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지금 정말,

죽음의 경계선에 서 있으니까.



며칠 전.

그 날의 대화 이후, 나는 구노인을 도와 새로운 마화단의 배합을 완성했다.

티나지 않게 그를 도우려 했지만, 내가 내미는 재료들이 번번히 맞아떨어지자 구노인이 귀신을 보는듯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너는 어떻게 이런 것을···?”


너는 어떻게.

지금까지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테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약방에서 일했었다고”


“그냥 도와줬을 뿐이라며?”


“똑똑하게 잘 도와주는 아이였지요”


“나보다 더 약재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 같은데?”


“약방 주인도 그런 말을 하곤 했었습니다”


나의 뻔뻔한 대답에 구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이상 깊게 캐묻지 않는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지금으로부터 몇년 후의 당신은, 스스로 마화단을 개조하는 방법을 찾아내오.

그것을 나에게 써볼 것을 고민했지만, 그땐 이미 내 나이가 늦어 시도하지 못했지.

지금 나는 전생의 당신에게 받은 그 방법을 써보려고 하는 것이오.

그것에 나름대로 몇가지 해석을 덧붙이긴 했지만.


마침내 완성된 새로운 마화단.

거의 가공되기 전의 덩어리에 가까운 크기이다.


본래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훔쳐내서 만들어내려고 했지만,

구노인과 함께 만든 덕에 훨씬 더 수월하게 완벽한 배합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덕분에 훔쳐낸 소마화단을 그대로 아끼게 되었으니, 나중에 나름대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터였다.


“정말 괜찮겠느냐?”


구노인이 물었다.


“이것을 먹더라도 혈맥이 뚫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 고통이 얼마나 크고 오래갈지도 알 수 없어. 버티지 못한다면 허망하게 죽어버릴지도 모르지. 어어어엇–!”


구노인이 떠드는 사이 나는 냉큼 개조된 마화단을 들어 삼켰다.


“마침 나에게 실험을 해보라는 말을 한 것이 임풍교두이니, 며칠간 이곳에 쳐박혀있어도 뭐라할 수는 없겠군요”


“그··· 그렇겠지. 괜찮으냐? 느낌이 어떠하냐?”


구노인은 좀처럼 확신하지 못했지만,

나는 새로이 배합한 마화단의 성능을 확신하고 있었다.


“시작되는군요”


아랫배에서 강렬하게 용솟음치는 고통을 느끼며 반갑게 웃었다.

이제는 죽거나 살거나 둘중의 하나의 경우만 남은 셈이다.

죽으면 죽는 것이고,

살아남는다면 굳게 닫혀있던 내 혈맥을 뚫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뒷일을 부탁합니다”


그 말과 함께 나는 의식을 잃었다.



#



어마어마한 충격이 나를 엄습했다.

몸이 뒤틀리고 뼈가 분리되는 고통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응축된 마화단의 기운이 혈맥을 타고 지나갔다.

지나갔다는 표현은 사실 맞지않다.

강제로 뚫으며 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내가고수가 임독양맥을 타통시켜주는 과정과 비슷하지만,

마화단을 이용한 방법은 그것보다 훨씬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쉽게 비유를 하자면,

코끼리를 콧구멍에 집어넣는 것과 비슷하다.

그 코끼리는 매우 흉폭할 뿐 아니라, 움직임은 더디기까지 하다.

차라리 빨리 지나가줬으면 좋았을텐데.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견뎌낼 수 없는 수준의 고통.

이런 고통을 성인도 되지 않은 아이가 일주일 이상 견뎌낼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마화단을 이용해서 혈맥이 닫힌 아이들의 가능성을 틔워보겠다는 임풍교두와 구노인의 계획은 기본적으로는 실패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평범한 아이들에 한정지었을 때의 이야기.

나는 견뎌냈다.

지난 삶에서 받았던 고통이 이미 내 몸에 각인되어 있으니까.

강해지지 못했을 때 받을 고통이 지금의 이 고통보다 더 크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좋은 가문에서 좋은 핏줄을 가지고 태어나거나,

어린 나이에 훌륭한 스승을 만날 인연이 없었던 내가

스스로를 바꿔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 뿐이다.


임풍 교두가 약방에 들른지도 벌써 수일이 지났다.

웅삼이 나를 몇차례나 찾아왔다가 구노인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녀석답지않게 밤에 남몰래 약방의 담을 넘었다가,

구노인에게 죽도록 매타작을 당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일주일이 지나자 더이상의 발작은 없었다.

시체처럼 가만히 굳어버린 채 하염없이 시간이 지날 뿐이었다.

더이상 내 몸에는 흐를 피가 남아있지 않았고,

피부는 딱딱하게 메말라 바스라질듯 부석거렸다.

모든 감각이 잠들어버렸다.

간신히 한줄기 호흡만을 내쉬고 있을 뿐, 죽었다고 보아도 무방한 상태.


구노인이 장침을 꺼내들고 나의 몸 이곳저곳을 찔러보았다.

하지만 내 몸은 그 어떤 것에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식물인간.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말이 들리긴 하느냐?”


“이제 그만 스스로를 놓아주어라. 너의 고통만 길어질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 몸에서 나오는 피와 오물을 닦아내는 것도 포기한 구노인이다.

그 또한 나를 관찰하고, 간호하고, 응원하는 동안 심신이 바짝 말라붙어있었다.

이제는 썩은 나무토막이나 다름없는 나를 향해,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내 실수다. 못난 어른들의 욕심이었어”


“너는 대단했다. 지금까지 버텨낸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야. 하지만 더이상은···”


“나조차 지켜보는 것이 힘들구나”


역시 나로부터는 아무런 대답도 얻어내지 못했다.

긴 한숨을 내쉰 구노인이 마른 세수를 한 뒤 방을 나섰다.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일급 아이들을 위한 다음 마화단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아마 그것이 끝나고 나면 나를 정말 포기할 수도 있겠지.


홀로 남겨진 방.

그 순간이었다.

메마른 사막에서 작은 새싹이 피어난 것은.


“....!!!!”


너무나 미약한 한줄기 기운.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하찮은 것이지만,

내 몸에는 처음으로 자리잡은 내공의 씨앗.


자그마한 구슬이 천천히 내 몸을 휘돌기 시작한다.

회음, 고골, 중극, 하완, 중당, 옥당, 승장···

주요 혈도를 지나 전신세맥 구석구석 빠짐없이 몸을 누비며

메말랐던 나의 몸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일주천.

하루밤이 꼬박 지났다.

가만히 눈을 뜨고 손을 들어보았다.

깡마른 뼈다귀 같은 손이지만 확실히 움직이고 있다.

오른손의 불편한 기운도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아랫배에 손을 올리고

뱃속에 있는 아기처럼 몸을 웅크렸다.


온 몸을 누비고 단전으로 되돌아온 씨앗을 소중히 감싸안으며.


이제 다시,

시작이다.



#



임풍 교두는 느즈막히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에 일급 아이들에게 마화단을 먹이는 행사가 있었지만, 딱히 참여하는 수고를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까지의 결과로 보건데, 딱히 기대를 할 것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교관의 보고는 그의 생각과는 달랐다.

기운차게 문을 열고 들어온 교관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이번 회차에는 열 여섯명 모두 반응을 보였습니다!”


“...?”


무슨 말인지 순간 이해하지 못한 임풍은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렸다.


“일급 열 여섯명 모두 반응을 보였다니까요? 다들 소마화단의 기운을 성공적으로 흡수해서 운기 중입니다”


“그렇지! 그래야지!”


임풍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삼회차 정도는 되봐야지 아는 법이라니까? 이번 기수도 아직 희망이 있어!”


저번 회차의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그때까지 마화단에 아무런 반응을 안보이는 아이들이 있었을 뿐 아니라, 첫 회차에 분명 반응을 보였음에도 이회차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경우까지 발생했었으니까.


“구노인이 큰 일을 했군. 아주 잘했어!”


임풍 교두는 기분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구노인까지 칭찬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구노인의 퀭하고 독기어린 눈빛을 떠올린 임풍이 뜨끔하여 교관에게 물었다.


“그 사백이십삼번 녀석은 어떻게 되었지? 벌써 열흘도 넘지 않았어? 죽었다던가?”


“그렇지 않아도 제가 살짝 물어봤는데, 구노인이 대답은 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더군요. 아마 가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난 딱 보자마자 가망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지. 시체나 다름없는 것을 여태까지 붙잡고 있는 것도 참 어리석은 일이야”


“그래도 꽤 똘똘하고 아까운 녀석 아니었습니까? 이래저래 사고도 많이 치긴 했지만···”


“그래봤자 오급이야. 욕심도 많고 깡이 있어보이길래 실험 대상으로 적합해보였을 뿐이지. 그 비루한 몸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쓸만한 녀석이 되겠어?”


“그럼 실험에는 더 관심이 없으신 겁니까?”


“일급 녀석들이 제 궤도에 올라섰으니 당분간은 괜찮아. 될 놈들을 더 잘되게 하는데 집중하는게 맞지, 첨부터 가망없는 녀석들 계속 붙들고 있어봐야 아무 의미 없다”


교관은 일급 아이들의 소마화단 복용건 말고도 이런 저런 건에 대한 보고를 계속했다.


두번째 보고는 암혼동 주변의 수색에 대한 건이었다.

홍옥의 말대로 주변에 혹시 실종되었던 사번 아이가 살아있을까 싶어 숲을 샅샅히 뒤져보았지만,

역시나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내용의 보고였다.

애초에 가능성이 희박했던 일이다.

지금쯤 호랑이나 늑대의 밥이 되어버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마지막 보고는 곧 시작될 정기심사에 대한 건이었다.

그간 이루어진 교육의 결과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좋은 성과를 거둔 아이는 상위 등급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반면 성과가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한 아이는 아래등급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벌써 그럴 때가 됬어? 시간이 참 빠르군”


“그렇습니다”


“이급이나 삼급 중에도 가망성이 있는 아이들이 있나? 일급에 자리가 좀 남아있으니 한 두명정도는 올려도 될텐데?”


“몇몇 소질이 있는 녀석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들었습니다”


“어이, 나 몰라? 단순히 괜찮은 것만으로는 안돼”


“그럼 정정하도록 하죠. 지금 일급 녀석들에게 전혀 뒤쳐지지 않는 녀석들이 있다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이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임풍이 손바닥을 비볐다.


“그래. 한번 보자고. 재미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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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천무관 +2 24.09.14 603 22 14쪽
36 졸업 +2 24.09.13 618 22 14쪽
35 삼년 뒤 +2 24.09.12 694 24 14쪽
34 떠나는 순간 +2 24.09.11 737 21 14쪽
33 취조 +2 24.09.10 727 21 13쪽
32 군사(軍師) +2 24.09.09 743 21 13쪽
31 사도(司徒) +3 24.09.08 827 17 13쪽
30 내가 그렇게 정했다. +3 24.09.07 881 23 15쪽
29 약속 +2 24.09.06 906 20 12쪽
28 예감 +3 24.09.05 931 15 14쪽
27 발단 +2 24.09.04 951 15 13쪽
26 시비 +3 24.09.03 944 20 14쪽
25 알 수 없는 일 +2 24.09.02 953 24 14쪽
24 환희 +3 24.09.01 1,007 20 12쪽
23 증명 +3 24.08.31 990 19 13쪽
22 질주 +2 24.08.30 989 20 12쪽
21 평가 +2 24.08.29 1,010 21 14쪽
» 씨앗 +3 24.08.28 1,028 20 13쪽
19 실험 +3 24.08.27 1,032 19 14쪽
18 자령화 +2 24.08.26 1,009 20 13쪽
17 수색 +3 24.08.25 1,018 18 14쪽
16 목표 +3 24.08.24 1,024 20 14쪽
15 두번째 만남 +3 24.08.23 1,065 18 12쪽
14 살인 +3 24.08.22 1,055 21 15쪽
13 사백이십삼, 사백이십사 +3 24.08.21 1,085 19 13쪽
12 마화단(魔火丹) +2 24.08.20 1,088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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