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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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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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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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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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오해 (1)

DUMMY

"변호사님...!? 남형우 변호사님...!!"


순간 멍을 때리던 형우가 뒤늦게 반응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우는 김누리의 기억을 떠올리며 6715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얼굴.

자신의 기억이 아니었음에도 복수심에 불타오른 분노가 턱끝까지 차올랐다.


"잠깐 이분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까요?"


형우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채 교도관 배성도에게 물었다.


"글쎄요. 그건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6715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김성도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형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딱히 법률 상담이 필요하지는 않았으나.

사연이 있어 보이는 형우의 모습에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


"..."

"저기...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할 말이 있다던 형우는 10분이 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김누리 검사 본인도 아닌데 대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자니,

한 가정을 파탄시킨 흉악범이라는 그의 과거가 형우의 목을 옭매어 왔다.


“변호사님...?”


그래. 사람을 불러냈으면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지.

형우는 크게 숨을 고르고 김성도에게 첫 마디를 건넸다.


“김성도씨는 무슨 죄를 저질러서 이곳에 왔습니까?”

“...”


법률 상담을 하는 동안 수도 없이 내뱉은 질문이지만,

이번만큼은 묵주를 쥔 왼손에서 식은 땀이 흘러 내렸다.


“저는...”


김성도가 뜸을 들이는 동안 형우는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켰다.


“저는 부인을 죽였습니다.”


순간 형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내심 변명이나 자신이 모르는 사연이 있었기를 바랬을 지도 모른다.


“...후회하십니까?”


어쩌면 재소자들의 화를 돋울 수 있는 예민한 질문이지만,

형우는 똑바로 김성도의 두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아니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김성도의 단호한 대답에 마음이 쓰라렸다.

솔직히 반성하고 있을 줄 알았다.

누군가의 아버지라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결코 이런 대답을 내놓았을 리 없었으니까.


“상담을 해주시려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저는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예...?”


형우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이자 김성도는 당황한 듯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인간이라면... 최소한 반성하는 모습은 보여야 할 거 아니야. 당신 때문에 상처 받을 사람은 왜 생각 안 하냐고.”


김성도는 무언가 떠오른 듯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사람에게는 각자 다른 사연이 있기 마련입니다. 제게 무슨 기대를 하셨는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 김누리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그녀의 기억을 가진 형우 조차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김누리가 김성도의 말을 들었더라면.

마음이 무너져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


“할 말 끝나셨으면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김성도는 휠체어를 돌려 접견실 밖으로 향했다.

차마 그의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그와 얼굴을 마주한다면.

무슨 일을 벌이게 될지 스스로도 감당이 되질 않았다.


끼익.


김성도가 접견실 문을 여는 그 순간.

김성도의 기억의 형우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


“저는 김누리씨의 지인입니다.”


예상치 못한 이름이 들려오자 휠체어 바퀴를 굴리던 김성도의 손이 굳어졌다.

그리고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형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형우에게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그는 곧장 아랫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저는 그런 사람 모릅니다.”

“거짓말.”

“저에겐 가족이 없습니다.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솔직하게 털어놓을 생각은 없으십니까?”


형우의 물음에 김성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전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만 돌아가주세요.”

“어느 쪽이 가족을 위한 일인지. 그쪽도 잘 알고 계실 텐데요.”


휠체어 바퀴를 잡고 있던 김성도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 남자.

대체 정체가 뭐야.

설마... 아니겠지... 우연이겠지.

김성도는 상황을 모면하려는 듯 형우를 뒤로 하고 접견실을 빠져나갔다.


***


다음 날.


형우는 아침 일찍 김누리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지금 어디 가는 건데요.”

“도착하면 알게 될 겁니다.”


김누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남자는 매번 이런 식이다.

매번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제 멋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검사님께서는 검찰 조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형우가 장난기 없는 진지한 얼굴로 묻자, 김누리의 표정에서 당황이 느껴졌다.

바쁜 사람을 불러 낸 건 본인이면서, 왜 자기가 정색을 하는 건데.


“당연히 사건을 재조사하고 진실을 밝혀야죠. 당연한 걸 왜 묻습니까?”

“만약 당사자가 진실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요?”

“지금 나를 시험하는 겁니까?”

“네.”


형우의 당돌한 대답에 김누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형우가 이전 재판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검사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참. 나. 어이가 없어서 원. 우리 검사들은 말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실만을 쫓습니다. 사사로운 감정들은 검사가 되기 전에 이미 다 내려놨다고요. 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럼 우리 약속 하나 합시다.”

“무슨 약속이요.”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을 품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이러는 지.

형우의 진지한 표정에서 불길함이 느껴졌다.


“사건에 관련된 일입니까?”

“예.”


김누리는 잠시 형우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억지를 부릴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형우를 따라 도착한 곳은.

유년 시절 김누리의 집이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사건 때문이라고.”

“설마. 그쪽이 말한 사건이...”

“예. 맞습니다. 김성도씨 사건입니다.”


김누리의 얼굴에서 그윽한 그림자가 비추었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고 형우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오늘 일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김누리가 발걸음을 돌려 돌아가려하자,

형우는 팔을 붙잡고 그녀를 멈춰 세웠다.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시죠. 김성도씨는...”

“그 입 함부로 놀리지 마. 안 그래도 지금 겨우 참고 있으니까.”


꽉 깨문 김누리의 입술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형우도 잘 알고 있었다.

김누리의 마음속 상처는 그날 이후 조금도 아물지 않았다는 걸.

하지만 형우는 굳게 마음을 먹고 김누리의 손을 이끌었다.


“약속했잖습니까. 개인적인 감정을 품지 않겠다고.”

“당신이 뭘 안다고 참견이야.”

“저는 오늘 그쪽을 피해자가 아닌, 검사로서 불러낸 겁니다.”


‘검사’라는 단어에 김누리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정 힘드시다면. 다른 검사분을 부르겠습니다. 그래도 상관 없습니까?”


김누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곧장 형우에게 다가가 멱살을 쥐었다.


“같잖은 이유로 날 이곳에 불러낸 거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


형우는 김누리와 함께 나란히 김성도가 일하던 시장으로 향했다.


아버지 사건 이후 김누리는 단 한 번도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

이곳에 오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 떠오를 테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 구석진 골목에 도착했다.

김누리의 눈에는 여전히 붕어빵을 팔던 김성도의 모습이 아른거렸으나,

거칠게 고개를 흔들며 머릿속을 비워냈다.


“정확히 30분 걸렸습니다.”

“뭐가요.”


김누리의 대답에서 까칠함이 느껴졌다.


“김성도씨 자택에서 이곳까지요. 사건 당시 휠체어가 아닌 목발을 짚고 있었다고 했으니, 최소한 1시간은 넘게 걸렸을 겁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형우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사건 당일. 김성도씨의 동선은 어땠습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김성도씨는 7시 30분경에 이곳에서 출발해 30분 만에 자택에 도착했습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차마 형우의 질문에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지만,

김누리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대답했다.


“이상할 게 뭐가 있습니까. 사건 당일 김성도씨는 피해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살의를 품었다면 급하게 자택으로 향한 것도 이해가 될 텐데요.”


당시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과 다르게,

김누리는 사건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가슴 아픈 상처라지만, 가족에 관련된 일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겠지.


“그날 김성도씨가 피해자와 통화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

“6초입니다. 검사님께서는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살의를 품을 정도로 심각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전에 이미 다툼이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과연 그럴까요?”


형우는 길목에 있는 오래된 빵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형우가 자신의 명함을 내밀자 사장 아주머니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김성도씨를 아십니까?”

“당연히 알죠!! 부인을 죽인 아주 고약한 놈이잖아요.”


이미 연을 끊어낸 사람이건만.

김성도를 욕하는 사장님의 말에 김누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건 당일 김성도씨가 이곳을 찾아오진 않았나요?”

“어... 그게...”


빵집 사장님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내쉬며 사연을 털어놓았다.


“괜히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이야기하진 않았는데, 그날 아침에 그분이 찾아오시긴 했어요.”

“무슨 대화를 나누셨죠?”

“별건 아니고. 케이크 하나를 팔지 말고 남겨달라고 했어요. 저녁에 찾으러 오겠다며 계산까지 했는데,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


잠시 후. 대화를 마치고 빵집 밖으로 나온 두 사람.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내용에 충격을 받았는지, 김누리는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제 좀 생각이 바뀌셨나요?”

“케이크가 뭐 어쨌다는 건데요.”

“검사님께서도 잘 아시잖아요. 그날은 피해자의 생일이었습니다. 아침까지만 해도 피해자의 생일을 챙겨주려던 사람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김누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순간 표정이 굳어 형우를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사건 당일 김성도씨의 행동은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만약 김성도씨가 정말로 범인이라면...”

“그러니까요. 지금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냐고요.”


김누리는 형우의 말이 듣기 불쾌한 듯 말을 끊어내며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잠깐 동안의 침묵.

형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무언가 다짐한 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김성도씨는 당신의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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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배신자 (5) 24.09.11 38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5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37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8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7 3 14쪽
20 진실 24.09.05 42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2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0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58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60 4 15쪽
14 오해 (3) +1 24.08.29 70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1 4 12쪽
» 오해 (1) +1 24.08.27 79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85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87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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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5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4 4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32 5 12쪽
1 아버지의 죽음 +2 24.08.14 159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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