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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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작품등록일 :
2024.08.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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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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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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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검사 (3)

DUMMY

“이제와서 비겁하게 발뺌하는 겁니까?”


기껏 같이 와줬더니. 지금 장난하나.

김누리는 흰 장갑을 바닥에 집어던지며 형우를 노려보았다.


“무언가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저는 현장에서 확인할 게 없다고 했지, 조사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 소리잖아요. 하... 이딴 사람이랑 여길 같이 온 내가 등신이지.”


김누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방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럼 제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검사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조사하고 계십니까?”


그걸 질문이라고.


“정말 몰라서 물어요? 뭐라도 증거가 될 만한 건 전부 뒤져 봐야죠.”

“검사님께서는 경찰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그분들을 무시하시나 봅니다.”

“이보세요. 제가 언제 무시했다고 그러세요.”

“현장을 조사하는 일은 저희보다는 경찰분들이 훨씬 뛰어날 겁니다. 그런데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은 저희가 그분들이 찾아내지 못한 증거를 발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김누리는 뼈를 때리는 직설에 잠시 멈칫하다가, 손으로 생수병을 구겼다.


“그럼 뭐 어쩌자고요. 가만히 손가락이나 빨면서 기다리자고요?”

“아니요. 이곳은 전문가들한테 맡기고,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여전히 생각을 알 수 없는 형우의 태도.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자신감이 흘렀다.


***


“여기는 왜요.”


띵동 -


형우가 초인종을 누르고 뒤로 숨자,

김누리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검찰증을 들이밀었다.


“누구세요?”

“일전의 사건에 대해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이갑수 자택 바로 아래층.

집주인 아주머니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문을 열었다.

이미 몇 번이고 진술을 했던 터라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또 뭡니까. 아직도 궁금한 게 남았습니까?”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만.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형우는 동네 슈퍼에서 사온 음료수 상자를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짜증 깊던 아주머니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그날 제가 본 건 2층집 아저씨가...”


이갑수씨가 집에 돌아오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모두 사건 자료에 적혀있던 내용들.

아주머니의 진술에서는 달리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불쌍하기도 하지. 가정폭력 저지르는 놈들은 싸그리 다 감빵에 집어 넣어야 한다니까.”

“피해자를 폭행하는 장면을 직접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몸에 있는 흉터들도 그렇고. 매일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당연히 아저씨가 때린 거겠죠. 안 그래요?”

“혹시 피해자가 평소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친구라던지, 지인이라던지.”

“글쎄요. 딱히 그분이랑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어서...”


아주머니는 잠시 고민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손뼉을 쳤다.


“아 참. 며칠 전에 직장 동료분들이 찾아오시긴 했어요.”

“직장동료들이요...?”

“아주머니한테 받을 게 있다고 하던데... 잠깐만요.”


아주머니는 며칠 전에 받았던 직장 동료의 명함을 건넸다.


「보림 건설 이택수」


***


“이봐요. 이건 엄연한 공권력 남용이에요.”


남형우와 김누리는 카페에 앉아 이택수를 기다렸다.


“뭐 어떻습니까. 사건 조사의 일부일 뿐인데.”


대수롭지 않다는 형우의 발언에 김누리 검사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원 조회부터 조사 협조까지 전부 김누리가 한 일인데,

고맙다는 말은 몰라도 최소한 무슨 생각인 지는 알려줘야 하지 않은가.


“그 남자가 사건이랑 무슨 관련이 있다고 그러는 건데요.”

“피해자는 전업 주부였습니다. 그런데 직장 동료라니.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전 직장 동료일 수도 있잖아요. 도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에휴.”


기가 센 김누리 검사조차 끈질긴 형우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저한테 용무가 있으시다고요.”


190이 넘어 보이는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았다.

그 누구도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험악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미현씨와 직장 동료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네. 굳이 따지면 전 직장 동료였습니다.”

‘것 봐요. 내 말이 맞잖아요.’


김누리는 허리를 쿡쿡 찌르며 형우를 째려보았지만, 형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미현씨와는 친한 사이였습니까?”

“아뇨. 그냥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럼 이미현씨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주변 지인을 통해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이미현에 관한 질문을 해도.

이택수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모른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형우는 계속해서 의미 없는 질문을 해댔다.

뭐랄까.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기 보다는.

시간을 끌려는 듯한 느낌이랄까.


“더 이상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요. 딱 1분만 더 시간 내주십시오.”


이택수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다가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딱 1분입니다.”

“...”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이어지는 침묵.

기껏 사람을 잡아두었건만 형우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사람 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슬슬 짜증이 난 이택수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김누리는 안절부절 못하며 다급히 형우를 쳐다보았으나,

형우는 관심 없다는 듯 눈을 감고 손에 든 묵주알을 넘기고 있었다.


“이봐요. 남형우 변호사님.”

“잠깐만요. 3... 2... 1.”


의미심장한 카운트 다운과 함께 형우의 눈이 번뜩였다.

입가에 번진 수상한 미소.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보였다.


“혹시 이미현씨에게 받아야 할 물건이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형우의 물음에 순간 이택수의 눈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제가 당신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말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형우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들썩였다.

이택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입니다. 전에 같이 일했을 때 빌려 갔는데 아직 갚지 않아서요. 뭐. 이젠 받을 수도 없게 됐지만. 1분 지난 것 같은데 이제 가봐도 돼죠?”

“그럼요.”


이택수가 카페 밖으로 향하던 찰나.

형우는 목소리를 높여 김누리에게 질문했다.

마치 이택수가 들으라는 것처럼.


“큰일이네요. 빨리 이 USB 주인을 찾아야 할 텐데.”


USB라는 단어에 이택수가 흠칫 반응하더니 발걸음을 멈추고 형우의 말에 집중했다.


“뭔 USB요...?”

“현장에서 발견된 USB 말이에요. 좀처럼 주인이 나타나질 않아서 제가 가지고 있었거든요.”

“네...? 그게 무슨...”


잠자코 있으라는 듯 형우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갔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형우의 말을 들은 이택수는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카페 밖으로 사라졌다.

이택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USB라뇨? 현장에 그런 게 발견 됐다는 소리는 못 들은 것 같은데.”

“김누리 검사님. 혹시 낚시 좋아하십니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대화 주제.

아무리 적응하려고 해도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는다.


***


치이익 -


먹음직스러운 삼겹살 굽는 냄새.

형우와 김누리는 중앙 테이블에 마주앉아 삼겹살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긴 또 왜 온겁니까.”

“배고프지 않아요? 일단 식사 하시죠.”


형우는 삼겹살을 잘라 김누리의 앞접시에 가져갔다.


“사건에 관련된 일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네. 맞아요.”


배가 고팠던 모양인지 형우는 허겁지겁 삼겹살을 먹기 시작했다.

지금 장난하나.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사건이랑 무슨 관련이 있다고.

설마 조사를 위해서 배를 든든하게 채워야 한다는 개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지금 밥이 넘어갑니까? 당신 때문에 이갑수 그 자식도 풀어주게 생겼는데. 계속 이런 식이면 그쪽한테 더 이상 협조 못합니다.”

“검사님께서는 이번 사건에 왜 이리 집착하십니까?”


형우는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지한 눈빛으로 김누리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진지해진 분위기에 김누리의 얼굴에서 미세한 당황이 느껴졌다.


“검사로서 사건에 몰두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이번 사건을 유독 감정적으로 바라보시는 것 같아서요. 혹시 이유가 있습니까?”

“아뇨. 잘못 보신 겁니다.”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했다.

한 달에 200건 가량의 사건을 맡는 검사 특성상, 사건 조사는 보통 경찰이나 조사관에게 일임하기 마련인데.

김누리는 직접 현장을 발로 뛰어다녔다.

마치 사건에 직접 연관된 사람처럼.


일전에 재판에서 김누리의 기억을 읽은 형우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으나,

그녀의 아픈 기억을 괜히 들춰내고 싶지 않았다.


“저의 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에 식당 안의 공기가 사뭇 무거워졌다.


“살해당하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요.”

“...”


술이라도 한 잔 하면 좋으련만.

형우는 테이블 위에 있는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직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정말 힘들었거든요. 죽고 싶을 정도로.”

“몰랐네요...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전에 피해자 유족들의 심정을 이해하냐고 물으셨죠. 네. 누구보다 잘 이해합니다. 제겐 그들과 똑같은 상처가 존재하니까요.”


매번 일그러져 있던 김누리의 표정에서 동정이 느껴졌다.

감정이 메마른 사람인줄만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런 사정이 있었는데도. 변호사님께서는 왜 그렇게까지 이갑수씨를 신뢰하는 겁니까? 살인자이지 않습니까. 누군가의 가정을 파탄시킨 더러운 살인자.”

“아무리 화가 나도, 죄 없는 사람을 탓할 순 없으니까요. 무죄추정의 원칙. 유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 이갑수씨는 용의자이지 범죄자가 아니잖아요.”


김누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x발.’


잊어버리려고 평생을 그렇게 노력했는데.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족쇄처럼 평생 떨쳐낼 수 없는. 그 날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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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배신자 (3) 24.09.09 3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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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배신자 (1) 24.09.06 37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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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0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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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오해 (1) +1 24.08.27 78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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