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계의 초월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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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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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DUMMY

가시처럼 날카롭게 삐죽 솟은 너클이 누리의 안면을 향해 날아왔다.

평소의 누리라면, 원래라면 눈만 끔뻑이다 살해당했을 것이다.

예전부터 싸움엔 겁을 많이 냈으니까.


누군가를 때리는 것도, 자기가 맞는 것도 무서워하면서 싫어했으니까.

카이우스는 친하기도 했고, 어차피 때려도 다 피하는 놈이었으니, 아무렇지 않게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상대와 싸우긴 힘들었다.


인권이 발달 된 세계의 출신인 누리로서는 아무렇지 않게 싸우고 죽이는 걸 해내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보는 것도 힘든데, 직접 실행하기란.


그렇지만 지금처럼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누리의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카이우스 때보다도 더.


누리는 왼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며 몸을 숙였고 너클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상대는 라이트 펀치에 뒤이어 왼쪽 훅을 날렸고, 누리는 앞에 있는 왼발을 강하게 차며 뒤로 빠졌다.


‘시발. 진짜 싸워야 하는 거야. 근데 나 왜 잘 피하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말이 안 되는 움직임이었다.

누리가 잠깐, 자기 자신에 대한 감탄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상대는 뒤이어 들어오며 어깨로 들이받았다.

우둘투둘한 그 방어구, 날카롭게 솟은, 아주 예리한 압정 같은 것들이 가득 있었다.


누리는 한 번 더 뒤로 빠지려 했지만, 싸우는 장소는 쇠창살 안이었다.

등은 곧장 차가운 철창과 맞닿았고, 어깨를 앞세운 상대는 그대로 누리를 들이받았다.


“어 – 억.”


누리의 짧은 비명과 함께 어깨에 달린 무수히 많은 압정 같은 것들이 가슴과 배에 박혔다.

핏물은 분수가 터지듯, 가득 쏟아져 나왔고, 상대는 몸을 일으키며 어퍼컷을 날렸다.


‘시발! 여기서 안 죽는다!’


누리의 눈은 붉게 물들었다.

한때 겁 많고 순수했던 아이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퍽 -


둔탁한 소음과 함께 시끄럽던 작은 투기장은 침묵에 빠졌다.

욕설과 고성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순간이었다.


너클 낀 주먹은 그대로 허공으로 올려져 있었고 누리는 얼굴을 살짝 틀어 그걸 피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너클 낀 놈의 머리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에...”

“블랙독이 이렇게 죽는다고?”

“맨주먹으로 무슨...”


관중들 사이에 술렁임은 커졌다.

딘 역시 당황한 모양새였다.

누리는 머리통 자체가 터져버린 상대를 밀어내며 피가 묻은 오른 주먹을 왼손으로 털어냈다.


딘은 여기 주인으로 보이는 자와 말다툼하는 것 같았고 관중들 사이엔 소동이 일었다.


“시발! 신입이라며!”

“개새끼가! 내 돈 내놔!”

“승부 조작이다! 이 새끼들이 역배당으로 다 쳐먹을라고 데려온 놈이 틀림없어!”


누리는 첫 살인의 충격과 피 냄새로 인해 어지러움을 느꼈다.

쏠리는 구토감으로 머리가 흔들리는 데다, 흥분한 관중이 쇠창살을 두들기며 누리를 공격하려 들었기에 더더욱 정신이 없었다.


소동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딘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무장한 남자 몇과 함께, 관중에게 칼을 들이밀고서 누리를 끌고 갔다.

물론 가면서 관중들에게서 돌이나, 단검 혹은 맨주먹과 발로 추정되는 것들에게 맞으면서 말이다.


좁은 그곳을 떠나, 2층의 자그마한 방으로 돌아오는 길은 매우 짧았음에도 굉장히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돈을 잃은 관중들이 누리와 투기장 주인으로 보이는 자를 죽일 듯이 달려드는 바람에.


누리는 작은 방에 머리를 기대고 누웠고, 딘은 쇠사슬을 채웠다.

그리고 몇 마디를 던지며 자리를 떴다.


“이거 다 틀어졌어. 내가 잃은 건 네 놈이 보상해 줘야겠다.”

“생각보다 너무 강한데. 겁쟁이 샌님으로 알았는데, 계획 변경이다.”


딘이 사라지고 누리는 기절하듯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밝은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내가...죽였어. 사람을.’


간밤의 생생한 촉감은 잊혀 지지가 않았다.

주먹과 머리통이 닿을 때 그 느낌.

뼈가 부서지며 상대의 피가 자신에게 다 튈 때, 그때의 그 기분.


참혹한 심정을 안고, 누리는 식사를 마쳤다.

가방 안에 가득한 그 고무 고기를.

착잡한 기분에 걸맞게 식사도 좀 그랬다.


음식도 그렇지만 식수도 양동이 하나 주고선 잘 가져다주지 않아 아껴먹어야 했으니까.

누리는 조금 먹고서 양을 가늠했다.

빗물이라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나눠 먹어야 했으니.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을 때, 누리의 등 뒤 나무 문이 낡은 소음과 함께 열렸다.

딘이 돌아온 것이다.


“허. 빨리도 낫는군. 치료한 적도 없는데, 상처만 조금 있고, 너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맨손으로 사람 머리통을 부술 수 있는 인간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딘은 마치 괴물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말을 들은 누리도 그때 서야, 자기 몸을 살폈다.

날카롭던 것에 찔린 상처들은 대부분 아물어 있었다.

간밤에 흘린 피가 바닥에 좀 고여있지 않았더라면 어제 다쳤단 사실도 몰랐을 정도로.


‘내가 뭐 어떻게 된 걸까. 지금 기억이 맞긴 한 건가. 난 분명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지구에서의 기억으로 누리는 힘이 세지도, 싸움을 잘하지도 않았다.

운동 좀 한다고, 아마 복싱 국가대표도 못 할 텐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진 알 수 없었다.


“후. 어쨌거나 너 때문에 잃은 건 네가 다시 벌어줘야겠다. 놈이랑 이야기는 다 됐어. 넌 이제부터 오함마다.”


딘은 이곳에 출전하는 선수들, 그러니까 한 3전 이상 뛰어서 살아남는 놈들은 별칭으로 부른다고 했다.

본명이 아니라 동물이나 몬스터, 혹은 무기 이름을 따서.


누리는 단 1전으로 지하 격투장 정식 선수가 되었다.

워낙 강렬하기도 했고, 대충 들어보니 상대가 여기서 꽤 강한 축에 속했던 모양이었다.


“블랙독이라고 한번 물면 놓치질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별칭이 붙었지. 너한테 죽기 전까진, 지옥의 투견이라고 불리기도 했어.”


본래 딘의 목적, 그건 누리를 상대 선수의 인기를 올릴, 그러니까 그냥 죽어줘서 띄워줄 목적으로 팔았던 모양인데 그림이 어그러진 것 같았다.


“이제 넌 정식으로 내 선수다. 넌 내 보호를 받고 내게서 훈련받은 거야.”


딘은 그렇게 말하고 오늘 밤 싸울 준비를 잘하라며 떠나갔다.


“시발 새끼가. 뭘 좀 멕이고 싸움을 시키던지, 사람을 개처럼 묶어놓고 뭐 하는 짓이야.”


누리는 분노를 삼키지 않았다.

자기를 죽이려 한 것도 모자라서, 이젠 진짜 투견으로 쓸 모양새였으니까.

물론 이 말은 그가 가고 난 뒤에 한 것들이다.


준비를 잘해두라고 했지만, 사실 할 게 없었다.

쇠사슬에 묶인 채로, 이 작은 방 안에서 뭘 한단 말인가.

먹는 것도 부실하고, 아니, 물이라도 좀 깨끗한 거 주면 어디가 덧나나.

양동이에 처음 한 번 물 퍼다 주고선, 그다음엔 뭘 가져다주는 법이 없다.


가방의 고무 고기도 양이 점점 줄어간다.

맛도 좀 간 것 같고.

아무리 건조하고 그래서, 좀 오래 놔둬도 된다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누리는 인상을 구기고 다시 고기를 질겅였다.

얇은 나무 바닥 사이로 또 향긋한 냄새가 올라왔는데, 딘이 먹는 음식인 모양이었다.

밑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딘이었으니까.


“걱정마. 머리통 날리는 것 봤잖아. 적당히 인기 만들어 준 다음에, 역배당으로 한방에 먹자고.”


누리는 저놈이 이곳까지 들리는 걸 알면서 저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밑에서 딘과 이야기 나누는 놈은 아마도 투기장 주인이겠지.


‘시발. 개새끼. 끝내 날 죽이려고 하는구나. 네 놈 머리통은 반드시 박살 내고 만다.’


누리는 분을 삭이며 계속 바닥에 귀를 기울였다.

앉아있으면 그냥 작은 소음처럼 들리기에 귀를 바짝 붙여야 이야기를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귀퉁이의 붉은 지붕 그 집이야. 거기 2층에 상자에 있다고 하더군.”

“나누는 건, 어떻게 할 거지?”

“금화로 바꿔서 정확히 넷이 나누는 걸로 하지.”


이번엔 도둑질하려는 모양이었다.

아까 투기장 주인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남자들의 말이 들려왔으니까.


‘진짜 개쓰레기 새끼네.’


누리는 할 일도 없겠다, 정보가 더 없을까 귀를 기울였지만, 딘은 떠나간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헛수고는 아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의, 또 다른 이야기가 들려왔으니까.


“아무래도 브로디랑 딘이 붙을 것 같은데, 넌 어떻게 할 거야?”


정확하겐 알 수 없었지만, 딘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러니까 노예가 되어 끌려간 사이 이 도시를 장악한 암흑가 보스가 브로디란 놈인 것 같았다.


‘딘이 생각보다 거물이었네. 세 개 도시를 오가며 이 짓을 했다는 거잖아.’

‘일단 부활을 꿈꾸며 여기 새로운 보스 놈이랑 한 판 붙을 계획인가 보네.’


누리는 새로운 정보를 정리했다.

여기 골목대장은 브로디란 놈이고 딘은 지금 가진 돈을 죄다 풀어 부하들을 끌어모으고.


‘그러면 둘이 싸움 났을 때 도망갈 수 있겠는데. 둘 다 뒤지는 게 나한테 베스트이긴 한데.’


대충 들어보니 브로디란 놈이 갑자기 돌아와서 세력을 확장하는 딘을 칠 가능성이 있는 것 같고, 그걸 예상한 딘은 상대편 쪽 사람을 빼내는 걸 비롯해 부하들을 모집하고 있는 거고.


‘그러니 돈이 급하고, 닥치는 대로 일단 모으는 거네.’


상황을 얼추 정리한 누리는 벽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어차피 당장 밤에 싸워야 하니.


‘딘. 넌 내 손으로 죽인다.’


누리는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비록 지금 당장은 단검을 쑤시던 그놈이 자꾸 생각나 무서워서 못 하겠지만, 언젠가는.

당분간 또 누리를 약한 상대와 붙여서 인기를 올릴 생각이라고 하니, 당장 죽을 일도 없을 터였다.


딘이 역배당을 걸려 하는 순간, 그때를 잘 포착해야 했다.

이상한 걸 먹이건, 상대가 무기를 들고 오건, 대처하기 어려운 형태로 나올 게 분명했으니까.


‘그전에 탈출하자. 똘마니들 경비 어떻게 서는지 잘 봐두고, 딘 신뢰 얻어서 쇠사슬만 풀게 만들자.’


누리는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짓고 밤을 기다렸다.

해가 지고 칠흑의 밤이 찾아오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불법인지, 합법인지 모르겠지만 피와 죽음의 향연이 펼쳐지는 싸움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오늘 있을 대전 중 하나에 출전하는 오함마, 누리도 쇠사슬에서 풀려났다.

누리는 쇠창살에 입장하며 처음과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관중들이 처음과 달리, 상대 선수만 환호하거나 누리를 비웃지도 않았으니까.


“후. 다음 경기를 속행하겠소. 새로운 신인 괴물, 오함마!”


사회자 같은 놈이 바깥에서 소리치자, 관중들의 환호가 조금 들렸다.

누리에게 돈을 건 놈들이었다.


“오함마! 대가리를 박살 내라!”

“시발 놈아, 너 때문에 잃은 거 다시 돌려놔라!”


관중들의 환호와 야유가 잦아들기도 전에 상대 선수가 입장했고, 싸움은 신호도 없이 시작되었다.

누리를 소개 해줄 때와 달리, 저놈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지구에선 보통 챔피언이 뒤에 입장하는데, 여긴 반대인가. 아님, 이곳만 그런가.’


누리는 깡마른 체구에 장비 하나 없이 맨몸으로 나온 상대를 보며 생각했다.

진짜로 약한 상대를 붙여준 건지, 갈비뼈가 훤하게 보일 정도로 아무런 근육이 없는 사내였다.

마치 첫날의 누리처럼, 그는 낭심 가리개 하나만 입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싸워? 난 죽이고 싶지 않은데.”


낮의 결심과 달리 비실거리는 상대를 보자 마음이 약해진 누리에게서 절로 나온 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대는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싸움을 배우지 못한 건지, 일명 붕붕주먹.

그냥 팔 힘만 가득 실어 누리에게 계속 날렸다.

누리가 카이우스에게 하곤 했던 그 주먹.


지금 둘은 싸우기 싫어도 멈출 수 없었다.

이곳 바닥의 미끈한 핏물은 바로 앞 경기 선수들 피였으니까.

힘이 대등했던 둘은 한참이나 레슬링을 벌인 끝에 지쳐버렸고, 그렇게 경기가 길어지니 철창이 열리고 칼을 든 다섯 명이 들어와선 자비 없이 둘 다 쑤셔버렸다.


죽고 싶지 않은 누리에게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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