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새글

두지도
작품등록일 :
2024.08.14 17:16
최근연재일 :
2024.09.17 23:59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033
추천수 :
117
글자수 :
161,103

작성
24.09.09 20:34
조회
36
추천
3
글자
12쪽

배신자 (3)

DUMMY

“당신 뭐야?!”


주류 회사 직원들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홍승호에게 다가갔다.

바닥에 나뒹군 컨테이너에서는 좀 전의 충격으로 인해, 술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허허. 미안합니다. 내가 아직 운전이 서툴러서요.”


호탕하게 웃는 홍승호 회장의 모습에 직원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그리고. 애초에 당신은 우리 쪽 운전수도 아니잖아.”


상품이 손상되어 걱정하는 직원들과는 달리 홍승호는 씨익 웃으며 관리자에게 명함을 건넸다.


“미안합니다. 제 실수로 벌어진 일이니, 이쪽으로 연락하시면 전부 배상해드릴 겁니다.”

“참나. 이게 다 얼마인 지나 알아? 아무리 못해도 50억이야. 당신이 무슨 수로 그렇게 큰 돈을...”


순간 명함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직원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이런 곳에...”


홍승호 회장은 씨익 웃어 보이더니,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어. 그래. 나일세. 지금 바로 장당 주류 앞으로 사람 하나 보내게.

-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는 전화를 끊으며 만족스럽다는 눈으로 형우를 향해 한쪽 눈을 감았다.


“...그쪽이 말한 방법이 이런 거였습니까?”


김누리는 넋이 나간 얼굴로 형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마도요...”


사실 형우 입장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납품되는 술을 전부 매입해달라고 부탁했지.

이런 식으로 무식하게 일을 벌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컨테이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때.


“검사 양반. 퍼뜩 조사 안 하고 뭐 하는가?”

“아... 네.”


홍승호가 보채자, 그제서야 김누리는 마약 수사대를 이끌고 컨테이너로 향했다.

조금 무식한 방법이긴 했지만,

대부분의 술병이 깨지는 바람에 일일이 모든 병을 열어보아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깨지지 않은 몇몇의 병과, 바닥에 쏟아진 술의 성분을 감식해본 결과,

운반책이 가지고 있던 마약과 똑같은 성분의 마약이 발견되었다.


“지금부터.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을 긴급 체포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누리는 검찰청으로 돌아가 장당 주류의 모든 직원을 심문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술 안에 마약이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을 무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납품을 받는 거래처 중 하나가 벌인 일이라는 것이겠지.


당장 모든 거래처를 조사해보면 범인을 잡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장당 주류와 거래하는 업체는 총 300여 곳.

내일이 되면 장당 주류에서 마약이 적발되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퍼질 텐데.

거래처에 도달하기도 전에 증거를 모두 인멸해버린다면, 또다시 사건이 미궁에 빠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

개인이 조사한다고 해서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였다.


...


“그런 의미에서 지원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검사장님.”


긴급 대책 회의에 참여한 김누리는 비장한 얼굴로 검사장과 얼굴을 마주했다.


“그래요. 김누리 검사. 얼마나 더 필요하겠습니까?”

“전원이요.”

“...네?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서울지검 전 인원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김누리의 충격적인 요구에 검사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안됩니다. 확실하지도 않은 사건에 검찰청 전 인원을 배정할 순 없습니다.”


안의균 검사가 다급히 김누리의 말에 반박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장당 주류 직원들이 거짓 증언을 하지 않았다는 보장도 없고,

마약 사건 하나 때문에 각자 맡은 사건을 전부 미룰 수도 없는 법.


“흐음...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대한 사건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전 인원을 배정하는 건 내 권한 밖이에요.”


회의에 참여한 대부분의 검사들은 고개를 내리 저었다.


“마약 전담팀을 배정하고 경찰에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봐요. 김누리 검사. 범인을 잡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건을 미룰 수는 없습니다. 사건의 우선순위는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검사장은 싸늘한 눈빛으로 김누리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검사장의 완고한 태도.

분한 마음에 고개를 푹 떨구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검사장님.”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윤상신 차장검사가 포문을 열었다.

윤상신 차장 검사.

그는 경찰 출신이었던 김누리를 검사의 길로 이끌어준 은인으로

악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검찰청 안에서 김누리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검사장님 말씀대로 사건의 우선순위는 저희가 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증거 인멸의 여지가 있는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 정도는 판단할 수 있죠.”

“흐음...”


검사장은 허리를 앞으로 숙여 고민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만큼이나 이 바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저희 검찰은 무엇보다 공익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이번에 발견된 필로폰만 해도 40kg가 넘습니다. 100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죠. 만약 이대로 마약범들을 놓친다면 이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논리정연한 윤상신 차장검사의 말에 무게가 실렸다.


“그리고...”


윤상신 검사는 검사장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번 사건만 성공적으로 해결한다면, 다른 검찰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공을 세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 달에 있는 인사 평가에도 틀림없이 반영이 되겠지요.”


‘인사 평가’라는 단어에 검사장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깊어졌다.

그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끝내 한숨을 내쉬며 윤상신 검사에게 대답했다.


“3일. 그 이상은 저도 힘듭니다.”

“검사장님!!”


안의균 검사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검사장의 이미 결정을 마친 듯 보였다.


“지금부터. 우리 서울지부검찰청 전 인원은 이번 마약 사건에 집중합니다. 민생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인 만큼. 반드시 성과를 보여야 할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검사들은 곧바로 제 사무실로 돌아가 수사에 착수했다.


“감사합니다. 차장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수사나 똑바로 해. 정 감사하면 나중에 술이라도 한 잔 사던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는 김누리를 뒤로하고,

윤상신 검사는 김누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


검찰청 전 인원이 조사에 착수한 유일무이한 사건인 만큼.

엄청난 숫자의 검찰과 경찰들이 수사에 참여했다.

3일을 기다릴 것도 없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외곽의 한 물류 업체에서 마약을 제조하는 일당이 적발되었다.


「 민생을 보호하는 서울지부검찰청. 100여명으로 구성된 마약 조직 검거. 」


신문과 뉴스에서는 이례적인 마약 조직 검거에 대한 내용으로 떠들썩였다.

물론 기자회견에서는 담당 검사인 김누리가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 수사에 도움을 준 남형우 변호사에게 공을 돌리려 했으나,

극구 반대하는 바람에 딱히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김누리 검사. 고생 많았습니다.”


검사장은 읽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고 방긋 미소를 지으며 김누리를 맞이했다.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검사장의 얼굴.

본인조차 너무나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저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그래.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마. 자네의 공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김누리의 사건에 숟가락을 얹은 것이 조금 눈치가 보였는지, 검사장은 괜스레 눈치를 살폈다.


“아닙니다. 검사장님의 현명한 결단이 없었더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껄껄. 김누리 검사는 얼굴처럼 말도 예쁘게 하네요.”


검사장은 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거 받아요.”


봉투를 열어보니, 5만원권 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다.

김누리는 황급히 봉투를 다시 내려 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이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검사장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옆에 앉은 윤상신 검사와 눈을 마주하고 큰 소리로 웃어댔다.


“무언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 이 돈은 제가 드리는 게 아닙니다.”

“네...?”

“허허. 제가 뒷돈이나 건네는 파렴치한 검사로 보였나 봅니다. 이 돈은 이번 사건에서 큰 공을 세운 김누리 검사님께 국가에서 주는 특별 보너스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김누리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고개를 숙였다.


“윤 검사가 사람 보는 안목은 확실하네요. 솔직히 차장님께서 김누리 검사를 받아들인다고 했을 때, 낙하산은 아닌지 의심했었는데. 제가 괜한 걱정을 한 모양입니다. 껄껄.”


불쾌할 수 있는 상황에도 검사장은 윤상신 검사와 함께 큰 소리로 웃어댔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보고드릴 게 하나 더 있습니다.”


김누리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게 변했다.


“말씀하세요.”

“마약 조직범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들의 뒤를 봐주던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게 누굽니까?”


김누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안의균 검사의 이름을 꺼냈다.


“확실합니까?”


김누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검사장의 입가에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설마 검찰 내부의 사람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검사장이 윤상신 차장 검사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사실을 공표한다면, 검찰청은 세간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예민한 사안인 만큼 조용히 처리하시죠."


검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에 대기하던 조사관에게 안의균 검사를 불러 오라고 명령했다.


잠시 후.


똑똑.


문 밖으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조사관뿐.

안의균 검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의균 검사님께서는 오늘 아침 사표를 내셨다고 합니다."


***


한편. 강재경의 사무실.


검정색 모자를 푹 눌러쓴 안의균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강재경이 오기를 기다렸다.


철컥.


강재경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안의균은 곧장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작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 차가운 태도에 안의균은 곧장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가 들으면 제가 그쪽을 죽이기라도 한다고 오해하겠습니다.”


강재경은 안의균을 흘깃 내려다보더니, 맞은편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시키시는 건 뭐든 하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이제 검사 명함도 내려놓으셨는데. 그쪽이 나한테 뭘 해줄 수 있다는 겁니까?”

“...”


싸늘한 강재경의 태도에 안의균의 고개가 아래로 푹 쳐졌다.

강재경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마시며 잠시 고민하다가, 깊은 한숨과 함께 갈색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그래도. 그동안 열심히 일해주셨으니, 보상은 해 드려야지요.”


종이봉투 안에는 위조 여권과 함께 항공권, 그리고 돈이 담긴 비밀 계좌가 들어있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강재경은 손에 든 종이봉투를 뒤로 젖히며 안의균을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


“갈 땐 가더라도, 그쪽이 벌인 일은 본인 손으로 마무리 해야 하지 않겠어요?”


안의균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강재경에게 예의를 갖추고는 싸늘한 분위기로 사무실 밖을 나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꼬리(2) NEW 2시간 전 8 0 11쪽
29 꼬리(1) 24.09.16 23 2 12쪽
28 강재경 대표(3) 24.09.16 21 2 11쪽
27 강재경 대표 (2) 24.09.13 32 3 12쪽
26 강재경 대표 (1) 24.09.12 28 2 11쪽
25 배신자 (5) 24.09.11 38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4 3 13쪽
» 배신자 (3) 24.09.09 37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8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7 3 14쪽
20 진실 24.09.05 42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2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0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58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60 4 15쪽
14 오해 (3) +1 24.08.29 70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1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78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85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87 6 11쪽
9 서태석 (1) +1 24.08.23 95 4 12쪽
8 또 너야 (2) +1 24.08.22 92 5 13쪽
7 또 너야? (1) +2 24.08.21 105 4 11쪽
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11 5 14쪽
5 김누리 검사 (4) +1 24.08.19 112 6 12쪽
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5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4 4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32 5 12쪽
1 아버지의 죽음 +2 24.08.14 158 6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