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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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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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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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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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

DUMMY

무언의 침묵이 가득한 법정 안.


검사 측이 진술할 차례이지만,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한다.

팽팽하게 대립하는 신경전.

괜히 눈치를 살피며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가했다.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은은한 미소를 띄는 변호인.

그의 얼굴에서는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언뜻 봐도 20대 중반. 경력 짧은 초임 변호사임이 틀림없는데.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오히려 여유로운 모습으로 검사의 진술에 모두 반문했다.


보통 형량이 크게 좌지우지 될 수 있는 사건에선 초임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는다. 경험이 부족함은 물론이고 재판에 익숙하지 않아, 주도권을 가져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의 변호인은 완벽하게 재판을 이끌어나갔다.


“검사님. 혹시 사건 당시 블랙박스 영상 가지고 계십니까?”

“예.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영상을 재생해주시겠습니까?”


온화한 말투에도 담당 검사는 마치 협박을 당하는 사람처럼 안절부절 손톱을 물어뜯었다.

100번도 넘게 확인한 영상이건만.

어째선지 자신이 모르는 증거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검사는 계속해서 변호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질문은 너무나 당연한 내용들.

처음엔 그저 사건 내용을 늘어놓는 것뿐이라 생각했는데.

변호인의 질문이 계속 될수록 검사 측에서 제출한 증거는 무의미한 종잇 조각으로 변해버렸다.


“피해자의 동선과 CCTV영상을 비교해보면, 해당 영상은 단지 정황증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변호인의 날카로운 변론이 또 다시 길게 늘어졌다.

형량의 정도가 아닌, 무죄를 주장하는 백과 흑의 재판.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공방이 이어졌기에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


탕 – 탕 – 탕 -


끝내 책상과 마주한 판사의 망치.


“피고인의 범행을 입증하기에는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본 법정은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판사가 변호인의 손을 들어주자, 피고인은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솔직히 반쯤 포기했습니다. 남변호사님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았거든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변호사님.”


“별 말씀을요. 저는 그저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 남형우.


「승소율 100%의 최연소 천재 변호사」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귀신이 씌었다고.

그는 마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처럼 매번 사건의 진실에 정확히 접근했다.


그래서 그런지 검찰들조차 형우가 변호를 맡은 사건을 피했다.

기껏 힘들게 조사해도 당당히 무죄를 받아내니, 도무지 당할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는 형우에게 자문을 구해 기소 자체를 하지 않은 사건도 여럿 있을 정도로 법조계 바닥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동료 변호사가 해맑게 웃으며 형우에게 다가왔다.

존경. 아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으로.


“이야~ 여전하네? 내심 그 명성이 꺾이길 바랬는데. 남변은 운도 좋아.”

“제가 운이 조금 좋은 편이긴 하죠.”


운이라.

운도 계속되면 실력이라고.

사건을 꿰뚫는 통찰력이 대단하다고 봐야겠지.


...


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사실 남형우에겐 비밀이 존재한다.


형우는 초능력자다.

무려 기억을 읽는 초능력자.


30분.


같은 공간에 30분 동안 머물면 다른 사람의 기억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온다.

정확히 말하면 단순히 기억을 읽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기억을 삼킨다고 말하면 이해가 빠르려나.

머릿속에 들어온 다른 사람의 기억은 완벽하게 자신의 기억이 되어 본인조차 본인의 것인지 남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형우의 손에는 항상 묵주가 들려있다. 자신의 기억을 구분하는 유일한 수단.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


형우는 처음부터 초능력을 지니고 태어났다.

뱃속에서부터 부모의 기억이 머릿속에 자리잡혔기에 그의 두뇌는 이미 어른이었다.


말문이 트이기까지 12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육체의 성장만 필요했을 뿐. 말하기까지 그 어떤 학습도 필요하지 않았다.


영재 판정을 받았다. 성인 지능 수준을 보이는 아이. 주변 사람들은 형우의 비범한 능력을 보고 감탄하기 일쑤였다.


5살 정도가 되던 해.

이 능력이 축복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 이번 주말에 태국 여행 다녀왔다!”

“거짓말.”

“진짜야!! 가서 코끼리도 타고, 맛있는 과일도 먹었어!”

“거짓말쟁이.”


유치원 아이들은 형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억울했다.

단지 다른 아이들의 기억이 머릿속에 들어와 그것을 말한 것뿐인데.

하지만 어린 형우는 자신의 기억과 다른 사람의 기억을 구분해내지 못했다.


“형우야. 너 그게 무슨 말이니...?”

“네...? 뭐가요...?”

“태국 여행이라니...? 우리 해외 여행 간 적 없잖아.”


다른 사람의 기억이 형우의 머릿속에 쌓여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졌다.

부모님조차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의사는 형우에게 자폐 진단을 내렸다. 심각한 망상증이 있다는 의사의 소견.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었으나,

그날 밤 부모님은 걱정의 눈물을 쏟아냈다.


“평범한 아이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께서는 밤마다 묵주 알을 넘기며 형우가 평범하게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손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의 눈물 자국.

그제서야 형우는 자신이 남들과 다름을 인지했다.

그날 밤. 형우는 어머니께 묵주기도 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하루종일 묵주기도를 외우며 자신의 기억을 확실히 구분하려고 노력했다.


이후 부모님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다.

부모님의 환한 미소를 본 형우는 평생 능력을 숨기고 살아갈 것을 스스로 다짐했다.

자신만 희생하면 부모님의 미소를 지켜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다시 찾아온 행복한 일상.

특별하진 않아도 그의 집에선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다.

소소한 행복.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무역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 남이건이 본사의 부름을 받았다.


“여보. 괜찮겠어요?”

“그럼. 걱정하지 마. 형우 엄마도 잘 알잖아. 이건 아무한테나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라는 거.”

“아빠... 안 가면 안돼?”

“아빠가 돈 많이 벌어와서 맛있는 거 사줄게. 그러니까 우리 형우가 조금만 이해해줄래?”

“알겠어...”

“착하다. 우리 형우. 엄마 말 잘 듣고 있어야 해.”

“응...”


혼자 서울로 올라간 아버지는 가정을 위해 열심히 회사를 다니셨다. 일이 바빠서 한 달에 한 번 내려올 수 있을까 말까였지만, 집에 오실 때마다 장난감을 비롯한 많은 선물을 사오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가 집에 오시는 일이 점점 뜸해졌다.

회사 일이 그리도 바쁜지. 전화기 건너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잔뜩 야위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힘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버지 몰래 서울 집을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 날 형우는 아침 일찍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혼자 대중교통을 타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계획했던 대로 아버지가 퇴근하시기 전에 서울 집에 도착했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담배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평생 담배를 입에 대지도 않으셨던 아버지인데.

담배꽁초와 술병이 거실 바닥에 나뒹구는 것을 보니,

집을 떠나 얼마나 힘드셨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형우는 곧장 바닥의 쓰레기들을 전부 치우고,

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할 생각으로 장롱 안에 숨었다.

생각보다 늦어지는 아버지의 귀가 시간.

아침 일찍부터 밖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던 형우의 눈은 점차 감겨왔다.


...


꾸벅 꾸벅.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진 형우.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크허억...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뭐 다른 이유가 있겠냐. 돈 때문이지.”

“끄어어억. 끄어어억.”

“괜히 힘주지 마. 보는 내가 마음이 안 좋다.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제발... 살려...”


툭.


기억 속의 남자는 밧줄에 목이 매달린 채 몸이 축 늘어졌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는 분명 아버지였다.


형우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게 전화했다.


“저희 아빠가 숨을 안 쉬어요... 제발 우리 아빠 좀 살려주세요...!”


삐용 – 삐용 -


경찰차가 도착할 때까지 형우는 장롱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무서웠고.

도저히 죽은 아버지의 시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남이건의 시신을 거두고 사건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장롱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꼬마야...!!”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눈에 초점을 잃은 형우는 묵주기도를 중얼거리며 두려움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 남편이 죽었다뇨... 거짓말이죠...?”


경찰의 전화를 받고 온 어머니 마리아는 땀에 흠뻑 젖어 부검실 안으로 들어왔다.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경찰들.

부들 거리는 손으로 흰 천을 들어올리자,

싸늘하게 식은 남이건의 얼굴이 드러났다.


“여보...!”


마리아는 남이건의 얼굴을 보자마자 자리에 주저 앉았다.

마치 세상 전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


“꼬마야. 이제 좀 진정이 됐니?”

“예...”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저씨한테 말해줄래?”


형우는 애써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참아내며 머릿속에 들어온 살인자의 기억을 떠올렸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우웨에엑.”


처절하게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형우의 입에서 구역질이 쏟아졌다.


“괜찮으니까. 힘들면 천천히 말해줘도 돼.”


경찰이 걱정 어린 눈으로 형우를 걱정했으나,

형우는 다시 한 번 살인자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살인자와 나눈 대화부터, 처참하게 목을 매달았던 장면까지.

하나도 빠짐 없이 당시 상황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렇구나...”


경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형우에게 물었다.


“그런데 꼬마야. 아까 분명히 장롱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니?”

“네...”

“그럼 너는 계속 2층 방에 있었다는 거네. 아저씨가 보기에는 1층에서 있었던 일을 네가 직접 목격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

“직접 본 건 아니긴 한데... 그래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아저씨한테 거짓말하면 안 된다.”

“거짓말 아니에요!!”


차마 초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눈앞의 경찰을 설득할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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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강재경 대표(3) 24.09.16 21 2 11쪽
27 강재경 대표 (2) 24.09.13 32 3 12쪽
26 강재경 대표 (1) 24.09.12 28 2 11쪽
25 배신자 (5) 24.09.11 38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34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36 3 12쪽
22 배신자 (2) 24.09.07 37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37 3 14쪽
20 진실 24.09.05 42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2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0 3 12쪽
17 재회 (2) 24.09.02 50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58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59 4 15쪽
14 오해 (3) +1 24.08.29 70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1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78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85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86 6 11쪽
9 서태석 (1) +1 24.08.23 95 4 12쪽
8 또 너야 (2) +1 24.08.22 92 5 13쪽
7 또 너야? (1) +2 24.08.21 105 4 11쪽
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11 5 14쪽
5 김누리 검사 (4) +1 24.08.19 112 6 12쪽
4 김누리 검사 (3) +1 24.08.17 115 6 10쪽
3 김누리 검사 (2) +1 24.08.16 114 4 12쪽
2 김누리 검사 (1) +1 24.08.15 132 5 12쪽
» 아버지의 죽음 +2 24.08.14 158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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