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를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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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8.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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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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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

DUMMY


웅삼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평가 얘기부터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냐?”


“매우 맞지”


“네놈은 하여간··· 아무튼 평가는 진작에 끝났지. 네가 쓰러진지 벌써 삼 일이나 지났다고”


“삼 일?”


이번에는 내가 당황할 차례였다.

아주 잠깐 쓰러져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오랜만에 꿈까지 꾸었더라니.


그나저나 평가가 벌써 끝나버렸다니 낭패였다.

내가 한 것은 그저 달리기일 뿐인데.

몇개월 뒤에 두번째 시험이 열리기를 기다려야하나?

다시 한번 임풍 교두에게 읍소해야할까?


그때, 벌컥 문이 열리며 구노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꼬맹이. 정신이 돌아왔구나. 이번에는 금방 회복될 줄 알고 있었다”


“삼 일이 금방입니까?”


“그 전에 네놈이 여기에 얼마나 누워있었는지 잊었냐? 온갖 지랄발광을 하면서 일주일, 그 뒤엔 썩은 나무토막처럼 보름···.”


내가 누워있는 곳 또한 구노인의 작업실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마화단을 복용하고 쓰러져있을 때와 달리, 깔끔하고 청결하게 정리된 상태여서 못 알아봤을 뿐.

새삼스런 눈빛으로 작업실 이곳 저곳을 바라보자, 구노인이 이를 갈며 말했다.


“이 나이먹고 네 똥오줌 받아내고 독기어린 피 닦아내고··· 얼마나 고생한지 알아? 너는 앞으로 죽도록 내 밑에서 일하는 것으로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이다”


“그건 선불로 지불한 줄 알았습니다”


“고작 몇개월 일한 걸로 되겠어?! 그 뿐이 아니다. 네놈이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온갖 몸에 좋은 것은 다 쳐먹였으니, 약재값이며 수고비며 모두 끝까지 받아내겠다”


뾰족한 목소리로 난리를 치고 있지만, 구노인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나의 혈맥을 짚고 기운을 관찰했다. 대충 봐도 걸쭉해보이는 탕약까지 준비해왔다. 이것 저것 몸에 좋은 것이 다 들어가 있을 것이 분명한.


구노인에게 그릇을 건네받은 웅삼이 익숙한 듯 나의 머리를 받치고 탕약을 흘려 넣었다. 탕약에 쏙 담가진 웅삼의 엄지손가락이 영 신경쓰인다 싶었는데, 녀석이 나중에는 그 엄지손가락을 쪽 빨아먹는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자, 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왜? 나도 네 덕 좀 보자”


“···너는 훈련 안하고 여기 있어도 되냐?”


“나는 당분간 이곳에서 너를 보살피는 것을 도와주라는 특별 임무를 받았다”


“특별 임무?”


“그래. 무려 임풍 교두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시지”


“훈련은 빠져도 되고?”


“당분간은 괜찮아”


웅삼의 표정이 싱글벙글 밝았다.

입술을 씰룩이는 것이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눈치였다.

눈썹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자, 그가 턱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나, 삼등급으로 올라가게 됬거든”


“오”


“오라니··· 그게 다야? 대단하다던지, 축하한다던지··· 첫 평가에서 무려 이등급이나 갑자기 뛰어오른거라고!”


“흠··· 그 정도인가?”


사실 웅삼 정도의 실력이면 딱히 놀라울만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나.

적당히 힘을 조절했어야 하는데, 뛰는 것 자체에 너무 집중하다보니 멈추는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어쩌면 달리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언제 의식을 잃었는지도 모른 채 삼일이나 쓰러져 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나의 몸 이곳 저곳에 침을 꽂아대던 구노인이 흥 코웃음을 쳤다.


“오등급이나 삼등급이나 거기서 거기지. 요즘은 개나 소나 삼등급 아닌가?”


“어르신마저 어떻게 그런 말을···”


반응이 영 신통치 않자 웅삼이 허망한 표정으로 맨벽을 바라보았다.


“내가 쓰러진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 이야기해봐라”


“딱히 별 일은 없었어. 단지···”



#



소년이 달리는 모습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마치 평생을 달리기만 해온 사람인것 마냥,

달리기를 위해 태어난 사람마냥,

다리를 뻗고, 땅을 딛고, 박차기를 반복했다.


그가 반환점을 돌아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오백여명에 달하는 수련생들과 교관들이 모두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느낀 소년이

마침내 뒤를 흘깃 돌아보았다.

수련장을 달리고 있는 것이 오직 자신 뿐임을 인지하고 멈춰선 순간,


“우와아아아아!!!”


오급 아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교관들의 통제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웅삼은 무리들 사이에서 제일 앞서 달리고 있었다.

그의 조원이자 벗, 은인이자 스승.

꼬마 대장이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그 누구보다 반짝이는 모습으로.


그를 번쩍 들어 헹가레라도 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보며 미소짓는듯 했던 그의 눈이 이내 초점을 잃더니, 무릎이 풀리며 몸이 땅으로 쓰러져내렸다. 웅삼은 가까스로 그의 몸을 잡아낼 수 있었다.


환호가 걱정으로 바뀌었다.

웅성웅성 모여있는 오급아이들을 헤치고 임풍과 구노인이 나타났다.

재빨리 사백이십삼번의 맥을 짚은 구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괜찮소. 그저 기력을 탕진했을 뿐이야”


웅삼을 비롯한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임풍 교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이군. 우리 귀중하신 일등을 잃는 줄 알고 내 심장이 발랑발랑 했지 뭔가”


임풍 교두가 흐믓한 목소리로 말했다.

웅삼은 털복숭이 교두가 그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둘러싼 수많은 아이들 중 누군가가 볼멘 소리를 내뱉었다.


“끝까지 갔으면 누가 일등인지는 모르는 것 아닙니까? 애초에 상위 오십명만 가리면 된다고해서 멈춘건데···”


임풍 교두가 주변을 둘러보며 버럭 화를 냈다.


“억울하면 끝까지 달려서 승부를 봤어야지! 교관이 멈추라고 하던 말던! 도대체 언놈이야? 어떤 쫌팽이야?!”


사방이 조용해졌다.

임풍 교두가 구노인에게 말했다.


“일단 당장 뭘 더 하기는 어려워보이는군. 데려가서 푹 쉬게 하는게 좋겠소”


구노인이 임풍 교두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임교두. 다시 말하지만 이 녀석이 무리해서 뛴 이유는···”


“나도 알지. 아마 그대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을거요. 그러니 일단 당분간은 푹 쉬게 하시오.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웅삼은 그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었던 터라 그들이 뭐라고 속삭이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임풍 교두가 웅삼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제일 친한 녀석이지? 당분간 구노인이 이 녀석 돌보는 것을 좀 도와주도록 해라”


“네!”


그의 지명을 받은 웅삼이 우렁차게 답했다.


“자! 이제 더이상의 소란은 없다. 바로 이어서 이차 평가를 진행한다!”


임풍 교두가 등을 돌리며 외치고, 교관들과 수련생들이 다시 질서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웅삼은 사백이십삼번을 번쩍 들어 옮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교관에 의해 바로 제지당했다.


“사백이십사번. 너는 어딜가?”


“네? 이 녀석을 약방에 옮겨놓으려고···”


“그건 다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너는 일단 이차 평가를 받아야지 않나?”


“하지만 사급 시험은 아직 멀지 않았습니까? 아까 일급 승급시험부터 진행한다고 하시던데요”


“누가 너보고 사급이래?”


교관의 말에 웅삼은 눈을 꿈벅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넌 삼급 평가 대상이다. 얼른 준비해. 제대로 실력 발휘 못하면 평생 오등급에 눌러앉을 줄 알아라”


깜짝 놀란 웅삼은 사백이십삼번을 붙잡고 있던 손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쿵-


박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



“뭐라고? 뭐가 깨졌다고?”


인상을 찌푸리자 웅삼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술을 오므렸다.

혹시나 해서 뒤통수를 만지작거리자 무언가 커다란 것이 만져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음. 그건 말이지··· 암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그래서 내가 이차 평가에서 삼급 녀석을 보기좋게 때려눕히고···”


웅삼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려 할 때,

약방 마당 쪽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노인, 그 녀석은 좀 어떻소?”


꼽혔던 침을 회수하던 구노인이 목소리를 높여 답했다.


“마침 정신을 차렸던 참이오”


“그럼 잠시”


웅삼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구노인에게 물었다.


“누군데요?”


“교두”


작업실 문이 벌컥 열리고 털복숭이 대머리 임풍교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웅삼이 표정을 싹 굳히더니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했다.

하긴, 그는 이제껏 따로 임 교두와 마주할 일이 없었을 터.


나는 이렇게 그를 대면하는 것이 도대체 몇번째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직접 내가 있는 곳까지 행차하시다니, 황송도 하셔라.

예를 갖춰야하나 싶어 몸을 움찔대자 임풍이 워워 손을 내저었다.


“편히 있어, 편히 있어”


임풍이 웅삼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녀석이 약방이 떠나가라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교두님,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사백이십삼번 도우미”


“......”


웅삼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고. 이번에 승급했지? 사급이었나?”


“...삼급입니다”


“기특하군. 하지만 더 열심히 해야해. 요즘엔 개나 소나– 흠흠. 암튼 더 열심히 수련해서 꼭 일급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네···”


“패기가 없다. 다시!”


“넵!!!!”


말 몇마디로 웅삼을 들었다 놨다 한 임풍 교두가 나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우, 가까이서 보니 더욱 끔찍한 얼굴이군”


“.....”


이곳 저곳 할퀸 상처들이 가득하고, 검게 죽어버린 피부가 군데 군데 벗겨지고 있긴 하다.

마화단의 고통을 견뎌낸 흔적들.

하지만 그걸 이렇게 면전에서 끔찍하다고 이야기할 필요까지야.


“암튼, 네 달리기는 잘 봤다”


임풍 교두가 두툼한 손을 펼쳐 나에게 내밀었다.

그답지 않은 말, 그답지 않은 행동, 그답지 않은 눈빛이다.


시건방진 꼬맹이로만 바라보던 시각이 조금은 바뀌었으려나.

싹 달라진 태도가 얄밉긴하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암혼동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임풍교두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내밀어진 임풍 교두의 손을 맞잡아 상반신을 일으켰다.

임풍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 몸안에 진기를 밀어넣었다.

달라진 혈맥을 확인한 그의 눈이 생기를 띄었다.


역시, 얄밉단 말이지.


“구노인에게 들었어. 어려운 과정이었을 텐데 잘 버텨주었더군. 이곳 암혼동을 총괄하는 교두로서 고마움을 표하는 바이다”


당신을 위해서 한 일은 아니오.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지.


교두의 다음 말은 나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비록 이차평가에 빠지긴 했지만 너를 일급으로 올려주기로 결정했다”


경직된 자세로 서있던 웅삼이 입을 쩍 벌렸다.

지금까지 임풍 교두가 했던 말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이 정도는 이 몸의 재량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 딱히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일급은 결코 만만치 않을거야. 애초에 꽉 막혀있던 혈맥이 개선되었을 뿐, 아직까지 너는 한참 기준 미달이다. 그 왜소한 체격도, 완력도, 모든 면에서 너를 압도하는 녀석들이 즐비한 곳이 일급이란 말이지”


“교관이건 훈련생이건 너를 미심쩍게, 또는 아니꼽게 보는 시선들이 있을거야. 오급에서 일급 직행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특히 일급 아이들은 너를 가만히 두지 않겠지. 하지만 어쩌겠느냐. 네가 간절히 원했던, 스스로 택한 길이 아니겠느냐?”


임풍 교두가 껄껄 웃었다.

나 또한 그를 따라 씨익 미소지었다.

아이들이 나를 아니꼽게 보고,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니.

이 얼마나 귀여운 말이란 말인가?


그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걸어가는 길이,

걷고자 하는 길이 어떠한 길인지를.


아무튼.

호의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법.

고개를 숙여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일단 당분간은 이곳에서 몸을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도록. 몸이 완치되면, 그때는 빼도 박도 없이 일급일 줄 알아라”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본 임풍이 구노인에게 눈짓했다.


“구노인.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소?”


구노인이 임풍을 따라 방을 빠져나가자,

차렷자세로 있던 웅삼이 나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일급이라니! 으아··· 일급이라니! 오급에서 어떻게 단번에 넘어갈 수 있지? 그것도 첫 시험에서 말이야!”


일급이라.

작은 목표 하나를 달성했다.

게다가 몸을 회복할 시간도 벌었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순간이었다.


호들갑을 떨고있는 웅삼을 붙잡고 나직히 속삭였다.


“그것. 아직 잘 가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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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천무관 +2 24.09.14 603 22 14쪽
36 졸업 +2 24.09.13 618 22 14쪽
35 삼년 뒤 +2 24.09.12 694 24 14쪽
34 떠나는 순간 +2 24.09.11 738 21 14쪽
33 취조 +2 24.09.10 727 21 13쪽
32 군사(軍師) +2 24.09.09 743 21 13쪽
31 사도(司徒) +3 24.09.08 828 17 13쪽
30 내가 그렇게 정했다. +3 24.09.07 883 23 15쪽
29 약속 +2 24.09.06 908 20 12쪽
28 예감 +3 24.09.05 932 15 14쪽
27 발단 +2 24.09.04 952 15 13쪽
26 시비 +3 24.09.03 944 20 14쪽
25 알 수 없는 일 +2 24.09.02 953 24 14쪽
24 환희 +3 24.09.01 1,008 20 12쪽
» 증명 +3 24.08.31 991 19 13쪽
22 질주 +2 24.08.30 989 20 12쪽
21 평가 +2 24.08.29 1,010 21 14쪽
20 씨앗 +3 24.08.28 1,028 20 13쪽
19 실험 +3 24.08.27 1,033 19 14쪽
18 자령화 +2 24.08.26 1,010 20 13쪽
17 수색 +3 24.08.25 1,018 18 14쪽
16 목표 +3 24.08.24 1,025 20 14쪽
15 두번째 만남 +3 24.08.23 1,067 18 12쪽
14 살인 +3 24.08.22 1,056 21 15쪽
13 사백이십삼, 사백이십사 +3 24.08.21 1,086 19 13쪽
12 마화단(魔火丹) +2 24.08.20 1,089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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