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월클이 튼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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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작품등록일 :
2024.08.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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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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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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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2)

DUMMY

나는 이후로도 20분을 더 뛰고서 교체됐다.

내가 빠진 그라운드는 딱히 볼 게 없었다.


삐! 삐익! 삐이익!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끝났다.

점수는 2대2.


결국 후반전을 시작하고 4분 만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베르더 브레멘은 무승부를 건지는 데 만족해야 했다.


우리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였다.

오히려 후반전엔 홀슈타인 킬이 좋은 기회를 많이 가져갔고, 저번과 마찬가지로 나를 제외한 선수들이 그 기회를 마무리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예상 밖의 결과야. 전술과 선수들 사이에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이 보이는군.”

“네, 맞습니다.”


그리 말하며 사라지는 베르더의 감독과 코치의 대화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그도 그럴 게, 나를 제외한 공격수와 선수들의 결정력 부족은 시즌이 시작되고선 우리 팀의 발목을 붙잡을 만한 문제였으니까.


아무리 내가 부상 걱정이 없고, 피로 회복이 뛰어나다지만 감독님이 나의 플레이 타임을 조정하는 건 필연적일 테니 말이다.


아무튼,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길에 카스파리 감독이 날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서서 웃고 있다.


“으하핫. 우도, 오늘도 멋지게 한 건 했군. 넌 훌륭한 크랙이야.”


라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물론 몸이 부서져라 상대를 막아낸 수비수들과 미드필더진을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응?’


그리고 그 사이.

나와 덩치가 비슷한 인영이 다가왔다.


“자네가 넣은 두 골 모두 인상 깊더군.”


베르더 브레멘의 감독 페드로였다.

천천히 다가온 그가 악수를 건네며 운을 뗐다.


“빠른 시일 내에 같은 무대에서 뛰는 걸 보고 싶을 정도였네.”


다른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는 성격의 직설적인 감독.

덕분에 나 역시 딱히 돌려서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고맙습니다. 베르더와의 경기는 제게도 훌륭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무대라면 2년만 기다리시면 되겠네요.”

“뭐? 하하하, 알겠네. 2년이라.”


그가 시원하게 웃었다.

이쯤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거다.


‘나는 이 팀을 안 떠난다.’

‘그러니까 같은 무대에서 뛰는 게 보고 싶으면 2년만 기다려라.’

‘왜냐하면 우린 3부리그니까, 1부까지 가려면 2년이 걸리거든.’

‘그리고 내게 보인 관심은 고마워!’


라는 뜻의 꽤나 오만방자한 소리였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상관없다는 듯 페드로 감독은 걸음을 옮겼고, 나도 라커로 향하는 찰나.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사람처럼 그가 중얼거렸다.


“아, 참!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군.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브레멘 시는 언제가 됐든 살기 좋은 도시거든.”


그 말을 끝으로 베르더의 페드로 감독은 가던 길을 마저 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음. 이거 설마 어필하는 건가?

그런데 이렇게 볼품없는 제안이라니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진짜 17살의 선수였다고 해도 저런 제안에 가슴이 콩닥거리고 설레진 않았을 텐데.

저렇게 일방적이라니.


아무래도 선수 보는 눈은 있지만 사람 보는 눈은 없는 것 같은 감독이다.

1부 리그를 뛰는 팀의 자존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권위적이잖아.


그도 그럴 게, 지금의 베르더 브레멘이 쌓은 위상은 짧게는 몇십 년부터 길게는 몇백 년까지의 역사가 만들어낸 거지, 자신이 만들어낸 위상이 아니었으니까.

너무 건방지다.

그래서 싫다.


“우도.”

“네, 감독님.”


그런 내 생각이 티가 나기라도 한 걸까.

어느새 다가온 카스파리 감독이 날 부른다.


“자넨, 저런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가?”

“그러기엔 제안이 너무 저급하죠.”

“으하하! 누가 들으면 월드클래스라도 되는 줄 알겠군.”

“···저 월드클래스 맞는데요?”

“응?”

“아···.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월드클래스가 될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내겐 옛날부터 분노가 조절되지 않는 장애가 있었다.

그것도 특정한 부분에만 꽂히면 작용한다.

그게 바로 ‘월드클래스’라는 말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이유도 뭔지 모른다.

그냥 과거에도 그랬다.

어떤 계기로 인해서 월드클래스라는 말과 단어에 집착했다는 거다.


그리고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날 더러 월드클래스가 아니라는 듯 말하는 뉘앙스는··· 참을 수 없다.


“하하하! 우도, 왜 발끈하고 그러나.”

“그건 감독님이 먼저···.”

“아니야. 나는 지금을 말한 거지, 네가 월드클래스급 선수가 될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아.”


오, 맙소사.

초탈한 듯 웃으며 말하는 감독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입꼬리가 두 귀에 걸렸다.

감독님의 진심을 알아서 따위가 아니다.

이건 월드클래스라는 말에 발작하는 분노조절장애의 부차적인 증세였다.


나는, 나를 월드클래스라고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인간적인 면모를 본다는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팀의 카스파리 감독은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우도, 내가 하려는 말은 간단해. 한가지 약속하지.”

“네? 갑자기요?”


하지만 카스파리 감독님은 의문에 대답해줄 생각은 없는지, 매우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말을 했다.


“페드로 감독의 말은 거짓말이야. 그 말을 들었다간 후회할 거다.”

“···그걸 들으셨습니까?”

“그래! 나는 언제나 우리 팀 선수들을 주시하지. 그 덕분에 브레멘의 멍청이가 접근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던 거고. 아무튼, 우도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게.”


그리곤 카스파리 감독의 일장연설이 이어졌다.


“우선 브레멘 시는 꽝이라고 말해두지. 그쪽이 살기엔 영···.”

“영···?”

“그래! 아주 나쁜 도시야. 브레멘 시에만 60만 명이 살고 있단 말일세! 그런 복잡한 도시를 우도, 너는 버틸 수 있나? 아주 최악이지. 개미소굴과 다를 바 없어. 그런데 그에 반해 우리가 머무는 이 도시 ‘킬’은 어떠한가? 브레멘의 반도 안 되는 시민들이 살며 유유자적하지 않는가. 매일 같이 시원하고 말이야.”


그치? 라면서 열변을 토해내던 카스파리 감독이 자리를 떠났다.

혼자남은 나는 실소를 흘렸다.


“브레멘이 꽝이라고?”


아무래도 감독이라는 인간들은 다 이런 건가 싶었다.

전생을 봐도, 이번을 봐도.

죄다 거짓말쟁이다.

어떻게 된 게 사실을 말하는 법이 없을까.


나는 알고 있다. 브레멘은 정말 좋은 도시다. 그렇다고 우리 도시가 후지다는 건 아니다.

팩트를 나열하는 거다.

킬은 솔직히··· 너무 춥잖아.

그 대신 나를 위해 환호하는 팬들의 열기가 보통이 아닌지라, 딱 살기 좋은 도시가 돼서 떠날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만.

아무튼, 그렇다.


브레멘은 살기 좋은 도시고, 내가 사는 이곳 킬은 그 백만 배는 더 좋다.

결론은 간단했다.


“감독님도 많이 조급하셨나 보네.”


미래의 월드클래스인 내게 반한 것도 이해는 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99%의 거짓말에 1%의 진실을 섞다니.

이 도시에 브레멘의 반도 안 되는 수의 시민이 사는 건 사실이니까.


나를 믿지 못한 건 좀 아쉬운데 어쩔 수 없다.


“내가 증명해야지.”


나는 이 구단과 도시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더욱 높은 곳에 올려다 놓겠다는 걸 말이다.


***


퇴근하는 길.

나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주장 야닉스의 차를 얻어타게 됐다.

야닉스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하고, 스포츠 백을 들고 주차장으로 향하니 저번과 마찬가지의 그림이 날 기다렸다.


“여어-! 우도. 어서오라고.”


당연히 마이어도 함께였다.

그리고 조수석에서 손을 흔드는 이 멍청이는 어시스트했다는 기쁨에 매우 신이 난 상태였다.

내가 뒷좌석에 타자마자 생색 냈다.


“후반전의 내 패스가 어땠어?”

“훌륭했지.”

“정말 훌륭했어?”

“어, 진짜라니까.”

“움하하! 들었죠? 주장? 우도는 제게 고마워하고 있다고요!”

“···뭐, 그런 것 같네. 내가 봐도 오늘 너의 움직임은 죽여줬어.”


야닉스가 마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룸미러를 통해 나와 시선을 교환했다.


‘우도, 네가 이해해. 이 녀석 정상이 아니야.’

‘···네. 제가 봐도 그래요.’


나 역시 무언의 긍정을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 난 자칭 패스마스터이자, 중원의 지배자께서는 조수석 창문을 열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홀슈타인 킬의 다 죽여버리는 킬 패스 마스터가 나가신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나가신다! 와아아아!”


도로와 인접한 길가에 진을 치고 있던 팬들이 퇴근하는 선수들을 향해 환호했다.

야닉스가 기사를 자청하는 우리 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환호했다.

그도 그럴 게, 이 차에 탄 면면만 해도 어떠한가.


“킬의 리더! 야닉스!”

“와아아아!”

“싸인 좀 해줘! 여기! 여기다가! 싸인 좀!”


지금은 비록 신입생들의 셔틀버스 기사가 된 그였지만, 홀슈타인 킬의 주장이며 온 몸을 불사지르는 수비수다.

오늘 경기에서도 훌륭하게 상대 공격수를 묶었다.


그리고 먼저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서 팬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멍청이 역시 마찬가지다.

월 마이어 또한 팬들의 우려와 달리 오늘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기대감을 드높였다.


패스성공률도 대단했으며, 쓸모없는 패스가 전무했다.

더욱이 내게 패스해서 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지 않았던가.

그를 향한 팬들의 반응이 이해가간다.


“마이어! 오늘 경기에서 아주 끝내줬어!”

“이번 시즌 그렇게만 해달라고!”

“당연하죠! 오늘 모두들 봤잖아요. 제 킬러 패스를! 하하핫!”


하지만 걱정은 걱정이다.

팬들과의 대화를 미루어보건데, 어깨뽕이 제대로 찬 상태다.


나는 피식거리면서도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팬들의 요청을 들어줬다.

그리고 나 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늘 경기에서 나온 골이 모두 나의 작품이었으니까.


“우도!! 악수! 악수를 해줘!”

“네 녀석은 환상적이야! 마이어와 함께 우리 팀 공격을 이끌어달라고!”

“이것 봐! 나는 벌써부터 네 유니폼도 장만했어!”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각각 원하는 위치에 싸인 해줬고, 비어버린 머리를 들이밀며 한 번만 만져달라고 애원하는 아저씨의 머리도 경건한 마음을 담아 만져드렸다.


부디 신의 가호가 있길···.


아무튼, 이내 큰 소리로 응원가를 부르는 팬들로 인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 셋도 기쁜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고래고래 소리쳤다.


“오오오! 우리의 킬!”

“오오오! 북부의 사나이!”


그런데 야닉스와 마이어, 두 사람과 달리 내 응원가 같은 경우는 특이했다.


“홀연히 나타난 킬의 작은 전사! 우도가 적진을 향해 쇄도한다!”

“작은 전사 우도는 장군이 되어 적장의 목을 베지!”

“이예에에에!!”


1절은 작은 전사로 시작해서 2절은 장군이었다.

그리고 무려 3절도 있었다!


“전장을 승리로 이꾼 개선 장군! 우도가 나가신다! 모두들 고개를 조아려라!”

“조아려라!!”

“우와아아아!”


그때는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 장군이었다.

이러다가 나중엔 왕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무려 40분 간의 응원가 릴레이를 펼친 뒤.

야닉스는 차량의 엑셀을 밟을 수 있었다.


“후우. 오늘은 집에 가서 바로 곯아떨어지겠어.”

“···움하하! 야닉스는 늙었으니깐요. 안 그래 우도? 우리는 멀쩡하잖아?”


라고 묻는 멍청이 마이어의 말에 대답할 힘이 없었다.

나는 저 둘과 달리 3절이나 되는 응원가를 몇 번이나 반복한 탓에 진이 다 빠졌으니까.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끝내 조용한 차 안에서 떠드는 이라곤 멍청한 마이어밖에 남지 않았고, 주장 역시 한마디 정도는 더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닥쳐, 마이어.”


그렇게 조용해진 차 안.

잠 못 드는 밤이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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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벌써?? +2 24.08.31 652 19 12쪽
17 극찬인걸 +1 24.08.31 661 18 12쪽
16 파장 24.08.30 682 15 12쪽
15 활약상 24.08.29 682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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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나우도 24.08.27 709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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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친선(1) 24.08.21 850 15 13쪽
7 영입 24.08.20 870 17 12쪽
6 소문, 소문 24.08.19 921 18 11쪽
5 전초전이 임박해오다 24.08.18 988 16 13쪽
4 역사를 쓰자 24.08.17 1,056 16 12쪽
3 킬! 24.08.17 1,134 17 13쪽
2 신의 농락, 회귀와 가호 24.08.16 1,202 17 15쪽
1 부상의 끝 +1 24.08.16 1,336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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