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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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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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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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안의균 검사 (1)

DUMMY

- 예.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형우는 봉태만의 시신을 경찰에 신고한 뒤, 곧장 어딘가로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김누리가 근무하고 있는 검찰청.

그녀의 사무실 앞에 도착하니,

일전의 재판에서 인사를 주고 받았던 왕석훈 조사관과 마주쳤다.

왕석훈의 뒤에는 대학 교수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그를 뒤따르고 있었다.


“어? 남형우 변호사님 아니십니까?”


왕석훈이 반갑게 다가오자, 형우는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했다.


“오랜만이네요.”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김누리 검사님께 용무가 있어 찾아왔습니다.”

“혹시 사전에 약속을 하셨나요?”

“아니요. 연락을 따로 드리진 않았습니다만...”


왕석훈은 잠시 고민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어댔다.


“지금 검사님께서 회의중이셔서. 혹시 잠깐만 밖에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왕석훈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형우는 벽에 기대 회의가 끝나길 기다렸다.


...


“조금 늦었습니다.”


왕석훈은 고개를 숙여 김누리와 안의균에게 인사한 뒤,

뒤에 있는 중년의 남성을 소개시켜주었다.


“이쪽은 함지대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계시는 구성락 교수님이십니다.”


김누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성락에게 악수를 건넸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지금 바로 통역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구성락은 김누리의 맞은 편에 앉은 외국인 남성에게 다가가 스페인어로 가벼운 인사말을 건넸다.


“[반갑습니다. 구성락 교수라고 합니다.]”

“...”


외국인 남성은 말을 할 생각이 없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저는 당신을 도와드리려고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그제서야 굳게 닫혀 있던 외국인 남성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 ????]”

“[네...?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 ????? ????]”


그렇게 외국인 남성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 받더니, 고개를 저으며 김누리를 쳐다보았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


구성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바스크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바스크어.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희귀 언어.

인도, 프랑스, 스페인 등의 다수의 외래어를 빌려쓰고 있기에 스페인 현지인조차 바스크어를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전 세계적으로 바스크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70만명 남짓.

유럽 사람들조차 바스크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뿐더러,

대한민국에서 바스크어를 접할 수 있는 곳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에.

현지인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통역사를 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구성락은 입을 꾹 다문 채,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젠장.”


김누리는 주먹으로 강하게 책상을 내리쳤다.


“조금만 참아. 내가 다른 전문가를 찾아볼게.”


안의균이 멋쩍은 표정으로 화를 달랬으나, 김누리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눈앞의 외국인 남성은 마약을 조달하던 핵심 용의자.

이런 식으로 시간을 지체하다간 그와 관련된 마약범들이 꼬리를 잘라내고 종적을 감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


하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외국인 남성을 돌려 보내려던 그때.


철컥.


사무실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저기...”


형우가 문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자, 왕석훈 조사관은 다급히 형우에게로 향했다.


“지금 회의 중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밖에서 조금 기다리시라고...”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뭐?

평생 스페인어를 전공한 교수조차 고개를 저었는데.

일개 변호사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어처구니 없는 형우의 말에 안의균은 피식 실소를 터뜨리며 형우를 바라보았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지금 중요한 회의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 ????? ???.]”


안의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우의 입에서 알 수 없는 단어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외국인 남성은 화들짝 놀라 형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 바스크어를 할 줄 아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안의균은 황급히 형우와 외국인 남성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 지금 두분이서 무슨 대화를 나누시는 겁니까?”

“아. 죄송합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이분과 대화를 나눠봐도 될까요? 제가 수사에 협조하도록 설득해볼게요.”

“그건 곤란할 거 같은데요. 그쪽은 사전에 협의된 사람도 아닐뿐더러, 이 사람은 이번 사건의 중요한 용의자라서요.”

“이상하네요.”

“네?”


순간 안의균의 표정이 굳어졌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바스크어를 할 수 있는 전문가는 상당히 찾기 어려울 거라고. 지금 그 찾기 어렵다는 전문가가 떡하니 있는데. 거절하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혹시. 숨기고 싶은 것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무언가를 떠보는 듯한 형우의 물음에 안의균은 잠시 형우를 노려보다가, 금새 표정을 풀고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그저 절차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 것뿐입니다. 변호사님께 정식으로 협조 요청서를 보내드릴 테니, 내일 다시 오시는게...”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


안의균은 다시 한 번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변호사라는 거 어떻게 아셨냐고요. 저는 그쪽을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워낙 유명하신 분인데. 제가 얼굴을 못 알아볼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요? 난 그쪽을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형우는 싸늘한 기운을 풍기며 안의균과 얼굴을 가까이 마주했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분위기.

김누리는 둘을 갈라놓으며 형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남형우 변호사님.”


김누리가 제멋대로 결정을 내리자, 안의균은 다급히 앞을 막아섰다.


“김누리 검사.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 절차도 없이 대체 이 사람을 뭘 믿고 맡기겠다는 거야.”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남형우 변호사님께서는 일전의 사건 조사에서도 협조해주신 이력이 있으시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이 사건은 제 담당입니다. 저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아요.”


단호한 태도에 끝내 안의균도 고개를 끄덕이며 김누리를 따라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


잠시 후.

대화를 마친 형우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협조하겠답니까?”


김누리는 안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자세히 물어왔다.


“네. 협조하겠답니다.”

“정말요? 휴... 다행이네요. 고생 많으셨어요. 변호사님.”

“정말 저 사람이 그렇게 말했습니까?”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의균의 얼굴에 주름이 잡혔다.

마치, 형우의 행동을 탐탁치 않아하는 사람처럼.


“네.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까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고 내일 다시 뵙도록 하죠.”


안의균이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형우가 방긋 웃으며 김누리에게 물었다.


“김누리 검사님.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같이 저녁 드실래요?”

“...네? 갑자기요? 저는 상관 없긴 한데...”

“안의균 검사님도 같이 가시죠.”


형우는 옆에 있는 안의균에게도 의사를 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두분이서 다녀오세요.”

“그러지 말고 같이 가시죠.”


끈질긴 형우의 제안에 안의균은 잠시 김누리의 눈치를 살피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치이익 -

사람 하나 없는 동네 구석의 작은 고깃집.

형우와 안의균은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싸늘한 시선을 주고 받았다.


“그나저나 제 사무실에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긴장감이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김누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어제 일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아... 봉태만씨 말씀이시죠?”

“네. 오늘 아침. 봉태만씨가 자택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네?! 뭐라고요?!”


김누리는 자리를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사인이 뭔데요?”

“경찰 조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자살인 것 같습니다.”

“...”


문득 김누리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형우를 쳐다보는 김누리의 의미심장한 눈빛.

형우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다급히 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김누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면 봉태만은 왜 갑자기 그런 선택을 한 겁니까?”


조금 이상했다.

딱히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형우에게 합의금을 뜯어내려던 그가 자살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죄를 뉘우치고 싶다고 적혀있더군요.”

“...비겁하네요. 기껏 선택한 방법이 도망이라니...”


김누리는 동정의 시선으로 형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죄를 뉘우치겠다는 의미로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금고 안에 넣어두었다고 하더군요.”


‘증거’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안의균의 눈꼬리가 살짝 씰룩였다.


“그래요?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요.”

“금고 안에는 뭐가 들어있었습니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안의균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형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유서에 비밀번호는 적혀 있지 않아서요. 내일 전문가를 부른다는 것 같던데...”

“그렇군요.”


심오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불판에 올린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갔다.


“다 익은 것 같은데. 일단 식사 먼저 하고 말씀 나누시죠.”


김누리가 고기를 한 입 크기로 잘라 각자 앞에 놓인 접시에 올려놓는데.

안의균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합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갑자기요?”


김누리가 따라 일어서자, 안의균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와이프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해서, 지금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계산은 제가 할 테니 식사 맛있게들 하십시오.”


안의균은 형우에게 시선을 돌려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곧장 음식점 밖을 빠져나갔다.


***


잠시 후 봉태만의 자택.

경찰이 퇴근한 시간.

까만 모자를 쓴 수상한 남성이 대문 앞을 서성거렸다.

그는 누군가 지켜보는 사람은 없는지 주변을 살피고서는 노란 테이프를 들어 올려 안으로 들어갔다.


부스럭 – 부스럭 -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집안.

수상한 남성은 손전등을 켜고 집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X발.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봉태만의 방 안으로 들어가는 그때.


틱 -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형광등이 밝게 빛을 내뿜었다.

문 뒤에서 수상한 남성을 지켜보던 사람은...

다름아닌 형우였다.


“여긴 병원이 아닌 것 같은데요.”


수상한 인물이 황급히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도망치려하자,

형우는 빠르게 문을 닫아 도주로를 차단했다.


“그러지 말고 저랑 말씀 나누시죠. 안의균 검사님.”

“...”


그제서야 안의균은 모자를 벗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살기 가득한 그윽한 눈으로 형우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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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강재경 대표 (2) 24.09.13 32 3 12쪽
26 강재경 대표 (1) 24.09.12 28 2 11쪽
25 배신자 (5) 24.09.11 38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4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36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7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7 3 14쪽
20 진실 24.09.05 42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2 4 11쪽
» 안의균 검사 (1) 24.09.03 50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58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59 4 15쪽
14 오해 (3) +1 24.08.29 70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1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78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85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86 6 11쪽
9 서태석 (1) +1 24.08.23 95 4 12쪽
8 또 너야 (2) +1 24.08.22 92 5 13쪽
7 또 너야? (1) +2 24.08.21 105 4 11쪽
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10 5 14쪽
5 김누리 검사 (4) +1 24.08.19 112 6 12쪽
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4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4 4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32 5 12쪽
1 아버지의 죽음 +2 24.08.14 157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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