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월클이 튼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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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작품등록일 :
2024.08.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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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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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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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의 끝

DUMMY

나는 월드클래스였다.


그리고 지금은 2부와 3부를 전전하고 있다.


***


“주장은 오늘 같은 경기도 많이 겪어봤겠죠?”


한껏 비장한 라커룸의 공기.

옆자리에 앉은 햇병아리나 다름없는 어린 선수가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어린 선수의 질문에 대답한 건 내가 아닌 다른 선수들이었다.


“주장은 우리 팀을 승격시킨 장본인이야.”

“그래,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지.”


음, 정확히 말하면 세계 최고였던 적은 없다. 그리고 모두 지난 얘기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유럽을 호령하고, 축구 변방 아시아의 대한민국 국적으로 발롱도르에 근접했다는 것들은.


“10년도 더 된 과거의 구닥다리 같은 이야기에 불과하지.”

“에이, 캡틴.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치?”

“당연하지!”


뭐, 일단은 그렇다니까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좋은 기억도 아닐뿐더러, 떠들어봐야 괜시리 기분만 울적해질 테지.

세계 최고의 문턱에서 부상으로 고꾸라진 선수는··· 흔한 이야기잖은 가.

나도 그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저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선보였고,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꾸라졌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겠지만 결국 정상을 찍어보지 못했다는 건 똑같다.

과거의 명성 역시 마찬가지.


신이 선택한 선수라거나.

신의 재림.

혹은 포스트 호나우두와 같은 말들은 내가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대비하는 수식어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은 결국 분데스리가의 2부리그였고, 강등과 잔류를 결정짓는 마지막 경기를 앞둔 늙은이라는 게 내가 처한 현실이니까.


‘좋지 않은데...’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벌써부터 입안이 바짝 마르고 무릎이 시리다.

이 몸이 어느새 마흔을 앞둔 노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처럼.


“주장, 그래도 전 주장과 함께 뛸 수 있어서 좋았어요. 우리 팀의 근본과 같은 선수가 10년이 넘도록 헌신하고 있잖아요.”

“나도 이곳에서 너희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좋았다고요?”

“그래.”


이건 절대 빈말이 아니다.

무려 세 번의 무릎 수술.

한 번도 아닌 세 번의 큰 수술로 재기 불가능 판정을 받은 선수.

그런 선수를 찾는 팀은 존재하지 않았고, 관심을 보이는 곳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만은 달랐다.

어느 팀에서도 찾지 않는 나를 향해 유일하게 손 내밀어줬다.

선수로서 나의 삶이 시작된 곳이자, 포문을 알린 친정팀.


홀슈타인 킬.


어린 나이에 겉멋만 잔뜩 들었던 당시의 내겐 그저 빅리그와 빅클럽을 향한 교두보이자 발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만 여겼던 곳.

그런 팀이 폐품이 되었다고 손가락질받는 나를 다시금 품어주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저 어머니처럼 포근한 울타리를 만들어줬다.

그러니 헌신하는 게 당연했다.

나는 이미 한 차례 이 고향과도 같은 곳을 떠났던 전적이 있으니까.


[홀슈타인 킬, 우도를 보내며 클럽 레코드 경신!]

[서포터즈 대변인, 슬프지만 그라면 더 높은 곳에서 뛸 자격이 있다.]

[반 회장, 우도가 떠난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만 그는 우리 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그러니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을 고대하겠다. 설령 다리가 부러져서 뛰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와 우리 팀 서포터즈는 그를 기다리겠다.]


...라며.

실제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빅리그로 진출한 나도, 구단도.


[홀슈타인 킬, 한 시즌 만에 강등.]

[천재 스트라이커의 부재인가? 홀슈타인 충격의 2연속 강등!]


등등.


나는 실제로 부상을 겪으며 빅리그에서 잉여자원으로 전락했고, 먹튀라 손가락질 받았다.

그런데도 이놈의 클럽과 도시는 달랐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라며 모든 제의와 컨택이 끊기는 와중에도 나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오히려 나에게 고마울 뿐이라며.


[우도. 그가 있었기에 올라갔던 분데스리가다. 우리는 후회하지 않는다.]

[더불어 그와 함께한 두 시즌이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날 응원해줬고, 등 뒤에서 대놓고 사랑해줬다.

그러니 마음이 흔들렸다.

애초에 빅리그에서 철저히 실패한 선수에 불과하지만...


‘이런 팀은 또 없을 테지.’


어느 리그와 클럽에서도 이렇게 일방적인 사랑을 경험해 본 적은 전무후무했다.

전 세계 모든 팀을 겪어본 건 아니지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결코 나 혼자만의 힘으로 빅리그를 향한 게 아니었으며, 팬들과 구단이 없으면 보잘 것 없는 한 명의 선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곳으로 돌아오면서 알게 됐다.

그래서 이런 다짐을 하는 걸 테지.


“오늘은 무조건 승리를 쟁취하자.”


그래서 이 팀을, 홀슈타인 킬을 잔류하도록 만들자.

그거라면 이토록 절절한 조건 없는 사랑에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는 것일 테니.

더없이 아름다운 이별이 될 거란 건 두말할 것도 없고.


“평소처럼만, 아니. 훨씬 잘하자. 내가 3골을 넣어줄 테니까.”

“은퇴경기에 헤트트릭이라.”

“역시, 주장은 다르네요.”

“난 어른이잖아. 내가 너흴 믿는 것만큼 날 믿어라.”


그렇게 손을 내밀었다.


“하나 둘 셋!”

“킬! 가자!”

“잔류를 위하여!”


굳은 결심과 함께 라커를 벗어났다.


***


[고오오올! 나우도 득점에 성공합니다!]


한창 경기가 진행 중일 때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이곳이 비록 분데스리가의 3부리그라곤 하지만 분명히 차원이 다른 활약이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어떻게든 득점을 했고, 매 시즌 꾸준히 20골을 넣었다.


과거와 같은 퍼포먼스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지만 대단한 활약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 팀은 2부와 3부를 전전했다.

대부분 3부리그였고.


내게는 무수히 많은 오퍼와 제안이 빗발쳤지만 떠나지 않았다.

분명 상위리그로의 컴백도 가능했었음에도 이곳에 남은 건 나의 의지였다.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 같은 늙은이는 빅리그에서 전혀 위협적이지 않을뿐더러, 먹히지도 않는다는 걸.

이미 여러 번 몸이 망가진 전적이 있기에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끝이구나. 한계에 다다랐구나라고.


지금도 한 경기를 치르면 다음 경기까지 4일을 누워있어야 했으니까.

무릎엔 언제나 물이 가득 차있었다.

그때마다 오롯이 치료와 회복에만 집중해야 했다.


근데 그렇게 노력해서 노화를 막을 수가 있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병들대로 병든 몸뚱이의 기량은 계속해서 저하됐고.

결국은 넘치는 재능과 경험으로 하루하루 버텨내는 게 최선이었다.

매일매일을 고통에 몸부림쳤음에도, 그렇게 견뎠다.


그저 이곳에서의 생활이 행복했으니까.

그래서 더욱 집착한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신체가 한계에 도달했음에도 뛰어다니는 이유처럼 말이다.


나는 월드클래스였으니까.

비록 찰나에 불과했지만, 한때나마 빛나는 별이었으니까.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한들 호랑이로 남고 싶은 게 당연하듯이.

오늘은 내 커리어를 장식할 마지막 경기였기에 뒷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무릎이 비명을 지르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아우성쳐도 움직였다.

그리고 결국, 끝이 찾아왔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다짐을 무색하게 만든 그날처럼.

너의 경기는 여기까지라는 듯.


조금은 냉정한 현실과 함께.

나의 경기가 막을 내렸다.


[아! 경기 끝이 납니다! 홀슈타인 킬이 결국 분데스리가 2 잔류에 실패합니다.]

[결과는 4대3! 치열한 공방 끝에 킬은 패배를 면치 못합니다.]

[3대2로 승기를 잡은 것과 다름없었는데! 마지막 8분 동안 2골을 내어준 터라, 홀슈타인과 우도로서는 더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무려 3골을 넣은 우도! 서른아홉의 노장이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만··· 우리는 이제 이토록 대단한 스트라이커를 볼 수가 없습니다.]

[네. 오늘부로 은퇴를 선언한 마지막 경기였는데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홈팬들이 자신들의 영웅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아··· 우도. 전광판에서 그에게 바치는 헌정 영상이 플레이되고 있습니다.]

[그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군요.]

[경기장을 가득 울리는 팬들의 위로에도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리그에서는 그 누구보다 위협적이었던 호랑이··· 우도. 그가 아이처럼 울고 있습니다.]

.

.

.

가끔은. 아주 가끔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부상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을 만큼 튼튼했다면.

그래서 이 팀과 팬들에게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었더라면.

아마 이렇게 후회가 남진 않았을 텐데, 라는 미련이 남는다.

나는 결국 받기만 하고 갚은 게 없었으니까.

후회한다.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진정 즐거운 축구란 무엇인지.

사랑받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몸도 마음도 다 늙어버린 주제에 이제야 가슴이 뛴다.

그래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다 끝난 마당에 이리도 작고 평범한 도시에, 약소한 클럽에게 빠져버렸으니까.

정말 지독하게도 얽혀버렸다.


아무래도 나는, 이곳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같다.


그 끝이 비록 실패라고 한들.


***


“모두 고생했다.”


경기가 끝난 뒤의 라커룸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모두가 내 눈치를 보고 있다.

이들 역시 알고 있겠지.

오늘 경기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무기력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을 향해 윽박지를 수가 없다.

모두가 이를 악물고 뛰었고, 우리의 실력이 모자라서 패배했을 뿐이다.

그래, 그게 전부다.


“다들 뭐해. 고개 들어.”


묵묵부답.

대답은 없었다.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맑은 얼굴로 질문을 하던 어린 선수였다.

녀석의 어깨가 잘게 떨렸지만, 애써 무시하면서 화가 난 얼굴을 만들었다.


“멍청한 녀석들. 이러고 있으면 누가 칭찬이라도 해줄 줄 알아?”

“하지만··· 우리 때문에 우도의 은퇴경기가···.”

“닥쳐. 약한 소리 하지마. 다음 시즌에는 꼭 올라올 거잖아? 안 그래?”


나는 이렇게 떠나지만, 너희는 아니니까.

몇몇은 다른 팀으로, 남은 이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각자의 위치가 달라질 뿐이지, 이 녀석들은 여전히 그라운드를 누빌 테니까.


“그러니까 등 뒤에서 응원하마. 다음 시즌엔··· 꼭 올라가자.”


비록 그곳에 내 자리는 없겠지만.


“흐하하···. 역시 주장이야.”


드디어 하나둘씩 고개를 든다.


“그러면 든든하죠!”


그래도 웃는 낯짝들을 보면서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역시 나는 행복한 인간이었다.


***


“크으. 취한다.”


친구의 술집은 오늘따라 고요했다.

아니, 당연한 일인가?

지금은 벌써 열두 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고, 남은 건 나와 내 친구 로이 밖에 없으니까.


“집에도 안 들어가고 뭘 그렇게 봐?”

“뉴스.”

“뉴스를 본다고?”

“응.”


어느새 정리를 마친 로이가 다가왔다.


“무슨 뉴스를··· 아, 은퇴 기사?”

“···어쩌다 보니까. 하나 정돈 있길래.”


···라는 건 거짓말이다.

사실은 술기운이 올라올 때부터 꾸준히 검색 중이었다.

벌써 세 병째를 들이켜서일까? 나도 모르게 변명이 나왔다.


“단기간 임팩트로는 시대를 대표한 선수라, 극찬인데?”


옆에서 잔을 채우는 로이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장단을 맞춰주려는 걸 테지만, 희미하게 웃으며 목구멍으로 술잔을 털었다.


쓰다.

기사의 내용처럼 빠르게 날아올랐다가 고꾸라져서일까. 그라운드를 떠나서일까.

아니면 나의 힘으로 강등을 막지 못해서일까.

수많은 생각을 하며 애꿎은 잔만 채웠다.


“그래, 나는 여전히 팀을 위해서 뛰고 싶은 거야···.”


아마도 이게 정답이다.

조금만 젊었더라면 진심으로 이 팀을 위해 뛰고 싶었으니까.

이왕이면 잔병치레나 부상도 없이.

그렇게 연거푸 술잔을 비우자 머리가 아파왔다. 아무래도 취한 것 같다.

젊어지는 것도 모자라 부상도 없애 달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 따위 이뤄질 리도 없잖아.

그래도 일단은 마셔야겠지.

그래, 일단···.

은···.

응?


어느새 날이 밝은···. 아니 그딴 건 둘째치고.


“우도야, 엄마가 미안해. 정말. 흐흑···. 우리 아들. 제발 깨어나 줘.”


이게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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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벌써?? +2 24.08.31 652 19 12쪽
17 극찬인걸 +1 24.08.31 660 18 12쪽
16 파장 24.08.30 682 15 12쪽
15 활약상 24.08.29 682 17 13쪽
14 홀슈타인의 신인 24.08.28 702 16 12쪽
13 나우도 24.08.27 708 15 12쪽
12 각인(2) +1 24.08.26 741 19 12쪽
11 각인 +1 24.08.25 746 18 13쪽
10 친선(3) +1 24.08.22 779 15 13쪽
9 친선(2) 24.08.21 803 13 12쪽
8 친선(1) 24.08.21 850 15 13쪽
7 영입 24.08.20 870 17 12쪽
6 소문, 소문 24.08.19 921 18 11쪽
5 전초전이 임박해오다 24.08.18 988 16 13쪽
4 역사를 쓰자 24.08.17 1,056 16 12쪽
3 킬! 24.08.17 1,134 17 13쪽
2 신의 농락, 회귀와 가호 24.08.16 1,202 17 15쪽
» 부상의 끝 +1 24.08.16 1,336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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