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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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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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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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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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일형 아이앤씨 강재경 대표의 사무실.


강재경은 의자에 앉아 커피를 들이키며 빤히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철컥 -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안의균은 들어오자마자 허리를 90도로 숙여 공손하게 인사했다.

강재경 대표를 직접 대면하는 건 안의균 검사도 처음이었다.

매번 그의 비서를 통해 대화를 주고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웬일로 강재경 대표가 직접 안의균과 약속을 잡은 것이다.


“앉으세요.”


안의균은 혹여 강재경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조심스럽게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직접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네요. 반가워요. 안의균 검사.”

“용안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표님.”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던 강재경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용안이라니. 조금 부담스럽네요.”

“죄송합니다. 대표님.”


안의균이 곧바로 고개를 조아렸으나,

강재경은 개의치 않는 듯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 자신의 팔에 찔러 넣었다.


“하아...”


강재경의 눈이 살짝 뒤집혔다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대범하다 못해 숨길 생각도 없는 것일까.

그는 태연하게 빈 주사기를 내려놓으며 편히 다리를 꼬았다.


“저희 쪽에 검사분이 하나 다녀갔다고 하던데.”

“그렇지 않아도 제가 직접 찾아가서 단단히 일러뒀습니다. 이제 다시는 그곳에 얼씬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순간. 강재경 대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검사님께서 직접 찾아가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쨍그랑 -


강재경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커피잔을 문 쪽으로 강하게 던졌다.

칭찬이라도 받길 기대한 것인가.


“하...”


머쓱하게 웃고 있던 안의균의 입가에서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머리가 나쁘면 가만히라도 있어야지. 이래서 검사 계속할 수 있겠어요?”

“...”


강재경은 한참 동안 안의균을 노려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서 주사기 하나를 더 꺼냈다.


“이봐요. 안의균 검사.”

“네. 대표님.”

“나는 나한테 충성만하는 사람은 필요 없어요.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명심하겠습니다.”


안의균의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이것은 일종의 협박.

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아직 우리 검사님께서 책임감이 부족하신 것 같은데, 내가 좀 도와줄게요.”


푹 -


반응할 새도 없이 강재경이 안의균의 팔에 주사기를 찔러 넣었다.


“으윽...”

“어때요? 이제 좀 책임감이 생겼으려나?”


강재경은 안의균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싱긋 웃어 보였으나,

안의균은 눈앞이 흐릿해져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들키지 않게 조심해요. 이제 우린 같은 배를 탄 사람이니까.”



침을 질질 흘리며 소파에 나뒹구는 안의균을 뒤로 한 채,

강재경은 아무렇지 않게 넥타이를 고쳐 메고는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김누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말했잖아. 이번 사건 너한테 넘긴다고.”


안의균은 태연하게 미소 지으며 김누리에게 사건 자료를 건넸다.


“...갑자기 왜요?”

“원래 네가 맡은 사건이었잖아. 선배로서 후배 사건을 빼앗을 순 없지.”


조금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사건에서 완전히 제외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사건을 넙죽 건네는 안의균의 태도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차장님께서 허락하셨어요?”

“걱정하지 마. 내가 잘 말씀드릴게. 나는 다른 사건으로 빠질 것 같으니까. 어디 한 번 열심히 해봐.”


어깨를 토닥이며 순순히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는 안의균의 모습에 김누리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


“일부러 그랬을 겁니다.”


혼란이 찾아온 김누리와는 달리 형우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제로 수사를 막으면, 오히려 더 의심 받을 것이라 생각했겠죠.”


정말로 그런 건가.

솔직히 형우와 안의균 사이에서 반신반의했던 김누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만약 안의균 검사가 마약 범죄에 가담했다고 칩시다. 그럼에도 사건을 저에게 넘긴다는 건 이미 증거를 다 은폐했다는 말 아니겠어요?”


형우는 고개를 저으며 주류 회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유럽에서 선박으로 우리나라까지 도착하는 시간은 30일 정도가 걸립니다. 일형 아이앤씨에서 최근까지 마약 밀수 해왔다면, 갑자기 밀수를 중단한다고 해도 이미 출발한 물건까지 되돌려 보낼 수는 없겠죠.”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바다에 버렸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요. 그건 아닐 겁니다. 현장 직원들조차 마약 밀수에 관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걸 보면, 선박 직원들도 같은 상황일 가능성이 큽니다.”


김누리는 영장을 들이밀며, 마약 수사대와 함께 창고 내부를 자세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회사 전체를 빠진 곳 하나 없이 구석구석 뒤져보았음에도 마약을 유통한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외국인 남성에게서 빼앗은 필로폰은 약 20kg.

그렇다는 건 그보다 많은 양의 마약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안의균의 반응을 보았을 때, 이곳에서 마약 유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째서 아무것도 발견이 되지 않는 것일까.


형우가 눈을 감고 고민하던 그때.


“크하... 좋다.”


‘음...?’


구석에서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그거 함부로 드시면 안 됩니다.”


옆을 쳐다보니, 서태석이 양주를 병에 입을 대고 들이키고 있었다.

그는 잠시 주류 회사 직원을 쳐다보더니, 개의치 않고 양주병을 다시 들이켰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직원이 다급히 서태석을 말렸지만,

그는 씨익 웃으며 직원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수사 중에 하나 맛볼 수도 있지. 왜 이렇게 민감하셔. 설마 이 안에 마약이라도 들었나?”


서태석이 흘린 말에 형우는 눈을 번뜩였다.


“술입니다. 마약을 술에 녹여서 들여온 겁니다.”


그렇다면 설명이 된다.

술을 가열하여 다시 마약을 추출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긴 하지만,

그 많은 양의 마약을 들여오는데 그만한 방법은 없겠지.

마약 탐지견들이 냄새를 맡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

밀폐된 용기에 담겨 술에 녹아 있는 마약을 구분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런데... 이 많은 술병을 어느 세월에 조사하죠...?”


그제서야 창고 안에 있는 술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봐도 수 십만 병이 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양의 술병들이 창고 안에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


“이제 어떡하죠...?”


사무실로 돌아온 김누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20병 가량의 술을 무작위로 선정해 조사해보았으나,

아쉽게도 마약은 검출되지 않았다.

마약이 녹아있는 술은 극히 일부일 것이고,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모든 병을 조사할 권한도 없었다.


“서태석씨. 제가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됐나요?”


서태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중앙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았다.


“변호사님 말씀대로 유통과정에서 빼돌린 재고가 없는지 확인해봤는데, 별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수량을 조작했거나, 대체할 재고를 쌓아두었다는 소리네요.”

“그리고 또. 내일 추가로 물량이 들어온답니다.”

“...”


형우, 김누리, 서태석.

그 누구도 선뜻 해결책을 떠올리지 못했다.

내일 들어오는 수량만 해도 약 2만여병.

만약 그 중 100병의 술에 마약이 녹아들어 있다고 해도,

이를 적발할 수 있는 확률은 고작 0.5%.

확실한 물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의균이 주류 회사에 나타났다는 심증 하나만으로 그런 미친 짓을 벌일 수는 없었다.


형우는 강재경 대표의 기억을 더듬어보았으나,

이상하게도 강재경 대표는 주류 회사에서 마약을 수입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밀수가 이루어지는지 전혀 무지하고 있었다.

아마, 마약 밀수가 적발이 되더라도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안전장치겠지.

각자 머리를 쥐어 짜내며 대체 어떻게 수사를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컥 벌컥 -


조사에 큰 관심이 없었던 서태석이 무언가를 들이켰다.


“그건 또 어디서 났습니까?”


서태석이 손에 든 건 아까 창고에서 마시던 고급 양주였다.

그의 뒤에는 20병 가량의 술이 담긴 박스가 차곡하게 쌓여 있었다.


“설마 훔친 거예요...!?”


김누리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서태석을 째려보았지만, 서태석은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아까 마약 성분 조사했던 거예요.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전부 가져가라고 하던데요?”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참 희한한 사람이다.

설마 조사에 사용된 술을 가져왔을 줄이야.

찝찝하지도 않은지, 서태석은 아무렇지 않게 양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아깝잖아요. 어차피 뜯어서 팔지도 못하는데.”

“그렇다고 진짜 가져오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럼 공짜로 준다는데 싫다고 할까요?”


김누리와 서태석은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점점 목소리가 커져 큰 싸움으로 번지려던 그때.


“...어쩌면 방법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무언가 떠오른 듯 형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방법이 뭔데요...?”


말싸움을 벌이던 김누리와 서태석은 곧장 싸움을 멈추고 형우를 쳐다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


“어제 분명 협조해 드렸잖아요. 도대체 저희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납품을 담당하던 직원은 인상을 구기며 김누리 앞에 당당히 마주했다.


“그게...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아서...”


김누리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직원을 달래주었다.

형우를 힐긋 쳐다보았지만, 그는 어딘가에 시선이 팔려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다.


“검사면 다입니까? 이렇게 멋대로 행패 부려도 되는 거냐고요.”


직원은 한참동안 김누리와 실랑이를 벌였다.

회사 소속 변호사를 부르고, 심지어는 검찰청에 전화해 영장 발부 여부를 확인하는 등.

강력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미안합니다. 딱 오늘까지만...”

“알겠습니다. 대신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으면. 검찰청에 정식으로 피해보상 청구를 하겠습니다.”


그는 김누리의 말을 딱 잘라내고는 발걸음을 돌려 사무실로 돌아갔다.


‘하...’


어찌저찌 설득은 했긴 했는데.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만약 마약을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일형 아이앤씨에 대한 피해 보상은 물론이고,

쓸 데 없이 함부로 영장을 청구했다는 빌미로 사건 조사에서 빠지게 될 지도 모른다.


“이봐요. 변호사님.”


쿵 – 쿵 -


시끄러운 화물차 소리 때문에 듣지 못한 것일까.

김누리는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형우를 불렀다.


“남형우 변호사님!!”


김누리의 다급한 목소리에 그제서야 형우가 고개를 돌렸다.


“네? 저 부르셨습니까?”


김누리와는 달리 너무나 태연한 얼굴.

본인은 책임 질 것이 없다 이건가?

김누리의 얼굴에 슬금슬금 짜증이 묻어나왔다.


“대체 언제쯤 말씀해 주실 겁니까?”

“아... 조금만 기다리시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형우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임과 동시에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차가 창고 앞으로 도착했다.

잠시 후.

화물차의 떨림이 멈추고, 커다란 지게차가 컨테이너를 들어올렸다.


꿀꺽.


김누리는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켰다.

0.5% 혹은 그 이하.

아예 가능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마약 수사대와 함께 컨테이너가 내려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어어...?! 이봐!!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누군가가 다급히 지게차를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컨테이너는 잠시 균형을 잃고 흔들리더니,


쿵 -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흙먼지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뭐야... 이게...”


김누리는 잠시 멍하니 넋을 잃었다가, 곧장 형우의 얼굴을 확인했다.

놀란 기색이 전혀 없는 덤덤한 눈빛.

그렇다는 건...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지게차 쪽을 바라보았다.


철컥 -


허리를 붙잡고 지게차 밖으로 나오는 익숙한 얼굴.

에이치엔아이 그룹의 회장 홍승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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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꼬리(1) 24.09.16 23 2 12쪽
28 강재경 대표(3) 24.09.16 21 2 11쪽
27 강재경 대표 (2) 24.09.13 32 3 12쪽
26 강재경 대표 (1) 24.09.12 28 2 11쪽
25 배신자 (5) 24.09.11 38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4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36 3 12쪽
» 배신자 (2) 24.09.07 38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7 3 14쪽
20 진실 24.09.05 42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2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0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58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59 4 15쪽
14 오해 (3) +1 24.08.29 70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1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78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85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86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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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11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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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5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4 4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32 5 12쪽
1 아버지의 죽음 +2 24.08.14 158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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