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계의 초월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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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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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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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DUMMY

처음부터 그랬지만, 이곳에 올라오면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고를 수 있는 건 내가 죽거나 상대가 죽거나 둘 중 하나다.


‘넌 네 주인이 아끼는 놈이겠지. 난 아니지만.’


누리는 피하는 대신 왼팔을 들어 올렸다.

눈은 상대를 향한 채로.


텅 -


무거운 뼈와 철로 만들어진 금속의 충돌음이 들려왔다.

누리의 왼팔은 네 갈래로 그어져, 핏물이 죽죽 흐르고 있었고 아이언 클로의 오른팔은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시발. 곱게 뒤져라, 좀.”


누리는 무게 중심을 왼쪽으로 옮기며 외쳤다.

분명 칼이 박혀서 아파야 할 텐데, 아드레날린이 잔뜩 분비된 건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노만 가득할 뿐.


칼이 박힌 팔과 함께 몸을 왼쪽으로 깊게 숙였고, 아이언 클로는 그 탓에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끝이다!”


오함마의 오른 주먹이 반반한 아이언 클로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지금까지 많은 머리통을 부수어 버린 그 주먹이.


부 – 웅.


파공음이 크게 일며 관중들의 환호가 터졌다.

회의를 마치고 손을 잡으려던 딘은 몸을 돌려 다시 경기를 보기 시작했고.


“후우. 빠른데. 그 큰 몸으로 어떻게 그리 빠르지?”


아이언 클로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뒤로 뛰었다.

아주 간발의 차였다.

그의 코는 바람 갈랐던, 그러니까 주먹이 내지를 때, 터진 풍압에 충격을 받았는지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젠 반대로 되었다.

누리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사냥꾼이란 걸.


아이언 클로는 겁을 집어먹었다.

분명했다.

아까와 달리 공격엔 망설임이 있었으니까.

2번 휘두르던걸, 1번.

여기저기 움직이며 정신없이 공격하던 게 아주 정직하게, 눈에 보이는 공격으로 변했으니까.


‘그래도 달라진 건 없어. 여전히 내가 흘린 피가 더 많고. 또 끌었다간 금방 날 팔아넘길 거야.’


딘의 성향을 잘 아는 누리는 몸을 숙이고 돌진했다.


쿵 – 쿵 -


누리가 바닥을 차고 나갈 때마다 대지가 진동하는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그는 베이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과 발을 마구잡이로 내질렀다.


“미친놈이! 이게 두렵지 않나!”


아이언 클로는 당황해서 내빼기 바빴다.

이 또라이는 칼날이 살을 그대로 베거나 찔러 들어갔는데도 계속 돌진해 왔으니까.

처음 상대해 보는 부류였다.


칼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었으니.

누구나 날카로운 것엔 겁을 먹기 마련인데.

안 그런 놈은 황천길로 떠났고.


“니 새끼 상황은 모르겠지만, 난 못 이기면 뒤지는 것밖에 없거든.”


누리는 외치는 것과 동시에 몸을 숙였다.

그리고 팔을 벌린 채, 바닥을 강하게 찼다.

언젠가 카이우스가 자기에게 태클할 때 썼던 기술이었다.


“그따위 걸 누가 맞을 것 같나.”


아이언 클로는 가볍게 위로 뛰었다.

아까부터 그랬지만 놈은 민첩했다.

가끔 누리의 키를 훌쩍 넘어 돌 정도로.


“오류겐이다. 시발놈아!”


누리는 태클을 이어가는 대신에 자신 역시 공중으로 뛰었다.

왼 주먹을 높게 뻗으며.


퍽 -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아이언 클로가 누리의 뒤에서 굴렀다.

그의 왼쪽 다리는 문어처럼 덜렁거렸다.


“허. 공중에서도 피한다고?”


누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자신의 뒤로 돌걸 예상하고 내질렀는데 높이 뜬 채로도 움직이는 게 가능하다니.

진짜 재주 좋은 놈이었다.


“이 시발. 괴물 같은 놈.”


아이언 클로는 창살을 잡으며 일어섰다.

왼쪽 발과 다리가 아예 박살 난 탓에 오른쪽으로만 지탱해서 서기도 어려워 보였지만.


“여기 올라오는 놈들, 진짜 투지는 끝내준다.”


자그마한 여인부터 노인까지.

이곳에 올라온 놈들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겁먹고 도망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 끝을 낼 때였다.

그게 본인에게도 상대에게도 최선이었다.


누리는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온몸이 피로 물든 그는 광전사처럼 보였고 관중들은 환호했다.

오함마에게 건 관중들은.


“끝난 줄 알았나?”


그때였다.

아이언 클로는 오른발로 쇠창살을 강하게 차며 몸을 앞으로 쭉 폈다.

뻗어진 팔의 칼날이 누리를 향해 날아왔고 그것은 그대로 그의 몸에 박혔다.


“시...발...”


누리는 배에 깊숙하게 박힌 8개의 칼날을 보며 말했다.

이제 핏물은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나의 승리...”


아이언 클로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오함마가 위에서 떨어졌고 클로가 박힌 탓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그의 머리는 박살이 나버렸으니까.


“와아아아아!”

“오함마! 오함마!”


투기장은 거대한 환호로 가득 찼다.

반은 침묵을 지켰고.

누리는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출혈이 너무 많았던 탓에 서 있을 기력이 없었다.

그는 힘을 주어 좌우에 박힌 클로를 하나씩 빼냈다.


그걸 뺄 때마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졌다.


‘이렇게 죽는 건가. 좆같다. 시발.’


누리는 이곳에 떨어진 것을 저주하며 그대로 기절했다.


“크으. 죽이는군. 저놈 그냥 내 밑에 둘까. 싸움 잘하는 놈이 필요한데.”


딘은 기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곤 헌 옷으로 누리의 배만 감싼 채 방 안에 던져두었다.


“뒤지거나 뒤질 것 같으면 죽여서 내다 버려. 살아남아 싸울 수 있을 것 같으면 돼지 하나 통으로 구워줘라. 수프랑 물도.”


딘은 부하에게 지시하고 일을 하러 떠났다.

보통은 승리 축하 기념 회식을 하지만, 오늘처럼 할 일이 있을 땐 아니었다.


“알지? 난 공정하다고. 다 똑같이 나눌 거야. 언제까지 소매치기로만 살 거야?”

“내가 하는 거 보고 잘 배우라고.”


딘은 새로 들어온 몇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누리가 눈을 뜬 건 반나절쯤 지났을 때였다.


“배고파.”


일어나서 누리가 처음 한 말이었다.


“허. 진짜 괴물 새끼네. 그렇게 찔리고도 살아남는다고?”

“아이언 클로는 칼날에 독을 바른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니었나 보네.”


딘의 조직원은 혼자 구시렁거리며 푸짐한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누리는 쉴 새 없이 먹었다.


이 세계에 온 이후 처음 먹어보는 환상적인 식사였으니까.

뭐 조미료라곤 하나도 안 들어가긴 했지만, 어쨌든 통째로 구운 고기에다가, 건더기 가득한 수프.

시원한 물까지.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후, 몸의 상처를 둘러보며 그 역시 놀랐다.

깊숙하게 박혔던 복부와 왼팔의 상처는 흔적이 조금 남아있지만, 다른 곳은 출혈은커녕 깨끗했으니까.


“시벌. 뭔 울버린인가. 초재생 같은 거야?”

“파상풍 같은 것도 안 걸리는 것 같은데.”


누리는 스스로 감탄하며 몸에 아무렇게나 감싸진 옷을 풀었다.

그리고 공급받은 양동이 물로, 이 세계로 온 이후 처음, 진짜 처음으로 빨래했다.

물을 맘껏 쓰지 못하다 보니 하지 못했던 샤워와 함께.


“딘이 뭐라고 한 거야? 어쩐 일로 해달란 걸 다 해주지?”


누리는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조직원에게 물었고 그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 대답했다.

덕택에 깨끗해 진 그는 만족스러웠다.


“하. 이제 살 것 같네. 존나 가려웠어. 이 미개하고 더러운 새끼들. 씻지를 않아, 씻지를.”


딘의 조직원이 눈앞에 있음에도 누리는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내뱉었다.

침묵으로 일관해 왔던 전과는 다른 태도였다.


한 번 뒤질 뻔해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언 클로와의 싸움이 그의 사고를 바꾼 것인지 누리는 밝아졌다.

딘과 그의 부하에게 농담도 하며.


싸움 역시 적극적으로 임했다.

딘에게 원하는 상대를 주문할 정도로.


“가능하면 칼을 쓰는 상대와 붙고 싶어. 투척까지 할 수 있는 놈이면 더 좋아.”


딘은 바뀐 누리를 보며 좋아했고 상대를 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죄다 머리통을 박살 내버리니, 널 상대하려는 놈 찾기가 어려워.”


누리와 딘은 어쩔 수 없이 한동안 신인들, 그러니까 그냥 제물들을 상대했다.

딘의 말에 의하면 신인이냐, 전문 싸움꾼 인가에 따라 대전료가 50배도 넘게 차이 날 정도라, 초짜와의 싸움은 돈이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인기를 높여놓으면 대전료는 올라가니. 널 원하는 놈도 많아지고.”

“인기 많은 놈 잡으면 한 방에 그걸 자기가 다 먹을 수 있거든.”


누리는 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싸움에 응했다.

이전의 망설임은 없었다.

적당한 고통을 주며, 너무 빨리 끝내 대중들이 시시해하지 않게 하면서, 그리곤 죽일 땐 단 한방으로 자비롭게 보내주었다.

누리는 맨손 싸움꾼으로서 숙련 되어갔다.

여전히 딘의 회식은 거부했지만.


“하여튼 특이하군. 물건도 튼실한 것 같은데, 왜 여자를 안 좋아하지?”

“흑초도 마다하고.”


딘은 술, 여자, 대마초 비슷한 담배류 등을 전부 거부하는 걸 의아하게 생각했다.

조금 가까워져서 자유롭게 두었음에도 누리는 여전히 이상한 운동을 할 뿐, 쾌락을 즐기려 하지 않았기에.


누리는 미친놈처럼 싸움을 원했다.

특히 아이언 클로처럼 날카로운 무기를 쓰는 상대를.

매번 원하는 자와 싸울 순 없었지만, 인기가 많아진 만큼 경험을 쌓을만한 도전자도 많았다.

경기 규칙상 칼이나 도끼 같은 걸 쓸 순 없지만 너클이나 클로 혹은 어깨나 팔 같은데 무기를 장착하는 건 허용이었으니까.

다들 클로란 이름의 칼을 썼다.


누리는 점차 칼에 대한 두려움을 버릴 수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란 확신도 생겼고.


“그래도 그레이는 힘들 거야. 기사 출신이잖아.”

“오함마 싸우는 거 못 봤어? 베어 너클도 한 방에 죽었어.”

“하. 그래봤자 맨손 아냐? 그레이는 기사 출신이라고. 클로를 검처럼 쓰는!”

“다리 저는 외팔 병신이 어지간히도 잘 싸우겠네. 오함마가 그 빠른 아이언 클로 죽이는 거 못 봤냐?”


누리가 운동을 마치고 누워 있을 때면 격투장 선수들에 관한 대화가 종종 들려왔다.

지금처럼.


‘이번 상대가 그레이란 놈인가 보네. 근데 외팔에 다리까지 저는데 나랑 비슷하게 급을 매긴다고?’


누리는 의아했다.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도전 상대가 도망칠 정도로 위협적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도 다리 저는 외팔이가 같은 급이라니.


‘숨겨진 기술이 있나. 어쨌거나 이번 싸움이 끝나면 슬슬 생각해 봐야지.’


누리는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인과 딘이라면 지긋지긋했다.

로우힐의 역겨운 냄새도, 짐승보다 못한 인성을 가진 이곳 사람들도.


‘어딜 가도 여기보단 나을 거야. 오죽하면 프리덴의 노예 시절이 나았다고 생각할까.’


딘은 누리를 상위 조직원 취급해 줄 정도로 위치를 올려 주었지만, 별로 맘에 들진 않았다.

누리가 원하는 건 돈이나 불결한 여자가 아니라, 매일 씻고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고,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니.


딘은 조그만 아이들을 소매치기로, 조금 큰 놈들은 경비나 조직 싸움, 협박 등에 이용했다.

말 그대로 강도 길드였다.


도시의 권력자나 부유한 사람이 의뢰를 넣으면 살인 역시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고, 납치도 자주 있었다.

남자들은 노예로, 아이들은 소매치기, 여자들은 창관으로 보내졌다.


누리는 이 역겨운 짓을 눈 뜨고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만류할 만큼의 자신감은 없었고, 그냥 딘의 제안을 거부하는 정도였다.


“오함마. 잘 생각해. 내 호의를 자꾸 무시해서 좋을 게 없어. 내 정식 조직원이 되면 저 허접한 격투장에 더 이상 설 필요도 없다고.”


딘은 절실해 보였다.

브로디란 놈을 제치기 위해.

그래서 딘은 강력한 투사인 누리를 자기 부하로 만들려 꽤 애썼다.


이 도시에 가장 큰 수입원이라는, 무려 5층에다 평수도 넓은, 창관과 도박장 그리고 여관과 술집을 같이 운영하는 말 그대로 종합세트 같은 그 건물을 손에 넣기 위해.


“돈도 되고, 그걸 가져야 진정한 로우힐의 주인이라 할 수 있지.”


누리는 딘의 욕망을 잘 이해했다.

그 건물의 상징적인 의미를.

그러니 배짱도 부렸고.


‘부패한 이곳에서 뭐, 저런 거 하나 잡으면 자기 맘대로 살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에 밤은 다시 찾아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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