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검사가 회귀할수록 강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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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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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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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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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의 무한회귀자 14

DUMMY




루카스의 든든한 짐꾼.

학즉사법의 유이한 수련자.


라분은 먼저 앞서가는 주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주인.'


노예인 자신에게 호흡법을 가르쳐 줬다.

무척 아팠지만.


짐을 드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일도 시키지 않는단다.

엄청 무겁지만.


심지어 자는 곳도, 먹는 것도 차별 없이 똑같은 처지다.

집이 너무 좁지만.


라분은 그저 앞서가는 주인의 등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시키는 대로만 하자.


사실 라분은 별생각이 없었다.

부모님이 죽고 노예로 전락한 시점에서 이미 삶의 희망은 사라진 뒤였으니까.


아직 꿈을 갖기에는 이른 시기다.




* * *




나는 먼저 미궁 4층의 사무소에 들렀다.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어야 하는 법."


보통 새로운 층수에 진입할 경우 적응이 필요하다.

미궁이 내뿜는 모종의 압박감도 더욱 강해지고, 애초에 지리, 식생, 몬스터의 습성 등이 기존에 활동하던 층과는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궁 탐험가들에게 정보를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런 방법에는 시간과 돈이 들어가기 마련.


그 둘을 절약하기 위해 몸으로 부딪히는 장소는 바로 여기다.


미궁 사무소, 4층 지부.


사무소를 향해 걸어가는 도중 라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응? 왜?"

"라분. 어지럽다."


미궁의 압박감에 라분이 헤롱거렸다.

이번이 첫 미궁 탐험이니 이 정도 버틴 것만 해도 용하다.


내가 익히게 한 학즉사법의 덕도 있겠지.


나는 사무소 계단 앞에 라분을 앉혔다.


"안 움직이는 게 최고야. 짐 내려놓고.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올게."

"알았다."


나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미궁 사무소에 들어왔다.

신입이라고 쫄 거 없다.

어차피 미궁 4층을 탐험하는 같은 처지이니까.


나는 접수대에 다가갔다.


"의뢰 접수요."


사무소 정기 파견 직원이 턱짓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시선을 옮기니 구석 벽의 한 면을 종이들이 빽빽하게 채워놓고 있었다.


의뢰.

미궁 밖에 사는 사람들이 미궁 탐험가들에게 본인의 의뢰를 접수한다.


실력 있는 탐험가에게는 지정 접수가 들어가지만 나 같은 무명 탐험가는 이렇게 직접 일감을 따야 한다.


나는 천천히 벽면으로 다가갔다.


"어디보자⋯⋯."


한 쪽에는 사람의 몽타주가 가득하다.

탐험 중 실종된 탐험가를 찾는 가족들의 눈물 어린 의뢰부터, 미궁 4층에서 행적이 확인된 두더지, 클라이머에 걸린 수배까지.


어차피 이런 임무는 얻어걸리는 경우가 많기에 그냥 지나가면 된다.


그래도 현상금 높은 클라이머의 얼굴과 특징은 유심히 봤다.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물론 나에게는 다른 쪽에 적힌 종이들이 더 중요하다.


[미궁푸른무지버섯 10송이 채취]

⋯⋯

[브라운 오크의 머리 5수]

⋯⋯

[동굴 늑대의 심장 10개]

⋯⋯

[리자드맨의 돌 목걸이 5개]


'등장하는 몬스터는 동굴 늑대랑 브라운 오크, 리자드맨. 4층은 오크 지대니까 브라운 오크가 주류겠어.'


나는 의뢰 기한이 2주 정도로 넉넉한 오크에 관한 의뢰서 두 장을 뜯었다.

이런 전리품 의뢰의 경우 보통 정기적으로 있는 편이다.


'한 번에 맡을 수 있는 의뢰는 3개니까.'


마지막은 어려운 임무로 고를까.


마침 내 눈에 띄는 의뢰가 있다.


[브라운 오크 챔피언의 옷 수실 1개]


챔피언.

몬스터 중 유난히 능력이 뛰어난 개체를 챔피언이라고 부른다.


미궁 4층의 오크 챔피언이라고 하면 3위계의 실력자가 2명 이상 붙어야 안전한 레이드를 보장할 수 있는 강력한 몬스터다.


이걸로 하자.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의뢰 기한이 넉넉하니 몇 번 도전해 볼 수 있겠네.


[브라운 오크의 송곳니 20개]

[브라운 오크의 온전한 눈알 3쌍]

[브라운 오크 챔피언의 옷 수실 1개]


알뜰하게도 챙겼다.


의뢰 수락비는 각 의뢰 당 동화 10개씩이다.

내가 의뢰비를 지불하자 직원이 내 이름을 받아적었다.


"루카스, 라분. 접수했수다."

"오케이."


이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수락비에 더해 보상금을 받게 되고, 실패하거나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수락비는 사무소에서 가져간다.


이 불합리한 수수료 강탈에 나는 치를 떨었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가 다 있단다.


콜린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는데 한 귀로 들은 걸 자꾸 나머지 한 귀가 흘려버려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밖으로 나가니 내가 라분을 놓고 갔던 자리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응?"


한 파티로 보이는 남자 4명이 라분을 둘러싸고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 덩치 보소? 눈만 순하네."

"야. 눈 깔아봐."

"라분. 주인 기다린다."

"노예야? 손등 한 번 보자. 어디 사람이냐?"

"만지지. 마라."

"어쭈? 한 대 맞을래?"


나는 얼른 달려가 라분의 팔을 잡고 있는 놈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으악!"


갈비뼈가 걸리는 느낌이 좋다.

녀석. 오늘 탐험은 다 했다.


놈의 동료들이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다 이내 눈이 사나워졌다.

놈들의 자세를 살폈다.


'3위계는 없군.'


4층의 첫날이다.

신입 주제에 가뜩이나 고작 둘이서 다니는 판에, 기어다닐 수는 없지.


나는 탐험가의 생존 방식을 이렇게 배워왔다.


"뭘 꼬라봐 씨발년들아. 내 동료를 건드려?"

"동료? 노예 새끼 동료면 너도 노예 새끼겠네?"

"주인. 미안하다."

"라분. 네가 뭘 미안해. 개새끼들 청소하게 도와주면 칭찬받아야지."


내게 발로 차인 놈이 옆구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씨발. 그냥 구경 좀 한 거라고."

"나도 니 새끼 옆구리 좀 구경했다. 불만있냐?"

"이 새끼가!"


한 놈이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올렸다.


나는 검을 뽑지 않고 고개를 살짝 꺾었다.


"자신 있냐?"

"싸움이다!"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주변 탐험가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물론 공포의 비명이 아니다.

즐거움이 가득한 비명이다.


곧 사무소를 시작으로 각종 건물에서 탐험가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만들어진 인파의 원진이 무언의 압박이 된다.


"4층 데뷔전으로는 나쁘지 않은데."

"주인. 무섭다."


나는 주먹으로 라분의 가슴을 통통 쳤다.


"덩치도 큰 놈이 간은 작아가지고. 그냥 지켜보기나 해."


내 맞은편에 선 놈의 칼끝이 살짝 떨렸다.

하지만 눈빛은 심상치 않다.


저건 무서움에서 비롯된 긴장이 아니다.

사람 죽여본 적이 있는 놈이다.


"흠."


하수구에 살면서 사람 안 죽여본 사람 없다.

어려서 구석에서 살았을 때는 사람 시체가 동네 개보다 흔했다.


내가 철들 때 시작한 도시 정화 사업으로 그런 시절은 끝났지만.


"싸워라!"

"싸워라!"

"싸워라!"


사무소 파견 직원이 귀찮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기어 나왔다.

딱 봐도 완숙한 3위계다.


"어이 둘."

"예."

"진짜 할 거냐?"


나는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먼저 물러설 뜻이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퉤!"


녀석도 마찬가지.

동료들도 딱히 말릴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옆구리를 맞은 놈은 아직도 캑캑거리고 있고.


"좋아. 결투의 시작을 부른 모든 감정은 모두 이 결투로 끝낸다. 승자가 모든 걸 가진다. 결투 후 사적 보복은 허락하지 않는다. 사무소가 보증하며, 내가 보증한다. 승부에 불복할 시 목숨으로 그 값을 지불한다. 동의하나?"

"동의합니다."

"그래."


직원이 동화를 꺼냈다.


"이 동전이 땅에 떨어질 때 결투 시작이다."


주변 사람들의 야유와 비명이 거세다.

모처럼의 오락거리가 나타났으니 오죽할까.


나는 거만한 자세로 검을 앞으로 내밀고 검자루를 쥔 검지를 까딱거렸다.


자신감 가득한 내 모습에 녀석들의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내 상대의 눈에도 미세한 흔들림이 잡히고, 그에 따라 마나도 흔들렸다.


하지만 이미 동전은 던져졌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마치 죽을 때마다 보는 주마등과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침내 천천히 하늘을 날던 동전이 땅에 닿았을 때.


멈췄던 시간이 다시 돌아와 세차게 흐르기 시작한다.


"죽어!"


녀석이 내게 달려들어 크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허초.


공격이 막힐 걸 예상하고 일부러 받아치기를 준비하는 검이다.

나는 이미 저 잡기술을 본 적이 있다.


'저 공격에 가슴을 베였었지.'


켈리어가 구사하던 기술과 결은 같았지만 수준은 천지차이다.

그래도 이런 공격은 받아치면 반드시 손해를 보기 마련.


그렇다면?

흘려주면 된다.


뒤로 세 걸음 물러나 피하고, 미리 대기했던 두 번째 검을 받아낸다.

마나를 비효율적으로 쑤셔 넣은 검이 내 검과 부딪혀 마치 폭발과도 같은 소리를 자아냈다.


구경꾼들의 환호 속에서 검을 맞대며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핏줄이 잔뜩 섰네."

"닥쳐!"


녀석의 발차기를 칼자루로 막아내고 다시 거리를 벌렸다.

그 와중에 기술적으로 검을 꺾어 돌려 놈의 팔을 살짝 베었다.


"칫."

"계속 할거냐?"

"뭐? 뭐라고?"

"계속 할⋯"


내가 말을 하는 타이밍에 맞춰 달려든다.

바로 자세를 잡다가 혀를 씹을 뻔했다.


'얍삽한 놈.'


오로지 힘뿐인 삼연격을 받아치고, 틈을 노려 크게 검을 밀어올렸다.


활짝 열리는 나와 녀석의 가슴.

녀석은 되는대로 발차기를 시도했지만, 더 안쪽에 있던 내 검이 한 박자는 더 빨랐다.


내 검이 녀석의 오른 손목을 반쯤 베고 지나갔다.


검에 묻어 떨어지는 피.

곧 손목에서 빠져나오는 피가 대지를 적셨다.


"크아악!"


자세가 무너진 발차기가 내 배에 닿았지만 이렇다 할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여기서 목을 벨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내 검은 녀석의 목울대 끝에 닿아있었다.

나는 언제든지 검을 찌를 준비를 마치고 녀석이 놓친 검을 들어 올렸다.


덜렁이는 손목을 부여잡고 뒹굴거리던 놈의 몸이 딱 멈췄다.

목에 닿은 내 검을 느끼며 눈을 데굴데굴 굴린다.


구경꾼들이 난리다.


"좆밥새끼!"

"왜 깝치냐 병신아!"


원색적인 욕설이 오고 갔다.

그 짧은 새에 돈까지 걸었는지 아주 걸쭉한 발음을 뽐내고 있다.


사무소 직원이 내게 다가왔다.


"솜씨 좋은데? 제대로 배웠나 봐. 어디서 배웠어?"

"그냥저냥 배웠습니다."

"싱겁기는. 어떻게 할 거야? 죽일 거야, 살릴 거야. 개인적인 부탁이지만 죽이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일이 귀찮아지거든."


나는 피식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목으로 향하던 검이 내리그어지며 녀석의 허리띠를 잘랐다.


고개를 숙여 허리띠에 매달려있던 놈의 돈주머니와 검집을 집어올렸다.


잠시 허리띠를 지키려던 녀석의 손이 내 신발을 잡았지만 나는 간단히 떨쳐내버렸다.


승자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녀석, 은근히 웃고 있다?


고통에 미쳐버렸나?


그냥 신경 끄자.


"이 정도로 하죠."

"좋아. 언제 한번 들르라고, 한 잔 사지."

"접수했습니다."


내 머리를 툭 친 직원이 하품을 연발하며 말했다.


"어이. 이 녀석 친구들. 친구의 복수를 해야지? 도전자 있냐?"


구경꾼들의 야유를 철면피로 씹어버린 놈들이 부들부들 떠는 놈을 집어 들고 미궁 밖으로 도망쳤다.


떠들썩한 비웃음은 덤으로 가져간다.


"싱겁기는."


나는 빼앗은 검을 이리저리 살펴본 뒤 내 검을 검집과 함께 라분에게 넘겼다.

이번에 새로 얻은 검이 더 좋은 검이었다.


'그래도 주인이 좋은 검을 써야지.'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하던 라분이 내 검을 받아들었다.


"주인. 이거? 검?"

"내가 무기 안 산 이유가 바로 이거라고."


사실 오크 무기를 주려고 했지만.


라분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심히 부담스럽다.

나와 라분은 이리저리 손을 내미는 탐험가들에게 마주 손을 내밀었다.


"이야. 깔끔하던데?"

"감사."

"어디 소속이야?"

"비밀임다. 잘 부탁드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약육강식의 사회다.


이번 미궁 4층도 잘 다닐 수 있겠다 싶었다.

우리 라분 건드리는 놈들도 이제 없을 테고.


나와 라분은 환대를 뒤로한 채로 라분과 함께 미궁 4층의 안전지대 밖으로 몸을 던졌다.


조금 지연된 탐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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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미궁의 무한회귀자 31 24.09.16 486 25 14쪽
30 미궁의 무한회귀자 30 +1 24.09.15 688 27 13쪽
29 미궁의 무한회귀자 29 +1 24.09.12 795 29 11쪽
28 미궁의 무한회귀자 28 +2 24.09.11 847 29 11쪽
27 미궁의 무한회귀자 27 +1 24.09.10 871 32 13쪽
26 미궁의 무한회귀자 26 24.09.09 891 28 16쪽
25 미궁의 무한회귀자 25 +1 24.09.08 902 29 12쪽
24 미궁의 무한회귀자 24 24.09.07 896 26 11쪽
23 미궁의 무한회귀자 23 24.09.06 905 27 12쪽
22 미궁의 무한회귀자 22 24.09.05 900 27 11쪽
21 미궁의 무한회귀자 21 +3 24.09.04 916 32 14쪽
20 미궁의 무한회귀자 20 +1 24.09.03 938 27 14쪽
19 미궁의 무한회귀자 19 +1 24.09.02 924 27 13쪽
18 미궁의 무한회귀자 18 +2 24.09.01 931 33 12쪽
17 미궁의 무한회귀자 17 +3 24.08.31 950 31 14쪽
16 미궁의 무한회귀자 16 24.08.30 995 28 14쪽
15 미궁의 무한회귀자 15 +1 24.08.29 1,041 33 12쪽
» 미궁의 무한회귀자 14 24.08.28 1,065 31 12쪽
13 미궁의 무한회귀자 13 +2 24.08.27 1,123 32 12쪽
12 미궁의 무한회귀자 12 24.08.26 1,172 35 16쪽
11 미궁의 무한회귀자 11 24.08.25 1,211 40 13쪽
10 미궁의 무한회귀자 10 24.08.24 1,242 36 12쪽
9 미궁의 무한회귀자 9 +1 24.08.23 1,287 34 12쪽
8 미궁의 무한회귀자 8 +1 24.08.22 1,307 37 10쪽
7 미궁의 무한회귀자 7 24.08.21 1,373 42 11쪽
6 미궁의 무한회귀자 6 24.08.20 1,378 41 13쪽
5 미궁의 무한회귀자 5 +1 24.08.19 1,442 3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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