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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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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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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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2)

DUMMY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윤상신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숟가락으로 손에 든 믹스커피를 저었다.


“숨기실 필요 없습니다. 전부 알고 왔으니까요.”


윤상신은 커피를 형우의 앞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 그대로 상석에 가서 앉았다.


“그렇게 궁금하시다면 대답해 드려야죠. 강재경 대표와 저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지인입니다.”

“...”


윤상신의 표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미리 준비라도 한 것 마냥 완벽한 대답.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가볍게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상대가 나빴다.


“제가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게 아닙니다.”

“그럼요?”

“제가 분명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부 알고 왔다고.”


무언가를 떠보는 듯한 형우의 언변에도 윤상신은 쉽게 휘둘리지 않았다.


“으음... 대체 뭘 알고 오셨을까요? 궁금하네요.”

“안의균 검사가 버려진 이유를 알고 있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내심 불안했던 윤상신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퍼졌다.

겨우 그런 거였다니.


“안의균 검사와는 단순한 선후배 사이입니다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이번에도 윤상신에게서 반응이 없자,

형우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내뱉었다.


“담연로 91-7.”

“...”


처음으로 윤상신이 대답을 망설였다.

정말 무엇을 알고 말한 걸까.

...그럴 리가 없잖아.

형우의 입에서 나온 주소는 마약 관리자와 처음 접선했던 장소.

확인한 즉시 쪽지는 불태워버렸고, 그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이 없는데...


윤상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저는 변호사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좀 더 확실한 이야기를 해 볼까요? 마황을 재배하고 있는 장소가 어딘지 알고 있다면요?”


윤상신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눈앞의 이 남자는 괜히 떠보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무언가를 알고 있다.

어떻게 그 장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가늠조차 되질 않았다.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떠볼 생각은 말아요. 지금이라도 기자들 데리고 그곳에 들이닥치는 건 일도 아니니까.”

“...내게 원하는게 뭡니까?”


윤상신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더니, 싸늘한 분위기와 함께 형우를 노려보았다.


“지금이라도 자수하세요.”

“...네?”


의외였다.

돈이라던지, 명예라던지.

무언가를 바라고 협박하는 줄 알았는데.

형우의 입에서 어이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제게 그런 제안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김누리 검사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서요. 그것뿐입니다.”


형우는 눈을 똑바로 뜨고 윤상신과 마주했다.

처음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지만,

형우의 진지한 눈을 보고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순 없습니다. 저한테도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요. 그쪽이야말로 그만두시죠. 후배를 도와준 은인으로서 마지막으로 드리는 경고입니다. 강재경 대표에게서 손 떼세요.”

“저도 그럴 순 없을 것 같은데요. 미안하지만 저도 그쪽만큼이나 포기할 수 없는 사연이 있거든요.”


형우는 윤상신과 잠시 싸늘한 시선을 주고받은 뒤,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분명히 기회를 드렸습니다.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쿵 -


형우가 사무실 밖을 떠나자,

윤상신은 급히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대표님. 지금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수도권 지방 골프장.


퍽 -


“나이스 샷!”


“실력이 많이 늘으셨는데요? 강재경 대표님?”


배불뚝이 정치인 권태우가 싱긋 웃으며 박수치자, 강재경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의원님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껄.껄. 겸손도 하셔라. 내 이래서 강대표가 마음에 든다니까.”


권태우는 강재경의 어깨를 토닥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2명도 마찬가지였다.

이성원 도지사와 신유근 서울 시장.

그들은 거만한 태도로 강재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강재경의 이마 위로 작은 실핏줄이 보였으나, 곧바로 다시 표정을 풀고 방긋 미소 지었다.


...


“그나저나. 강대표. 이번에 이상한 소문이 들리던데.”


신유근 서울 시장은 얼마 전 있었던 마약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그냥 그렇다고. 걱정하지마. 누가 뭐래도 난 강대표 편이니까.”

“감사합니다.”


미소 뒤로 느껴지는 은은한 협박.

강재경이 고개 숙여 사과하자, 뒤늦게 신유근이 본색을 드러냈다.


“그래서 말이야. 이번 당 대표 선거에 자금이 조금 필요할 것 같은데. 가능하지?”


원래였다면 흔쾌히 요구를 들어주었겠지만.

마약 사건으로 큰 구멍이 난 탓에 대답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조금 시간을 주시면 다음 달 안에 계좌로 입금해...”

“이봐. 강대표.”


옆에 있던 이성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강재경의 말을 끊어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선거운동 들어가는 거, 몰라서 이래?”

“죄송합니다. 이번 달에 적자가 심해서...”

“적자가 났어도, 지킬 건 지켜야지? 우리가 그동안 눈감아준 게 얼만데.”

“...”


이성원은 강재경과 얼굴을 마주하고 그의 뺨에 손을 살짝 얹었다.


“깡패 x끼. 사람 만들어놨더니,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다시 개밥 처먹는 똥개 x끼 되기 싫으면, 사람대접해줄 때 곱게 말 들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시장님.”


강재경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도지사님. 그만하시죠. 그쯤하면 강대표도 잘 알아들었을 겁니다.”

“아. 이거 내가 아직도 예전 버릇을 못 고쳤네. 강대표 미안해요. 우리 골프나 계속 칠까요?”


싸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다시 골프에 집중하려는데,


“대표님.”


윤상신이 빠른 걸음으로 무리에 합류했다.


“어. 윤검사님 오셨군요.”

“안녕하십니까. 서울지부 윤상신 검사라고 합니다.”


윤상신은 정치인 양반들에게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정치인 양반들은 그런 깍듯한 윤상신의 모습을 칭찬하며 함께 골프를 치자고 제안했지만, 윤상신은 도저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골프에 취미가 없어서요.”

“그래요? 아쉽네요.”


정치인 양반들은 자신의 골프채를 챙겨 골프카에 올랐다.


“저는 잠시 윤검사님과 대화 좀 하고 따라가겠습니다.”

“...그래요?”


감히. 약속 중에 다른 곳에 신경을 팔다니.

자신들을 무시하는 듯한 강재경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끝내 입맛을 다시며 먼저 출발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시간에 여기까지 직접 오시고.”


강재경은 뺨에 묻은 온기를 털어내며 윤상신을 쳐다보았다.


“남형우 변호사가 절 찾아왔었습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강재경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으나,

윤상신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딘가에서 정보가 새어나간 것 같습니다.”

“우연이겠죠. 저도 모르는 걸 어떻게 남형우 변호사가 알고 있겠습니까.”


강재경은 오해한 것이라며 가볍게 넘어가려 했으나,

형우와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곧장 표정이 굳어졌다.


얼마 전.

형우의 손에 이미 한 번 마약 유통이 엎질러졌지 않은가.

손해를 감수하고, 이제 슬슬 다시 자리를 잡나 싶었는데.

또 방해하겠다니.


쾅 -


안 그래도 정치인 양반들 때문에 짜증이 났던 강재경은 골프채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하... 역시 그날 죽였어야 했는데...”


작게 뜬 강재경의 눈에서 싸늘한 살기가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강재경 대표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뿌연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그놈은 뭐랍니까?”


이름을 지칭하진 않았지만, 윤상신은 누구를 말하는지 단번에 눈치챘다.


“아직 관리자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윤검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보기엔 관리자님 쪽에 배신한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배신’이라는 단어에 강재경 대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딱히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으나, 그 어느 때보다 강재경의 분노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 아무래도 제가 직접 관리자님을 만나봐야겠네요.”

“그건 안 됩니다.”


윤상신은 다급히 강재경을 말렸다.

강재경과 마약 관리자가 직접 만난다는 의미는. 본인이 직접 마약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것.

여태까지는 직접적으로 강재경 대표가 마약 사업에 연루되지 않았기에,

만약 마약 사업이 적발되더라도 강재경 대표는 무사할 수 있었지만, 사업에 직접 발을 담그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몇 번이고 뜯어말렸음에도, 강재경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한편. 김누리 검사의 사무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말씀 드린 그대로입니다.”


형우는 윤상신 검사가 안의균과 한패였다는 사실과,

강재경 대표를 필두로 마약 범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김누리에게 털어놓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김누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희 부장님은 절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저도 유감이지만. 사실입니다.”


김누리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대체 무슨 증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데요.”

“...”


형우는 강재경의 사무실 드나드는 윤상신의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게 뭐 어쨌다고요. 그냥 둘이 아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그럼 이걸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저한테도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요.’


형우가 손에 든 녹음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심할 필요도 없이. 분명 윤상신의 목소리였다.


“...허락을 맡지 않은 녹음파일은 증거로서 채택되지 않는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김누리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진정하려고 해도, 불안감에 가득찬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았으니까.


처음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전의 안의균 사건 때문일까.

형우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의심의 씨앗이 피어올랐다.


“하아...”


김누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정? 배신감? 분노?

지금 마음속으로 드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김누리가 윤상신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형우였기에,

직접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게 나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

“이해합니다. 저도 딱히 검사님께 도움을 구하려고 온 건 아닙니다. 그래도 미리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잠깐의 침묵.

김누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고민하더니, 입술을 잘근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가서 직접 여쭤보겠습니다."

"그치만..."

"뭐가 됐든 판단은 제가 해요. 그러니까 변호사님은 가만히 계세요."


김누리는 거칠게 형우의 팔을 뿌리치고는 곧장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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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강재경 대표 (2) 24.09.13 39 3 12쪽
26 강재경 대표 (1) 24.09.12 33 2 11쪽
25 배신자 (5) 24.09.11 44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40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43 3 12쪽
22 배신자 (2) +1 24.09.07 43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43 3 14쪽
20 진실 24.09.05 47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7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5 3 12쪽
17 재회 (2) 24.09.02 56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62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65 4 15쪽
14 오해 (3) +1 24.08.29 76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7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89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91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95 6 11쪽
9 서태석 (1) +2 24.08.23 106 4 12쪽
8 또 너야 (2) +1 24.08.22 103 5 13쪽
7 또 너야? (1) +2 24.08.21 118 4 11쪽
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25 6 14쪽
5 김누리 검사 (4) +1 24.08.19 127 7 12쪽
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27 7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27 5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46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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