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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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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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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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경 대표 (1)

DUMMY

“에휴...”


부담스러운 듯, 깊은 한숨을 내쉬는 형우의 맞은편으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요원이 보였다.

고급진 침대부터, 커다란 냉장고, 책상 위에 놓인 수많은 다과, 병실 문앞을 지키는 요원들까지.

몇 번이나 극구 사양했건만.

형우의 병실은 홍승호 회장의 뜻에 따라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VIP 병실로 바뀌었다.


“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쉬십시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시고요.”


병원장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형우의 눈치를 살폈다.

이것도 퇴원할 때까지 극진하게 모시라고 명령한 홍승호 회장의 뜻이겠지.


똑똑 -


“들어오세요.”


병실에 도착한 김누리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건 뭐 호텔방도 아니고, 병실 안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고급진 가구들이 눈에 띄었다.


“아예 그냥 살림을 차리시지 그래요?”

“이건 제 뜻이 아니라...”

“알아요. 홍승호 그 양반 머릿 속에서 나온 거겠죠.”


형우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몸은 좀 어때요?”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검사 결과 다행이 가벼운 뇌진탕뿐이었고 약물치료만 받으면 퇴원을 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자주 찾아오셔도 되는 겁니까?”


형우는 매일 같이 병문안을 오는 김누리가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상관없어요. 차장님이 조금 쉬라고 휴가를 주셨거든요.”


김누리는 자리에 앉아 조사 진행 상황에 대해 자세히 털어놓았다.

안의균이 모든 죄를 인정함으로써 살인 미수, 특수폭행, 마약 유통의 혐의로 재판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나. 강재경 대표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안의균을 포함한 마약 밀수범들이 일형 아이앤씨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강재경 대표의 기억을 읽었던 형우조차 별다른 증거를 발견해내지 못했는데,

경찰 조사에서 그의 범행을 밝혀내리란 불가능한 일이겠지.

어쩌면... 김누리와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도 그의 소행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건 퇴원을 하고 자세히 조사해보면 알게 될 일.


“그나저나.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겁니까?”


김누리는 고개를 돌려 테이블 쪽을 노려보았다.


“...저요?”


김누리의 시선 끝으로 가만히 TV를 보고 있던 서태석의 모습이 보였다.

서태석은 손에 양주병을 들고 멀뚱멀뚱히 김누리를 쳐다보았다.


“하마터면 사람이 죽을 뻔했잖아요.”


서태석이 쓰러뜨린 괴한들 중 몇몇은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다행이 목숨엔 지장이 없었지만, 당분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괜찮아요.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거든요.”

“지금 장난해요? 조금만 늦게 도착했더라면, 분명 죽었을 거라고요.”

“어쨌든 안 죽었잖아요. 그럼 된 거죠 뭐.”


서태석은 태연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며 양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도대체 남형우 변호사는 이런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일을 하는 건지.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아직 안 들어왔던데.”


서태석은 양주병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김누리에게 손을 뻗었다.


“뭐가요?”

“알바비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까. 당장 어떻게 좀 해보라고요.’


아 참. 그런 말을 했었지.

바쁘게 조사를 받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건 제가 드릴게요.”


형우가 고개를 저으며 김누리를 말렸으나,

김누리는 고개를 저으며 품에서 종이봉투를 꺼냈다.


“됐어요. 내가 약속한 건데요 뭐.”


전에 받은 특별 보너스도 있으니, 그 돈으로 해결해볼 셈이었다.


“얼만데요?”

“200이요.”

“네. 알겠어요. 200... 네? 뭐라고요?”


터무니 없는 숫자에 김누리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5배라고 했으니 기껏해야 50만원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계산해야 하루 일당이 200만원이 되는 거냐고.


“지금 장난해요?”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입니까?”


김누리는 인상을 찌푸렸으나, 서태석은 당연하다는 듯 그저 눈을 끔뻑였다.


“아니. 어떻게 계산해야 200이 나와요? 당신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그렇지 않은가.

변호사도 아니고 일반 사무직 직원의 월급은 300 언저리 정도 될 터.

대형 로펌도 아닌,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의 몸 값이 그리 높을 리가 없잖아.


“600요.”

“네...?!”


어이 없는 금액에 김누리는 형우와 서태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루 일당을 30정도로 잡고. 야간 수당 1.5배에 추가 수당 5배라고 말씀드렸으니... 원래 225만원이지만, 깔끔하게 뒷자리 떼고 200. 계산이 잘못 되었습니까?”


고용주 앞에서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그렇다는 건 정말로 월급이 600이라는 건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딱히 법률 쪽 전문가 같지도 않아 보이기도 하고,

월급의 절반 수준만 되어도 충분히 직원을 뽑을 수 있을 텐데, 왜 이런 사람을 사무실에 들인 것일까.

김누리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종이봉투에서 돈다발을 꺼내들었다.


“개인 사무실에서 돈을 벌면 얼마나 번다고. 세상에 사무실 직원 월급을 600이나 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모르시나 본데. 우리 사장님 돈 많아요.”

“네?”


생각해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아직 20대의 젊은 사람이 개인 사무실을 가진 것도, 값 비싼 차를 끌고 다니는 것도.

사회 초년생이라고는 볼 수 없는 재력이었다.

금수저라고 하기엔 어머니께서는 분명 음식점에서 일을 하신다고 했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아무리 엘리트 변호사라지만, 이게 가능한 수준인가...?


“크흠. 돈은 제가 드릴 테니까. 검사님께서는 신경 쓰지 마세요.”


형우가 다급히 말을 돌렸다.

차마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의 기억을 읽어 주식투자로 돈을 벌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아니요. 약속은 약속이니까. 드릴게요. 200.”


김누리는 현금을 봉투에 담아 서태석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종종 이용해주세요.”

“됐거든요.”


싱긋 웃는 서태석의 태도에 반해 김누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의도치 않은 큰 지출에 화가 치밀어 올라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던 찰나.


똑 – 똑 -


문 밖으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서태석이 대신 문을 열자, 배달부 하나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쪽에 놔 주세요.”


침대 밑에는 음료수 바구니와 함께 과일 바구니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에휴... 설마 이거 다 그 양반이 보낸 거예요?”


김누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홍승호 회장은 한 시라도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없는 것인가.

대부분의 바구니는 홍승호 회장이 보낸 것이었다.

그 중에서는 몇몇 다른 이름도 보였다.

교도관 배성도, 차장 검사 윤상신.

그리고...


“일형 아이앤씨...? 변호사님 강재경 대표랑도 아는 사이에요?”


그 순간.

형우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이리 줘보세요.”


형우는 다급히 과일 바구니를 빼앗아 그 안의 봉투를 확인했다.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 일형 아이앤씨 강재경 대표 -」


짧은 메시지와 함께 봉투 안에는 무언가가 적힌 종이가 들어있었다.

형우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싸늘한 표정을 짓더니,

곧장 겉옷을 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호사님? 어디 가시려고요!? 아직 몸도 다 안 나았는데...”


하지만 형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급히 병실 밖을 나섰다.


“변호사님...?”


***


일형 아이앤씨 본사.

차에서 내린 형우는 건물 엘리베이터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경비 하나가 앞길을 막자, 형우는 그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재경 대표를 만나러 왔습니다.”


직원증도 없이 다짜고짜 들이닥친 형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경비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형우를 경계했다.


“사전에 약속을 하셨습니까?”

“아니요.”


경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형우의 앞을 막아섰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약속을 잡고 다시 찾아와 주십시오.”

“이 명함을 강재경 대표에게 전해주십시오.”


경비는 형우의 명함을 확인하고는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 변호사 한 분이 찾아오셨는데요. 남형우 변호사라고.

- 잠시만요.


...


- ...네. 알겠습니다.


무슨 대답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경비는 태도가 바뀌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건물 20층.

강재경의 사무실 앞에 도착하고.

경비는 곧장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다.


“빨리 오셨네요.”


강재경 대표는 경비에게 나가보라고 손짓한 뒤, 차분히 커피를 마시며 상석에 앉았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형우의 손에는 아까 봉투에서 꺼냈던 종이가 들려있었다.


「일형아이앤씨 법무팀 계약 제안서」


계약서 맨 밑에는 연봉 3억원이라는 터무니 없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말씀 나누시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보낸 거냐고요.”


형우는 자리에 우뚝 서서 서늘한 눈빛을 쏘아댔으나, 강재경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어깨를 들썩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거기 적힌 그대롭니다. 그쪽을 고용하고 싶어서요.”


대체 뭐 하자는 건지.

눈앞의 남자는 자신을 죽이라 명령했던 사람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원수를 자신의 품에 들일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금액이 부족하시면 말씀하세요. 변호사님께서 원하시는 금액에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강재경은 진심이었다.

그의 표정에서는 전혀 거짓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신이 안의균 검사와 유착관계가 있었다는 거. 내가 모를 것 같아요?”


강재경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곧장 표정을 풀고 대답했다.


“그러니까요. 불의의 사건으로 자리 하나가 비어서요. 그쪽이 대신 자리를 채워줬으면 좋겠는데.”


안의균의 이름을 언급했음에도, 강재경 대표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절대로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걸까.

안의균과의 관계를 딱히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 입 다물어. 너 같은 놈이랑 일할 생각 추호도 없어.”


형우의 눈빛에서 살의가 느껴졌다.

숨기려고 했지만.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살해해놓고 아무렇지 않게 미소 짓는 그의 태도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흐음...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죠. 이건 아무한테나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역겨웠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곳에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우는 손에든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문쪽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려 사무실 문을 열기 직전.

형우는 낮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만 기다려. 복수는 이제 시작이니까.”


쿵 -


형우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고, 강재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원한이라도 있는 걸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장님.”


강재경 대표의 질문에 구석에 숨어 대화를 엿듣고 있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이제 부장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감정 없는 표정으로 강재경에게 다가온 수상한 사내.

윤상신 차장 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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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배신자 (5) 24.09.11 44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40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43 3 12쪽
22 배신자 (2) +1 24.09.07 43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43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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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7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5 3 12쪽
17 재회 (2) 24.09.02 56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62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65 4 15쪽
14 오해 (3) +1 24.08.29 76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7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89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92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96 6 11쪽
9 서태석 (1) +2 24.08.23 10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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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25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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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27 7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27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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