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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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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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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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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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1)

DUMMY

똑 – 똑 -


“대표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강재경은 여태 읽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온 윤상신 검사.

그는 두툼한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강재경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흐음... 그렇군요. 그래서 나한테 집착하는 거였군요.”


강재경은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를 꺼내 쭉 훑어보았다.

생전 남이건의 가족사진.

그곳에는 분명 어린 형우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날 일을 아는 사람은 몇 없을 텐데.”


강재경은 싱긋 웃으며 윤상신을 쳐다보았으나, 그의 표정에서 무언의 협박이 느껴졌다.


“왜 대답이 없어요? 윤검사님?”


윤상신은 그제서야 뒤늦게 대답했다.


“아마 얼마 전 안의균 검사에게 들은 게 아닐까요?”

“흐음... 일리가 있네요. 하긴. 윤검사님은 내가 어제 말해서 알았을 테니까. 그랬을 리는 없고... 역시 안의균 검사가 유력하긴 하네요.”


강재경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치를 취할까요?”

“아뇨. 어차피 증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굳이 나서서 헛걸음을 하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죠.”


강재경이 어항의 물고기에게 밥을 주고 있을 때쯤.

윤상신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받아요. 급한 전화 같은데.”


딱히 말하지 않아도, 강재경은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아는 눈치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윤상신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고개를 돌려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나입니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으나, 윤상신은 건너편의 사내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챘다.


- 네. 무슨 일이십니까?

- 장소를 정했습니다.

- ...아. 그렇군요.


분명 장소 물색을 명령 받은 건 본인인데.

마약 관리자는 가만히 기다릴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 그곳이 어디입니까?

- ...


장소를 들은 윤상신의 표정이 새하얗게 굳어졌다.

마치 못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 그곳은 곤란할 것 같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 그건 제가 결정합니다.

- 아무리 그래도...


망설이는 윤상신의 태도에 수화기 건너로 짜증이 느껴졌다.


- 제가 결정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일단 대표님께 먼저 상의 드리는게...

- 이봐요. 윤상신 검사.

- 네?


사뭇 진지해진 목소리에 윤상신은 바짝 침이 말랐다.


- 잊으셨습니까? 대표님께서는 우리 계획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분입니다.


윤상신은 강재경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순진 무구하게 물고기 밥을 주고 있는 모습.

여태껏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이고 있었겠지.

들통나더라도 본인에게 불똥이 튈 염려가 없도록 말이다.


- 준비되는 대로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허튼 생각 말고. 얌전히 기다려요.


뚝 -


통화가 끊어졌음에도 윤상신은 전화기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문득 비참했던 안의균의 최후가 떠올랐다.

만약 이들의 말을 거스른다면.

본인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 표정이 안 좋으십니다. 안검사님.”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강재경 대표에게서 무언의 협박이 느껴졌다.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사실 알고 있었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걸.

윤상신은 질끈 입술을 깨물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닙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요.”


사무실을 나갈 때까지 윤상신은 강재경과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얼굴을 보인다면, 지금 드는 감정을 들킬 것만 같았으니까.


***


한편.

서울 인근의 횟집.

형우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옆에 있는 서태석에게 속삭였다.


“그래서. 대체 뭘 기다리자는 겁니까?”


서태석은 입안 가득 회를 집어넣으며 소주잔을 들이키고서는 뒤늦게 대답했다.


“뭘 기다리긴요. 다시 꼬리를 내밀 때까지 기다려야죠.”


어처구니 없는 대답에 형우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만약 이대로 꼬리를 완전히 잘라낸다면, 더 이상 쫓을 단서도 없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보고도 모르시겠어요? 범죄자들은 또 같은 짓을 저지르게 되어 있어요. 여태 10년 동안 잘 기다리셨으면서 왜 이렇게 마음이 급하십니까?”


참으로 대책 없는 소리.

조금이라도 기대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 긴밀히 나누세요?”


맞은 편에 앉아 있던 김누리 검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얼마 전 안의균과의 사건으로 무마된 파티를 위해 기껏 오늘 시간을 냈건만.

귓속말로 자기들끼리 속삭거리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 미안합니다. 검사님을 앞에 두고 실례를 저질렀네요. 자. 우리 하던 이야기, 마저 할까요?”


형우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김누리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이미 몇 번이고 들은 사건 내용에 서태석은 관심이 없는 듯 술잔만 기울였으나,

어찌 됐든. 서태석에게도 감사를 표하는 자리인만큼 짜증내지 않고 가볍게 넘어갔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분이기가 슬슬 무르익어 얼굴이 달아오를 때쯤.


우웅 -


김누리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 씨. 짜증나게.”

“저희는 괜찮으니까 받으세요.”

“괜찮아요. 안 받아도 돼요.”

“급한 전화일지도 모르니까 받으세요.”


김누리는 짜증 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왜요.

- 어이... 누렁이!

- 차장... 아니 부장님. 술 드셨어요?


꼬장을 부리는 듯한 윤상신의 목소리에 김누리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 그래!! 내가 술 한 잔 했다. 어쩔래?

- 취하셨으면 곱게 들어가시지. 왜 전화를 하고 그래요. 사람 열받게.

- 아니. 술이 모자라서 그렇지. 우리 같이 딱 한 잔 어때?

- 됐거든요. 저 이미 다른 분들이랑 마시고 있는 중이에요.

- 내가 그리로 가면 되지. 거기가 어딘데?


김누리는 한참 동안이나 윤상신을 집으로 들여보내려고 했으나, 그의 쇠고집을 당해낼 수 없었다.


...


그리고 잠시 후.


“어이! 누렁이!!”


가게 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오는 윤상신의 모습에 김누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녕하십니까. 윤상신 검사님.”


갑작스러운 합석에 당황할 만도 한데, 형우는 오히려 반갑게 고개 숙여 윤상신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


순간 형우의 얼굴을 마주한 윤상신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형우가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제대로 인사해요. 변호사님께서 허락하셔서 특별히 부른 거예요.”


윤상신은 곧장 표정을 풀고 어색하게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괜찮습니다. 이리 앉으세요.”


그대로 발걸음을 돌리려던 윤상신이었으나, 형우가 신경쓰지 말라며 간곡히 붙잡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


“그래서 말이야. 너는 나 같은 검사가 되지 말라 이말이야. 푸후...”


윤상신은 얼굴이 잔뜩 붉어져 술주정을 해댔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만큼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이번에 승진까지 하셨으면서 왜 이러신대? 그럼 나는 맨날 말단에만 있으라는 거예요?”

“그래. 차라리 그게 낫지. 너는 떳떳하기라도 하잖아.”


윤상신은 눈을 부릅뜨고 김누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한탄하기 시작했다.


“나는 쓰레기야. 쓰레기만도 못한 검사라고.”

“아. 네. 취하셨으면 이만 돌아가시죠?”


김누리가 윤상신을 부축하려들자, 윤상신은 팔을 뿌리치며 이번에는 형우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변호사님...”

“네?”

“내가 같은 법조계 선배로서 충고 하나만 해도 됩니까?”


김누리는 그냥 무시하라며 고개를 저었으나,

사뭇 진지해진 윤상신의 태도에 귀를 기울였다.


“네. 그러시죠.”

“...”


윤상신은 입술을 잘근 깨물고 잠시 고민하더니,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맙시다.”

“...네?”

“변호사님도 아시잖아요. 세상엔 위험한 놈들이 너무 많다는 거.”


말 끝을 흐렸지만, 안의균 검사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럼요. 잘 알죠.”

“그러니까요. 난 그쪽이 좋은 변호사가 될 거라고 믿어요. 그러니까. 그동안의 일은 다 잊고. 새롭게 출발하시죠.”

“예.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

“내 말. 흘려듣지 말아요. 절대로.”


순간 윤상신의 말에서 뼈가 느껴졌다.

걱정, 혹은 경고일까.

술에 잔뜩 취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진지한 눈으로 형우의 손을 꼭 붙잡았다.


“하... 또 시작이시네. 이러니까 꼰대 소리나 듣고 다니지. 이제 가요. 괜히 엄한 사람한테 꼬장 부리지 말고.”


김누리의 부축에 윤상신은 다리를 비틀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벌써 들어가. 딱 한 잔. 우리 딱 한 잔만 더하고 가자.”


김누리와 윤상신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형우는 한숨을 내쉬며 서태석을 바라보았다.

서태석은 윤상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자작을 하며 홀로 술잔을 비워내고 있었다.

시계를 쳐다보니, 어느새 11시.

시간도 늦었겠다.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형우의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


그리고.

충격에 빠진 듯 표정이 굳어 윤상신을 빤히 쳐다보았다.


“변호사님도 같이 가시죠.”

“...”


대체 무엇을 본 것인지...

감정을 숨기는데 능숙하던 형우조차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변호사님...? 술 한 잔 더 안 하실래요?”

“...”


형우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김누리가 다급하게 윤상신의 앞을 막아섰다.


“뭘 더 마셔요. 부장님 이미 충분히 취하셨거든요? 우리 곱게 집에 들어갑시다. 예?”


김누리는 곧장 가게를 나가 택시를 잡았다.


“미안해요. 저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


여전히 말이 없는 형우의 모습에 서태석이 대신 대답을 했다.


“변호사님께서 조금 취하셨네요. 조심히 들어가시랍니다.”

“아... 네... 그럼 저는 이만.”


김누리와 윤상신이 떠나간 뒤에도 형우는 한동안 그들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다음 날.


술기운이 가시질 않는 듯.

김누리가 믹스커피를 들고 바깥 공기를 쐬고 있을 때쯤.

익숙한 차량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어? 남형우 변호사님?”


김누리는 곧장 형우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여긴 무슨 일이세요? 혹시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형우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오늘은 윤상신 검사님께 용무가 있어서 왔습니다.”


순간 김누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혹시... 어제 일 때문에 그래요? 그런 거라면 제가 대신 사과...”


무언가 오해한 듯한 김누리의 태도에 형우가 다급히 손사래쳤다.


“그런 거 아닙니다. 윤상신 검사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혹시 지금 어디에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김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친히 윤상신 검사의 사무실로 형우를 데려갔다.


똑 – 똑 -


“부장님.”

“어. 그래. 들어와.”


김누리와 함께 나타난 형우의 모습에 윤상신은 잠깐 놀랬다가 다시 표정을 풀었다.


“남형우 변호사님께서 부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그래요. 이리 앉으세요.”


윤상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쇼파로 향하는 동안,

형우는 고개를 돌려 김누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잠깐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아... 네... 알겠어요.”


무슨 일인지 궁금하긴했지만, 형우의 진지한 모습에 달리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럼 편히 말씀들 나누세요.”


쿵.


김누리가 나가고.

형우와 윤상신은 잠깐동안 무언의 시선을 주고받았다.

어색한 침묵 속.

윤상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네.”

“말씀하세요. 빚진 것도 있으니, 제가 아는 선에서 무엇이든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형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싸늘한 분위기로 입을 열었다.


“강재경 대표와는 무슨 사이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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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강재경 대표 (2) 24.09.13 39 3 12쪽
26 강재경 대표 (1) 24.09.12 33 2 11쪽
25 배신자 (5) 24.09.11 44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40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43 3 12쪽
22 배신자 (2) +1 24.09.07 43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43 3 14쪽
20 진실 24.09.05 47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7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5 3 12쪽
17 재회 (2) 24.09.02 56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62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65 4 15쪽
14 오해 (3) +1 24.08.29 76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7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89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91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95 6 11쪽
9 서태석 (1) +2 24.08.23 106 4 12쪽
8 또 너야 (2) +1 24.08.22 103 5 13쪽
7 또 너야? (1) +2 24.08.21 118 4 11쪽
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25 6 14쪽
5 김누리 검사 (4) +1 24.08.19 127 7 12쪽
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27 7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27 5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46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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