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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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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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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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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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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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2)

DUMMY

쿵쾅쿵쾅.


형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가 지금 형우의 눈앞에 있다.

형우는 묵주를 쥔 손을 강하게 쥐며 봉태만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봉태만의 머리위로 형우의 그림자가 비추자,

봉태만은 험악한 얼굴로 형우를 올려다보았다.


“뉘슈.”


그 목소리다.

평생을 되새겼던. 그날의 목소리.

차오르는 분노를 겨우 참아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봉태만씨. 맞으십니까?”


봉태만은 인상을 찌푸리며 형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요. 나한테 볼 일 있습니까?”


그토록 이 순간을 기다려왔건만.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버거웠다.

눈앞의 이 남자를 잘근잘근 씹어 먹어도 모자랄 판에.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조차 너무나 버거웠다.


“남이건.”

“예?”

“남이건이라는 이름.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봉태만의 주름이 조금 더 깊어졌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더니,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처음 들어보는뎁쇼.”


화가 났다.

눈앞의 이 남자를 어떻게 해버리고 싶을 만큼 커다란 분노가 형우의 마음 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미 그의 기억을 전부 읽어보았지만,

아버지 남이건의 이름은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몰랐던 것이다.

그런 끔찍한 일을 벌였으면서.

자신이 죽인 사람의 이름 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착각한 것 같은데. 절로 가쇼.”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형우를 밀어냈지만,

형우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착각할 리 있겠는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부터.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으면서 아무런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차가운 얼굴.

그리고 아버지의 목을 죄어왔던 싸늘한 목소리.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20년 전. 보문동. 이래도 모르시겠습니까?”

“...”


딱히 죄를 스스로 뉘우칠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자수했겠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느낄 줄 알았다.

설마.

자신이 그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조차 완벽하게 잊고 살아온 그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라는 거야. 당장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생각이 안 나는데, 20년전 일을 내가 어떻게 알아? 크크킄. 아 참. 나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그쪽이 좀 사주면 안 되나?”


까드득.


장난스러운 그의 태도에 형우는 이빨을 잘근 깨물었다.


“혹시 모르잖아. 그쪽이 뭐라도 사주면 20년 전 무언가 떠오를 수도.”

“x발.”


형우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봉태만의 멱살을 강하게 쥐었다.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아이고. 이 남자가 사람 잡네! 사람 살려~”


[제발 살려줘.]


아버지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봉태만에게 살려달라며 애원했다.

당신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아버지를 죽게 만들어놓고.

살려달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내뱉으면 안 되는 거잖아.


틱 -


그 순간 겨우 붙잡고 있던 형우의 이성이 끊어졌다.


퍽.


형우의 주먹이 봉태만의 콧등에 강타했다.


“x발. 여기 보세요!! 이 새끼가 사람 잡아요!!”


봉태만은 흘러내리는 코피를 부여잡으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퍽. 퍽.


그러나 형우의 주먹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직 분노에 사로잡힌 싸늘한 눈동자.


‘그 남자. 찾으면 죽일 겁니까?’


문득 서태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의 말이 옳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삐이익 -


“지금 뭣들 하시는 겁니까?”


사람들의 신고를 받아 출동한 은행 경비 두 명이 호루라기를 불며 형우에게 달라붙었다.


***


서울 인근의 경찰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형우를 긴급 체포한 경찰은 노트북 앞에 앉아 형우의 개인 정보를 물었다.


“...”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형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이성을 되찾으려고 해도 머릿속에는 온통 그날의 기억뿐이었다.


“이봐요. 당신 지금 폭행 사건으로 긴급 체포된 겁니다. 그러니까 묻는 질문에 빨리 대답하세요.”


오랜시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형우와는 달리,

간단한 인적 조사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한 봉태만.

당장이라도 봉태만에게 다시 찾아가고 싶었으나,

경찰의 짜증 섞인 태도에 형우는 힘겹게 침착함을 되찾았다.


“전화 한 통만 해도 될까요?”


...


잠시 후.

형우가 한창 조사를 받던 중.

누군가가 경찰서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왔다.


“남형우 변호사님?”


김누리는 숨을 헐떡이며 곧장 형우에게 다가왔다.


“보호자분 되십니까?”


경찰이 눈살을 찌푸리며 김누리를 막아서자,

김누리는 검찰 공무원 증을 내밀며 경찰들을 뒤로 물렸다.


“잠깐 이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건 조금 곤란할 것 같은데... 아직 조사가 안 끝나기도 했고...”

“잠깐이면 됩니다.”


김누리의 간곡한 요청에 경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워주었다.


“변호사님.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폭행 사건이라뇨.”

“미안합니다. 생각나는 사람이 검사님 밖에 떠오르지 않아서요.”


이런 짓을 벌일 만한 사람이 아닌데.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형우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무언가 사연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형우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무런 증거조차 없는 지금 이 상황에서 봉태만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저는 그쪽을 도와주러 이곳에 온 겁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든 믿어줄 테니까. 말씀해보세요.”


형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전에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네...?”

“제 아버지는 살해당하셨다고요.”

“설마...”

“틀림 없습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를 마주쳤다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신에 찬 형우의 얼굴을 보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김누리는 곧장 경찰에게 다가가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형우를 경찰서 밖으로 꺼내주었다.


“오늘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시죠.”

“...”

“허튼 생각하지 말아요. 사건에 대한 조사는 저희 검찰이 합니다.”


잠깐의 고민 끝에 형우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다음 날.

김누리는 남이건의 사건을 조회하기 위해 자료실 컴퓨터를 두들겼다.


“자살이라...”


사건 자료를 읽어보던 김누리의 눈살에 주름이 잡혔다.

분명 보고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증거도 충분하고 마땅히 왜곡된 내용도 눈에 띄지 않았다.


“흠...”


그러나 분명 형우는 확신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20년도 넘게 지난 사건에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을 지는 의문이었으나,

형우를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조사를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혹여 봉태만에게 다른 전과가 없는지 신원조회를 하려던 그때.


철컥 -


동료 안의균 검사가 자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김검사. 여기 있었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말이야.”


안의균은 태연하게 김누리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뭔데요.”

“지금 네가 맡고 있는 마약 사건 말이야. 내가 조금 도와줘도 될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김누리는 싸늘한 눈빛으로 안의균을 노려보았다.

검사는 보통 다른 검사들의 사건에 숟가락을 얹지 않는다.

사공이 여럿이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고,

실적으로 직결되는 예민한 문제이니까.

안의균은 어색하게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야. 그 사건 원래 나한테 배정된 사건이잖아. 내 손으로 직접 마무리하고 싶어서 그래.”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이번 만큼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 마약 사건과 같은 예민한 사건은 경력이 많은 베테랑 검사가 담당하기 마련.

이제 막 초임 검사 딱지를 뗀 김누리가 맡을 사이즈가 아니었으나,

일전의 홍승호 회장의 입김 때문인지,

담당 검사가 안의균에서 김누리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시죠.”


김누리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안의균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 그럼 혹시 지금 바로 사건 자료 좀 확인할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김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안의균도 곧장 그녀를 뒤따라 자료실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문득 김누리가 무슨 자료를 조회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발걸음을 돌려 자료실 모니터를 확인하는 그 순간.

안의균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봉태만」


그리고 황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자료실을 빠져나갔다.


***


다음 날.

형우는 봉태만의 기억을 되짚어 그의 집을 찾아갔다.

밤새 한 순간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김누리가 봉태만에게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당부하긴 했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부모의 원수가 당장 눈앞에 있는데.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허름한 건물.

콘크리트 바닥 틈새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을 정도로

그의 집은 꽤나 방치되어 있었다.


똑. 똑.


“봉태만씨. 계십니까.”

“...”


집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형우는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문 밖까지 풍겨져 나오는 고약한 담배 찌든 냄새.

봉태만의 몸에서 픙겼던 냄새와 일치하는 걸 보면,

그가 이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 없었다.

거실로 향하니, 방 안에는 담배꽁초와 음식물 쓰레기들이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집안에 퍼졌음에도.

봉태만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방 안에도 없는 걸 보면, 잠깐 밖에 외출을 한 것이겠지.

형우는 잠시 눈치를 살피고 옷장과 서랍장을 뒤졌다.

가능성은 희박하나, 무슨 증거가 발견될 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봉태만의 집에서는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남은 방법은 봉태만에게 직접 추궁하는 방법뿐.

거실 중앙에 서서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어떤 말로 그의 자백을 이끌어낼지 고민하던 찰나.


주르륵.


갑자기 형우의 발 밑으로 수돗물이 흘러들어왔다.


‘뭐야. 이건.’


물이 흘러나온 곳을 따라가보니,

화장실 문틈으로 붉게 물든 수돗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설마...!?’


쾅 -


불길함을 감지한 형우는 곧장 문을 박차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


칼로 손목이 그어진 봉태만의 시신이 욕조 안에 눕혀져 있었다.


‘말도 안 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눈동자가 흔들려 뒷걸음 치는 그때.

누군가의 기억이 형우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봉태만의 자택에 들어왔을 때부터,

밖에서 몰래 형우를 감시하던 누군가의 기억.

형우는 다급히 밖으로 나가 그가 숨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젠장.’


하지만 그는 이미 자리를 떠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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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배신자 (5) 24.09.11 39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5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37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8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8 3 14쪽
20 진실 24.09.05 42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3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0 3 12쪽
» 재회 (2) 24.09.02 51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58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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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11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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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5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5 4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3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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