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계의 초월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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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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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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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DUMMY

딘은 눈살을 찌푸리며 누리를 노려보았다.


“난 내게 깝죽거리는 놈들을 좋아하지 않아. 어중이떠중이 몇 상대하더니 겁대가리를 상실한 모양이지?”

“이래서 사람을 함부로 거두는 게 아닌데.”


딘의 내뱉는 저음의 목소리에 누리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는 몇 번이고 상상하고 연습했다.

딘에게서 벗어나는걸.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딘보다도 강하고, 아예 죽여버릴 힘도 있고, 더 이상 이 녀석과 함께할 마음이 없다는 걸 확신하는데도 저놈 말을 거부하는 건 여전히 두려웠으니까.


“딘. 난 네 목숨을 구해주고 네게 많은 돈을 벌어줬다. 넌 내게 무얼 해주었지? 난 네 노예가 아냐.”


누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 의사를 확실히 전달했다.

딘의 일그러진 표정을 똑똑히 바라보면서.


“누리, 마지막이다. 지금 날 따르면 방금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

“나와 함께하면 넌 네가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거다. 아니라면 네 시체는 머피나 그레이처럼 찾기도 힘들겠지.”


딘의 차가운 목소리에 누리는 괜히 목을 감쌌다.

비수가 날아드는 것 같았으니까.


“딘, 여기서 갈라지자. 난 네게 할 만큼 했어. 네 이야긴 어디서도 안 할 테니, 날 그냥 보내줘.”


누리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싸우는 것도 두려웠고, 살인 역시 싫었다.

할 수 있다면 저놈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 싶었지만.

이 무식한 세계의 법률이란 믿을 만한 게 아니니.


“흐흐흐. 어린 새끼가 거둬 먹여주고 키워줬더니. 내가 또 이렇게 뒤통수를 맞다니.”

“이래서 내가 사람을 믿지 않아. 이 쌍칼의 딘이 프리덴까지 끌려가면서 배운 교훈은 죽이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단 거야.”


쉐 – 엑


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2개의 비수가 누리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그걸 인지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반응할 수가 없었다.

그레이와의 싸움 여파로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아서.


“억. 시발!!”


누리의 고함이 터지며 몸에선 붉은 피가 흘렀다.

그는 뒤뚱거리며 박힌 칼을 빼내고, 그레이의 클로를 꺼내어 들려고 애썼다.


“좃밥들 몇 이겼다고 네가 잘 싸우는 줄 알았나?”


딘은 허리춤에 있던, 애매한 길이의 검을 누리의 복부에 쑤셔 넣었다.

비수를 막 뺀 누리는 피를 토하면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칼은 그대로 배에 박혀 있었고.


“흐흐흐. 실전이란 게 이런 거야. 안전한 철창 안에서 싸우는 것과는 다르지.”


딘은 누리의 머리를 밟으며 말했다.

누리는 흐르는 피와 통증으로 어지러움을 느끼며 버둥거렸고.


“잘못했다고 빌고, 지금이라도 날 따르겠다고 말하면 혓바닥 자르는 걸로 봐주지.”


딘의 목소리가 아래로 깔렸고, 누리는 기어이 배에 박힌 칼을 뽑으며 몸을 일으켰다.

딘은 기가 차단 표정으로 뒤로 빠졌다.


“넌 무슨 트롤이라도 되는 거냐? 보통, 사람은 목에 단검 하나 박으면 다 뒤지는데.”


누리는 꼿꼿이 일어섰고, 몸 전체가 피에 젖어 마치 광전사처럼 보였다.


“딘, 난 너 같은, 좆같은 새끼랑, 좆같은 일 역시 할 마음이 없어. 나 역시 마지막이다.”

“이대로 날 그냥 보내줘.”


누리의 냉기 어린 목소리가 퍼졌고, 딘은 코웃음을 쳤다.

딘은 대답 대신 품에 숨겨둔 단검 2개를 또다시 날렸다.

목과 얼굴을 향해.


누리는 자신의 두꺼운 팔을 간신히 들어 올렸고, 두툼한 전완근에 2개의 칼이 박혔다.

그러는 사이, 누리가 복부에서 빼냈던 검을 집어 들은 딘이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누리는 그걸 피하는 대신, 아니 피할 수 없는 다리 상태란 걸 알기에 그는 팔꿈치로 검을 받았다.


살이 그어지고 핏물이 폭포수처럼 터졌지만, 딘 역시 당황한 모양새였다.

마치 거대한 바위를 때린 듯, 검이 튕겨 나왔으니까.


“후, 좋아. 인간이 아닌 놈을 어쩌겠어. 그냥 보내주지. 로우힐을 떠나 멀리 가라고. 안 그럼 내가 널 끝까지 죽이려 쫓을 테니.”


딘은 말을 마치며 검을 내던졌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누리는 당장 바닥에 쓰러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발을 디뎠다.

한 걸음 뗄 때마다 피가 바닥에 그대로 고였다.


‘시발. 뒤질 것 같다. 기습이라도 하면 반응도 못 할 것 같은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누리는 처절하게 허름한 집의 문 앞까지 발을 디뎠다.

그 순간 바깥엔 세찬 빗소리와 함께 천둥이 쳤고, 누리는 발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쉐 – 엑


그리고 귀가 아플 정도로 컸던 천둥소리에 맞추어 2개의 비수가 누리의 등 뒤로 날아들었다.


푸 – 욱


단검 2개가 목과 등에 박히며 누리가 무릎을 꿇었다.

끼 – 익 거리는 낡은 나무 바닥 소리와 함께 딘이 서서히 다가왔다.


“딘, 넌 끝까지...”


누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 애매한 길이의 검이 목으로 날아왔다.


퍽 -


둔탁한 소음과 함께 누리의 오른팔 살점이 다 베였고 누리는 딘의 힘에 밀려 그대로 쓰러졌다.


“누리, 이 세상은 원래 좆같은 거야-. 그러니까 그냥 받아들이라고.”

“안 그러면 너만 힘들어지니까.”


딘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하며 누리의 몸을 밟았다.

누리는 침과 피로 바닥을 적시며 흐릿한 눈으로 위를 올려 보았다.

힘겹다는 듯, 말을 건네며.


“딘, 내가 어떻게 그레이를 이겼는지 말했던가?”


딘인 헛웃음을 치며, 누리의 상처를 발로 짓뭉갰다.

이 상황에 그딴 게 궁금하겠냐는 듯.


누리는 복부의 큰 상처가 밟히는 고통에도 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벨트에서, 붉은 오른손에 들린 단검이 날았다.

그건 누리를 밟고 있던 딘의 낭심에 그대로 박혔다.


“어 – 어 – 억.”


딘은 소리도 잘 내지 못하고 뒷걸음을 쳤다.

누리는 바닥을 왼손으로 짚으며 오른 주먹을 날렸다.

딘의 머리로.


오함마.

지하 격투장에서 누리의 별명이었다.

주먹 한 방으로 대가리를 통째로 날린다고 해서 붙은 별칭.


퍽 -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없는 새까만 시신 하나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누리는 그나마 멀쩡한 다리에 의지하며 일어섰고.


“나...이제 무기 잘 던져. 네 싸움을 봐둔 것만으로 익숙해졌더라고.”


누리는 힘겹게 말을 이으며, 머리통이 날아간 딘의 벨트를 열었다.

그곳에서 흰 붕대로 온몸을 감는 한편, 치료 약으로 보이는 걸 몸 곳곳에 붓고 마셨다.


포션.

한 번도 써본 적은 없지만, 누군가 사용하는 걸 본 적은 있다.

경비인지, 개인 경호원인지 관중들 난동 제압 후, 베인 상처에 붓고 마셨던 걸 생생히 기억하고 있으니.

누리의 예상대로 딘은 의료용품을 잘 들고 다녔다.


“꼼꼼한 놈이었으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누군가 더 들어올 수도 있으니.

누리는 마저 딘의 품을 털었고, 돈 몇 푼과 종이 몇 개를 획득했다.

빛나는 너클 하나도.

누리의 손에 딱 알맞은.


“흐. 또 살인 의뢰 같은 건가.”


피와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궁금증을 참지 못한 탓에, 곧장 종이들을 들고 간략하게 읽었다.


“누리, 로우힐, 시민?”


누리는 신분증명서를 읽다가 멈췄다.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곧장 다른 서류도 뒤적거렸고, 누리는 딘의 계획을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거짓 증언으로 다른 조직 연합과 브로디를 싸움 붙이고, 딘이랑 내가 놈을 암살한다라...”

“암살...다 다른 조직의 보스인가 보네.”


딘의 계획은 브로디와 타 조직 연합이 싸움이 붙으면 양쪽을 가리지 않고 마구 암살하는 것이었다.

서로 싸우는 도중이니, 양측을 의심하지 딘을 용의자로 꼽지도 않을 테고.


“그 후 무주공산이 된 로우힐을 접수한다라...”


놀라운 건 그 계획 자체가 아니었다.

애초에 범죄 조직엔 관심이 없었으니.

누리의 처신에 관한 것이었다.

딘은 누리를 이곳, 로우힐의 관리자로, 그러니까 이 도시 암흑가의 보스로 앉힐 생각이었다.


“허. 난 내가 그냥 딘의 부품인 줄 알았는데. 쓰다 버릴.”


누리는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읽던 종이를 내려놓았다.


“흐흐흐...”


누리는 기묘한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그러나 바깥에서 세차게 내리는 비는 모든 소리를 묻어버렸다.

밟을 때마다 끼-익 거리는 낡은 나무 바닥의 소리도, 무언가 터져나갔던 불쾌한 소음까지도.


굳게 닫힌 문 안, 그 작은 방에서 자그마한 눈알과 싯누런 이가 굴러다녔다.

얼굴이 없어진 놈의 앞니보다 훨씬 더 빛나는 짧은 검 역시.

한때 카리스마와 한치의 혓바닥으로 이곳을 주름잡던 놈은 이제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기 주먹을 바라보던 그는 같은 말을 자꾸만 되뇌었다.

지금 여기 떠나간 이가 남긴 말을.


“이 세상은 원래 좆같은 거야-. 그러니까 그냥 받아들이라고.”


누리는 그렇게 수없이 반복하다가 지하실로 발을 옮겼다.

쏟아지는 졸음과 피로를 견딜 수가 없어서.


그는 곧장 건조식품을 입에 조금 쑤셔 넣더니 벽에 기대어 잠이 들어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온 세상이 고요했다.

바깥에서 세차게 내리던 빗소리도, 몸까지 떨리게 만들던 천둥도, 딘의 불쾌한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 꿈이 아니지. 이 세계는 좆같아.”


누리는 복잡한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건조식을 씹으며 지하실을 나와 빗물이 담긴 양동이를 들이켰다.


그리고 돈과 신분증명서, 물통 및 건조식, 마지막으로 딘의 물품과 단검까지.

옷 갈아입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처가 잘 낫지 않아. 깊게 다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어.’


그레이에 이어 딘에게 베인 상처까지 아물지 않고 깊게 남은 걸 보며, 붕대를 더욱 강하게 감았다.

발목엔 다른 탁자를 부수어 감쌌고.


“딘, 이 좆같은 새끼야. 너랑 보낸 시간은 좆같았지만, 많이 배웠다.”

“네가 날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내가 평생 알 길이 없겠지. 저승에서 다시 만나면 못한 이야길 나누자.”


누리는 딘이 가지고 있던, 근방의 도시가 그려진 간단한 지도를 보며 문을 열었다.


끼 – 익


낡은 문의 소음이 퍼지며 밝은 햇살이 누리를 반겼다.

새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하얀 구름과 촉촉하게 젖은 잡초들이 그의 눈을 가득 채웠다.


“날씨 죽이네. 이제 진짜 새로운 시작이네. 좆같은 새끼. 다시 만나면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분명 너완 다른 인간이야.”

“잘 있어라.”


누리는 곧장 문을 닫고 발을 옮겼다.

탈레스 -

누군지 알 길이 없지만, 누리란 이름이 아닌 이 세계에 알맞은 이름의 신분증명서.

딘이 누리에게 주려고 했던 너클과 이 세계에 알맞은 새로운 이름 그리고 신분.


누리는 그걸 들고 로우힐을 벗어났다.

딘이 했던 걸 따라 하며.


“여기 제 신분증명서, 그리고 통행료입니다.”


통행료인 동화 몇 개와 함께 누리의 약지와 새끼에 끼인 은화를 받은 경비 대장이 손짓했다.

어서 나가라는 듯.


이 세계에 오고 긴 머리칼에, 산적 같은 수염을 가진 누리는 이제 없다.

대신 탈레스란 이름의 짧고 새까만 머리와 민둥민둥한 턱을 가진 사내만 존재할 뿐.


탈레스는 딘이 로우힐을 차지한 후, 진출하려 했던 도시, 흑초라 불리는 일종의 대마초 같은 것으로 보이는 마약 원료의 생산지이자, 블루 리버라 불리는 강 옆에 세워진 루시드란 도시로 향했다.


“안녕. 로우힐. 좆같은 곳이지만 많이 배웠어.”


탈레스가 멀어져가는 낮은 언덕의 도시에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제 무슨 일을 해서 먹고살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후. 좆같은 이 세계에 와서도 취업 고민이라니.”

“살인은 절대 안 하는 직종으로 간다. 딘 같은 새끼랑도 안 엮일 수 있는 걸로.”


기본적인 규칙을 정리한 탈레스는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몸을 닦고 씻었다.

로우힐에서 남은 역겨운 냄새,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피 냄새를 지우기 위해.

살인이나 노예 같은 더럽고 맘에 들지 않는 삶 대신, 새로운 여정을 떠나기 위해서.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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