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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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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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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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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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검사 (1)

DUMMY

며칠 뒤, 과학 수사대의 사건 조사 자료가 도착했다.

집안에서 발견된 지문은 형우와 남이건 두 사람의 것뿐.

다른 사람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어서 확인한 CCTV 영상에도 외부인이 출입했던 내역은 없었다.


처음엔 경찰도 형우의 진술을 따라 수사를 계속하려 했으나,

뒤늦게 도착한 서류를 확인하자마자, 급하게 사건을 종결시켰다.


“사모님. 이런 말씀을 드리기 송구하지만. 남이건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


어머니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도저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형우는 곧장 경찰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소리쳤다.


“아니에요!! 우리 아빠는 그럴 사람 아니란 말이에요!!”


경찰이 확인한 서류는 형우의 자폐 판정 진단서였다.

심한 망상증을 앓고 있다는 말에 형우의 진술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저씨!! 우리 아빠는 살해 당했다구요!!”

“...”

“제 말 좀 믿어주세요!! 제가 똑똑히 기억한다구요!! 아저씨!!”


짝 -


그 순간.

커다란 마찰음과 함께 정적이 흘렀다.


“엄마...”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어?”

“거짓말 아니에요... 진짜란 말이에요...”

“형사님 죄송합니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 봐도 될까요?”

“네. 그동안 조사 받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치만...”

“남형우.”

“...”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에게 이 정도로 크게 혼이 난 건 처음이었지만, 형우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잡아낼 수 없을 테니까.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털어놓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어머니께서는 묵묵히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엄마. 아버지 사건 말이에요... 제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사실 저에게는 초능...”

“형우야.”

“네...?”

“엄마가 혼자 있고 싶어서 그런데. 잠깐 나가줄 수 있겠니.”

“네... 알겠어요.”


쾅.


방문이 닫히자마자, 어머니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차마 형우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싶으셨던 걸까.

부검실에서도. 장례식장에서도.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던 어머니였는데.

그동안 눈물을 참아내느라 얼마나 힘드셨을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 순간. 어머니의 기억이 형우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털썩.


순간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어떤 위로도 소용없을 정도로.

어머니의 기억은 너무나 아팠다.


...


그날 이후 형우는 혼자라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갔다.

경찰, 프로파일러, 기자 등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어린 형우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변경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직접 살인자를 찾아야겠지.

사람들로 북적한 서울 시내를 하염없이 돌아다니며 가능한 많은 사람의 기억을 머릿속에 집어 넣었다.

해변에서 모래알 찾기.

진전이 없는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정말로 남은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1000명. 아니. 10000명이 넘는 기억이 형우의 머릿속에 가득 찼을 때쯤.

형우의 코에서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어라... 갑자기 왜 이러지...?”


뇌에 과부하가 온 것인지 갑자기 머리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안 되는데... 아직 못 찾았는데...”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용을 써봐도 감겨 오는 눈꺼풀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털썩.


“꼬마야!! 정신차려봐!! 꼬마야!!”

“여기 119좀 불러주세요!! 빨리요!!”


...


‘으윽...’


강한 빛줄기에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에 와있었다.


“여긴 어디에요...?”

“형우야...!”


옆에서 병간호를 하던 어머니가 곧장 형우를 안았다.

무려 1주일 동안 의식을 찾지 못했단다.

부둥켜 안은 어머니의 몸에서 딱딱한 뼈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제서야 눈에 보이는 어머니의 초췌한 몸.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죄송해요...”

“너까지 없으면... 엄마는 정말로...”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하셨던 건지.

금새 옷이 어머니의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어머니께서는 더 이상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갖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차마 그럴 수 없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슬픔이 얼마나 뼛속 깊이 자리 잡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형우는 어머니 앞에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수를 쫓는 것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조금 시간을 미뤘을 뿐.


처음엔 경찰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지 못했으니까.

아버지의 죽음을 곱씹으며 머릿속으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법에 관한 지식이 뛰어나고, 자연스럽게 범죄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

아무리 생각해봐도 ‘변호사’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목표가 생긴 뒤로 아버지의 일은 잠시 가슴 속에 묻어두고 공부에 전념했다.

여유롭게 학교에 다닐 시간이 없었다.

하루 빨리 변호사가 되어야만 했으니까.


형우가 선택한 방법은 검정고시였다.

이미 수많은 사람의 기억을 지닌 형우에게 시험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기에, 1년 만에 초, 중, 고 검정고시에 모두 합격하고 서울 명문 대학교에 진학했다.

높은 성적으로 당당하게 조기 졸업을 했고.

다시 나오지 않을 영재 소리를 들으며 로스쿨에도 합격했다.


5년 후 -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10년도 넘게 지난 아버지의 사건을 조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최연소’라는 수식어는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경력 짧은 초짜 변호사보다 경험 많은 베테랑 변호사를 선호하니까.

그래서 먼저 유능한 변호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

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라면 많은 범죄자를 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기억을 이용한다면 언젠가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


“누구십니까?”


차에서 갓 내린 김누리 검사는 곧장 미간을 찌푸렸다.

재판 전에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김누리 검사였기에,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눈앞의 남자가 상당히 거슬렸다.


“아... 미안합니다. 제 소개를 안 드렸네요.”


눈앞의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지만, 김누리는 꼼짝 않고 딴청을 피워댔다.

보나마나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이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청탁 안 받아요.”

“무언가 오해를 하신 모양인데...”

“아이고!! 남형우 변호사님 아니십니까?”


운전석에 앉아있던 왕석훈 수사관이 다급히 내려 형우의 명함을 대신 받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오늘 재판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차 들렸습니다.”

“검사한테 부탁은 무슨. 바쁘니까 저리 비켜요.”


김누리 검사는 형우의 어깨를 밀치며 재판소 안으로 향했다.

경찰 출신 검사, 검찰청 얼음 공주.

누구나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에 반해, 그렇지 못한 당돌한 성격.

왜 법조계 바닥에서 그녀를 얼음 공주라고 부르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죄송합니다. 검사님께서 재판 앞두고 예민하신 상태라...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왕석훈 조사관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한 뒤, 곧장 김누리 변호사의 뒤를 쫓았다.

김누리 변호사와는 정반대의 친절한 성격.

오늘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그의 고생길이 훤히 보였다.


“사람 무안하게 그렇게 가시면 어떡해요?”

“얼마 준대요?”

“네?”

“그 사람이 얼마 준다고 했냐고요. 한 10억쯤 불렀나?”


김누리 검사는 싸늘한 시선으로 왕석훈 조사관을 흘겨보았다.

청탁을 걸어온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그녀의 물음에는 짜증이 가득 담겨있었다.


“혹시 남형우 변호사를 모르십니까?”

“그게 누군데요.”

“검사님도 들어보셨을 텐데요. 국내 최연소 변호사.”

“글쎄요. 난 처음 들어보는데.”


능청스러운 대답에 왕석훈 조사관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승소율 100%의 전설적인 변호사. 정말 못 들어보셨어요?”

“...”


김누리는 ‘100%’라는 말에 흠칫 반응했다.


“그래서요? 그렇게 잘 나신 변호사분께서 이번 재판은 왜 맡으셨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건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번 재판에서 손을 뗐어야지.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나. 나 때문에 그 잘난 경력에 금이 가게 생겼네.”


확신에 가득 찬 김누리의 태도에서 자신이 반드시 승소할 것이라는 확신이 느껴졌다.


“그게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재판에 관해서 검사님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왕석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이번 재판. 조금 미루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조사관님?”

“평소랑 다르게 검사님께서 이번 재판을 유독 급하게 진행하시는 것 같아서요.”

“제가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김누리 검사는 조금의 찝찝함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사람인데.

재판 날짜를 앞당긴 것도 그렇고.

이번 재판만큼은 무언가 감정이 섞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정황은 확실하지만. 아직 흉기도 발견 안 됐고... 그리고 또...”


왕석훈의 말이 계속될수록 김누리의 미간 주름은 점점 깊어졌다.


“지금 제 판단이 틀렸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럴리가요... 저는 그저 검사님이 걱정돼서...”

“됐습니다. 재판은 예정대로 진행할 거니까. 사건 자료나 제대로 챙기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누리는 씩씩거리며 왕석훈을 지나쳐갔다.


***


“피고인 이갑수는 아내 이미현씨와 자택 거실에서 거칠게 몸싸움을 한 뒤, 칼로 복부를 수차례 찔러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웃기고 자빠졌네. 검사라는 양반이 이렇게 소설을 써도 되는 거야? 몇 번을 말해. 내가 안 죽였다니까.”


피고 이갑수는 침을 튀기며 소리를 빽빽 질러댔다.

재판을 받으러 온 사람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건방진 그의 태도.

판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중재했다.


“피고. 정숙하세요.”

“에이씨. 이래서 나랏일 하는 새끼들이 문제라니까.”


김누리는 입술을 까득 깨물더니, 분노를 겨우 참아내며 진술을 이어갔다.


“재판장님.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닙니다. 사건 이전, 피해자는 평소 피고에게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사건 당시 피해자의 몸에 멍과 상처가 가득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김누리는 이어서 중앙 스크린에 CCTV영상을 띄웠다.


“피고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CCTV 영상을 보면 사건 당일 피고는 사망 추정시간인 오후 7시경 자택에 돌아와 불과 30분 만에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구급차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그 누구도 자택에 출입하지 않았습니다.”

“웃기시네. 니네가 뭘 안다고 x랄이야.”


이갑수의 같잖은 도발에도 판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김누리의 진술에 귀를 기울였다.


“계속하세요.”

“사건 전후 외부인이 출입한 흔적이 없다는 점. 애초에 다른 용의자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피고의 범행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변호사 측 이의 있습니까?”


변론도 하기 전에 이미 검사 측으로 기울어진 재판 분위기.

하지만 변호인석에 앉은 형우의 얼굴에서는 오히려 여유가 느껴졌다.

이 상황을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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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강재경 대표 (1) 24.09.12 28 2 11쪽
25 배신자 (5) 24.09.11 39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5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37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8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8 3 14쪽
20 진실 24.09.05 42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3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0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58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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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오해 (1) +1 24.08.27 79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85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87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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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11 5 14쪽
5 김누리 검사 (4) +1 24.08.19 112 6 12쪽
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5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5 4 12쪽
»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33 5 12쪽
1 아버지의 죽음 +2 24.08.14 160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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