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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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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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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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서태석 (3)

DUMMY

서태석은 태어날 때부터 불행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도박에 미쳐있었고,

어머니는 술집으로 출근하시며 외간 남자의 접대를 했다.

그래서인지 누구하나 서태석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없었다.


“x발. 짐덩이 같은 새끼.”


심지어는 출생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차마 가족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밖에서 기르는 가축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서태석은 딱히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평생을 집 안에 갇혀 지냈기에,

다른 가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야. 짐덩이. 라면 하나 끓여와.”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때문일까.

5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갔다.

그래서 아버지의 식사를 준비하는 건 언제나 서태석의 몫이였다.


“여기...”

“놓고 꺼져. 네놈 얼굴 보면 입맛 떨어지니까.”


그날 따라 서태석의 아버지는 잔뜩 취해 있었다.

도박장에서 큰돈을 잃었다나 뭐라나.

서태석은 알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아버지의 밥상을 차려주고 난 뒤,

서태석은 TV 앞에 앉아 주머니에 숨긴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몽땅 연필.

어머니가 가계부를 작성하셨을 때 사용하시던 연필이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의 물건을 전부 버리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연필 하나만큼은 버리지 않고 남겨두었다.


학교에 보내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글을 알려주지도 않는데.

스스로라도 공부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뉴스에 나오는 자막을 무작정 따라 쓰며 한글을 공부했다.

글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라면을 끓일 때 설명서를 읽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가만히 방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혹여 연필심이 부러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아나운서의 말을 열심히 받아적고 있던 그때.


쾅 -


집 대문을 열고 누군가가 찾아왔다.


“서정훈. x발 너 안에 있냐?”


툭.


예상치 못한 큰 소음에 서태석이 손에 쥔 연필심이 부러졌다.


‘...’


사채업자 정택림.

그는 매주 집을 찾아와 아버지에게 돈을 갚으라 협박했다.


“야. 이 새끼야. 너 내 돈 언제 갚을 거야?”

“미..미안합니다... 다음 주에 꼭... 으윽...”


퍽. 퍽.


사채업자의 사나운 목소리와 함께 방 안에서 아버지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서태석은 전혀 개의치 않고 부엌에서 칼을 꺼내 연필을 깎았다.


서걱 – 서걱 -


서태석에게는 꽤나 익숙한 상황이었다.

이건 마치 자연의 순리.

그가 아버지에게 얻어 맞는 것처럼,

아버지도 본인보다 강한 누군가에게 맞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저한테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내가 만만해 보이나.”


쿵.


무언가 강하게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 뒤지기 싫으면.”

“...”

“일어나라고. 야!!”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정택림의 목소리가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 x발. 이거 x됐네.”


정택림은 아버지를 두고 곧장 집을 빠져나갔다.

서태석이 방문을 열었을 땐.

이미 아버지의 숨은 멎어 있었다.

피로 흥건히 젖은 방바닥, 싸늘하게 식은 아버지의 몸.


서태석은 한참 동안 아버지의 시신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휩싸였다.

슬픔? 분노? 해방감? 기쁨?

서태석 본인 조차도 지금 드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헤아릴 수 없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서태석은 황급히 옷장에 몸을 숨겼다.

커다란 캐리어와 함께 다시 나타난 정택림.

그는 아버지의 시신을 캐리어 안에 담고서는 알코올을 뿌려 바닥에 어질어진 피를 닦아냈다.


...


“헉. 헉.”


정택림은 캐리어를 끌고 집 바로 뒤에 있는 뒷산에 올라, 삽으로 열심히 구멍을 팠다.


“x발. 더럽게 힘드네.”


성인 남성 두 명이 거뜬히 들어갈 정도의 깊이가 되었을 때쯤, 아버지의 시신이 담긴 캐리어를 발로 차 밀어 넣었다.


“그러니까. 돈을 제때 갚았어야지. 이 한심한 새끼야.”


정택림은 바쁜 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아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켜는 그 순간.

뒤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서태석이었다.


“뭐야..!? x발.”


서태석은 싸늘한 눈으로 정택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푹.


대응할 틈도 없이 서태석의 손에 들린 뾰족한 몽땅 연필이 정택림의 목을 관통했다.

동맥을 정확히 찔린 정택림은 입으로 피를 쏟아내다가 곧장 구멍 안으로 고꾸라졌다.


“...”


아버지가 죽었을 땐 무슨 감정이 들었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돈을 갚지 않아서 아버지를 죽였다는 정택림의 말에 그 감정이 무슨 감정이었는지 깨달았다.

복수심.

나의 것을 빼앗아간 사람에 대한 복수.


솔직히 아버지가 죽었다고 해서 딱히 슬프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기쁜 쪽에 가까웠다.

매일 자신을 괴롭히던 아버지에게서 해방되는 순간이었으니까.

어쩌면 연필심이 부러진 사실이 더욱 크게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정택림을 죽여야겠다고 생각이 든 이유가 아버지인지, 연필인지는 몰라도.

어찌 됐든 자신의 것을 빼앗은 정택림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살인이라는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아버지와 정택림의 시신을 땅에 묻는 서태석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도무지 정상인이라고는 볼 수 없는 섬뜩한 미소가...


***


“...”


형우의 침묵에 서태석은 책상 위에 놓인 명패를 어루만졌다.


「변호사 남형우」


분명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전에 어딘가에서 마주쳤다면 얼굴을 알아 보지 못할 리가 없는데.

어떻게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지 의문이 풀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한테 접근한 이유가 뭡니까?”

“말은 똑바로 하죠. 내가 그쪽한테 접근한 게 아니라, 그쪽이 날 찾아온 겁니다.”


형우의 당당한 태도에 서태석은 어이 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그 일을 알고 있는 겁니까?”


서태석은 손에 든 연필로 머리를 긁적이며 형우와 똑바로 얼굴을 마주했다.

협박 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얼굴이었으나,

언제라도 돌변할 수 있는 서태석의 태도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그쪽한테 말해줄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순간 서태석의 눈빛에서 살의가 느껴졌다.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형우의 눈길이 필통 안에 있는 커터칼로 향하던 그때,


“원하는 게 뭡니까?”

“...네?”

“내 비밀을 알고도 그동안 가만히 있었다는 건. 나한테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거 아니에요?”


서태석은 살기를 거두고 쇼파에 털썩 기대 앉았다.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반응은 너무나 침착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을 생각이라고.”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당신의 복수를 도와달라. 이 말이네요.”


‘복수’라.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보지는 않았으나,

눈앞의 남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기에 그보다 적합한 단어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서태석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더니,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두 배.”

“네...?”


예상치 못한 대답에 형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당신이 제시한 월급의 두 배. 그게 내 조건이야.”


터무니 없는 조건에 형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그쪽 약점을...”

“허세부리지 마.”


그 순간 서태석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내 비밀을 들먹인다는 건. 당신도 이 일을 밖에 알리고 싶지 않은 거잖아. 안 그래?”


서태석은 형우의 생각을 들여다보듯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잖아. 서로의 비밀을 쥐고 있는 관계. 그거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메리트라고 생각되는데.”


형우가 서태석의 비밀을 들먹인 것도 같은 이유였다.

비밀을 알고 있으니, 협상에서 우위를 가져오려는 생각이었는데.

서태석은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솔직히 말하면 서태석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사람을 구해야 하는 것도,

비밀을 엄숙하며 군말 없이 아버지 사건을 조사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도 형우의 몫.

서태석과 같은 적임자를 찾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를 건넸다.


“좋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태석씨.”

“그래요.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남형우 변호사님.”


그제서야 서태석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도무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형우에겐 무엇보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


다시 현재.

서울 교도소에 도착한 형우는 대기실에 앉아 서태석이 정리한 신규 입소자 자료를 신중하게 읽어보았다.


“아이고. 변호사님 또 오셨네요?”


교도관 배성우는 반갑다는 미소를 지으며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이네요. 교도관님.”

“변호사님도 참으로 대단하시네요. 아무리 봉사라지만, 매번 이렇게 나오시기 쉽지 않으실 텐데.”


형우는 주기적으로 재소자들에게 무료로 법률 상담을 해주는 봉사를 해왔다.

순수하게 남을 돕기 위함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형우에겐 재소자들의 기억을 읽어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를 찾아내려는 목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배성우는 해맑은 미소로 형우에게 커피를 건넸다.


“이번에도 안에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네. 혹시 어려울까요?”

“에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변호사님이라면 문제 될 거 없죠.”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교도소에서 접견실을 제외하면,

절대로 일반인을 안으로 들일 수 없다.

하지만 교도관들의 법률 상담을 무료로 해주며 이미 돈독한 신뢰 관계를 쌓아두었던 형우였기에, 배성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교도소 안으로 안내했다.


“편하게 둘러보시지요.”

“감사합니다. 교도관님.”


형우는 재소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 공장으로 향해 한참 동안 그들의 모습을 살폈다.

이곳에 온 것도 벌써 일곱 번째.

신규 재소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차례로 재소자들의 기억을 살펴보고 있는데.

낯선 분위기를 풍기는 누군가가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교도관님.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는데. 한 번 드셔보시겠습니까?”


처음 듣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한 재소자가 작은 종이 봉투를 들고 문 앞의 교도관과 대화하고 있었다.


“어~ 그래. 고마워. 잘 먹을게..”


신규 입소자 명단에 없었던 걸 보면,

분명 원래 이곳에 있던 사람이라는 건데.

그에게서 느껴지는 낯선 분위기에 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배성우에게 물었다.


“못 보던 사람인 것 같은데요.”

“누구... 아. 6715 말씀하시는 거예요?”


교도관의 말에 따르면.

6715는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 때문에, 전용 시설에 따로 구금되어 있었다고 한다.

원래였다면 다른 재소자들과 함께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뛰어난 요리 실력을 지니고 있어, 재소자들의 간식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교도관님. 이것 좀 한 번 드셔보시겠습니까?”


6715는 어느새 배성우에게도 다가와 붕어빵이 담긴 종이봉투를 건넸다.


“고마워. 잘 먹을게. 변호사님께서도 한 번 드셔보시겠습니까?”

“...”


아무런 반응이 없자 배성우는 어깨를 툭툭 치며 형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형우 변호사님...?”


6715의 얼굴을 확인한 형우는 충격에 휩싸인 듯 차갑게 얼어붙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6715의 이름은 김성도.


...김누리 검사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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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배신자 (5) 24.09.11 38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4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36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7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7 3 14쪽
20 진실 24.09.05 42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2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49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58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59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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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오해 (2) +1 24.08.28 80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78 4 11쪽
» 서태석 (3) +1 24.08.26 85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86 6 11쪽
9 서태석 (1) +1 24.08.23 9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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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또 너야? (1) +2 24.08.21 105 4 11쪽
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10 5 14쪽
5 김누리 검사 (4) +1 24.08.19 111 6 12쪽
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4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4 4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32 5 12쪽
1 아버지의 죽음 +2 24.08.14 157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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