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새글

두지도
작품등록일 :
2024.08.14 17:16
최근연재일 :
2024.09.17 23:59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022
추천수 :
117
글자수 :
161,103

작성
24.08.19 17:41
조회
111
추천
6
글자
12쪽

김누리 검사 (4)

DUMMY

15년 전.


김누리의 유년 시절은 평범했다.

부잣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건설 현장에서 자그마한 사업을 하셨기에 돈 때문에 걱정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한 번도 싸우신 적이 없으실 정도로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큰 재앙이 찾아왔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께서 철골에 깔리는 사고가 벌어졌고, 한 쪽 다리를 잃으셨다.


이제 침울하고 고달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매사에 긍정적인 아버지를 둔 덕분일까.

한쪽 다리를 잃은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아버지께서는 단 한 순간도 미소를 잃으신 적이 없으셨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아버지께서는 당연히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보험금 대부분은 병원 치료비로 들어간 상황이고,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상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공장에 취업하시긴 했으나,

그 적은 돈으로 3명의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무리였다.

고된 노동으로 매일 저녁 쇼파에 앓아 누워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부모님께 용돈을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원래는 학교를 때려치우고 어머니와 함께 일을 하려고도 했지만,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걸 원치 않으셨다.

집안 문제는 어른들이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으로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어머니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주말마다 몰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준비물이나 책을 살 돈이 필요하기도 했고,

운이 좋으면 폐기 음식을 공짜로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비슷한 생각을 하셨던 걸까.

어디선가 작은 붕어빵 기계를 얻어오시더니 가족들 몰래 시장 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하셨다.


솔직히 아버지도 김누리도 서로 밤늦게 돈을 벌러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책임지겠다.’라고 말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니까.

오늘 벌지 못하면 내일을 굶어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

그럼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미 어둠이 그윽한 이 집안에서 미소조차 사라진다면,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었으니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다시 행복이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집안 형편은 나아질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의 미소는 가식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부모님께서는 처음으로 부부싸움을 하셨다.

병원비가 두려워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아버지.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하소연하는 어머니.

본인이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차마 어른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다.


운수 좋은 날이라고 하던가.

그날 따라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전교 1등의 성적을 거두어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편의점에서는 열심히 일했던 성과를 인정받아 시급을 올려주셨다.

또, 값비싼 생크림 케잌이 폐기 상품으로 남겨져 있었는데.

마침 그날은 어머니의 생신.

점장님께 여쭈어보니, 흔쾌히 케잌을 가져가라고 말씀하셨고.

어머니 선물로 꽃까지 챙겨주시며 일찍 퇴근시켜주셨다.


오랜만에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생일 파티를 하면 분명 부모님께서도 화해 하시겠지.

오늘만큼은 예전처럼 행복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가 기뻐하실 모습을 상상하니,

집에 가는 길 내내 입가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김누리의 행복은 무자비하게 짓밟혔다.

집 주변을 둘러싼 경찰차와 구급차.

처음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늘은 어머니 생신인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거니 싶었다.


그 순간.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오는 소방대원의 모습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흰 천 아래로 흘깃 보이는 싸늘하게 식은 몸뚱아리.

잘못본 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분명... 어머니였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도무지 상황파악이 되질 않았다.

어안이 벙벙해져 가만히 멍을 때리고 있던 그 순간.

집밖으로 아버지가 나왔다.


“아빠...!”


그러나 아버지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아빠...!?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아니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지?”


아버지는 면목 없다는 얼굴로 눈을 피하며 김누리를 지나쳐갔다.

어떤 상황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인데.

그날 아버지의 표정은 참으로 차가웠다.


장례를 치루고 사건 조사를 받을 때까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정말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머리를 열심히 굴려봐도 정말 아버지가 그랬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아버지와의 면회를 신청했지만,

재판 당일까지 아버지는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시지 않았다.


“X발. 몇 번을 말해요. 그년이 짜증나게 해서 죽였다고. 깜빵에 보내든가 말든가 상관 없으니까. 빨리빨리 좀 끝냅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 낯설었다.

시건방지게 팔짱을 끼고 재판을 받는 아버지의 모습.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욕설.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는 태도까지.

여태 함께 살아왔던 아버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눈앞의 남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아내를 살해한 남편.

흉악한 죄질과 더불어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에 법정은 곧장 무기징역을 판결했다.


아직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빠... 아니잖아... 아빠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 뭐라고 말 좀 해봐.”


김누리는 눈물을 쏟아내며 팔을 부여잡았지만,

아버지는 있는 힘껏 뿌리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x발. 진짜 끝까지 사람 귀찮게 만드네. 야. 내가 왜 네 아빠야? 난 단 한 번도 너를 내 딸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그러니까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분명 아버진데.

분명 우리 아버지가 맞는데...


눈물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 눈물은 용서할 수 없는 분노로 변했다.


그날 김누리는 가족을 잃었다.

아버지를 혐오하고. 또 혐오한다.

아니.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다.


이것이 김누리가 검사가 된 이유다.

가정을 파탄시키는 아버지같은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그리고 또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


***


“검사님..? 김누리 검사님...!?”


형우의 다급한 외침에 그제서야 김누리가 정신을 차렸다.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안 좋으세요.”


이마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식은 땀줄기.

김누리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찮기는요.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리시는데. 어서 병원에라도...”

“괜찮다고요.”


김누리의 눈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어쩌면 당연하다.

가정을 파탄시킨 아버지와 같은 사람을 변호하는 눈앞의 남자.

김누리에게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원수나 다름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지랖을 떨었네요.”

“그건 그렇고. 아까 낚시 뭐 어쩌고 말씀하신 건 어떻게 된 거죠? 만약 조사를 방해할 생각이셨다면 가만히 넘어가진 않을 겁니다.”


협박에 가까운 사나운 말투.

그녀의 말이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건 형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 쯤이면 도착할 시간이 됐는데...”


형우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던 그 순간.


쿵 -


누군가가 가게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왔다.

얼핏봐도 10명이 넘는 덩치들이 순식간에 형우의 테이블을 에워쌌다.

검은 모자. 그리고 마스크 차림.

정체를 숨긴 걸 보면 순순히 대화를 하러 온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두 발로 곱게 걸어 나가고 싶으면 가진 거, 다 내려놔.”


협박 깔린 낮은 목소리.


쾅 -


대답도 하기 전에 덩치의 칼이 테이블 위에 박혔다.


“허튼 짓하면 죽을 줄 알아.”


형우는 여전히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김누리에게 윙크하며 신호를 주었다.


“하... 이 정도 사이즈면 미리 말씀을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라는 거야. 내 말 못 들었어? 가진 거 다 내려놓으라고.”


당장이라도 칼을 들이 밀으려는 덩치의 협박에 김누리는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바로 그때.


탕 -


김누리의 손에서 강한 총성음이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는데.”

“x발. 함정이었나.”


당황한 덩치들이 서둘러 가게 밖으로 도망치려던 그 순간.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밖에서 대기하던 경찰들이 테이저건을 들이밀며 안으로 들어왔다.


“다 치워버려.”


우두머리의 명령에 덩치들이 경찰들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경찰을 제압할 순 없었다.


“x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끝내 우두머리가 테이저 건을 맞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조심스럽게 그의 마스크를 벗겨내니,

그는 아까 카페에서 마주쳤던 이택수였다.


***


“몇 번을 말해요. 그냥 사람을 잘 못 본 거라니까. 검사님인 줄 알았으면 내가 건드리지도 않았지.”


어두컴컴한 조사실 안.

조사를 시작한지 3시간도 넘었건만.

이택수는 여전히 의자에 등을 기대며 비아냥 거렸다.


“지금 장난해? 칼을 들고 왔으면서 찌를 생각이 없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럴 생각 없었다니깐. 그리고 때리기도 전에 제압당했으니까 폭행 미수 아닌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당신들이 먼저 테이저건 쐈잖아. 우린 정당방위라고. 안 그래?”


무슨 배짱인 건지. 죄를 저질러서 잡혀온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이택수의 태도는 당당했다.

진전 없는 사건 조사가 계속 될 때쯤.

관할 경찰 서장이 조사실 안으로 들어와 김누리를 불러냈다.


“김누리 검사님. 잠깐 나 좀 봅시다.”


조사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경찰 서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검사님. 그냥 없던 일로 하시죠.”

“예?”


경찰 서장은 누가 엿듣는 사람은 없는지 잠시 눈치를 살피고는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솔직히 검사님 부탁으로 출동한 거긴 한데... 검사님께서 먼저 공포탄을 쏘시지 않았습니까. 혹여나 과잉 진압이라는 말이 나오면 어떡합니까. 저희 입장도 조금 생각해 주십쇼.”

“서장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검사한테 칼을 들이미는데. 가만히 있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총도 저희가 빌려드리지 않았습니까...! 절차 없이 총을 분출했다는 말이 나오면 저도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번만큼은 검사님께서 조금 양보 하심이...”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럼 저도 다른 방법이 없네요. 검찰 측에 정식으로 항의서를 제출하겠습니다.”

“서장님!!”


점점 언성이 높아지자,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형우가 싸움을 중재했다.


“두 분 다 그만하시죠. 지금 저희끼리 싸워서 뭐하겠습니까.”


김누리와 경찰 서장은 팔짱을 끼고 서로의 눈을 피했다.

서로 양보할 생각이 없는 싸늘한 분위기에도 형우는 오히려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꼬리(2) NEW 1시간 전 5 0 11쪽
29 꼬리(1) 24.09.16 23 2 12쪽
28 강재경 대표(3) 24.09.16 21 2 11쪽
27 강재경 대표 (2) 24.09.13 32 3 12쪽
26 강재경 대표 (1) 24.09.12 28 2 11쪽
25 배신자 (5) 24.09.11 38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4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36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7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7 3 14쪽
20 진실 24.09.05 42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2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49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58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59 4 15쪽
14 오해 (3) +1 24.08.29 70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1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78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85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86 6 11쪽
9 서태석 (1) +1 24.08.23 95 4 12쪽
8 또 너야 (2) +1 24.08.22 92 5 13쪽
7 또 너야? (1) +2 24.08.21 105 4 11쪽
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10 5 14쪽
» 김누리 검사 (4) +1 24.08.19 112 6 12쪽
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4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4 4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32 5 12쪽
1 아버지의 죽음 +2 24.08.14 157 6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