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월클이 튼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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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작품등록일 :
2024.08.16 13:42
최근연재일 :
2024.09.08 01:1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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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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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활약상

DUMMY

내 인생 두 번째 데뷔골이 완성됐다.

그것도 전생과 같은 도시, 같은 구단에서.


그래서일까. 이미 마흔을 경험했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기뻤다.

정말로 그때의 기분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그 순간처럼.

이 순간만큼은 정신도 육체도 17살의 나와 다를 바 없었다.


더욱이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애라는 말처럼.

나도 철이 든 적이 없었으니까.


다시한번 바란다.

이번 생에는 세계 최고가 되어보자고.


그리고 이내, 모든 잡념이 사라졌다.

골을 넣은 뒤에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에 쓸데없는 생각이 가려졌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경기에 집중하자, 그라운드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골을 넣은 뒤 할레셔의 플레이에선 조급함이 느껴졌다.

그럴수록 우리 팀 서포터즈들의 응원이 더욱 노골적으로 변모하며 거칠어졌다.


“할레셔! 할레셔! 우리 팀 홀슈타인 킬이 너흴 보내버리지!”

“죽여버리지!”

“머저리들은 우리의 상대가 되질 않지!”

“우우우우우우!!”


진짜로 누구 하나 죽여버릴 기세였다.

정말 누구의 머릿속에서 저런 구호가 튀어나오는 건지 감탄만 나올 뿐이다.

그리고 그때, 나를 마크하던 수비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카악 퉤. 너희 서포터즈는 한심하군. 고작 한 골에 좋아하는 원숭이 꼴이라니.”


녀석이 눈을 부라리며 날 노려봤다.

근데 원숭이는 날 보고 하는 말인가?


“왜 내가 틀린말했냐?”


이 자식 뻔뻔한 게 보통이 아니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도 증인도 없다. 아무래도 이건 내가 혼자 해결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 이빨 하기로는 나 역시 웬만한 선수들 저리가라였으니까.


물론 수아레즈 같이 사람 무는 핵이빨은 아니고.

주변에서 알짱거리면서 어떻게든 이빨을 털려는 녀석에게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뭐, 어쩌라고. 먹히질 말던가.”

“뭐?”


녀석은 입질이 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반대였다. 내가 녀석을 낚은 거다.


“이제 겨우 데뷔해서 걸음마나 뗀 코찔찔이 새끼가···.”


언제나 나이가 어리다는 건 이점이 확실하다.

나는 낚인 녀석을 향해 이빨을 털며 한껏 요리해줬다.


“야, 할레셔의 이름 없는 수비수. 계속 알짱거리면서 노려보면 어쩔 건데? 시비 걸고 싶으면 나 말고 저기, 널 욕하는 아저씨나 찾아가 보라고.”

“제기랄! 키도 쪼끄만 게 수비수라고 뭐! 뭘 봐? 커트 훅? 네 머저리 같은 이름처럼 내 레프트 라이트 훅 어퍼컷 다 처맞고 질질짜기 전에 우도한테서 떨어져! 너 이 개자식 실력도 개뿔도 없는 트레쉬 토커라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수비도 할 줄 모르면서 이빨만 깔 거면 그냥 멀리서 이빨이나 까면서 시간을 죽치라고 한심한 새끼야!”

“······.”


녀석은 아무 말도 없었다.

커트 훅이라고 했나? 하필 이름이 저럴 게 뭔가.

방금까지 실컷 욕지거리를 뱉어낸 스킨헤드의 아저씨는 그냥 인간 자체가 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그들 전부가 오직 이 녀석을 향해서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만큼 무서운 말을 하고 있었다.


“뭐야? 어디가?”


그리고 녀석의 수비가 조금 소극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눈빛이 흉악하게 변하는 걸 목격했다.


- 시발, 뭐라고? 고작 축구 관람하는 게 인생에 전부인 새끼들이. 퉤.


입 모양이 말하는 단어도 거침이 없다.

저건 누구 하나 담굴 작정일 때나 볼 수 있는 표정이다.

그리고 그게 나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우리 팀에겐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온 건 분명하다.

나는 이빨까는 것만큼이나 액션에도 특화돼있으니까.


조금만 더 날뛰어도 좋을 것 같다.

이미 나를 담궈버릴 작정을 했다면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이용해주는 게 정답일 테니.


***


‘이건 예상밖인데.’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있었다.

생각과는 달리 내게 오는 공이 다시금 전멸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 팀도 상대의 공격을 잘 막아낸다는 것.

확실히 오늘 카스파리 감독이 들고나온 4231전술이 이번 경기에서 잘 먹히는 것 같았다.

상대가 측면에서 크게 흔들고 있음에도 좁게 갖춰진 두 줄의 중앙미드필더와 수비라인은 쉽게 틈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조금씩 할레셔의 공격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합니다!]

[할레셔로서는 급할 겁니다. 카스파리 감독이 부임한 구단은 대체로 실점이 적었거든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홀슈타인 킬도 만만치 않아요. 확실히 19득점으로 강등당한 지난 시즌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공수 양쪽이 완벽하게 작용하고 있어요.]

[덧붙여 양 팀 모두 기회는 적지만, 홀슈타인 같은 경우에는 최전방에서 우도가 확실히 마무리를 지어줄 수 있거든요. 아까의 선취득점이 증거죠.]


이내 할레셔가 미드필더의 라인을 끌어올리며 적극적으로 공세에 들어왔다.

덕분에 나는 할레셔의 수비진과 미드필더진 사이에 생긴 공간에서 여유가 생겼다.

이제 이 기회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따라서 경기의 결과가 많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레프트 라이트였던가? 스킨헤드 아저씨에게 맞을 뻔한 수비수의 활약이 절실했다.


저것 봐라, 내가 공을 잡고 달리자 적극적으로 마주 달려오지 않는가.

녀석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눈가에 감도는 광기가 나를 미소짓게 한다.


[홀슈타인 킬! 좋은 기회를 잡습니다! 우도의 단독 드리블! 역습기회입니다! 상대는 두 명의 수비수를 제외하고 진영에 합류하지 못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속도입니다! 우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좋은 찬스!]

[커트 훅 슬라이딩 태클!]


그때, 황소처럼 미끄러져 오는 녀석을 확인하고 절묘하게 발목을 꺾으며 공중에 떴다.

아슬아슬하게 복숭아뼈를 스쳤지만 감쪽같은 액션이었다.

공중을 돌면서 떨어지는 액션 사이에도 밑에 있는 수비수 녀석의 갈비뼈를 가격하면서 떨어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퍼억!


“커억!”


[어어어! 이게 뭔가요! 할레셔의 커트 훅 공이 빠진 우도의 다리를 가격합니다! 저건 태클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죠?]


“으아아아아악!”


잔디밭에 머리를 파묻고 반 바퀴 굴렀다.

그리고 다시 잔디밭에 얼굴을 부비며 복숭아뼈와 아킬레스건을 감싸고 흐느꼈다.


“퇴장이야. 내 경기가 아니라도 이런 플레이는 용납 못 해.”

“헤이, 주심! 이건 말도 안 돼요! 저기 저 자식이 액션을 취하면서 커트의 옆구리를 찍었다고요!”

“안 돼, 돌아가. 더 이상 항의하면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어.”

“하지만 처사가 심해요!”

“뭐! 이 개자식아, 심해? 저기 누워있는 꼬맹이 녀석이 보이지도 않아?”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서 연기하는···.”

“쓰읍. 둘 다 그만해. 마지막 구두 경고야.”


이미 주심이 달려와서 녀석에게 카드를 내밀고 있는 상황.

우리 팀 선수들도 곧장 내 주위에 모였고, 야닉스를 필두로 몇몇이 상대에게 항의했다.


“이 덜떨어진 자식들! 이게 축구야? 어?”

“어디서 살인 기계를 그라운드에 풀어놔? 미쳤어? 저 꼬맹이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너네 집에 불을 지를 거야 개자식들아.”


내 주위를 지키는 녀석들은 하필 순수한 녀석들이었다.


“우도! 우도! 괜찮아?”

“이런 제기랄! 괜찮아? 우도!”

“대답 좀 해봐!”

“크흐흐흐윽.”


마이어와 올리버, 발렌틴의 물음에 웃음이 나왔다.


“이런 시발! 우도가 울고 있어!”

“흐느낀다고! 닥터! 더 빨리 뛰어요!”

“크흐흐흐흐흑.”


나는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승리를 위해 가짜연기를 하며 감정에 이상이 생긴 건가.

웃음이 나오는데 정말로 눈물이 떨어진다.

이거···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것만 같은 예감이었다.


그리고 나의 예감은 너무나도 환상적으로 들어맞았다.


근처에서 바닥을 구르던 어퍼컷인가 뭔가 하는 수비수가 몸을 일으켜, 심판에게 갈비가 다쳤다는 걸 어필하며 대들었다.


“눈뜬 장님이 아니면 이게 안 보이냐고! 저 새끼가 오히려 나를 가격했어!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진다고!”


그때부터였다.

대난투극의 시작이.


***


모두 내가 신들린듯한 연기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워있던 그 자리에서 무려 3명의 퇴장이 더 나왔다.


“너희 전부 퇴장이야. 나머지도 카드는 피할 수 없어.”


다행히 우리 팀의 퇴장은 세르 하트 한 명이었지만, 역사에 남을 초유의 사태인 건 확실했다.

그것도 개막전 경기에서 악의적인 태클로 희생당한 17세 선수를 위해 몸싸움까지 불사한 노장들의 분노와 집단 난투극은··· 저기 제 3국이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할레셔 이 뭣 같은 새끼들! 죽여버리겠어!”

“너희는 오늘 돌아갈 버스가 없을 줄 알아! 엿 같은 놈들아!”

“아까 그 새낀 어디갔어? 우도를 담굴려고 했던 미친 새끼말이야!”

“뒤져!! 뒤져라! 할레셔!”

“머저리 수비수를 데려와! 아까 그 자식에게 내가 헛짓거리를 하면 레프트 라이트 어퍼컷 훅을 연달아 꽂아준다고 했으니까!!”


팬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이미 닥터와 선수들에게 괜찮다는 말을 했지만, 서포터즈들의 분노는 도저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카스파리 감독의 지시에 따라 내가 교체됐기 때문이다.


“우우우우우!”

“쓰레기들아 돌아가라!”

“할레셔 강등! 몰수패! 우우우우!”


개막전을 맞아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야유와 욕설, 고함이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맙소사.

분데스리가에서 홍염이 터지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우도오!”

“우도를 돌려내! 할레셔!”


방금 마이어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2대0으로 더욱 앞서나가게 됐음에도, 내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팬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잠시 보고있자, 카스파리 감독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크흠···. 뭐 연기였다고 하니까 안심이 되긴 하지만 일단은 들어가자. 팀닥터들과 먼저 퇴근하도록 해.”


감독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벤치에서 대기하는 선수들도 걱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하아. 진짜 괜찮은데, 어떻게 안 되겠죠?”

“그래. 잘 아네, 절대 안 돼. 돌아가.”


이거··· 일이 한참 꼬였다.

그래도 아직까진 내가 아파하지 않는 걸 보면서 어느 정도는 연기였구나 하는 반응이다.

이미 교체도 당한 판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나는 그라운드를 등지고 돌아서 나가는 수밖에 없었고, 닥터들과 센터에 도착해 정밀검사부터 간단한 검사까지 다 하고 나서야 안심하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조금 조절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부상 당하지 않는다고 사실을 말해도 믿어줄 사람은 없을 것 같으니까.


***


경기는 홀슈타인 킬의 대승으로 끝났다.

스코어는 5대0.


나로부터 시작된 난투극의 여파로 할레셔는 총 3명의 선수가 퇴장당했으니까.

8명과 10명 간의 경기였다.

우리 팀이 이기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튼, 경기가 끝난 뒤 선수단 대부분이 안부를 묻는 문자와 연락을 했고, 몇몇은 아예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야, 꼬맹이.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진짜 홀딱 속아 넘어갔잖아.”

“와아, 진짜 나도 우도 네가 흐느끼는 건 줄 알고 아! 큰일 났다 싶었다니깐.”

“주장, 부주장. 마이어 말이 맞아요. 우도는 한번 버릇을 고쳐줄 필요가 있어요.”

“그래, 그럴려고 주장이랑 내가 온 거니까.”


야닉스와 마이어는 당연했고, 올리버와 발렌틴까지 함께였다.

그나저나 나는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변명대신 선택한 건 어색한 웃음이었다.


“그, 저기 여러분? 현관에서 이러고 있는 것도 실례네요. 다들 들어오세요. 하하. 식사라도 같이 하고들 가요.”


야닉스와 발렌틴이 짓궂은 표정을 짓는다.


“그거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들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면 네 녀석이 해주는 밥 정도는 먹어야지 수지가 맞아.”


이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 인간들 전부 다 핑계고 그냥 밥 먹으러 온 거라고.


“뭐해? 안 들어가고?”


그렇게 야닉스의 말에 나는 우리 집에 선수들을 초대하는 모양새가 됐고.

음식을 할 줄 모르는 나는 엄마가 올 때까지 멀뚱멀뚱 기다려야 했다.


“이 자식 음식도 못해?”

“워워, 야닉스 진정해요. 우도는 꼬맹이잖아요.”

“아 참. 그렇지 깜빡했지 뭐야. 17살이라는 것도 연기인 줄 알았어.”

“혹시 몰라, 우도의 몸에 마흔 먹은 노총각이 들었을지도 말이야.”

“푸흡, 발렌틴 그거 기발한데요? 그럼 우도는 사실 마흔 살 아저씨가 본체인 건가?”


그래, 마흔 살 본체를 가진 꼬맹이에게는 유난히도 시끌벅적한.

···아주 조금 즐거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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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뒤를 맡길 아군, 조력자 +1 24.09.03 549 18 12쪽
20 선봉장 +3 24.09.02 575 17 11쪽
19 나만 믿어 +1 24.09.01 615 16 12쪽
18 벌써?? +2 24.08.31 652 19 12쪽
17 극찬인걸 +1 24.08.31 660 18 12쪽
16 파장 24.08.30 682 15 12쪽
» 활약상 24.08.29 682 17 13쪽
14 홀슈타인의 신인 24.08.28 701 16 12쪽
13 나우도 24.08.27 708 15 12쪽
12 각인(2) +1 24.08.26 741 19 12쪽
11 각인 +1 24.08.25 746 18 13쪽
10 친선(3) +1 24.08.22 779 15 13쪽
9 친선(2) 24.08.21 803 13 12쪽
8 친선(1) 24.08.21 850 15 13쪽
7 영입 24.08.20 870 17 12쪽
6 소문, 소문 24.08.19 921 18 11쪽
5 전초전이 임박해오다 24.08.18 988 16 13쪽
4 역사를 쓰자 24.08.17 1,056 16 12쪽
3 킬! 24.08.17 1,134 17 13쪽
2 신의 농락, 회귀와 가호 24.08.16 1,201 17 15쪽
1 부상의 끝 +1 24.08.16 1,335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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