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월클이 튼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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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작품등록일 :
2024.08.16 13:42
최근연재일 :
2024.09.0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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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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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역사를 쓰자

DUMMY

놀랍게도.

모리츠는 나와 계약을 하러 온 구단 관계자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날 계약을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너무 늦은 건 물론이고, 엄마가 당황하셔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약을 위해 찾아왔던 수석코치 모리츠 피링에겐 여러모로 미안할 뿐이었다.

그의 아들인 야네스와 밤늦게까지 공을 차는 동안 하루 종일 집 앞에서 기다렸다고 했으니까.


분명 과거엔 이렇게까지 꼬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째서일까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내가 달라진 만큼 이 세상도 변화하고 있다고만 생각할 뿐이다.

뭐, 결과적으론 덕분에 어머니와 또 한 번의 추억을 쌓을 수 있게 됐지만.


“아들, 기분이 어때?”


전날 못다 한 계약을 위해 구단으로 향하는 길.

어머니가 물었다.

아침 공기의 상쾌함은 둘째치고 기분이라···. 말할 것도 없다.


“너무 기대되고 설레요.”


그럴 수밖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던 곳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이 얼굴에 투영되기라도 한 걸까.


“그래, 정말 행복해 보이네 아들.”


어머니가 나를 보며 웃으셨다.


“어제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몰랐는데. 축구가 좋은 가보구나?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여태껏 신경도 한번 못써줬네. 근데 아들은 혼자서 이렇게 하고 싶은 일도 찾고, 결실도 맺고.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커버렸을까?”


어머니는 분명 기뻐하셨음에도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아주 미세하게 굳어있는 표정.

피를 나눈 아들이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차이.

엄마는 이 순간 회한 섞인 자책을 하고 계셨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

오히려 미안해야할 건 나였다.

돌아오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시간은 영영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잠시 엄마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오른손을 잡았다.


“나, 엄마 아들이잖아.”


그러니까 아무 걱정 하지마라.

미안해하지도 마라.

목젖까지 차오른 말은 하지 않아도 됐다.

엄마는 방금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고마워 아들.”

“나도 고마워. 엄마.”


그렇게 우리 모자는 달리는 택시의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서로의 손을 꽉 잡은 채.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다.

소박한 주택가와 저층 건물을 지나자 푸른 녹지와 잘 어울리는 경기장이 보였다.


조금은 소박한, 만 오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홀슈타인 슈타디온.

이곳에 다시금 돌아왔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독일의 작은 구단이자.

이전 시즌 강등된 후 분데스리가 3에서 경쟁해야 할 클럽.

Die Störche (황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홀슈타인 킬(KIE).


과거 나의 시작을 알린 곳이자, 다시금 나의 비상을 알릴 곳이다.


***


홀슈타인 슈타디온 옆에 위치한 작은 훈련 시설로 향했다.

과거의 나는 이곳에 위치한 작은 회의실에서 프로 계약을 맺었다.

장소가 이곳이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계약을 맺은 내게 바로 1군 선수들과 훈련을 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이때의 나는 테스트에서 이미 꽤 훌륭한 실력을 입증했으니까.


“아들? 그렇게 좋으니?”


어머니의 물음에 난 활짝 웃었다.

그래,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요, 최고예요.”


죽어버릴 만큼.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데, 이대로 있다간 정말 죽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안 되지.’


기껏 내가 사랑하는 축구를 다시 할 기회가 찾아왔는데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는 없잖아.


갑자기 찾아온 부상 이후로 더는 내 것 같지 않았던 다리도, 잔 부상을 달고 살던 늙은 신체도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평생을 축구를 위해 쏟아부었던 시간.

온전히 축구만을 사랑한 20년이라는 세월의 경험이 지금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어떤 캐릭터의 오른손에 잠들어있는 흑염룡처럼.

어서 빨리 세상에 꺼내 달라고.


“엄마, 제가 이 팀과 도시의 중심이 될 거예요. 그래서 세상을 놀래킬 거예요.”


별안간 아주 해맑은 웃음 때문이었을까.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하지만 역시나 전적인 믿음을 보내주셨다.


“그래, 엄마는 당연히 우리 아들 편이야. 아들이라면 할 수 있어. 대신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엄만 아들이 아프면 똑같이 아프거든.”


포근한 웃음이었다.

내가 프로팀의 관심을 받을 만큼 재능이 있다는 것도, 늦게나마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셨으니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딱히 대단한 기대를 하시진 않으신다는 걸.

아마도 아직 어리니까 좋은 기회를 경험 삼아 성장하길 바라시는 걸 테다.


비록 엄마가 축구에 문외한이라고는 하나, 셀 수도 없이 많은 선수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것 아실 테니까.

그리고 그런 게 비단 운동선수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이번엔 절대 다치지 않을게요.”

“···이번엔?”


아차.


“그게 그러니까···. 혼자 훈련하면서 조금씩 다쳤던 걸 말하는 거예요. 히히.”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애교를 부리며 나연옥 여사님의 손을 잡았다.

조금은 징그러운. 살인 애교가 먹혀들었는지 어머니의 꿀밤이 내 머리에 작렬했다.


“이 녀석이, 그런 건 왜 말 안 했어?”


우리 엄마의 손맛은 기억보다 끝내줬다.

이내 안 보이는 곳에서 몰래 머리를 쓰다듬고선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이 정도 희생이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전생의 실패를 바로잡는 것과 별개로 가정의 화목함이 최우선이잖은가.

다시 돌아온 이상 어느 것 하나도 전과 같이 실패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출입을 관리하던 아카데미 경비원이 잠겨있는 문을 열었다.

격한 환영인사는 덤이었다.


“새로운 돌풍을 일으킬 사내가 바로 자넨가 보군!”


과거에는 그저 지나가는 인연에 불과했을 아저씨가 열렬한 인사를 보낸다.

물론 내겐 익숙했다.


대부분의 구단이 시민들의 힘으로 굴러가는 이곳 독일에서는 의외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반응이었다.

더욱이 이곳은 추위 탓에 야외스포츠인 축구보단 실내 스포츠가 발달한 북부였으니까.


눈앞에 서 있는 아저씨처럼 1부리그를 밟아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 하위리그에 머물러있는 팀에 애정을 갖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 했다.


“오늘 계약하러 온다던 친구 맞지?”

“네. 아저씨.”

“으하하! 역시 그렇구만, 앞으로 잘 부탁하지. 친구!”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실감이 났다.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곳.

그 시작점에 서 있다는 것이.


“하하하! 그래서 자넨 이름이?”

“저요? 제 이름은 우도예요. 나우도. 아, 딱히 기억하지 않으셔도 돼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아저씨.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말 그대로예요. 어차피 머지않아서 이곳 슈타디온에 제 이름이 매일 같이 울려 퍼질 테니까요.”

“으하하하! 뭐라고? 이런 젠장할 건방진 녀석을 봤나!”


덩치 좋은 그가 나와 눈을 맞췄다.

그리곤 호탕하게 말했다.


“네 녀석 생긴 걸 내가 똑똑히 봐두었다.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거야!”

“그럼요. 당연하죠.”


남아일언중천금 아니던가.

지키지 못할 약속 따윈 하지 않는다.

어머니께 행복을 약속했던 것처럼.


“아, 그런데 방금 한 말을 취소예요. 정정할게요. 이 경기장이 아니라, 홀슈타인 전체에 울려 퍼지도록 할 거니까.”


맹랑한 호언장담에 오히려 당황한 건 어머니였다.

지금까지 옆에서 조용히 웃으시던 분이 기겁을 하신다.


“우도야, 너 갑자기 왜 이러는 거니? 요즘 들어 안 하던 짓을···.”

“으하하! 좋아! 어디 한번 너를 믿어보마. 우도라고 했지, 꼬맹아? 네가 그 말을 지킨다면 나는 너의 첫 번째 팬이 되마. 우리에게 행복한 나날을 선사해주렴!”

“네, 좋아요.”


거칠고 투박한 경비원의 손이 나타났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서로가 약속한 거다. 젊은 친구.”

“그런 거죠. 나의 첫 번째 서포터즈.”


우린 약속의 증표로 남자다운 악수를 나눴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약속시간엔 늦지 않았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단장이 직접 맞이했다.

그의 이름은 장 케슬러.

이번에 바뀐 회장의 인선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옆엔 나를 찾아왔던 수석코치 모리츠 피링도 함께였다.


두 사람이 테이블 위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엄마와 함께 종이를 확인했다.

어머닌 세부조항들에 대해서 단장과 수석코치, 두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확인받았고.

종이를 빠르게 훑어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좋은, 솔직히 말하면 아주 애매한 조건이었다.

계약금이나 주급, 출장 수당 같은 항목들이 커리어가 전무한 내게 제시할 수 있는 상한선에 절묘하게 걸쳐져 있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실전에서의 활용가치가 증명되지 않아서 호구맞기는 싫다’라는 냄새가 풀풀 나는 정도라는 뜻이다.

뭐, 이해는 한다 구단의 입장에선 이게 당연한 거지.


오히려 지금의 내가 커리어는 물론 보여준 게 전무한데, 이 정도 계약서를 내밀었다는 게 대단하다.

내게 거는 기대와 평가가 어느 정도로 큰지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엄마를 봤다.

어머니 역시 진작 확인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고민할 것도 없다.

종이 위에 20년 경력의 멋 드러진 사인을 선보였다.


“축하합니다. 우도. 이로써 한배를 탄 선원이 되셨군요.”


단장 케슬러의 목소리는 앨리트다운 품격이 있었다.

나 역시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말 그대로다.

계약서의 내용은 과거와 다를 게 없었다.

나의 가능성을 보고했던 계약.

그게 중요하다.


재능이 충분했기에 프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고, 곧바로 축구를 할 수 있었으니까.

빠르게 필드를 누빌 기회가 주어졌던 거다.

그러니, 다시 한번 이곳에서 사랑에 빠진다는 게 중요했다.

이 구단과 도시에게.

나를 사랑해줄 팬들에게.


과거와는 다른 역사적인 사건들로 보답하겠다.

자신이 있었다.

일단은 2부리그로. 그리고 1부리그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나의 가치를 드높일 것이다.

그리고 인정받을 것이다.


역시 지금의 계약에 서운한 감이 없진 않았으니까.


***


계약을 마치고 엄마와 주변을 거닐었다.

나를 위해 오늘도 생업을 포기하셨으니, 이 정도는 함께 해드려야지 않겠나.


계약금도 있겠다. 근처 식당에 가서 오랜만의 외식도 하고 작은 샵에서 소소한 악세서리도 사드리면서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참 별것도 아닌데 소녀처럼 기뻐하셨다.

원랜 반지나 목걸이 같은 귀금속을 해드리고 싶었지만, 한사코 거부하시는 탓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긴, 어차피 엄마를 드릴 돈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하던 엄마의 결정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

어머니를 먼저 돌려보내기로 했다.


“엄마. 먼저 들어가세요.”

“왜 아들, 같이 안 가고?”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조금 걷고 싶어서요. 경기장도 한 번 더 둘러볼 겸.”


오늘 하루 정도는 과거를 조금 더 자세하게 회상하고 싶었으니까.


“으음. 그러면 알겠어, 엄마 먼저 들어갈게?”

“네, 엄마. 저도 금방 들어갈게요.”


그렇게 어머니가 택시에 타는 걸 확인한 뒤 구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참을 거닐었다.

경기장의 외관을 돌며 과거를 회상했고, 전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오랜만이다. 홀슈타인.”


다시 한번.

역사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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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극찬인걸 +1 24.08.31 660 18 12쪽
16 파장 24.08.30 681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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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홀슈타인의 신인 24.08.28 701 16 12쪽
13 나우도 24.08.27 708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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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친선(2) 24.08.21 803 13 12쪽
8 친선(1) 24.08.21 850 15 13쪽
7 영입 24.08.20 870 17 12쪽
6 소문, 소문 24.08.19 921 18 11쪽
5 전초전이 임박해오다 24.08.18 988 16 13쪽
» 역사를 쓰자 24.08.17 1,056 16 12쪽
3 킬! 24.08.17 1,134 17 13쪽
2 신의 농락, 회귀와 가호 24.08.16 1,201 17 15쪽
1 부상의 끝 +1 24.08.16 1,334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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