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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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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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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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석 (2)

DUMMY

사무실에 들어온 서태석은 사무실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부스럭 – 부스럭 -


눈앞에 형우가 있었음에도 서태석은 자신의 사무실인 것 마냥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뭐랄까.

어이가 없기 보다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전에 누군가와 접견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법률 상담을 하러 온 손님이라기에는 형우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저기요...?”


구석에 쪼그려 바닥에 놓인 서류들을 읽고 있던 서태석은 그제서야 몸을 일으켜 형우를 바라보았다.

눈앞까지 다가와 얼굴을 당당히 마주하는데.

180cm인 형우가 올려다볼 정도로 거구의 체형을 지니고 있었다.


“혹시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서태석은 아무 말 없이 형우를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어깨 정도 오는 긴 부스스한 곱슬머리,

날카롭고 긴 눈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눈동자.

딱히 위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나,

그에게서 무언가 섬뜩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척.


서태석이 검지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 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법률 사무원 모집 공고」


‘아... 맞다.’


문 앞에 종이 공고문을 붙여두었던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아... 면접 보러 오신 건가요?”

“지나가다가 우연히 봤어요.”

“아... 네... 그러시군요.”


솔직히 그냥 돌려보내고 싶었다.

인상은 과학이라고 했나.

서태석은 순수하게 일을 구하러 온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며칠 동안 씻지 않은 듯 꼬질꼬질한 머리,

김칫 국물이 묻어있는 더러운 츄리닝,

그리고 맨발에 슬리퍼까지.

그의 첫인상은 정말로 최악이었다.


만약 정말로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보통은 집에가서 옷이라도 깔끔하게 갈아 입고 와야 되는 거 아닌가?


이미 직원을 뽑았다고 둘러대며 내보낼까 고민하던 찰나,

서태석이 멋대로 사무실 쇼파에 앉았다.


‘그래... 일단 이야기라도 들어 보자.’


“커피 괜찮으십니까?”


형우의 질문에 서태석은 고개를 까딱 끄덕였다.

일부러 저러는 건가.

서태석의 모습에선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정말로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혹시 이력서를 가져오셨나요?”


이번에는 서태석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말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대답을 안 하냐고.

형우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빈 이력서 종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쭉 읽어보시고 빈칸에 이름이랑 주소, 그리고 학력 사항...”

“이런 걸 꼭 적어야 합니까?”


서태석이 형우의 말을 끊어내고 질문했다.

여태 한 마디도 없다가 이번에는 말까지 끊다니.

정말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다.


“음... 내키지 않으시면 적으시지 않아도 상관 없지만, 여기서 일하시려면 그래도 제가 그쪽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짜증 섞인 형우의 미소에 서태석은 한숨을 내쉬고는 펜을 들어 빠르게 빈칸을 채워넣었다.


“...다 적었습니다.”


보나마나겠지.

이렇게 무례한 남자가 뭐 얼마나 대단한 스펙을 가지고 있을까.

이력서를 적는 것조차 경계하는 걸 보면,

마땅히 적을 내용이 없어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분명하다.

그래... 그랬어야만 했는데...


‘잠깐... 뭐야 이게...?’


서태석의 이력서를 확인한 형우의 표정에서 당황이 느껴졌다.


이름 : 서태석.

나이 : 25세.

학력사항 : 키제스트 대학원 물리학과 박사학위.

병역사항 : 만기 전역.


25세에 박사 학위라니...

물론 분야가 다르긴 하지만,

형우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나이가 22세이다.

형우가 아직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억을 읽는 능력을 지닌 형우와 고작 1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들어보지도 못한 하위권 대학이면 또 모를까.

키제스트는 전국적으로, 아니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 수준의 대학이다.

그런 엘리트가 고작 초짜 변호사 사무실에 면접을 보러 왔다고?


“정말 이곳에서 일하고 싶으신 게 맞습니까?”


서태석은 잠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


형우의 짧은 물음에 서태석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 미안합니다. 기분 나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서요.”


키제스트 대학교 박사 학위 정도면 대기업이나 연구소 같은 곳에서 수 억대의 연봉을 제시하며 불러주는 곳도 많을 텐데.

겨우 이런 작은 사무실에서 일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돈 벌려고요.”

“돈이 목적이라면 이곳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일자리가 많을 텐데요.”

“시끄러워서요. 사람 많은 건 질색이라.”


단순 명료한 이유.

처음엔 무슨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내뱉나 싶었지만.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형우를 바라보고 있는 서태석의 표정을 보니,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법률 사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 지는 아십니까?”

“그쪽이 시키는 일이겠죠.”


어처구니 없는 서태석의 대답에 형우는 연거푸 한숨을 내뱉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대답에 조금은 성의를 보일 법도 한데.

서태석은 전혀 가식을 떨지 않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잠깐 일할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서요. 그만두지 않고 오래 꾸준히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괜찮으십니까?”


혹여 그가 아르바이트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싶어 뱉은 질문이다.

하지만 서태석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네.”

“...그러시군요.”


형우는 어떤 말로 서태석을 돌려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이 진심인지도 모르겠고,

본인과는 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검토해보고 조만간 연락드릴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네.”


서태석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하려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형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 떨어진 겁니까?”

‘...!?’


예상치 못한 직설적인 질문에 형우는 당황했다.


“아뇨. 일단 다른 지원자들도 만나보고 결정할 예정입니다.”

“그러니까요. 저 떨어진 거냐고요.”


대화를 할 생각이 있긴 한 건지.

눈 앞의 남자를 내보내기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솔직한 감정을 말해주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예. 그렇습니다.”

“왜죠?”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가.

중소기업에서 학벌이 지나치게 좋은 사람을 꺼리는 이유와 같다.

물론 유능한 사람을 뽑는 것이 원칙이나.

금방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 분명한데,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쪽은 이곳이랑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요. 전공도 그렇고 법에 관련된 지식이 없는 것도 좀...”


이 정도로 말했으면 충분히 알아 들었겠지.

대면으로 불합격 통보를 하는 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본인이 자처한 상황이니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예...?”


곧장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서태석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다시 형우에게 물어왔다.


“어떻게 하면 제가 여기서 일을 할 수 있냐고요.”

“...”


당황의 연속이었다.

좋게 거절했으면 예의상 알아들었다는 시늉을 할 법도 한데,

여전히 감정 없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 까지 하시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뭐가요?”

“그쪽 스펙이면 여기가 아니라 어디든 취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딱히 법조계에 관심을 두고 있지도 않은 것 같은데, 당최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지원하신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아서요.”

“...”


서태석은 잠시 고민하더니, 검지 손가락으로 건물 뒤편을 가리켰다.


“집이랑 가까워서요. 사무실 바로 뒤가 제 집이거든요.”


사무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서태석의 행동은 한결같이 너무나 당당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키는 거 뭐든 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일하게 해주세요.”


이쯤 되니 계속 거절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어떻게 말해야 잘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때.

서태석의 기억이 형우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


순간 형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좀 전과는 다른 무거운 분위기로 서태석을 노려보았다.


“시키는 거 뭐든 하겠다고 말씀하셨죠.”

“네.”


분명 질문에서 불길함을 감지했을 텐데.

서태석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하실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서태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형우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제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살해당하셨습니다.”


처음으로 서태석의 얼굴에서 감정이 보였다.

당황이었을까. 아니면 불쾌함일까.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그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있었다.


“저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낼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할 일이...”

“네. 맞습니다. 그래서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


서먹한 침묵속에서 서태석의 고민이 길어졌다.

이건 형우에게도 위험 부담이 있는 도박 수.

서태석의 기억을 근거로 그가 분명 자신을 도와주리라 확신했음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형우의 입술은 바짝 말라갔다.


“하...”


기나긴 고민 끝에 서태석은 허리를 곧게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아쉽네요. 제가 다른 건 다 괜찮은데. 가족사는 별로 내키지 않아서.”


방금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서태석이었는데,

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미련 없이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그쪽도 알고 있잖아요. 지금 내 심정이 어떤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의미심장한 형우의 발언이 서태석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가족을 잃는 슬픔이 얼마나 아픈지 아시잖아요.”

“그걸 왜 저한테 묻죠?”

“당신이라면 나를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서태석은 실웃음을 터뜨리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사람 잘못 보셨네요. 보시다시피 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사무실 문이 반쯤 열렸을 때쯤.

형우는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정택림.”

“...”


순간 서태석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미동조차 없는 빳빳하게 굳은 몸뚱아리.

박동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서태석의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택림이 죽었을 때. 당신도 그 자리에 있었잖아.”


서태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사무실 문을 닫았다.


“이상하네.”


그리고 손을 위로 뻗어 문을 걸어 잠그고는 천천히 형우에게 다가갔다.


“그건 나밖에 모르는 비밀인데.”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눈동자에서 그윽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서태석은 연필통에서 날카롭게 깎인 연필 하나를 꺼내들고 형우와 똑바로 눈을 마주했다.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그 X끼 내가 죽였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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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배신자 (5) 24.09.11 38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4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36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8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7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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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2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0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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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오해 (2) +1 24.08.28 81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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