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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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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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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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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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균 검사 (2)

DUMMY

숨이 턱턱 막혀오는 서늘한 분위기.

안의균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다가 표정을 풀고 형우에게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이곳엔 무슨 일이십니까?”


협박 섞인 형우의 물음에 안의균은 태연히게 환히 웃어 보였다.


“아까 변호사님께서 말씀하신 사건이 신경 쓰여서요. 잠시 현장을 둘러보려고 왔습니다.”

“아무리 검사님이라고 해도 경찰 허락 없이 현장에 들락이는 건 문제가 될 텐데요.”

“제가 이곳 경찰들이랑 친분이 있어서요. 찝찝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안의균은 아무렇지 않게 방 안을 둘러보더니, 은근슬쩍 형우에게 질문을 흘렸다.


“혹시. 말씀하신 금고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 금고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형우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안의균의 눈빛에서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그쪽도 아시잖아요. 유서에 그런 문구는 적혀 있지 않다는 거.”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무언가 추궁하는 듯한 형우의 말투.

안의균이 한숨을 내쉬며 돌아가려하자, 형우가 팔을 뻗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봉태만씨와 원래 아는 사이입니까?”

“아니요. 모르는 사람입니다. 대충 다 둘러본 것 같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형우를 지나쳐 안의균이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형우는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읊조렸다.


“그러니까 평생 쥐죽은 듯이 살았어야지.”


의미를 알 수 없는 형우의 말에 안의균의 몸이 얼어붙었다.


“너무 억울해하진 마. 원래 사냥개는 쓸모가 다하면 버려지는 법이야.”

“...당신 뭐야.”


안의균의 얼굴에서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형우의 입에서 나온 저 말은.

아까 본인이 봉태만에게 직접 했던 말이었으니까.


“우리 조금 솔직해집시다. 당신이잖아. 봉태만 죽인 사람.”


그 순간 안의균은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주먹칼을 꺼내들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분명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았을 텐데.”


안의균은 주먹칼을 들이밀며 형우를 협박했다.


“도청 장치라도 달았나보네. 안타깝게 됐어.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형우는 침착을 잃지 않고 벽에 등을 기댔다.


“그 칼. 내려놓으시죠. 저는 당신과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생각해보세요. 제가 당신을 경찰에 넘길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그랬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검찰청에서도, 식당에서도.

형우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음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해봐. 경찰이 네 말을 들어줄 것 같아?”


안의균은 칼집으로 머리를 긁으며 건방진 미소를 지었다.


“넌 봉태만에게 원한을 품고 이곳에 찾아왔어. 타살로 밝혀진다면, 가장 먼저 의심을 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라고.”

“물론 높으신 검사님께서 증거를 조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겠죠. 하지만. 저는 이 사건의 목격자입니다. 제가 입을 열면 그쪽도 간단히 넘어가지는 못할 텐데요.”


안의균은 콧방귀를 끼며 여유를 되찾았다.

저런 같잖은 협박으로 날 몰아세우려 했다니.


“걱정하지 마. 진범이 잡히면 언론은 쉽게 사그라드는 법이니까.”

“과연 그분도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쿵 -


안의균은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아까 본인 입으로 말했죠. 쓸모를 다한 사냥개는 버려지는 법이라고. 일 처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당신을 그분께서 가만히 내 버려둘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너... 어떻게 그분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거지?”


형우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뻔하잖아요. 딱히 당신이 봉태만에게 원한을 가진 것 같지는 않고. 그럼에도 이런 짓을 벌인다는 건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다는 거겠죠.”


안의균은 잠시 고민하더니, 칼을 집어 넣고 형우와 당당히 얼굴을 마주했다.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이제야 좀 대화할 생각이 드셨나보네요.”


형우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아시다시피. 저는 봉태만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어 마땅할 사람이 죽었으니, 딱히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습니다만.”

“...”

“어찌 되었든 사람이 죽었지 않습니까. 사람 된 도리로서 세상을 떠난 고인을 배웅해드려야죠”


형우는 주머니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 안의균에게 건넸다.


“봉태만의 부고장입니다. 이걸 그분께 전달해주세요.”


어이 없는 상황에 안의균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형우는 딱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겨우 이거 하나 때문에 날 협박한 거라고?”

“네. 저한테는 중요한 문제라서요. 이래 봬도 절실한 천주교 신자 거든요.”


형우는 손에 든 묵주를 들먹이며 방긋 웃어보였다.


“내가 널 어떻게 믿지? 이래놓고 밖에 나가서 소문을 퍼뜨릴 수도 있잖아.”

“글쎄요.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당장 밖에 나가서 그 부고장을 태워버릴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안의균이 잠시 고민에 빠지자, 형우는 부고장을 안의균의 겉옷 주머니에 멋대로 집어넣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지 않습니까?”


형우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안의균에게 경고했다.


“아. 참고로 저를 속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제가 눈치가 조금 빠른 편이라.”


형우가 자택을 빠져나가고, 안의균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젠장.”


***


다음 날.

형우의 사무실.


- 염치도 없으시네요. 어제 두 분 다 그렇게 가시고 제가 얼마나 뻘쭘했는지 아세요?


전화기 건너 김누리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미안합니다.

- 또 무슨 일인데요. 설마 오늘 못 오신다는 건 아니죠?


김누리는 한 시라도 빨리 외국인 남성을 조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 조사는 다음으로 미뤄야할 것 같습니다.

- 하... 알겠어요. 시간 괜찮으실 때 언제든 바로 연락 주세요.


김누리의 말투에서 실망이 느껴졌으나, 딱히 강요를 하지는 않았다.


- 네. 알겠습니다.


뚝.


김누리와의 짧은 통화를 마치고, 형우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짐을 챙겨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철컥.


사무실 문을 열고 서태석이 들어왔다.


“소식 들었습니다. 봉태만. 죽었다면서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변호사님이 죽였습니까?”


서태석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형우에게 물었다.

무언가를 기대한 듯한 서태석의 얼굴.

형우는 별 다른 설명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더군요.”

“흐음... 그럴 리가 없는데.”


서태석은 형우를 향해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그럼 나 이제 잘리는 거예요?”


형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직 그쪽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형우의 반응을 잠시 지켜보더니, 서태석이 손뼉을 치며 방긋 웃어댔다.


“휴. 다행이다. 나 잘리는 줄 알았네.”


도무지 생각을 종잡을 수 없는 서태석을 뒤로 하고.

형우는 고개를 저으며 사무실 앞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곧바로 출발하려던 찰나.


철컥 -


서태석이 허락도 없이 멋대로 들어와 조수석 자리에 앉았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뭐하긴요. 변호사님 따라가려고 그러지.”


형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짧은 숨소리를 내뱉었다.


“지금 제가 어디에 가는 줄 알고...”

“진짜 범인 만나러 가는 거잖아요.”


‘뭐...?’


형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무리 떠올려도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없는데.

서태석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을 도와주는 사람으로서 누구를 상대해야 하는지 나도 얼굴은 봐야죠. 뭐해요? 얼른 출발 안 하고.”


도대체 서태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태연하게 안전벨트를 매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를 차에서 내보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우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엑셀을 밟아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


인적이 드문 산길 중턱.

안의균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주변을 서성였다.

그리고 잠시 후.

검정색 고급 세단 한 대가 안의균의 옆에 멈춰 섰다.


“오셨습니까.”


안의균이 창문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조수석 쪽 창문이 스르륵 내려졌다.


“제가 분명 저희 쪽에서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조수석에 앉은 남자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안의균을 다그챘다.


“죄송합니다. 급하게 보고 드릴 일이 있어서요.”

“말씀해보세요.”


안의균은 잠시 주변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계획에 차질이 조금 생겼습니다. 운반책이 경찰에 체포된 상황이라 납품 일자를 조금 미뤄야할 것 같습니다.”

“딱히 상관 없잖아요. 어차피 그놈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잖습니까.”


안의균은 잠시 망설이더니, 바스크어를 할 줄 아는 형우의 존재를 조수석 남자에게 털어놓았다.


“흐음. 검사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꼬리를 잘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운반책은 저희 측에서 새로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운전수가 다시 출발하려는데.

안의균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조수석 남자에게 건넸다.


“아. 그리고 이것 좀 대표님께 전해 주시겠습니까?”


조수석 남자는 봉태만의 부고장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게 뭡니까?”

“말씀하신 대로 봉태만을 처리했습니다. 이제 20년 전 사건에 대해 염려하실 필요는...”


찌익 -


그 순간.

조수석 남자는 부고장을 손으로 찢어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이봐요. 안의균 검사. 제가 언제 그런 명령을 내렸습니까?”

“...네?”


안의균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지만, 조수석 남자는 표정의 변화 없이 안의균을 노려보았다.


“그건 당신 멋대로 벌인 일입니다. 당신 역할이 뭔지 잊으셨습니까?”

“...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


한편 뒤에 숨어 현장을 지켜보던 형우와 서태석.

서태석은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으로 안의균의 모습을 찍어댔다.


“저놈들이군요. 변호사님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

“...아직 모릅니다. 꼬리를 드러낼 때까지 일단 잠자코 지켜봐야죠.”


형우는 마음을 조아리며 계속해서 시간을 확인했다.

검정색 세단 차량이 이곳에 도착하고 25분.

이제 5분만 더 기다리면...


부릉 -


갑자기 검정색 차량에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아직 시간이...’


진범을 밝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오늘을 놓치면 언제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5분.

딱 5분이면 되는데.

그렇다고 모습을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

조급한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그때.


“5분이면 되죠?”

“네...!? 그게 무슨...”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서태석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고는 검은색 세단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봐요...! 서태석씨!!”


이쪽에서 먼저 정체를 드러낼 생각은 없었는데.

다급히 서태석을 멈춰 세우려 했으나.

서태석은 이미 팔을 대자로 뻗어 세단 차량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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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꼬리(1) 24.09.16 23 2 12쪽
28 강재경 대표(3) 24.09.16 21 2 11쪽
27 강재경 대표 (2) 24.09.13 32 3 12쪽
26 강재경 대표 (1) 24.09.12 28 2 11쪽
25 배신자 (5) 24.09.11 39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5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37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8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8 3 14쪽
20 진실 24.09.05 42 3 12쪽
» 안의균 검사 (2) 24.09.04 43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0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58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60 4 15쪽
14 오해 (3) +1 24.08.29 70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1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79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85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87 6 11쪽
9 서태석 (1) +1 24.08.23 96 4 12쪽
8 또 너야 (2) +1 24.08.22 92 5 13쪽
7 또 너야? (1) +2 24.08.21 106 4 11쪽
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11 5 14쪽
5 김누리 검사 (4) +1 24.08.19 112 6 12쪽
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5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5 4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32 5 12쪽
1 아버지의 죽음 +2 24.08.14 159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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