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를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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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8.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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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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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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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司徒)

DUMMY

천마신교의 총본산.


문사 차림의 한 사내가 허리를 꼿꼿이 피고 걸어가고 있다.

낡지만 빳빳하게 다려진 백의.

체구는 작고 왜소해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만 같다.

그 와중에 머리는 이상하리만큼 크고 눈코입은 자유분방하게 늘어져 있어, 보는 이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질 법한 외모를 가진 인물이었다.


멀리서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길을 돌아서가거나 고개를 푹 숙인채 모른 척하기 일쑤였다.

단지 그가 못생겨서가 아니다.

혹여라도 그에게 뭐 하나라도 잘못 걸리게되면 매우 귀찮은 일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휘적휘적 팔을 저으며 걷던 그가 거대한 전각으로 불쑥 들어갔다.

전각 안에서도 한참을 굽이 굽이 걷던 그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리려던 찰나,

집무실 안쪽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들어와!”


백의사내는 집무실 안으로 성큼 발을 디뎠다.

이마에 손을 짚은 채 책상에 앉아있던 중년의 문사가 백의사내를 힐끗 노려보았다.


“부군사님, 부르셨습니까?”


전각이 떠나가라 울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중년문사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깊어졌다.


“좀 조용히 인사하라고 몇번을 이야기 했나. 응? 소리 좀 꽥꽥 지르지 말라고!”

“하지만 상하간에는 항상 엄격하게 예의를 지켜야···”

“예를 아는 사람이 이런 일을 저질러?!”


천마신교의 부군사, 종회가 책상을 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백의사내는 전혀 기죽은 모양새가 아니었다.


“제가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씀이십니까?”

“너, 어디서 모른 척을–”

“아, 얼마 전 목가(木家)를 고발한 일 때문에 그러시는군요. 그들은 신교의 재산을 사사로이 빌려가고도 수년 째 전혀 돌려놓을 생각이 없으니, 고발당해 마땅합니다”


허리와 목을 꼿꼿이 세운 채 대답하는 백의사내.

부군사 종회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목가는 천마신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팔가(八家)의 일원이야. 육영, 너같은 한낱 사도(司徒)가 흔들어 댈 수 있는 가문이 아니란 말이다”


사도(司徒)는 천마신교의 율법과 행정을 관장하는 중요한 자리. 그러니 ‘한낱 사도’라는 부군사의 표현은 옳지 않았다. 게다가 철저하게 무(武)가 중심이 되는 천마신교 안에서, 젊은 문사가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있는 것은 육영이라는 못생긴 사내가 얼마나 비범한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군사님”


사도 육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쥐새끼들이 하나 둘 돌아다니는 것을 냅두면 머지않아 곳간이 텅 비게되는 법입니다. 가문과 단주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재물이 없이 어찌 그들을 움직이고 부릴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는 원리원칙대로 하는 자가 있어야하는 법이지요”

“너.. 너···방금··· 쥐새끼라고?”


부군사 종회는 자신이 잘못 들은게 아닌가 싶어 귀를 의심했다.


“돌려서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말문이 막힌 부군사는 다시 한번 이마를 짚었다.

이 젊고 못생긴 사무관은 목숨이 열개라도 되는 것일까.


“아무튼 군사께서도 아주 곤란해지셨어. 목령생 가주께서 어제 발칵 이곳을 뒤집었지. 자네가 만약 이곳에 어제 있었다면 그대로 목이 따였을거야”

“저런”


사도 육영이 혀를 찼다.


“제가 군사를 직접 찾아뵙고 해명을 하겠습니다”

“어딜 찾아가겠다는거야?! 제발 설치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라. 너를 데리고 있다가 내 수명이 반쪽이 나겠어!”


한참 씩씩대던 부군사 종회가 말했다.


“군사께서 너에 관해 어제 하신 말씀이 있으시다. 그것을 그대로 옮겨주지”

“뭐라고 하셨는지···”


종회는 목소리를 낮추며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그 꼴통 좀 당분간 내 눈에 뜨이지 않게 해라”


입을 헤 벌리고 있던 육영이 말했다.


“부군사님. 성대묘사가 많이 느셨습니다”


벼루가 날아들었다.

육영은 재빨리 몸을 웅크려 그것을 피해냈다


“목가 사람들이 너를 찢어 죽이겠다며 날뛰고 있으니, 당분간 이곳 본산을 떠나있는 것이 좋겠어. 괜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잘못 걸려서 목이 달아나지 않게 말야”

“그 대단하신 팔가의 가주께서 한낱 문사를 상대로 무력행사를 하실 일도 아닌 것 같다만”

“제발 부탁이니 말 좀 들어라. 일단 좀 피해있으라고”


종회의 하소연에 육영이 결국 얌전히 머리를 조아렸다.


사실 이 일은 고발장을 낼 때부터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겉보기에는 단단해 보이는 천마신교지만, 팔가(八家)라 불리우는 공신가문들과 여러 단주들, 거기에 장로회까지 엮여 힘자랑과 정치질을 해대는 통에 안으로는 썩어 곪아들어가고 있었다. 교와 교인들을 위한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야금야금 자신의 세력을 불리는 데만 온통 관심이 있을 뿐이다.


마침내 아무 말 없이 고개숙인 그를 보며 부군사 종회가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군사께서 너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 자네 같은 젊은이가 고작 이런 일로 그 구렁이같은 가문들과 싸우느라 늪에서 허우적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네”


육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종회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제발 당분간 눈에 뜨이지 않게 하라는 것도 분명히 말씀하셨지. 꼴통이란 말도”


육영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부군사 종회는 책상에 있던 서류를 만지작거렸다.


“마침 네가 적당한 구실로 파견갈 만한 곳이 두군데가 있다. 본래는 천무관에서 전략과 전술에 관련된 수업을 할 교관이 필요하다고 요청이 왔었는데···”

“천무관이요? 그곳은 칼잡이를 기르는 곳이 아닙니까? 명경관(明經館)이나 지문관(知文館)이면 몰라도···”


최고의 인재양성기관인 천무관을 칼잡이 기르는 곳이라 표현하다니.

이 녀석은 정녕 천마신교에서 일하고 있는 녀석이 맞는 것일까.

부군사 종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방금 들어온 소식이 하나 더 있어. 암혼동의 교두가 급사(急死)를 했다고 하더군. 그곳 상황을 확인하고 정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다음 교두가 정식으로 임명될 때까지 임시교두 역할도 해야겠지. 너에게 썩 어울리는 일은 아니다만···”

“두가지 다 썩 땡기지는 않는데요.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까?”

“목가에 가서 얌전히 목을 내놓는 방법도 있다”

“갑자기 두 곳 다 군침이 도는군요”

“얼른 선택해라”

“...천무관이면 결국 팔가의 자제들이 태반인 곳 아닙니까? 답은 정해진 것 같습니다”


부군사 종회는 서류 하나를 남겨놓고 나머지 서류는 서랍 안 쪽으로 집어넣었다.


잘 된 일이다.

현재 사도를 맡고 있는 이 젊은이에게는 사실상 좌천이나 다름없는 곳이지만, 총본산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이니 모두에게 행복한 결론이라고나 할까. 암혼동의 교두가 왜 급사를 했는지는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좋은 구실이 생기니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공기 좋은 곳에서 푹 쉬다오라고. 혹시 모르지. 그곳에서 좀 쓸만한 녀석을 발굴해낼지도?”



#



본산의 문양이 찍힌 마차가 삐그덕거리며 암혼동의 입구 앞에 멈춰섰다.

입구를 지키던 무인들이 빳빳하게 차렷자세를 취했다.

곧 마차 문이 열리고, 웬 머리가 크고 왜소한 몸집을 가진 백의문사가 마차에서 내렸다.

개성있는 얼굴을 가진 문사가 휘휘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어. 쉬어라”


본산에서 어느 높으신 분이 조사나올지 몰라 바짝 얼어있던 무인들은 서로를 힐끔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뉘신지···?”


문사가 품을 뒤적거려 명패를 내밀었다.

무인은 명패에 적힌 직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명패 맨 위에 적힌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알았다. 이 초라하게 못생긴 젊은이는, 직급으로 치면 임풍 교두보다 적어도 세단계는 높은 사람이다.


“현장으로 가자”


얼이 빠져있던 무인이 다급히 백의문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육영은 거대한 동굴 내부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석주와 석순, 종유석으로 가득찬 거대한 동굴도 흥미로웠지만, 이곳을 개조해 십여세에 불과한 아이들 수백명이 훈련하는 곳으로 탈바꿈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본산에서 높은 관리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무인들이 헐레벌떡 모여들었다. 그들은 육영의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도, 거침없는 그의 움직임에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그를 안내했다.


육영은 뒷짐을 진 채 무인들을 따라 걸었다. 암혼동에 대하여 그가 주워듣거나 흘깃 문서에서 스쳐보았던 사실들이 주르륵 머리 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매년 암혼동이 소비하는 예산,

구년째 교두를 맡고 있던 임풍에 대한 하마평,

이곳에 근무하는 무인들의 수,

암혼동을 통해 입교하는 아이들의 수,

교육을 완료한 아이들이 어느 단으로 가장 많이 흘러들어갔는지 등.


그 중 흥미로운 것은 이곳 암혼동에서 천무관에 입단하는 아이가 배출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곳의 교관으로 가보라는 제안을 거절하긴 했지만, 그 또한 천무관이 교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곳인지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웬만한 재능과 연줄로는 입관을 꿈도 꿀 수 없다는 곳이 아니던가.

버려진 고아들을 긁어모아 키워내는 암혼동에서 천무관 입성자가 나오다니.


‘나랑 비슷하다고 봐야하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임풍 교두가 쓰던 집무실 앞에 도착해있었다.


“이곳입니다”


그를 안내한 교관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훅 끼쳐왔다.

소매깃으로 코를 가린 채 집무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집무실 가운데 위치한 탁자가 산산조각 나있는 것 외엔 다른 이렇다할 흔적이 없었다.

한쪽 구석에 엎어져 있는 거대한 대머리 시체 외에는.


끔찍한 시체였다.

피부 이곳 저곳에 검고 붉게 독기운이 올라와있었고,

손톱 사이 사이 벗겨진 피부가죽과 굳어진 피가 가득했다.

감지 못하고 크게 뜨여져 있는 눈과 일그러진 얼굴이 그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온몸에 가득한 독기운에 손에는 칼까지 잡고 있군. 그런데 왜 살인이 아니고 그냥 급사라고 보고서를 올렸지?”


그의 질문에 한 교관이 머뭇대며 답했다.


“신공을 연마하고 있을테니 근처에는 절대 얼씬도 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었습니다”

“그 명령을 받은게 누구냐?”


교관 셋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저희가 모두 함께 들었습니다. 평소 워낙 성격이···. 하신터라, 저희는 반박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들었다고? 직접 눈 앞에서 명령을 받은게 아니란 말인가?”

“하지만··· 정말 틀림없이 교두님의 목소리였습니다!”


육영이 가만히 교관들을 바라보자, 안색이 파리해진 그들이 말을 덧붙였다.


“다른 경우를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교두님의 집무실에 가려면 반드시 저희 교관들이 머무는 곳을 지나쳐야 하고, 감히 교두님을 시해할 수 있을 만한 자가 이곳에는 없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살인이 아니라고 판단한 근거가 또 있을텐데?”

“교두의 몸에 난 흔적이 마화단을 과다복용했을 때의 증상과 유사합니다”

“마화단?”

“여기 임풍 교두가 남겨놓은 문서가 있습니다”


반으로 잘라진 서류를 살피던 육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에는 여러 개의 마화단을 뭉쳐 새롭고 강력한 마화단을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마화단은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단약이다.

단약을 만드는데 투입되는 자원 대비 효과는 미미하고 다루기가 까다롭다.

그 독성과 부작용이 심해 다른 곳에서는 쉽게 쓰이지 않는 단약이었다.


“더 강해지고 싶은 욕망에, 스스로 무리해서 마화단을 복용했다 이 말인가?”


교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오십인데?”


교관들이 눈을 끔벅였다.

그 중 한 교관이 머뭇거리며 질문했다.


“저···혹시 호칭을 뭐라고 부르면 될지”

“사도(司徒)라고 불러라”

“사도님. 무공을 익히는 이들은 그 나이에 상관없이 항상 더 강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 법입니다”


무림인이라 이건가.

하지만 여전히 그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시체를 다시 한번 더 꼼꼼히 살폈다.


‘아니야. 분명 무언가가 더 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임풍 교두의 눈에 남아있는 표정이었다.

단순히 고통만으로 나올 수 있는 표정이 아니다.

누군가에 대한 강렬한 분노와 증오가 섞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옷을 벗겨보아라”


거대한 체구인 임풍의 옷을 벗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인들은 혹여나 독기운에 노출될까봐 주저하면서도, 칼날로 조심스레 그의 옷을 찢어냈다.


무성한 털로 뒤덥혀 있는 시체의 몸을 빙글 뒤집은 순간,

무언가를 발견한 교관들이 헙- 숨을 들이켰다.


임풍 교두의 옆구리에는 선명한 주먹의 흔적이 있었다.


성인의 것이라 하기에는 너무 작은 주먹의 흔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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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졸업 +2 24.09.13 618 22 14쪽
35 삼년 뒤 +2 24.09.12 694 24 14쪽
34 떠나는 순간 +2 24.09.11 738 21 14쪽
33 취조 +2 24.09.10 727 21 13쪽
32 군사(軍師) +2 24.09.09 743 21 13쪽
» 사도(司徒) +3 24.09.08 828 17 13쪽
30 내가 그렇게 정했다. +3 24.09.07 882 23 15쪽
29 약속 +2 24.09.06 907 20 12쪽
28 예감 +3 24.09.05 932 15 14쪽
27 발단 +2 24.09.04 952 15 13쪽
26 시비 +3 24.09.03 944 20 14쪽
25 알 수 없는 일 +2 24.09.02 953 24 14쪽
24 환희 +3 24.09.01 1,007 20 12쪽
23 증명 +3 24.08.31 990 19 13쪽
22 질주 +2 24.08.30 989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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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실험 +3 24.08.27 1,032 19 14쪽
18 자령화 +2 24.08.26 1,009 20 13쪽
17 수색 +3 24.08.25 1,018 18 14쪽
16 목표 +3 24.08.24 1,024 20 14쪽
15 두번째 만남 +3 24.08.23 1,066 18 12쪽
14 살인 +3 24.08.22 1,056 21 15쪽
13 사백이십삼, 사백이십사 +3 24.08.21 1,085 19 13쪽
12 마화단(魔火丹) +2 24.08.20 1,088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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