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계의 초월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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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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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DUMMY

어둠이 짙게 깔리고, 이곳 지하 격투장의 열기는 더욱 달구어지고 있었다.

오늘의 가장 큰 경기라 할 수 있는 그레이와 오함마의 승부가 열릴 예정이기에.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이 자릴 채웠고, 배당에 몰린 돈은 역대 최고로 많았다.

다만 승부 예측은 거의 5대5로 비등했다.

누리가 보여준 화려한 전적에도 불구하고.


“외팔의 그레이란 녀석은 뭐길래 저리 인기가 많지? 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누리는 딘에게 질문했다.

쌩초짜들과 중견급 투사들의 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그의 경기는 맨 마지막이었기에 여유가 있었다.


“예전에 갑자기 등장해서 진 적이 없다는 투사라던데. 나도 그 시절엔 감옥에 있어서 잘 몰라.”

“클로에 검날을 하나 달아놓고 휘두르는데, 분명 철로 된 검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더군.”

“그래봤자 네놈한테 뭘 할 수 있겠냐만.”


듣기엔 꽤 까다로운 상대 같았다.

딘은 누리의 튼튼한 몸을 굳게 믿고, 돈까지 모조리 건 것 같았지만.


“더 이상 도전자가 없어서 은퇴했을 정도라던데. 인기도 대단했던 것 같더라고.”


전설의 복귀 같은 느낌이었다.

누리는 상대가 더욱 궁금해졌다.

지금까진 검날이나 압정 같은 것들을 팔뚝으로 막아내며 머리통을 부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격에 죽을 공격도 누리의 두꺼운 뼈를 뚫지 못했었다.


‘날 벨 수 있는 놈도 분명히 있을 텐데. 대비책을 마련해야 해.’


누리는 방어구를 요구했고 딘은 의외로 선선히 들어주었다.

그는 철로 만들어진 팔 방어구를 건네주었다.


‘처음 써 보는 거라 어색하긴 한데. 그래도 이거면 칼 같은 거 맞아도 되겠지.’

‘뭐, 맨주먹으로 머리통을 날리니 너클은 없어도 되겠지.’


상대가 워낙 강하다고 하니, 혹시 몰라 준비하긴 했지만, 전투 방식은 했던 그대로 할 생각이었다.

나중에 있을지도 모를 딘과의 싸움을 위해서도, 최대한 비슷한 상황에서, 그리고 날카로운 검날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는 것이 꼭 필요했기에.


중견 투사들의 기나긴 싸움이 끝나고, 관리자가 직접 경기장으로 들어와 사회를 봤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보통은 뒤에서 수염만 만지작거렸으니.


“뜨거운 밤입니다. 오늘, 바로 오늘 평생 잊지 못할 싸움이 벌어집니다.”

“자, 다들 베팅도 하셨으니 길게 말할 거 없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앞에 서서 아무도 멀쩡하게 나갈 수 없었다는 전설의 귀환, 외팔의 그레이!”


소개가 끝나자 새하얀 수염과 머리털.

조금은 작은 키에 다리를 저는 노인이 들어왔다.

그의 한 팔은 비어있었고, 몸은 앙상했다.

가녀린 오른 주먹에 클로를 끼고 있었는데, 일반적인 것과 달리 가운데 검날 하나만이 달려있었다.


‘먼저 소개하는 걸 보니 저놈을 더 세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곳의 소개법을 아는 누리는, 챔피언을 저놈으로 취급한단 사실을 알았다.

지구에선 보통 챔피언이 뒤에 나오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은데, 여기선 반대였으니.


“다음으로 돌아온 전설에 필적하는, 그에 맞설 상대, 온몸이 강철로 만들어진, 말 그대로 괴물, 모든 걸 부수어 버리는 오함마!”


관리자의 소개와 함께 창살이 열렸고 누리는 입장했다.

강철의 몸, 오함마란 별칭에 걸맞지 않게 철 방호구를 끼고서.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관리자는 창살 밖에 나와서 외쳤다.

거의 누리 입장과 동시에 나가서 말이다.


누리는 팔을 들고 상대를 노려보았고, 그레이는 다리를 절며 발을 옮겼다.

그냥 보기엔 걷기도 힘든 노인네 같았다.


‘저런 인간이 어떻게? 이해가 안 되는데. 걷는 것조차도 힘겨워하는 양반이 한 번도 안 지고 다 이겼다고?’


누리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거리가 조금 좁혀진 순간 땅을 강하게 박차기 위해 오른발을 들 때였다.


쉐 – 엑


채찍, 아니 검날이 날아들었다.


“무슨?”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누리는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철로 이루어져 있을 검날이 원래 길이보다 훨씬 길게 늘어나더니 뱀처럼 휘어져선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건 그대로 누리의 등과 몸통을 갈겼다.


“컥.”


짧은 비명과 함께 누리의 등과 몸엔 뼈가 드러날 정도의 깊은 상처가 생겼다.

이해할 수 없는 휘어짐도 그랬지만, 속도도 비정상적이었다.

누리는 그저 노인네가 오른팔을 들고 손잡이에 달린 검날이 살짝 드는 것만 보았을 뿐,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뭐, 뭐 어떻게 한 거야!”


누리와 딘은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무엇이었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다시 검이 날아들었다.

누리는 그레이의 손 움직임을 보고 궤적을 예상했다.


‘저건 검이 아냐! 채찍이다. 그것도 길이가 엄청나게 긴!’


누리의 몸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처음에 한 번 공격으로 등과 뱃가죽 거의 반 가까이 잘라내 버렸고, 그다음 연이은 채찍질로 크고 작은 절상을 냈다.


‘가까이 갈 수가 없어!’


누리가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마다 어김없이 검날은 휘어져 날아왔고, 그건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과 몸 여러 부위를 동시에 타격했다.

누리는 최대한 팔을 올려 머리만큼은 보호하려 했지만, 이따금 뒤통수에 일부분 들어오는 충격은 순간 정신을 잃을 만큼 강했다.


‘시발! 사기잖아! 이런 게 어딨어! 시발, 나도 마법 달라고!’


누리는 이건 마법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채찍의 궤적은 순간순간 변화했다.

그레이의 손 움직임을 보고 채찍의 궤적을 예상했건만, 맞은 건 처음에 한 번뿐.

다음부턴 날아드는 검날이 실시간으로 변화했다.

마치 원격조종을 하는 것처럼.

저건 일반적인 채찍이 아니었다.


“허. 정말 강철로 만든 몸인가? 이걸 맞고도 멀쩡하다니.”


놀라는 건 그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그의 채찍 검은 2번을 넘긴 적이 없었으니까.


누리는 휘청거렸다.

어지럼과 반쯤 꺾여 나간 발목 때문에.


“개 같다. 이렇게 죽고 싶진 않았는데.”


누리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그는 더 이상 뛰기 힘들었다.

발목 하나는 반 돌아가다시피 되어 있어 맘대로 쓸 수 없었고 격통이 몸 곳곳에서 찾아왔다.

온몸은 피에 젖었고, 뒤통수로 맞은 타격 때문에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너 같은 놈이 왜...이딴 곳에...”


이렇게 잘 싸우면서 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디 가서 호위 기사나 하면 더 좋지 않나.

저 정도로 잘 싸우면 작위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누리가 이런 의문을 품는 사이, 그레이는 마무리하려는 듯, 검을 높게 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려치려는 모양새였다.


누리는 강하게 입술을 깨물어 피를 마셨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잠시 어지럼에서 탈출한 누리의 눈에 팔을 높이 든 그레이가 보였다.


‘제발!’


누리는 팔이 약간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보며 그나마 멀쩡한 다리로 바닥을 박찼다.


쿵 -


관중석까지 들썩거릴 정도로 큰 충격이 퍼져나갔고, 누리는 떼굴떼굴 굴렀다.


“시발. 좆같네.”


발 하나가 멀쩡하지 않은 탓에 손으로 구르는 움직임을 겨우 저지했다.


“허어. 끝났다고 생각했건만.”


그레이는 놀랍다는 얼굴과 함께 몸을 돌렸다.

누리는 분명히 보았다.

그의 얼굴에 송송 맺힌 땀방울들을.


“노인네 새끼, 힘들면서 괜찮은 척하고 있는 거였어!”


물론 그렇다고 누리가 나은 건 아녔지만.

이마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는 걸 겨우겨우 닦아내며 누리는 일어서려 노력했다.

뭐, 일어나긴 힘들었지만.


‘시발. 저거 칼 맨손으로 잡으면 잘릴까? 할 수 있을까? 저 빠른 칼을.’

‘살은 다 찢어졌어도 뼈는 멀쩡한 거 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누리는 궤적을 예상해 손으로 잡기로 했다.

다만 예측은 물리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전에 가까웠다.

누리가 보기에 저 채찍 검날은 출발 위치와 도착 위치가 달랐고 마디마디가 살아있다는 듯 중간에도 움직임을 비틀렸으니까.


‘마법이다. 저 영감탱이가 무슨 마법 검을 쓰는 게 분명해.’


누리는 확신하고서 상대 심리를 읽으려 노력했다.

그가 어디를 타격할지를.


‘저 새끼. 처음엔 정직하게 하다가 내가 궤적 예측하니까 아래로 날아오던 검이 위로 방향이 바뀌었었어.’

‘다음엔 우측 편으로 오던 게 갑자기 좌측으로 돌아서 들어왔고.’

‘저 새끼 의지대로 움직이는 검이 분명해.’


눈을 떼기 어려운 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딘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애들 다 모이라 그래. 시발. 돈 다 날리게 생겼다. 진짜 미친 늙은이야.”


딘이 말하자, 조직원 몇은 수긍하는 분위기였고 몇은 놀란 눈으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말했잖수. 괴물이라니까. 누가 와도 못 이긴다고. 진짜 기사 출신은 여기 수준이랑 아예 다르다고.”


누런 이를 드러낸 조직원 하나가 실실거리며 말했다.

딘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곧장 단검을 꺼내어 그놈 목에 박아 넣었다.


“커 – 억.”


목이 찔린 녀석은 피가 흐르는 부위를 감싸 잡으며 뒷걸음치다 엎어져선 그대로 절명했다.


“보스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도 모르나. 시발. 내가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이렇게나 망가졌을 줄이야.”


이들 사이엔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딘의 말을 기다렸다.


“잘 들어. 전부 화염병 하나씩 챙겨. 단검도 잊지 말고.”

“오함마가 뒤지면 그때 불 지른다. 다음엔 배당금하고 모아놓은 데 알지? 바로 반은 바닥에, 나머진 관중한테 뿌려. 반만 들고 튄다.”


딘은 조직원들 모두에게 세세한 작전을 지시했다.

불을 지르고 소동을 일으킬 조.

대기하다가 불이 나고 관중들이 놀라면 상자를 급습해 반은 관중들에게, 반은 들고 달아날 조.

사건이 끝난 뒤 집결할 곳까지.


“내가 누군진 알고 있겠지? 난 쌍칼의 딘이야. 내가 표적으로 삼은 놈은 놓친 적이 없다고.”


딘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혹시나 돈을 들고 도망칠 놈을 염려한 탓에.

실제로 딘은 작전에 참여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혹여나 잘못되면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할 생각이고, 잘될 것 같으면 제일 돈 많이 들고 움직이는 놈만 감시하면 된다.


“시발. 오함마, 그 병신한테 다 거는 게 아니었는데.”


딘은 투덜거리며 다시 투기장으로 돌아갔다.

품에 투척용, 근접용 단검과 적당히 알콜과 천을 섞어 만든, 화염병과 같이.


어차피 여기 사람들은 경기에 다 홀린 상태라 딘의 움직임에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이곳의 경비를 담당하는 놈들조차도.


“와우. 죽이는데. 저걸 맞고도 살아남아서 주먹을 날리다니.”

“끝났어. 그레이는 전설이야. 오함마의 이야기도 여기가 마지막이군.”

“그래도 지금까지 봐왔던 놈 중에선 제일 잘 싸웠어.”


관중들은 비실거리는 오함마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고, 관리인과 그 수하들은 그레이에게 건 사람들에게 줄 배당금을 준비했다.

관리인의 신변과 투기장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경비들은 화려한 무용에 눈을 떼지 못했고.

딘의 부하들이 예정된 지점으로, 품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자리를 이동하는데도 제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원래 술은 자유롭게 마셨고, 술병은 반입금지 품목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천이 몇 개 손에 더 들려있다고 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관리인의 수하가 딘의 부하보다 몇 배는 더 많기도 했고.


딘은 부하들이 좋은 위치에 자리 잡는 걸 확인한 후, 손으로 신호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부하들은 잘 움직여 주었고 물품 역시 잘 가지고 있었다.


이제 딘은 신호를 보내려 손을 들었다.

불을 지르고 돈을 강탈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할 생각으로.


그때였다.

딘이 부하들의 위치와 숨겨진 돈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할 때, 그때 거대한 소음이 일었다.


“와아아아아아!”

“시발! 미쳤다!”

“내가 뭐랬어! 이긴다고 했잖아!”


딘은 싸움이 끝난 걸 인지하고 그대로 신호했다.

그리고 잠시 투기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예상한 것과는 다른 풍경이.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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