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새글

두지도
작품등록일 :
2024.08.14 17:16
최근연재일 :
2024.09.17 23:59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047
추천수 :
117
글자수 :
161,103

작성
24.08.29 21:27
조회
70
추천
5
글자
11쪽

오해 (3)

DUMMY

기나긴 설득 끝에 김성도는 그날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건 당일 어머니와의 마지막 통화 내용은.

‘미안해’ 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사과하는 부인의 태도에 불길함을 느끼고 곧장 자택으로 향했으나,

이미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였다.


며칠 뒤. 김성도의 살인 사건은 재조사 되었다.

처음엔 어처구니 없는 김성도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사망 보험금을 노렸다는 동기가 제기되면서 법정은 김성도에게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물론. 자살을 타살로 꾸민 시점에서 김성도는 공무 집행 방해, 변사체 검시 방해와 같은 혐의로 재입건 되었으나 지난 10여년 동안 성실하게 징역 생활을 한 것으로 그 이상의 처벌을 내리진 않았다.


***


재판이 끝나고 김성도가 출소하는 날.


교도소 밖으로 나온 김성도는 눈살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랜만에 쐬는 바깥 공기에도 그의 표정은 썩 개운해 보이진 않았다.

딸이 그렇게 외로운 일생을 보내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돌아갈 곳도 없는 상황에서 이제 어디로 가야할 지 고민하던 찰나.

갑자기 입에 촉촉한 무언가가 닿았다.


"축하드립니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축하라뇨. 제가 뭘 잘한 게 있다고."

"축하할 일이죠. 갑갑한 감옥에서 나오셨잖아요."

"글쎄요. 감옥 안이나 밖이나 딱히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하네요."


형우와 김성도는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실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변호사님께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성도가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하자, 형우는 다급히 그의 몸을 일으켰다.


"아닙니다. 감사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잖아요."

"..."


김성도는 문득 주변을 살펴보았다.

딱히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의 입가에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글쎄요. 한적한 시골 어딘가에 박혀서 남은 세월을 보낼 생각입니다."

"음...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잠깐 저 좀 따라오시겠습니까?"


***


형우가 향한 곳은 도심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이곳은 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 김성도의 반응에 형우는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앞으로 김성도씨께서 살 집입니다."


"예...!?"


화들짝 놀란 김성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저는 이곳에서 지낼 만한 돈이 없는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보증금 문제는 해결했고, 관리비만 납부하시면 됩니다."


김성도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변호사님께 큰 빚을 졌는데. 이 이상 민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 오해를 하신 모양인데. 이 집은 제 뜻이 아닙니다."

"그럼..."


형우의 나지막한 표정을 보니,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변호사님께서도 아시잖아요. 저는 제 딸의 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김성도가 밖으로 향하자 형우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또 도망치실 겁니까?"

"예...? 그게 무슨..."


형우는 사뭇 진지한 분위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미 한 번 딸을 두고 감옥으로 도망쳤습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저..."

"김성도씨는 아직 죗값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왜 속죄할 방법을 본인 마음대로 정합니까?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있으면. 도망치지 말고 용서를 구하세요. 평생 그녀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도."


형우는 김성도를 뒤로하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김성도의 눈에서 서글픈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존재만으로도 민폐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정작 김누리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


건물 밖으로 나오니,

김누리가 문에 등을 기대고 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하지 못하시네요."

"뭐가요."


김누리는 그제서야 등을 떼고 형우의 곁에 다가왔다.


"여기까지 왔으면 얼굴이라도 보고 가지 그래요?"

"됐습니다. 난 아직 김성도씨를 용서한 게 아니거든요."

"그러시겠죠."


형우는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차로 향했다.


"식사라도 같이 하시겠습니까?"

"됐네요. 그쪽이랑 있으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김누리는 곧장 형우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까칠한 태도와는 다르게 그녀의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워 보였다.


...


"저 분은 누구셔?"


차 안에서 김누리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형우를 노려보았다.

안의균 검사.

김누리의 직속 선배로 김성도 사건을 재조사한 인물이다.


"그냥. 아는 사람이요."


안의균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여태 단 한 번도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창문으로 비치는 김누리의 표정에서 은은한 미소가 느껴졌다.


"애인이야?"

"애인은 무슨. 그냥 아는 사람이라니까요."


급히 정색하는 김누리의 태도에 그제서야 안의균도 안심을 되찾았다.


"나중에 나도 소개시켜줘. 네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지 참 궁금하네."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요."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안의균은 형우를 지나치며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착각이겠지.’


***


며칠 뒤.


일상으로 되돌아간 김누리는 한동안 야근에 시달렸다.

일이 너무 바쁘기도 하고, 당장 법원에 갈 일도 없었으므로 당분간 형우를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형우에게서 문자 메세지가 도착했다.


[검사님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오늘 2시. 서문 백화점 앞으로 꼭 나와주세요.]


'정말 제 멋대로라니까.'


김누리가 휴대폰을 보고 한숨을 내쉬자, 옆에 있던 안의균 검사는 믹스 커피를 내밀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토요일인데. 애인 안 만나?"

"애인 아니라니까요. 다짜고짜 백화점 앞으로 나오라는데. 어이가 없어서 원."

"딱 봐도 데이트 신청이네."

"예...!?"

"생각해봐. 다 큰 성인 남녀가 같이 백화점에 갈 일이 뭐가 있겠어."

"..."


생각해보니 그랬다.

사건에 관련된 일이라면 분명 이런 식으로 연락해오진 않았겠지.


"얼핏 보니까 얼굴도 반반해 보이던데. 잘 좀 해봐. 너도 이제 슬슬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야지."

"됐거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누리는 문득 형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180이 넘는 키에 반반한 얼굴.

성격은 몰라도 외모만큼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연애하고 싶으면 그 말투부터 고쳐."

"제 말투가 뭐 어때서요."

"좀 상냥하게 대하라고. 보아하니 그 사람도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데. 한 번 진지하게 만나보는 건 어때?"

"참견 말아요. 난 절대로 그럴 생각 없으니까."


황급히 자리를 뜨는 김누리의 어색한 뒷모습에 안의균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약속시간인 2시.


"또 무슨 일입니까? 남.형.우. 변호사님."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형우가 별다른 설명 없이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자, 김누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뒤를 따랐다.


"흐음..."


한 옷가게에 멈춰 선 형우는 진지한 얼굴로 이리저리 물건을 살폈다.


"이 옷 어때요?"


형우는 원피스 하나를 김누리의 몸에 대보며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모르겠네요. 저는 그런 옷을 잘 안 입어서."

"그래요? 흐음... 그럼 이 옷은요?“

“그것도 조금...”


형우는 김누리의 시원찮은 반응을 확인하고 옷을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이후에도 형우는 수차례 김누리의 몸에 옷을 대보며 계속해서 의견을 물어왔다.


'너도 이제 슬슬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 해야지.‘


김누리는 문득 안의균 검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꿀꺽.


시간이 지날수록 김누리의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었다.


'설마...'


처음 느껴보는 풋풋한 감정. 긴장한 듯 파운데이션을 꺼내 외모를 정돈하고 있는데.


"김누리 검사님. 화장도 하십니까?"


거울 뒤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던 형우와 눈이 마주쳤다.


두근두근.


"...당연하죠. 세상에 화장 안 하는 여자가 어디에 있다고."

"아. 그렇군요. 워낙 아름다우셔서 화장할 필요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김누리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급히 파운데이션을 집어넣고서는, 괜히 헛기침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갑자기 여자 옷은 왜요. 본인이 입을 것 같지는 않고..."


머뭇거리는 김누리의 태도에서 은은한 기대가 느껴졌다.


"아. 제가 말씀을 안 드렸군요.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제가 패션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요."

"아.. 그렇군요."


김누리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연애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김누리.

도대체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먼저 선수를 치기로 마음 먹었다.


“혹시 저녁에 시간 괜찮으시면 식사라도 같이 하실래요? 저번에 밥 한 끼 대접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고... 또...”

“아...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기껏 용기내서 꺼낸 말이었건만.

형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선약이 있어서요. 오늘 선물 고르는 거 도와주셨으니까, 다음에 검사님 시간 괜찮으실 때 제가 꼭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아...’


순간 김누리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알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김누리는 부끄러움에 가득 차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기... 김누리 검사님?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아. 미안해요.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는 걸 깜빡했네.”

“갑자기요?”

“그쪽 선물도 골랐으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봬요.”


김누리가 급히 자리를 떠나자 형우는 다급히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김누리 검사님?! 잠깐만요!!”


김누리는 형우의 말을 무시한 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나갔다.


‘최악이야. 정말.’


고개를 푹 숙인 채 정신 없이 에스컬레이터로 향하고 있는데.


툭.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한 노인과 어깨를 부딪쳤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김누리는 쪽팔린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노인의 팔을 잡아 부축해주었다.

딱히 세게 부딪치지도 않았음에도 그는 몸을 비틀 거리며 김누리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허어어억... 허어어억...”


노인은 호흡이 불편한 듯 괴이한 신음소리를 내뱉더니,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고꾸라졌다.


“여기 누가 좀 도와주세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김누리는 다급히 노인의 어깨를 흔들어 의식을 확인했다.


“저기요!! 정신 차려 보세요!! 저기요!!”


갑작스럽게 벌어진 소란에 백화점 직원이 다급히 달려와 노인의 상태를 살폈다.


“숨을 쉬지 않으십니다. 지금 바로 119 불러주세요.”


김누리가 휴대폰으로 구급차를 부르는 사이,

백화점 직원은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 노인을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흉부 압박을 위해 가슴 쪽에 손을 가져가던 그때.


“멈추세요.”


뒤에서 나타난 형우가 백화점 직원의 손을 멈춰 세웠다.


“이거 놔요. 지금 사람이 죽어가는데...”

“이 손 놓으면. 그 사람 죽습니다.”


형우는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로 백화점 직원을 노려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꼬리(2) NEW 2시간 전 8 0 11쪽
29 꼬리(1) 24.09.16 23 2 12쪽
28 강재경 대표(3) 24.09.16 21 2 11쪽
27 강재경 대표 (2) 24.09.13 32 3 12쪽
26 강재경 대표 (1) 24.09.12 28 2 11쪽
25 배신자 (5) 24.09.11 39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5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37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8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8 3 14쪽
20 진실 24.09.05 42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3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0 3 12쪽
17 재회 (2) 24.09.02 51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58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60 4 15쪽
» 오해 (3) +1 24.08.29 71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1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79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85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87 6 11쪽
9 서태석 (1) +1 24.08.23 96 4 12쪽
8 또 너야 (2) +1 24.08.22 93 5 13쪽
7 또 너야? (1) +2 24.08.21 106 4 11쪽
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11 5 14쪽
5 김누리 검사 (4) +1 24.08.19 112 6 12쪽
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5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5 4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33 5 12쪽
1 아버지의 죽음 +2 24.08.14 160 6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