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계의 초월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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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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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DUMMY

딘은 급하게 신호를 취소했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었다.


조직원들 대부분은 경기장이 아닌, 딘의 손을 보고 있었고, 그의 손은 큰 환호가 일었을 때 아래로 내려갔다.

짧은 시간에 세세히 잘 짜인 계획은 즉각적으로 시행되었다.


두건 망토를 쓴 딘의 조직원들은 품속에 있던 화염병을 곳곳에 던졌다.

나무로 만들어진 지하 격투장은 금방 화염에 휩싸였다.


“불! 불! 빨리 물 퍼와! 당장 끄라고!”


관리인이 당황해서 외쳤지만, 많은 그의 수하 중에서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뜨거운 불꽃, 새카만 연기, 갑자기 곳곳에 뿌려지는, 평생 벌어도 만지기 힘든 수준의 금화와 은화, 마지막으로 저 말을 외친 관리인이 괴한에게 죽는 순간까지.

이곳은 이미 혼란에 빠졌다.


“시발. 이게 아닌데. 오함마가 어떻게 이긴 거야?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발목이 나가서 걷지도 못했는데.”


딘은 구시렁거리며 관리인이었던 것의 품을 뒤졌다.

그 옆을 지키던 경호원 둘의 시체도.


“별것도 없네. 이 병신새끼. 어차피 네 놈 집의 위치는 다 아니, 곧 다 털어가마.”


서류로 보이는 종이 몇 장을 귀하게 챙긴 딘은, 곧장 오함마에게 달려왔다.


“뭘 멀뚱거리고 있어. 당장 따라와.”


온몸 곳곳에 뼈가 그대로 드러난 채, 피를 흘리던 누리는 어지럼을 느끼면서도 딘을 따라나섰다.

물론 그레이의 마법 클로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발. 뭔 상황이야. 지금 정신 나갈 것 같은데. 기절할 것 같아.’


누리는 사라져가는 의식을 간신히 붙들고 긴 탁자 다리 하나를 목발 삼아, 또각또각 걸어갔다.


“상황이 꼬였어. 어차피 뭐 조그만 저런 곳 하나 정도야, 새로 만들면 그만이지.”

“돈이랑 사람만 있으면 괜찮아.”


딘은 그렇게 말하며 누리가 알 수 없는 곳을 목적지 삼아 내달렸다.

물론 잘 쫓아오는 진, 확인조차 하지 않은 상태로.


누리는 멀쩡한 발 하나로 강하게 바닥을 차며 겨우 따라갔고, 도착한 곳은 로우힐 외곽의 허름한 집이었다.

문 하나만 달린, 텅 비어있는 집.


딘은 도착하자마자, 모양도 다 똑같은 바닥에서 뭘 어떻게 구별했는지, 바닥을 열었고 이어진 계단으로 누리와 자신의 품속에 있던 문서, 그리고 금화와 은화를 놔두었다.

다시 문을 닫은 딘은 바깥을 보며 경계했다.

누리는 지하실 바닥에 곧장 엎어지며 기절했고.


그사이 딘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신의 조직원들을 차례로 죽였다.

인사말 따위는 없었다.


그저 윽, 억, 컥 같은 비명만 짧게 들렸다.

그의 단검은 정확히 목만 노렸고 문을 열고 들어왔던 딘의 조직원은 모두 죽었다.


그들이 챙겨왔던 물품들은 고스란히 지하로 직행했고.

딘은 다시 빠르게 그 지하 격투장으로 달렸다.

여기서 10분 정도 넘게 가야 도착하는 그곳에.


“흐. 외곽에 있던 놈들까지 불 끄러 왔네. 잘됐어.”


딘은 미소를 잠깐 짓더니, 화재가 난 건물 근처, 2층으로 만들어진 창고로 뛰어갔다.

브로디 계열 조직이 아닌 놈들이 종종 거래를 위해 쓰는 곳으로, 오늘도 몇 개의 크고 작은 조직들이 범죄를 논하고 있을 터였다.


“시발! 브로디 개새끼!”


딘이 외치며 들어간 곳엔 당황한 얼굴을 한 무장한 사람 여럿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딘에게 주목했다.


“브로디 개새끼가 우릴 다 죽이려 하고 있어!”

“지금 내 부하들이 전부 뒤졌다고. 지금 불을 지른 것도 놈 짓이야. 그 시발놈이 머피도 죽이고 나도 죽이려 해!”


딘은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상황을 정확하게 전파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주도했다.


“우리 힘을 합쳐야 한다고! 브로디 그 개새끼가 결국 로우힐 전체를 먹으려 하는 게 분명해.”

“머피는 나랑 협력했다는 이유로, 그레이란 놈, 그 괴물을 들였단 이유로 죽인 게 틀림없어!”


딘의 표정은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언어의 전달은 정확하고 생생했다.

딘의 입에선 딘과 머피, 그리고 다른 조직 연합의 새로운 탄생을 두려워한, 브로디의 칼잡이들, 그들의 행동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었다.


“지금 머피의 건물 전체가 다 불탔어. 하나도 남김없이. 나도 습격을 받아서 겨우 살았다고!”

“지금 우리 이럴 게 아니라, 빨리 움직여야 해! 브로디 그 개새끼를 처리 안 하면 너희도 나랑 같은 꼴을 맞을 거라고!”


딘은 브로디에 대항할 연합 조직의 이유를 설파했다.

무슨 이유로 모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대화의 주제는 확실하게 딘이 꺼낸 이야기로 바뀌었다.


“브로디 놈은 진짜 위험해. 내 맥주 공급권도 전부 그놈이 가져갔어. 언젠가 여길 혼자 다 먹을 셈인 거야.”

“내 도박장도 뜯어갔던 놈이지. 내 손이랑 같이.”

“시발. 그 어린 새끼가 건방 떨 때부터 알아봤어. 머피를 죽이기까지 할 줄이야.”


대부분 딘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었지만, 아닌 사람도 존재했다.

브로디는 로우힐에서 가장 큰 조직을 운영하긴 했지만, 마구 싸움을 거는 곳은 아니었으니까.


“브로디가 그렇게 싸움을 걸 리 없어. 갑자기 다 죽이려 들 리 없어. 그렇게 멍청한 놈 아냐. 우린 안 낀다.”

“흐. 망했던 딘이 갑자기 연합을 만든다니. 어지간히도 믿음이 가겠다.”


로우힐의 조직이 모두 모인 것이 아닌 데다, 딘도 그저 물 흐리기에만 초점을 맞췄기에 나름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그는 브로디 조직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만 보고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 사이 화재는 크게 일어, 주위 건물을 부수어 불이 번지는 걸 막는 걸로 결정 난 듯했고, 아마 저 창고 역시 그렇게 될 터였다.


“대부분 다 부수겠지. 작은 화재가 아니니. 밤이라 불을 끌 인원도 적고.”


딘은 어두운 밤 그늘에 숨어서 죽은 관리인, 머피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한 밤임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소동이 일어난 듯 분주했다.


“시발. 살아남은 새끼들이 꽤 많네.”


딘은 후드를 덮어쓰고, 품에 있는 단검을 몇 개 날렸다.

그리곤 곧장 돌멩이 몇 개를 주워들어 반대편 쪽으로 던졌다.


“윽.”


짧은 비명과 함께, 목에 비수가 박힌 몇 명이 쓰러졌고, 무기를 든 남자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습격이다! 분명 불 지른 새끼야! 찾아서 쳐죽여.”


이곳의 리더로 보이는 자가 외치고, 놀라 숨어들었던 조직원 몇이 소음이 일었던 곳으로 달렸다.


“반만 나가네. 이러면 나가린데.”


딘은 정문으로 전부 모여 수비 태세를 취한 녀석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건물 뒤로 돌았고, 저택의 창가를 소리 없이 넘었다.


“시발. 인생이 도박이지.”


작은 소리조차 안 내며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성공한 딘은 고요한 저택의 2층으로 올라갔다.

머피가 살아있을 때, 집무실로 사용하던 곳으로.


벨트 안에 있던 락픽을 꺼내, 몇 분도 되지 않아 잠금 해제에 성공한 그는, 품에 있던 서류 몇을 찢어 바닥에 뿌렸다.

그리고 단검 하나를 꺼내, 머피와 자신이 체결했던 노예 판매와 대전 승인 서류 몇 장에 꽂아 넣었고.


“남은 놈이 몇이나 되는진 모르겠지만, 잘 싸워봐라.”


딘은 머피의 방에서 몇 안 되는 금화를 벨트에 넣고, 탁자의 잠겨져 있던 것에서 서류를 챙겨 건물을 빠져나왔다.


“머피. 네 사업은 내가 잘 물려받으마. 투기장은 건물이 아니라, 선수를 잘 구하는 게 중요하지.”


한때 동업자였던 머피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딘은 외곽 지역의 다른 허름한 건물로 향했다.

아무도 믿지 않는 그가 숨겨둔 아지트 중 하나였다.

그렇게 뜨겁게, 뒷골목에서 벌어진 대형화재가 아침을 맞이했다.


누리는 그동안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 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투기장에서 난 불 역시.


누리는 자신이 눈을 떴을 때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배고픔으로 추정만 할 뿐.


일어난 그는 곧장 건조식으로 보이는 것과 물을 먹었고, 갈증과 허기를 해결하자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발목이 다 낫진 않았네. 등이랑 배도 아직 깊게 남았고. 내 재생력이 완전 사기는 아닌가 보다.”


누리는 아쉬움을 삼키며 주변에 있는 천을 몸에 감았다.

발목 역시 가져온 탁자 다리를 부수어 감아 놓았고.

일어날 때마다 상처가 나아 있길래,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낫는 게 더뎠다.


다음으로 살펴본 건 그레이의 마법 검이었다.

그건 그냥 손에 착용할 수 있는, 한손검 길이의 칼이 달린 클로였다.


“어떻게 한 거지? 길쭉해지고 궤적도 자유자재던데.”


분명히 마법검이라 생각했건만.

누리의 의지와 달리 그 검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일반적인, 투박한 무기들과 전혀 다른 게 없었다.


“기술 사용에 조건이 필요한 건가.”


이 세계를 아예 게임처럼 생각한, 물론 허기나 고통 등 실제와 다 같지만, 어쨌든 그렇게 이해한 누리는 원리를 깨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레이의 무기는 쓸 수 없었다.

그냥 낡은 검이 달린 클로였다.

얼마 쓰지도 못할 것 같은.


“에라. 진짜 좆같은 세계야.”


아주 잠깐이나마 마법검의 꿈을 꾼 누리였다.

그걸 지금 이해하는 건 포기하고 대신, 딘이 숨겨둔 여러 가지를 살폈다.

물론 그의 허락은 필요 없었다.

누리는 이제, 전과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그레이, 누리가 생각했을 때 로우힐의 최강자라면 그가 분명했다.

딘보다도 더.


“시발새끼. 진짜 죽일 놈이네.”


이곳엔 금화나 은화 같은 건 생각보다 적었지만, 계약 서류는 많이 있었다.

이스마엘에게 글을 좀 배운 덕에 누리는 여기 있는 종이들을 읽을 수 있었고, 내용 역시 이해했다.


글은 아주 간단했다.

의뢰주, 의뢰내용, 의뢰비, 그리고 서명.


“계획을 반대하는 그린 가든의 셋째 아들을 사고사로 위장, 이번 개발 계획 담당 위원장을 불륜으로 협박, 건축에 쓰일 목재 판매 독점을 위해 상인들 협박, 유리아, 여자겠지? 협박하려고 납치도 했네...”


강도 길드의 수장, 딘답게, 의뢰들도 살벌했다.

그 외에도 유품으로 보이는 장신구 몇 들을 더 발견했다.

자기 이름의 노예 증명서 역시.


“누리란 이름으로 등록했네. 중세 시대보단 좀 더 발달 되었나. 행정기록물이 제법 꼼꼼하네.”


노예 증명서엔 출신지, 이름, 출생 연도, 거주지와 소유주의 성명, 그리고 신고 일자까지 나와 있었다.

무식한 세계란 이미지랑 달리 이렇게 의외로 발달 된 부분들이 가끔 보였다.


“첫날부터 날 노예 취급했네. 이 개새끼.”

“내가 성을 말한 적이 없으니까 그냥 누리로 했나 보네.”


누리는 증명서와 갖가지 서류들을 찢어버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딘이 썼던 걸로 추정되는 옷들로 갈아입고, 벨트를 찼다.

거기에 보이는 금화와 은화, 그리고 단검들을 챙겨 넣었다.


클로는 너무 눈에 띄어서 잠시 고민했지만, 마법검에 대한 탐욕을 버릴 수 없었던 나머지, 가죽 같은 걸로 검날을 감싸서 허리에 매두었다.

벨트의 나머지 공간은 남은 건조식과 식수가 담긴 물통으로 채워 넣었다.


그렇게 떠날 준비를 마치고 문을 열고 나간 누리에게, 방금 돌아온 딘이 보였다.

허름한 건물 창틈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을 보니, 한밤중인 것 같았고 딘의 몸에서 풍기는 피 냄새는 또 누군갈 죽이고 왔단 사실을 알려주었다.


“흐흐흐. 역시. 멀쩡할 줄 알았어. 오함마. 네 몫을 해줄 때가 됐다.”

“이제 곧 브로디를 친다. 그전에 네가 할 일도 있고.”


딘은 다른 조직이 모인 곳에서 누리가 증언할 것을 요구했다.

브로디의 칼잡이들이 머피와 자기 조직원을 죽인 것, 불을 지른 것까지.


누리는 대답 없이, 기절한 사이 벌어진 일에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적정한 추론과 놈의 간단한 설명으로 사건을 정리했고.


“내가 그렇게 증언하고 나서, 그리고 브로디와 싸움이 끝나면 나도 죽일 건가?”


딘이 기대한 것과 달리 누리의 냉랭한 목소리가 낡은 건물에 퍼져나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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