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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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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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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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두근거림

DUMMY

진선미는 말이 없었다. 1초, 2초, 3초, 4초, 5초. 심장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심장아, 나대지마. 제발.


가까스로.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좋아해”


그녀의 볼이 뜨거워지는 열기가 느껴졌다. 얼굴을 두리두리 흔들더니.


“아야야, 간지러워”

“귀에 이렇게 가까이 대고 말하면 어떻게 해”


“아아아-. 미안”


나는 팔을 풀고 허둥지둥 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들릴 듯 말 듯 말을 했다.


“아니... 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니고”


나는 고개를 숙여 그녀를 잠시 쳐다보지 못하다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녀도 막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던 시점에서 서로 눈이 마주쳤다.


화급히 고개를 다시 숙였다. 다시 그녀를 보려고 얼굴을 들었을 때, 그녀도 얼굴을 들었다.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내가 먼저 웃었다. 선미도 웃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데, 너무 작은 목소리여서 잘 들을 수가 없었다.


“응, 뭐라고?”


“ㅈ...ㅇ...”


그녀의 발음이 뭉개지고 작아서 잘 들리지가 않았다. 잘 들리지 않았다는 표시로, 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나도 좋아한다고!”


선미는 씩씩거리며 좀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귀여워 보이고, 예뻐 보였다. 새롭게 알게 되는 감정이 많았다. 설레임? 벅참? 기쁨? 무엇이라고 딱히 이름을 붙이기 힘든 감정이었다.


“응, 나도 많이”


우리 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웃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았다. 골프는 나와 선미, 그리고 다른 세상을 연결시켜 주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 보건실도 어둑어둑한 그림자가 들어섰다.


“근데 보건선생님은 어디 가셨어?”


“응 선생님은 퇴근 시간 되셔서 내가 너 보겠다고 했어”


“그럼 너 혼자 늦은 시간까지 힘들게 여기에 있었던 거야?”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

“네 옆에서 공부한다고 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렸네”

“헤헤”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선미에게 이런 모습도 있었던가. 반장으로 리더쉽도 있고, 여성이면서 듬직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여성 여성하면서도 어리숙한 느낌. 내가 늘 보던 선미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편했겠다”


그녀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뭔 소리야, 전혀 아니야”


“나 많이 괜찮아졌어”

“집으로 갈까?”


그녀는 내 목에 다시 손을 대었다가 이마에도 손을 대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가 다시 내 이마에 손을 대면 체온을 비교했다.


다 내린 열이 너 때문에 오르겠다.


“어...... 아직 열이 다 안 내린 것 같은데”


“아, 아니야”

“나 다 나았어 정말”


난 서둘러 눈에 보이는 짐들을 챙겨서 보건실 문 밖을 나왔다. 문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도 주섬주섬 짐과 가방을 챙겨서 나왔다.


“치-. 너 그렇게 나가기 있기 없기”


우리들은 교문 밖을 나와서 길을 걸었다.


“너희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미리 말씀 드렸지”


“골프 배우는 건 어때?”

“재미있어?”


“응”

“새로운 목표가 생긴 기분이야”


“다행이다”


우리는 걸으며 한참을 더 이야기했다. 골프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난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거든”

“아버지와 축구를 오랫동안 같이 했었어”


“그래서 축구를 못하게 된 게 나에게는 너무 슬펐어”

“내 목표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잃어버리게 된 것 같았거든”


“아버지를 많이 좋아했었구나”

“응”


“처음에는 아버지가 없는 게 실감이 안 되더라고”

“근데 같이 축구하던 아버지가 없으니... 그때 아버지가 없다는 걸 크게 느낀 것 같아”

선미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힘들었겠다”


“그래서 축구를 더 열심히 했었던 것 같아”

“축구를 하는 동안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 같았거든”


“... ...”


선미는 말이 없었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한 건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허심탄회하게 말 한 적이 없었다. 내 마음 속의 큰 짐들을 내려놓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 선미의 마음을 ‘무겁게 한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힘든 이야기겠지만 아버지는 어떻게...?”


“차를 몰고 가시는 중에 교차로에서 트럭이 와서 받았어”

“트럭은 교차로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돌진했고”


“너무 갑작스러운 사고여서 어머니께서 많이 힘들어하셨지”


그녀는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직도 아버지 생각 많이 나?”


“응, 가끔”

“축구를 같이 할 때가 가장 많이 생각이 났었는데, 지금은 아버지가 어떤 모습으로 골프를 하셨을까 궁금해졌어”


“골프?”


“응, 나 태어나기 전에 골프 선수였었다고 하더라고”


선미는 놀라워했다.


“정말?”


“응 선미 덕분에 골프를 시작해서 고마워”

“그래서 아버지가 걸어간 길을 한 번 찾아가볼 생각이야”


“와”

“정말 기막힌 우연이다”


“난 그냥 막연히 네가 골프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배려에 ‘많이 고마워’라고 생각하며.

길을 걸어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느덧 선미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녀의 집은 큰 대저택이었다. 언덕을 올라 살짝 외진 곳으로 들어오니 큰 대저택들이 즐비하게 한 줄로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그 집 중 하나를 가리키며, 자신의 집이 저 집이라고 말했다. 집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듯 한 실루엣이 보였다.


“아, 아빠다”


선미는 그녀의 아버지에게로 달려갔고, 아버지는 딸이 ‘지금 왔냐’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천천히 걸어서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녀의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네가 산이구나”

“그래 몸은 좀 괜찮아졌니?”


“네, 괜히 저 때문에 선미가 늦게 들어가게 되었어요”

“죄송합니다”


“죄송은, 몸이 나아졌다니 다행이네”

“선미 이 녀석이 아픈데 귀찮게 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예요. 선미 덕분에 빨리 나았어요”

“제가 미안할 정도로요”


우리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선미가 끼어들었다.

“아빠, 산이 아빠가 예전에 골프 선수였었데”


“정말”


“응”


그녀의 아버지가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성함이?”


“김, 무자, 준자 되세요”

“김무준이요”


그녀의 아버지는 살짝 놀라는 듯 했다. 나는 그것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알지 못했다.


“정말?”


“네”


선미도 끼어들어, 그녀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놀랍지?”


“응... 그렇구나”


그녀의 아버지는 나를 보고 미소 지으며.

“다음에는 선미와 함께 집에 오렴”


“네”


나는 그녀의 아버지께 허리 굽혀 인사를 드리고, 선미에게도 손짓하며 가겠다고 했다. 그녀도 손을 흔들었다.


***

방과 후,

어프로치 연습을 하고 한 주를 보냈다.


다양한 상황에서의 어프로치. 그린 위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연습했던 시간이었다. 어프로치와 퍼팅에서 중요한 건, 집중력과 자신감이었다.


어프로치와 퍼팅은, 스코어의 마지막을 결정짓는 순간이었기에 더 많은 집중력과 세밀함이 요구되었다. 나는 매 샷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했다.


연습을 하는 중, 몇 번의 신기한 경험을 했다. 주변의 모든 소리와 느낌이 페이드아웃(Fade-out)되어 멀어지고, 오롯이 공, 바람, 잔디의 결, 그린의 경사도, 홀컵의 모양만이 남는.


축구 경기에서 존(Zone)에 들어가는 경험과 비슷했다. 비슷하기도 하면서 달랐다. 축구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면, 골프에서는 자연과 더욱 동화되어 공과 홀컵에 집중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내 주변으로 배리어(Barrier)가 쳐지고, 공간이 분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때마다 경기 결과가 좋았다. 공을 홀컵에 넣거나 0.5m 이내로 붙이거나. 문제는, 이 묘한 경험이 매번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 더 많이. 더 오래 동안 이 경험을 느끼고 싶었다.


며칠 후, 금요일.


금요일 강좌 중 하나는,

골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다섯 가지 기둥(Five pillars)이라는 강좌였다. 강의를 하는 사람은, ‘지석기 프로’였는데 다음 주부터 진행하는 드라이버, 아이언 교습의 코치이기도 했다.


듣고 싶은 수업이어서 강의실 문을 열었다. 이제는 반가운 얼굴들이 제법 보였다.


정길수와 신윤호는 역시 같이 붙어 있었고, 경수진, 이찬호, 장호진도 흩어져 앉아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눈인사로 멀리 있는 세 명에게 인사하고, 길수와 윤호가 있는 곳으로 갔다.


길수는 ‘내가 이리로 올 줄 알았다’며 자리를 맡아놓았다고 했다.


“잘 살고 있냐?”

“얼굴 보기가 왜 이리 힘들어”


나는 길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잘 살고 있지”

“널 이기려고 무기를 만들고 있으니 기다려”


길수는 하찮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참, 나. 아마 100년은 지나야 할꺼다”


“아, 네네”


우리는 서로 웃었다.


지프로님의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모두 집중해서 강의를 들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골프의 주요 다섯 가지 기둥은, 멘탈 (Mentality), 숏게임 (Short-game), 롱게임 (Long-Game), 코스매니지먼트 (Course Management), 룰과 에티켓 (Rule and Etiquette)이라는 것이다.


골프라는 스포츠의 본질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골프는 ‘완벽’이 불가능한 경기이기에 끊임없이 자신의 실수, 주변 환경의 도전, 실수와 실패에서 오는 좌절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다른 스포츠보다 심리적인 영향을 크게 받았다.


골프는 다양한 경기의 콤비네이션이었다. 드라이버로 멀리 보낸다고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고, 아이언이 정교하다고 해도 퍼팅과 어프로치에서 실패하면 좋은 스코어를 내기 힘들었다. 퍼팅과 어프로치만 잘해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힘들었다.


결국 다양한 경기를 나 자신과 싸우면서 풀어나가야 하고, 매 샷마다 자신의 할 수 있는 모든 기량으로 경기를 해 나가야 하는 스포츠였다. 서로 다른 두 성격의 게임, 롱게임과 숏게임을 모두 잘 운영해 나가야만 했다.


자신의 골프 경기를 하면서, 골프 코스와 자연환경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전략을 세워야하고 샷 이후의 모든 책임과 리스크는 본인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경기 중 불공정하지 않기 위해서 룰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에티켓도 중요했다.


이 모든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골퍼는 체력적으로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단단해야 했다. 기술만이 아니라 영리하고 현명한 판단도 해야 했다. 정직과 신사의 스포츠라는 격에 맞게, 기본적인 태도와 매너도 지니고 있어야 했다.


멀리서 봤을 때, 단순하고 지루해 보였던 스포츠가 알면 알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 샷 한 샷을 하는 모습 이면에, 골퍼들의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업 이후, 나는 한동안 생각했다.


골프를 시작한 이후, 나는 어떠한 싸움을 나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일까?


골프를 하면서,

난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난 나와의 싸움을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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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제28화: 스매시 팩터 (Smash Factor) NEW 8시간 전 12 1 12쪽
» 제27화: 두근거림 24.09.18 34 1 12쪽
26 제26화: 알 수 없는 감정 24.09.16 44 2 11쪽
25 제25화: 여러 가지 방법 (2) 24.09.13 55 3 12쪽
24 제24화: 여러 가지 방법 (1) 24.09.12 62 2 11쪽
23 제23화: 불필요한 긴장감 24.09.11 61 3 12쪽
22 제22화: 그 놈의 등장 24.09.10 62 3 12쪽
21 제21화: 스크린골프 (2) 24.09.09 77 3 12쪽
20 제20화: 스크린골프 (1) 24.09.06 82 3 12쪽
19 제19화: 들통 24.09.05 83 2 11쪽
18 제18화: 첫 주말 24.09.04 81 3 12쪽
17 제17화: 다툼, 그리고 마무리 24.09.03 97 4 12쪽
16 제16화: 혼란스러운 감정 24.09.02 102 3 12쪽
15 제15화: 마음의 봄날 24.08.30 113 3 11쪽
14 제14화: 골프의 시작 (2) 24.08.29 115 3 12쪽
13 제13화: 골프의 시작 (1) 24.08.28 111 4 12쪽
12 제12화: 뜻밖의 발견 24.08.27 116 3 12쪽
11 제11화: 고민의 시간 (2) +1 24.08.26 116 3 11쪽
10 제10화: 고민의 시간 (1) 24.08.23 122 3 11쪽
9 제9화: 좌절 24.08.22 122 2 12쪽
8 제8화: 사건의 마무리 24.08.21 131 2 12쪽
7 제7화: 미필적 고의(2) 24.08.20 134 3 12쪽
6 제6화: 미필적 고의(1) 24.08.19 136 2 12쪽
5 제5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할 일 +2 24.08.16 142 2 12쪽
4 제4화: 알 수 없는 악의(惡意) 24.08.15 170 2 11쪽
3 제3화: 지긋지긋한 악연 24.08.14 176 3 12쪽
2 제2화: 또 다른 영역 24.08.13 203 4 12쪽
1 제1화: 좋은 날, 나쁜 날? +2 24.08.12 283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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