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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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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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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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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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2)

DUMMY

“지금... 그게... 하...”


김누리는 당장이라도 형우에게 달려들 듯 싸늘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10년도 넘게 지난 사건을 갑자기 들먹이더니.

이번엔 또 뭐?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검사님도 아시잖아요. 김성도씨는 사람을 죽일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

“그 입 다물어.”


알고 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에 대한 믿음은 증오로 변했고,

더 이상 그의 얼굴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 뭘 안다고 참견이야.”

“저는 진실을 밝히고 싶을 뿐입니다.”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말이야. 그 자식 때문에 지옥 같은 인생을 살았어.”


가족을 모두 잃고난 뒤,

김누리는 같은 동네에 살던 고모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와 그 식구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자연스레 김누리는 보육원에 맡겨져 평생을 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제 손으로 가정을 완전히 박살내버린 아버지,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도 변명조차 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었다.


“김성도씨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도무지 형우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성도의 변호인도 아니고,

심지어 당사자가 범행을 인정하겠다는데,

왜 사건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그의 무죄를 부정하는 거냐고.


“그래. 당신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럼 죽이지도 않았으면서 본인이 죽인 것처럼 꾸몄다는 거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만한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형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김누리를 가리켰다.


“당신 때문입니다.”

“뭐...?”


어처구니 없는 대답에 김누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개소리도 적당히 해야지.

슬슬 짜증이 올라와 자리를 떠나려는데,

형우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당시 김성도씨는 개인 파산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게 사건이랑 무슨 상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김누리의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김누리에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그런 불길한 생각이.


“지금 그 말은...”

“맞습니다. 피해자께서는 스스로...”

“헛소리 하지마. 그럴 리가 없잖아.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


형우가 침묵하자 김누리는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10년도 넘게 지난 사건에 증거가 남아있을 리가 없지.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검찰 측에서 확인하지 못 했을 리가...”

“있습니다. 증거.”

“뭐?”


형우는 진지한 눈빛으로 김누리의 두 눈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김성도씨는 노끈으로 피해자의 목을 조여 살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동기는 말다툼으로 인한 우발적 살인이죠. 맞습니까?”

“...”

“당시 피해자의 몸에 다른 상흔이 발견되었습니까?”

“그럴 리 없어. 당신이 뭘 알아. 우리 엄마는 그럴 사람이...”

“김누리 검사님. 제 질문에 대답해주세요.”


김누리는 충격이 가시질 않는 듯,

한참을 망설이다가 끝내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사람은 죽을 위기에 처하면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발악을 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김성도씨가 정말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면, 피해자의 몸에 몸부림친 흔적이 남아있어야만 합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부검 자료를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김누리의 머릿속에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똑똑히 남아 있었으니까.

아무리 기억을 되뇌어보아도 어머니의 몸에는 멍이나 다른 상처가 남아있지 않았다.


“사건 당일 김성도씨는 피해자의 시신을 목격하고 수많은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


슬픔을 뒤로 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생각.

부인이 죽고 둘만 남게 되면 김누리는 장애를 지닌 김성도를 평생 부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김누리는 미성년자.

파산으로 인해 남은 재산마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 순간 김성도는 가슴 아픈 결정을 내렸다.

사망 보험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돈을 받을 수 없겠지만,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면,

수령인으로 지정된 딸 김누리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풍족하진 않아도 지금처럼 가난하게 살아가진 않겠지.


그리고 만약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가게 되면...

자연스레 자신을 부양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김성도는 어머니의 목을 조르던 노끈에 자신의 지문을 남기며 속죄의 눈물을 흘렸다.

다리를 잃고 큰 빚을 떠안았을 때부터 본인을 짐이라 여겼다.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이렇게 가족들이 힘들어하지 않았을 텐데.

어린 나이에 김누리가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생계에 못 이겨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도 없었겠지.


사실 부인을 죽인 건 자신이라 생각했다.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서.

무책임하게 집안의 생계를 떠넘긴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니 김누리 만큼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 만큼은.

부디 자신을 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더욱 모질게 대했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김누리가 자신을 잊지 못할 테니까.

독하게 마음을 먹고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


“평소 김성도씨는 매일 8시 30분에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제가 왜 이 말을 하는지 검사님께서도 충분히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했다.

아버지는 매번 김누리보다 10분 정도 뒤에 집에 도착하셨다.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에도.

야간 일을 할 때도.

단 한 번도 집에 먼저 돌아오신 적이 없었다.

어쩌면 목발을 짚고도 빠르게 걸을 수 있게 된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우의 말을 끝까지 들은 김누리의 눈에서 서글픈 눈물이 흘렀다.


“하...”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원망인지.

아니면 슬픔인지.

김누리 본인조차 자신의 감정을 헤아릴 수 없었다.

하나 확실한 건.

평생 가슴 한 켠에 달고 살았던 강한 통증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건을 진지하게 재조사했더라면 진작 아버지의 무죄를 증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떠올리기조차 힘든 기억을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회피했다.

아버지를 원수로 삼으며 평생을 증오하며 살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었을 테니까.


“지금 상황에 이런 말씀을 드리기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김성도씨 본인의 의지 없이 무죄를 밝히는 건 불가능합니다. 제가 아무리 설득해봐도 소용이 없더군요.”

“그렇겠죠...”

“한 번 만나보시겠습니까?”


김누리는 형우의 말을 무시한 채, 홀로 시장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차마 그녀의 발걸음을 멈춰 세울 수 없었다.

아무리 씩씩한 그녀라고 해도

혼자 생각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


시간이 흘러 김성도의 접견 날짜가 다가올 때까지.

김누리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수년간 아버지를 잊고 살아온 그녀에게 너무나도 힘든 결정일 테니까.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


혼자라도 김성도를 면회하려 교도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때.


끼익 -


주차장에서 익숙한 차량 한 대가 눈에 띄었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온 김누리는 곧장 차에서 내려 형우에게 다가왔다.


“오셨군요.”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오늘 피해자 유족이 아닌, 검사 신분으로 이곳에 온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김누리는 형우를 앞질러 교도소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형우와 김누리는 교도관의 안내를 받아 접견실로 향했다.

법정 안에서도 전혀 긴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녀였는데.

김누리는 긴장한 듯 창문 밖을 바라보며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었다.

잠시 후.


덜컥 -


접견실 문을 열고 휠체어를 탄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또 무슨 일이십니까.”


형우의 얼굴을 보자마자 김성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형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전에도 분명 말씀드렸지만. 저는 법률 상담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오늘은 법률 상담이 아니라 다른 용무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네...?”


형우가 창문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제서야 김성도는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눈치챘다.

밝게 비추는 햇살 사이로 보이는 여성의 실루엣.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빤히 바라보더니,

순간 표정이 굳어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오늘 접견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교도관!! 교도관!!”


교도관을 부르며 접견실 문을 두들겼으나,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봐. 거기 누구 없어!! 교도관!!”

“김성도씨.”


김누리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김성도의 손이 멈추었다.


“오늘 김성도씨는 사건 조사 때문에 이곳에 소환된 겁니다.”

“...”


김성도는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망설이다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대답했다.


“영장 있습니까? 이미 종결된 사건을 들먹이는 건 도리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사건 당일. 피해자와 전화 통화로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김누리는 김성도의 말을 무시하며 심문을 시작했다.


“...그걸 왜 묻습니까?”

“사건의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든 무슨 상관입니까. 말했잖아요. 내가 죽였다고. 그쪽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할 말 없으니까. 그런 줄 알고 다시는 날 찾아오지...”


쾅!!


테이블을 내리친 김누리의 주먹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당신은 당신 생각밖에 안 하지?”

“...”


김성도는 아무런 대답 없이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


“당신 딸은 말이야. 평생을 혼자 살아왔어. 아버지가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고아원에 버려진 기분을 당신이 알기나 해?”


예상치 못한 김누리의 말에 김성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고아원이라니... 그럴 리가...”

“뭘 기대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당신 고모라는 사람은 말이야. 날 고아원에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어. 사망 보험금? 웃기지 마. 그쪽 딸은 보험금 같은 거 구경도 못 해봤다고.”


김성도는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말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대답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죽였습니다.”


쾅!!


김누리는 다시 한 번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 입. 함부로 내뱉지 마. 무엇이 딸을 위한 행동인지, 그쪽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라고.”

“...”

“착각하지 마.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어. 당신 딸은 그날 이미 죽었거든.”


김성도의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졌다.

대체 무엇을 위해 감옥에 와 있는 것인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땅바닥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으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똑바로 말해.”

“...”


여전히 김성도가 입을 꾹 다물자 김누리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창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성도씨.”


옆에서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우가 김성도의 손을 꼭 잡았다.

그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형우는 김누리의 눈치를 살피며 대화를 이어갔다.


“김누리씨는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실만을 쫓는 그런 멋있는 검사요.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로서 딸이 떳떳한 검사가 될 수 있도록 조금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김성도의 눈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서글픈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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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안의균 검사 (1) 24.09.03 4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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