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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청(卍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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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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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홍당자파(紅糖糍粑) (3)

DUMMY

26.




백서군만이 아니다.

노점 안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대부분 벽운진인의 젓가락 끝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건 곧 벽운진인의 평가에 따라, 홍당자파의 판매량이 요동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벽운진인의 젓가락질 끝에 노점의 운명이 걸려있다.

아무리 도와달라 서찰을 보내기는 했어도, 먹는 것에 대한 평가만큼은 조작이 없어야 하니 냉정한 평가를 부탁한다는 말을 써두었으나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진짜로 냉정하게 평가해서 맛 없다는 소리가 나오면 그것보다 피눈물 나는 상황은 없을 테니까.

그래도 단 것을 즐기는 벽운진인이니, 혹평은 없을 것이다.

백서군은 두 손을 모은 채로 벽운진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자파(糍粑)라···.”


벽운진인이 운을 뗐다.

자파, 찹쌀떡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대 한국에서 찹쌀떡이라고 하면 주로 모찌를 떠올리지만, 찹쌀떡이란 말 그대로 찹쌀로 만든 떡일 뿐이다.

쫀득하고 말랑한 떡이라면 찰떡, 찹쌀떡이라고 통칭하기도 하니까.


‘찹쌀떡이라고 죄다 모찌가 아니란 말이지.’


쫀득하고 말랑말랑한 식감을 가지고, 찹쌀을 주재료로 사용한 떡. 좁은 의미로는 그걸 찹쌀떡으로 한정한다.

홍당자파는 좁은 의미의 찹쌀떡에 해당하는 다과였다.

운을 뗀 벽운진인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묘하군. 분명 속은 부드럽고 쫀득한 찹쌀떡인데, 겉은 구워서 노릇노릇하고 바삭한 맛이 나는군. 거기에 콩고물을 곁들여서인지 고소하기까지 한데, 더해 이 흑당즙.”


말이 길어진다.

벽운진인은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홍당자파를 들어 다시 입에 넣었다.


“으음.”


만족스러운 소리가 벽운진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말을 하다 말고 젓가락질에 집중하는 벽운진인이다. 홍당자파를 먹는 걸 멈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전부 홍당자파를 전부 먹어치운 다음에야, 벽운진인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맛이 강한데도 콩고물의 고소한 맛을 해치기 보다는, 단맛과 어우러지는 것이 조화가 좋군. 어째서 이름이 홍당자파인가?”

“홍당이란 붉은 흑설탕즙을 가리키고, 자파란 찹쌀떡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이름 그대로의 다과입니다.”

“차가 아니라 음식을 먹은 다음에 후식으로 먹어도 괜찮을 듯 하군.”

“과찬이십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일세.”


벽운진인의 얼굴이 진지했다.


“이거, 앞으로도 파는 건가?”

“물론이지요.”


삼대포 같은 경우에는 퍼포먼스를 통해 손님을 끌어들이는 용도이기 때문에, 사천지회가 끝난 이후에는 따로 더 팔거나 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이른바 한정 상품이다.

특정 시기 말고는 먹어볼 수 없는 상품이라는 건 희소성을 가지기 마련이니까.

벽운진인이 웃으며 그릇을 내밀었다.


“한 그릇 더 주게.”

“바로 내어오겠습니다!”



***



“다 실었군.”


당무외는 수레에 한가득 실린 물건을 보고는 혀를 찼다.

백서군이 돈과 편지를 남겨두고 간 덕분에 이걸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이런 걸 왜 준비해달라 말했는지가 의문이다.

사천지회의 상품으로 쓸 검을 만드느라 당가 본가에 돌아간 사이에 백서군이 편지와 돈을 남겨놓고 가서 좀 당황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간단한 죽통을 깎는 걸 노부에게 의뢰하다니, 무시를 해도 정도가 있지.”


당무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그래도 왕년에 천병제라고 불리며 강호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초고수로 이름을 날렸던 당무외다.

그런 그가 하찮게 돈 받고 죽통이나 잔뜩 깎고 있었으니, 심통이 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렇다고 백서군 앞에서 그가 천병제 당무외라고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답답한 건 매한가지다.

게다가 사천지회 도중에 백서군의 노점에 들리기로 약속까지 했으니, 얼굴을 아예 안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요명, 그놈이 성도에 왔다고 하니 그놈 낯짝도 좀 봐야겠고.”


당가의 야방(冶坊)에 틀어박혀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올 때까지 쇠만 두드리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귀까지 틀어막고 지냈던 건 아니다.

그랬으면 석요명이 성도에 왔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백서군에게는 따져 물을 것도 있다. 소중한 손녀를 노점에서 점원으로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


“그걸 노부가 따져 묻는 것도 그림이 이상하기는 한데.”


일단 백서군에게 당무외 본인이 당가 사람이라는 걸 말한 적이 없으니, 백서군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일 수도 있다.

백서군에게 당무외 본인이 정체를 밝히지 않았으니까.

당무외는 수레의 손잡이를 잡았다. 백서군에게는 그가 무림의 고수라는 걸 알리지 않았으니, 정체를 감추려면 결국 이런 쪽으로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쯧.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 이래저래 제약이 생기는 건 귀찮군.”


정체를 숨기고 산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강호의 전대 고수들 중에는 당무외처럼 번화한 도시에서 좀 떨어져 숨어 지내는 이들도 있지만, 아예 산중에 틀어박혀 천수를 누리다 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물론 당무외는 그럴 생각까지는 없었다.

단지 가문의 대소사에서 좀 멀어져서 생각없이 쇠를 두드리는 것이 좋은 것뿐이었으니까.

소소하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대장장이로서 당무외가 걷기로 결정한 길이다.


“얼른 가야겠군.”


수레 손잡이를 잡은 당무외가 걸음을 옮겼다.



***



“···질리는군.”


석요명은 자신의 앞에 잘 차려져 있는 명해루의 음식들을 보면서도 딱히 감흥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별호 중 하나가 괜히 반설괴가 아니다.

석요명은 맛있는 걸 먹는 걸 즐기는 식도락가다. 그가 중원 각지를 좁다고 쏘다니는데는 식도락을 즐기기 위함이다.

식도락을 즐기겠다는 이유가 구 할. 강호 유람을 겸한다는 명목이 일 할.

신주십삼좌의 일괴(一怪), 괜히 괴(怪)라는 칭호를 받은 것이 아니다. 신주십삼좌에 든 다른 이들과는 사고 방식과 행동 양식 자체가 다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신지요.”


명해루 총관의 낯빛이 좋지 않았다.

이제 2일차다.

사천지회가 시작하기 하루 전부터 명해루에 머물렀으니, 석요명은 지금까지 약 사흘 간 명해루에 머무르며 온갖 진미를 즐긴 상태다.

물론 매일 같이 새로운 음식과 차를 즐기기까지 했다.

아미산에서 나는 죽엽청차, 아미모봉 같은 아미파에서 자신하는 명차를 몇 잔이나 마셨음에도 석요명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듯한 기색이었다.


“말했지 않나. 질린다고. 분명 전에는 맛이 괜찮았던 것 같은데.”


석요명은 반절도 채 먹지 않은 그릇을 밀어놓았다.

총관의 볼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명해루주로부터 반드시 사천지회가 끝날 때까지 석요명을 융숭히 대접하여 명해루에 붙들어 둘 것을 명령받았다.

그걸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새로 해오라 이르겠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석요명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지금 이 음식들이 질린다고 말하고 있다. 총관. 귀가 먹은 건가?”

‘빌어먹을.’


고개를 숙인 총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좋은 상황이 아니다.

설마하니 3일만에 이런 상황이 발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바였다. 물론 석요명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진수성찬을 차려 매 번 대접하기는 했으나, 고작 3일만에 음식들이 질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석 대협의 성격이 괴팍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괴(怪)라는 칭호는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고수에게만 주어지는 글자다. 선(仙)이나 제(帝), 왕(王) 같은 긍정적인 별호 대신에 괴를 받았다면 그 성격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소리다.

강호에서 붙는 별호는 대부분 그의 행적과 성격을 반영하는 법이니까.


‘본 루의 음식이 질린다니···.’


명색이 사천제일루다.

당연히 백운관 같은 작은 다관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방대한 요리의 가짓수와 후식 수를 자랑한다.

차는 물론이고, 곁들여 먹을 첨채까지 만들 줄 아는 자들이 명해루에서 일하고 있다.

백운관이 새로운 다과를 선보이고 있다지만, 오랜 전통과 뛰어난 솜씨를 지닌 숙수들이 만드는 명품 다과와 후식을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런데도 석요명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명해루의 음식이 질린다고.


“새로 음식을 대령하겠습니다.”

“전부 치워라. 일 없다.”

“석 대협. 마음에 안 드시는 구석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모시기로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먹을 만큼 먹었다. 사흘 동안.”


석요명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더 이상 명해루의 음식에서 새로움을 느끼기 어렵군.”

‘이런 빌어먹을.’


총관은 뒷골이 살짝 당긴다는 생각을 했다.

명해루의 모든 음식을 한 번씩 다 대접받아놓고서 하는 말이 이제 새로운 게 없어서 먹을 맛이 안 난다, 질린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

누가 괴(怪)라는 별호를 받은 인간 아니랄까봐, 까다롭기도 더럽게 까다롭다는 느낌이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신다면···.”

“내가 떠나고자 하면 떠나는 거고, 머물고자 하면 머무는 거다. 명해루의 음식은 전부 맛 봤어. 훌륭하지. 맛이 없는 게 아니다.”


총관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석요명이 말을 이었다.


“맛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질린다는 거다.”


총관의 입이 막혔다.

맛이 없다는 게 아니라, 맛이 있는데 질린다는 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맛있는 요리가 그렇게 쉽게 물릴 리가 없지 않나.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이야기였다.


“차도 마찬가지. 명해루가 아미파와 좋은 관계라는 건 알고 있다만, 너무 같은 차만 마셔서 질릴 정도군.”


명해루는 아미파의 차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아예 따로 차밭을 만들어 거기서 나오는 찻잎을 통해 차 제조 자체를 자급자족하고 있지만, 그래도 명품, 고급차 주력 상품은 아미파에서 공급하는 것들이다.

죽엽청차, 아미모봉, 아미아예, 아미아심, 용문차(龍門茶).

이 다섯 가지야말로 지금 명해루가 밀고 있는 주력 상품인 셈인데, 그걸 질린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사천에서 나고 자란 사천 토박이인 만큼 고향의 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총관 입장에선 쉽사리 들어 넘기기 힘든 이야기였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참지 못하면 안 된다.

상대는 고수, 그것도 중원 천하에 이름이 자자한 신주십삼좌니까.

하지만 손이 살짝 부들거리며 떨리는 것까지 막기는 어려웠다.


“내가 은시옥로(恩施玉露)나 용정차까지는 바라지 않았어도, 새로운 차 정도는 더 내와야 할 것 아닌가. 명색이 다루거늘.”


은시옥로라면 무당파가 있는 호북의 이름난 차고, 용정은 중원 어디를 가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고급 차의 대명사.

그 두 가지를 거론하는 석요명 앞에서 총관은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른 차를 구해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다. 안 그래도 3일 동안 여기에만 처박혀 있으려니 좀이 쑤셨거든.”


석요명이 일어난다.

그가 가고자 한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명해루의 총관이라는 이름 따위론 석요명의 발걸음을 붙들어 둘 수 없음이다. 그런 것에 구애받기엔 석요명이 이룩한 무공의 경지가 너무나도 높았고, 신주십삼좌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이 무거웠다.

일개 주루의 총관이 감당하기 어려운 거물인 것이다.


“저희가 대접을 잘못했다면···!”

“좀이 쑤신다는 것뿐이야. 잠깐 바람 좀 쐬면 돌아오지.”


총관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석요명은 자리를 나가버렸다.

그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던 총관은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듯 그대로 주저앉으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이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가 지끈지끈 쑤셔오는 총관이었다.


“백운관으로 가시는 건 아니겠지?”


머리를 감싸쥔 채 주저앉아있는 총관의 귓가에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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