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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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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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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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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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DUMMY

세단 차량에서 붉은색 브레이크등이 켜지자, 서태석은 운전석으로 향해 창문을 두드렸다.


똑똑 -


“잠시 창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이시죠?”


창문이 열리기도 전에 옆에 있던 안의균이 먼저 다가왔다.

불쾌한 듯 인상을 찡그린 얼굴.

그는 세단 차량을 보호하려는 듯 서태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무슨 검문요?”

“인근 마을에서 도난 신고가 들어와서요. 협조 부탁드립니다.”

“당신 경찰 맞아요?”


안의균은 의심스러운 얼굴로 서태석을 흘겨보았다.

경찰 복장을 한 것도 아니고,

자동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산길에서 검문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서태석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지갑에서 가짜 경찰 공무원증을 꺼내 내밀었다.

안의균은 공무원증과 서태석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서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이분은 그런 짓을 벌일 분이 아닙니다.”


다행이도 공무원증이 가짜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반응이다.


“그러니까요. 신원조회만 협조해주시면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잠깐의 침묵.

안의균은 역으로 검찰 공무원증을 꺼내 들이밀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만. 대답이 됐을까요?”

“아. 검사분이시군요. 그럼 그쪽은 됐고.”


똑똑 -


서태석이 다시 한 번 운전석 창문을 두들겼다.


“저기요. 창문 좀 열어보시라니까요.”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에 안의균이 인상을 찌푸렸다.


“일 크게 벌리지 말고 돌아가시죠.”

“잠깐이면 됩니다만.”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모양인데. 좋게 말로 할 때 돌아가라고.”


안의균이 서태석의 어깨를 밀쳐댔다.

당장이라도 싸울 듯한 분위기.

그 순간.


스르륵 -


굳게 닫혀있던 창문이 아래로 내려졌다.


“...여기 신분증이요.”


검정색 양복을 입은 운전수가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내밀자, 안의균은 꼬리를 말고 곱게 뒤로 물러났다.


“아. 협조 감사드립니다.”


서태석은 잠시 운전면허증을 들여다보고는 다시 운전수에게 건네주었다.


“옆에 계신 분도 신분증 주셔야죠.”


조수석 남자는 무표정로 서태석을 노려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신분증을 꺼내 건넸다.


“이제 됐습니까?”


짜증 섞인 조수석 남자의 목소리.

하지만 서태석의 대답은.


“아니요. 뒤에 한 분이 더 계신 것 같은데.”

“...”


덜컥 -


끈질긴 서태석의 집착에 조수석 남자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얼핏 봐도 190이 넘어보이는 거대한 덩치.

덩치라면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음에도,

조수석 남자는 서태석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그윽한 살기를 뿜어댔다.

그의 주먹이 그대로 서태석을 향하려던 찰나.


스르륵 -


뒷좌석 창문이 아래로 내려졌다.


“박실장. 난 괜찮으니까 그만해요.”


뒷좌석의 남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손짓하자, 박실장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제가 지금 신분증이 없어서 그런데. 이걸로 대신할 수 있을까요?”


서태석은 뒷좌석 남자가 건넨 명함을 받아들었다.


「일형 아이앤씨 대표 강재경」

그는 TV에서 자주 보였던 무역회사의 대표였다.


“아이고. 대표님을 제가 못 알아뵀군요. 죄송합니다.”


서태석이 고개 숙여 반갑게 인사하자, 강재경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제가 지금 바쁜 일이 생겨서 급히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서태석은 잠시 손목시계를 확인하고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럼요. 귀한 시간 빼앗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나랏일 하시는 분인데, 협조해드려야죠. 그럼 저희는 이만.”


강재경과 안의균은 가볍게 인사를 건넨 뒤, 곧장 산길을 빠져나갔다.


“...”


그들의 차량이 시야에서 완벽하게 사라졌을 때쯤.

서태석은 다시 형우에게로 돌아갔다.

차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형우는 서태석을 다그칠 생각이었으나,

어찌 되었든 덕분에 시간을 벌었으니 따로 책임을 묻진 않았다.


“그건 대체 어디서 난 겁니까?”


형우가 가짜 경찰 공무원증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이거요? 봉태만 사건 조사할 때 썼던 거예요. 이것만 있으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니까요?”


너무나 당당한 서태석의 태도에 형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충 알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대범하게 일을 벌일 줄이야.


“그나저나. 만족하셨습니까?”


장난스러운 서태석의 얼굴.

형우는 그제서야 미소를 되찾았다.


“네. 덕분에요.”


조금.

아니.

많이 늦긴 했지만.

강재경 대표의 기억을 읽어보고 확실하게 깨달았다.

총구를 겨누어야 할 사람은 봉태만뿐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 상대해야 할 대상이 정확히 누군지도.


***


20년 전.


일형 아이앤씨는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이제 막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대한민국 산업을 따라.

무역 시장은 세간의 집중이 되었고,

일형 아이앤씨는 창립 이래 최대 호황기를 맞이하며 엄청난 성장을 이룩했다.

그 가운데에는 남이건이 있었다.

출중한 안목과 거침없는 협상 방식으로 300%가 넘는 이익을 이끌어냈다.

간부진은 남이건의 능력을 높이 사, 본사로 불러들였고,

그는 어깨에 날개가 달린 듯 천문학적인 금액의 거래를 성공적으로 성사시켰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애초에 커다란 자금을 가지고 시작한 회사가 아니었으므로 새로운 활로를 펼칠 투자금이 한없이 모자랐다.

자칫했다간 이 좋은 기회를 다른 무역회사가 가로챌 수도 있는 상황.

강재경 대표는 자금확보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직원들을 몰아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금난은 해결이 되었지만.

현장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휴식시간도 없는데 업무량이 너무 과도하다는 것.

현장 출신이었던 남이건은 현장 노동자들의 고충을 정리해 회의 시간에 발표했으나,

어째서인지 다른 간부들은 이건의 말을 은근히 무시하는 듯 보였다.

오직 회사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그들의 태도.

강재경 대표는 오히려 남이건을 다그치며 직원을 더 뽑을 수는 없으니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명령했다.


그날 저녁.

본사에서는 매출 상승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가 열렸다.

남이건은 노동자들의 서명서를 보여주며 당장이라도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재촉했으나, 강재경 대표는 남이건의 말을 무시한 채 파티를 즐겼다.

다음 날.

결국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계속된 야근으로 인한 과로로 크레인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3명이 사망할 정도로 심각한 사고였음에도 강재경 대표는 개인의 과실이라 주장하며 조용히 사건을 덮었다.


더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남이건은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 시위에 동참했다.

강재경 대표는 현장에 신경 쓰지 말고, 당장의 거래에 집중하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남이건은 비리가 의심되는 장부를 들먹이면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했다.


며칠 뒤.

남이건은 자택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뉴스에서는 남이건이 인력 증원으로 배정된 자금을 횡령했고,

끝내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은 강재경 대표의 생각이었다.

자신의 죄를 덮음과 동시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남이건을 살해한 것이다.


***


형우는 강재경의 기억을 떠올리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평생을 슬픔 속에서 살아온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강재경 대표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리라 다짐했다.


...


다음 날, 형우의 사무실.


형우와 서태석은 일형 아이앤씨와 강재경 대표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다.

뉴스 기사부터, 회사 재무제표까지.

무엇하나 놓치지 않고 면밀하게 자료를 수집했다.


“흠... 딱히 이상한 점은 없는데요?”


서태석은 정리한 자료를 형우에게 내밀었다.


「국가 산업에 날개를 달아준 일형 아이앤씨」

「기부에 돈을 아끼지 않는 모범 기업인, 강재경 대표」


일형 아이앤씨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매우 우수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트집조차 잡을 수 없었다.


“강재경 대표가 사건에 관련된 건 확실합니까? 난 잘 모르겠는데.”

“...서태석씨는 내가 시키는 것만 하면 됩니다.”


형우의 차가운 대답에 서태석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럼요. 우리 잘나신 변호사님께서 착각하실 리가 없죠.”


비아냥 거리는 서태석을 뒤로하고 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어디 가십니까?”

“현장에 가보려고요.”

“저도 같이 가요.”


서태석이 형우를 따라 일어나려 하자,

형우는 서태석의 어깨를 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쪽은 여기서 강재경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조사해주세요. 집은 어딘지, 가족은 누구인지, 밥은 어디서 먹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요.”


형우에게서 풍기는 싸늘한 분위기 때문일까,

서태석은 어제와는 다르게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


경기도 평택.

형우는 일형 아이앤씨 컨테이너 터미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왜 진작에 이곳을 찾아오지 않았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설마 아버지의 죽음이 회사와 관련되어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못했고,

장례식에서 달걀을 던질 정도로 아버지에게 깊은 원망을 지닌 그들과 도저히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컨테이너 박스들.

컨테이너 날개를 조립하는 인부들,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크레인 소리까지.

딱히 이곳에 와본 적은 없었지만,

아버지 남이건의 기억을 지닌 형우에게는 모든 풍경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한창 아버지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누구십니까?”


무언가 낯이 익은 얼굴.

방준혁.

남이건의 동료.

어렸을 적 몇 번 만난적이 있을 정도로 아버지와 가깝게 지낸 사람이었다.

그러나 방준혁은 형우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듯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뭐 좀 여쭤볼 게 있어서요.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형우는 방준혁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혹여 이름을 보고 자신을 알아보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방준혁의 반응을 보니, 역시나 그는 형우를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혹시. 이곳에서 일하셨던 남이건씨를 기억하십니까?”


‘남이건’이라는 이름에 방준혁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저는 그런 사람 모릅니다.”

“그러면 남이건씨를 알 만한 다른 사람이 있을...”

“없습니다.”

“예...?”

“우린 그런 사람 모르니까. 돌아가시라고요.”


방준혁의 눈에서 남이건을 향한 강한 원망이 느껴졌다.

다른 인부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적진에 홀로 남은 병사가 된 듯.

싸늘한 눈초리로 형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그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그들의 기억 없이는 당시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수 없을 테니까.


“왜 자꾸 따라오십니까.”

“죄송합니다. 잠깐 이곳을 둘러보고 싶어서요.”


방준혁은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형우의 모습에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원래 외부인은 허가 없이 함부로 이곳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얼른 나가세요.”


형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봉준혁의 뒤를 쫓으려 했으나,

봉준혁은 경비를 불러 형우를 밖으로 내보내라 명령했다.


“잠시만요!! 딱 30분이면 됩니다!!”


경비원의 손에 이끌려 나가는 순간에도 형우는 봉준혁을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이대로라면 봉준혁의 기억을 읽을 수 없게 되는 상황.

하는 수 없이 힘으로라도 경비를 제압하려던 그때.


“남형우 변호사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여기서 뭐하세요...?”


고개를 돌려보니, 김누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형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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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꼬리(1) 24.09.16 23 2 12쪽
28 강재경 대표(3) 24.09.16 21 2 11쪽
27 강재경 대표 (2) 24.09.13 32 3 12쪽
26 강재경 대표 (1) 24.09.12 28 2 11쪽
25 배신자 (5) 24.09.11 38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4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36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7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7 3 14쪽
» 진실 24.09.05 42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2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49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57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59 4 15쪽
14 오해 (3) +1 24.08.29 70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0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78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84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86 6 11쪽
9 서태석 (1) +1 24.08.23 95 4 12쪽
8 또 너야 (2) +1 24.08.22 92 5 13쪽
7 또 너야? (1) +2 24.08.21 105 4 11쪽
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10 5 14쪽
5 김누리 검사 (4) +1 24.08.19 111 6 12쪽
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4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4 4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32 5 12쪽
1 아버지의 죽음 +2 24.08.14 157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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