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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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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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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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1)

DUMMY

“그런데. 어떻게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예?”


홍승호는 형우가 만든 간이 호흡 장치를 만지작 거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따로 의학 공부를 했다고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아...”


홍승호의 물음에 병실 안에 있는 모두가 형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호기심을 넘어 의심이 들 정도.

그 자리에 전문 의료진이 있었다고 해도,

형우가 했던 응급처치를 그대로 할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하... 드라마에서 비슷한 상황을 본 적이 있어서요.”

“아... 그러시군요.”


이런 미친.

아무리 핑곗거리가 없어도 그렇지.

드라마라니.

홍승호는 당연히 형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영부영 넘어가는 그의 태도에 자세히 묻진 않았다.

대답하기 곤란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됐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니까.


...


“휴...”


친히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홍승호의 제안을 간신히 거절했다.

조금. 아니. 많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김누리가 또 무슨 난동을 피울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병원 밖으로 나온 김누리는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씩씩 거리며 발을 굴러댔다.


“아오. 짜증나 진짜.”


형우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런 김누리를 달랬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예요?”


김누리가 형우를 찌릿 째려보자, 형우는 헛기침을 하며 김누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나저나. 급한 볼 일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순간 김누리는 아까 형우와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이미 한참이나 지난 시간에 고개를 저으며 대강 둘러댔다.


“시간도 늦었는데. 볼 일은 무슨. 집에 가서 혼자 저녁이나 먹어야죠. 변호사님도 저녁 약속 있으시다면서요. 얼른 가보세요.”


김누리가 택시를 잡으려 정류장으로 향하자,

형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급히 그녀를 멈춰 세웠다.


“저기... 김누리 검사님!?”

“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가실래요?”

“어딜요...!?”


***


어쩌다 보니, 김누리는 형우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낄 자리, 끼지 말아야 할 자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형우가 끈질기게(?) 달라붙기도 했고.

아까 고른 선물의 주인공도 조금 궁금했다.

딱히 형우의 이상형이 궁금해서 따라가는 건 아니다.

아니. 솔직히 그렇잖아.

기껏 같이 선물을 골라줬는데.

받는 대상이 누군진 알 권리가 있는 거 아니겠냐고.


“다녀왔습니다.”


형우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김누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벌써 동거까지 하고 있을 줄이야.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뒤늦게라도 발걸음을 돌리려던 그때.

뒤에서 푸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어서와요. 김누리 검사님 맞으시죠?”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니까지 오시는 자리였다니.

하지만 이제와서 돌아가겠다고 말할 수도 없고.

착잡한 표정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일은 잘 끝내고 온 거야?”

“죄송해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많이 기다리셨죠?”

“아니야. 나도 일 끝나고 이제 막 들어왔어.”


형우의 어머니는 너무나 따뜻한 분이셨다.

누구와는 다르게.


“그나저나. 아직 도착 안 했어요?”

“응. 조금 늦는다고 하더라.”


역시나.

또 누군가 오는 거겠지.

애인... 이려나.

멋쩍게 발가락을 꿈틀거렸다.


“어머머. 내 정신 좀 봐. 손님 오셨는데 뭐라도 내 드려야지.”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기는요.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금방 내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어머니께서 부엌으로 들어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맛있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채웠다.


탁. 탁. 탁. 탁.


재료 손질을 도와주는 형우의 모습도 제법 자연스러워 보였다.

저런 가정적인 모습이 있을 줄이야.

홀로 뻘쭘하게 쇼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띵동 -


문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검사님. 혹시 대신 좀 나가 주시겠어요?”

“제가요...?”


김누리는 당황스러웠다.

집주인도 아니고 손님을 대신 맞이하기는 좀...

더군다나 김누리는 여자인데.

괜한 오해의 소지가 생길까 걱정이 되었다.


“부탁 좀 할게요.”


싱긋 미소 지어 보이는 형우의 태도에 김누리는 한숨을 내쉬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철컥.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민망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손님을 맞이하는데.


"..."


갑자기 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예...? 아... 저기...”


예상과는 다른 목소리.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살며시 고개를 들어보니,

검정색 헬멧을 쓴 배달부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김누리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


“푸흡. 그런 오해가 있었군요.”


어머니 마리아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며 자리에 앉았다.


“저도 깜짝 놀랬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인가 싶었어요.”


김누리는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푹 떨구었다.


‘아... 쪽팔려.’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형우는 아직 한 번도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거든요,”

“뭘 그런 말씀을 하세요... 사람 민망하게.”


형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곧장 케이크를 테이블 중앙에 내려놓았다.


“일단 초부터 끌까요?”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김누리는 마리아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언뜻 봐도 김누리와 비슷한 체형.

왜 형우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고마워 형우야. 이 옷 너무 마음에 든다.”


설마 어머니의 생신 선물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른이 입기에는 조금 젊은 스타일이 아닌가 싶었는데.

마치 소녀처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괜한 착각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사실 검사님께서 옷 고르는 걸 도와주셨거든요?”

“정말요? 너무 감사해요. 김누리 검사님이라고 하셨죠?.”

"아. 네...”


김누리는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어댔다.


...


이후 세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시끌벅적하진 않아도 형우와 마리아는 너무나 행복해보였다.


“나중에 또 놀러와요.”

“네.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잠시 잊고 살았던 ‘가족’이라는 단어.

김누리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


다음 날 아침.


형우는 아침 일찍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어제 백화점 주차장에 차를 두고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백화점까지는 꽤나 먼 거리.

출근 시간 지하철 역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지만, 형우는 오히려 신이 난 표정으로 지긋이 눈을 감았다.


사실 형우는 대중교통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지하철에 타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기억이 머릿속에 들어오게 되니까.

어린 형우는 선택이 아닌 강제적으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는 상황이 정말 싫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자신의 능력에 적응이 된 형우는 대중교통이나 사람이 많은 곳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읽는다는 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과 같았다.

가보지 못한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고,

배우지 못한 새로운 지식을 쌓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중에는 가슴 아픈 기억도 참 많지만...

세상에 사연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저 슬픈 드라마를 한 편을 봤을 뿐이라고 여기며 위안을 삼았다.


...


- 다음역은 합정역입니다.


지하철을 탄 지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치과 의사, 선생님, 대학생, 헬스 트레이너, 카페 사장님 등.

다양한 기억이 형우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이번에 형우가 선택한 기억은 ‘작곡가’였다.

안 그래도 최근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기억을 천천히 들여다 보았다.

물론, 그의 기억을 읽는다고 해서 곧장 피아노를 잘 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곡들은 얼마든지 칠 수 있겠지만.

원하는 곡을 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연습이 필요했다.

형우가 허공에 손을 짚으며 상상속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던 그때.


쿡. 쿡.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등을 찔러왔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6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장발의 남자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까만 먼지를 뒤집어 쓴 듯한 옷차림.

코가 찡할 정도로 강하게 풍기는 담배 냄새.

아무래도 이 근방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 같았다.


“저 부르셨어요?”

“...”


장발의 남자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운좋게 생긴 빈 자리.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태도에서 자리에 앉고 싶다는 욕구가 느껴졌다.


“저는 괜찮습니다. 앉으세요.”


장발의 남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이켰다.

겉으로 봤을 땐 평범한 생수병으로 보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한 술냄새가 풍겨왔다.


"X발. 왜 지하철에서 술을 마시고 지랄이야."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짜증난 얼굴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장발의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생수병을 들이켰다.


잠시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역무원이 장발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지하철 안에서 음주를 하시면 안 됩니다."

"내가 언제 술을 마셨다고 지랄이야. 딸꾹."


역무원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자,

장발의 남자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지하철 문으로 향했다.


"X발. 알았어. 내리면 될 거 아니야."


그의 무례한 태도에도 역무원은 깊은 한숨을 내쉴뿐.

별다른 조취를 취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이 상황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지하철 밖으로 나가던 그때.

익숙한 기억이 형우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


미소를 띠던 형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황급히 그를 따라 지하철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이미 지하철 문은 굳게 닫힌 이후였다.


'...젠장.'


형우는 다음역에서 내려, 전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 더위.

얼마 지나지 않아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러 내렸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헉. 헉."


역주변에 도착한 형우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장발의 남자를 찾았다.


'어디야. 어디냐고.'


묵주를 쥔 왼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살려줘... 제발 살려줘...]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그 날의 대화.

형우의 심장이 강하게 요동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장발의 남자가 있을 법한 곳을 싹다 뒤졌음에도 그의 모습을 좀처럼 쫓을 수 없었다.


'후... 침착하자.'


형우는 자리에 멈춰서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최근에 만났던 사람,

머물렀던 곳,

평소 습관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떠올리며 그의 행동반경을 추려냈다.

그리고 끝내.


'명진은행 ATM.'


한 장소가 머릿속 지도에 그려졌다.


...


요동치는 심장은 좀처럼 사드라들지 않았다.

굳게 쥐어진 주먹이 펴지지 않았다.

강하게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평생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그러니.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명진은행 앞에 다다르고.

형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띠링 -


은행 업무를 보고 있던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찾았다.'


봉태만.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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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배신자 (3) 24.09.09 36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7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7 3 14쪽
20 진실 24.09.05 42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2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49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 재회 (1) +1 24.08.31 57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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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오해 (2) +1 24.08.28 80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78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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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서태석 (2) +1 24.08.24 86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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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10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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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4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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